<다이빙 벨>, 진도 팽목항이 아니라 부산에서 떠올랐다. 지난 6월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상영될 예정인 <다이빙벨>을 반대하며, 앞으로도 논란이 있는 상영작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사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유인 즉슨, 세월호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인 <다이빙벨>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 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반대했다.

조직위원장이 이렇게 상영을 반대하는 경우는 없었다. 전임 시장들과 달리 서병수 부산시장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특이한 일이다. 심지어 부산시가 영화제 예산의 절반 가량을 제공하고 있어서, 서병수 시장의 주장이 사실상의 ‘외압’과 ‘검열’이라는 논란이다. 이게 진짜 ‘비순수’한 ‘외부세력’개입이다.

다이빙벨 포스터

<다이빙벨>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건 참으로 넌센스다. 일단 말을 하는 본인이 ‘정당인’이며 지난 지방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플래카드에 넣고 유세를 하지 않았는가.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관점이 ‘중립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 관점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건 본인뿐이다. <다이빙벨>이 정치적이라고 졸렬하게 왜곡하지 말고, 그냥 정부까서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사진 따라서 유체이탈인가(…)

또 하나, 영화제는 항상 ‘논란’의 장이어야만 한다.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에 등재되어 있는 영화제의 정의를 읽어보자.

인덴트 보통 매년 열리며 국가·지방기관·산업체·봉사기구·실험영화단체·흥행주의 후원을 받아 영화제작자·배급업자·비평가 및 다른 관계인들이 영화를 보고 현대 영화의 예술적 발전을 토론할 기회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배급업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흥행이 잘 될 것으로 여겨지는 영화를 살 수 있다.

그래, 영화제는 현대 영화의 “예술적 발전을 토론할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다. 예술은 잠들어있던 우리의 감수성에 파문을 던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너무나 무감각해져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던 우리의 감수성을 깨울만큼 강렬하고, 울림이 있어야만 한다. 우둔한 오늘과 잊혀진 어제를 극복하여 미래의 내일을 그릴 수 있어야만 “예술적 발전”을 논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대사의 예술가들은 항상 사회에 ‘논란’이었고, ‘자극’이었다.

또한 영화제는 그런 논란의 작품들이 시장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장이다. 영화제가 없었다면 ‘서독’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 미하일 페어회벤 감독의 <더 걸>도 나올 수 없었고, 21세기의 뉴 클래식이라 불리는 벨라 타르 감독의 <토리노의 말> 역시 ‘노잼’이라며 묻혔을 거다. ‘쇼비즈니스’말고 예술로서의 영화가 축복받을 수 있는 곳에서 ‘정치적 논리’를 가지고 작품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지극히 오류다.

혹자는 <다이빙벨> 자체가 질이 낮고, 논거도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별개의 이야기다. 작품의 내적인 수준이 낮다고 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질 권리조차 ‘정치적으로’ 침해받을 이유는 하등 없다. 영화는 관계자가 평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평한다. 제한상영가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논거부족’ 운운하며 상영에 제한을 하자는 의견은 지극히 선민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등신같아도 들어줄게

침묵은 과연 중립일까?

2013년부터 유난히 화제가 된 단어 중에는 분명 ‘중립’이 있다. 중립은 대체 뭘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이라는데, 현실적으론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중립이겠다.

하지만 현 정권 치하에서 쓰이는 ‘중립’은 뭔가 다르다. ‘이석기 사태’ 당시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대변인과 인터뷰를 한 JTBC는 ‘편중보도’라는 명목 하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교황에게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노란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라며 국격 올라가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선거철’에 야당 후보를 비방한 원세훈 국정원장에겐 선거법 위반 ‘무죄’라는 아름다운 판결도 나왔다.

이런 느낌

대충 보면 이들의 머리 속에 제 1원칙으로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부가사항으로 ‘침묵이야말로 중립’이라는 의식이 기저에 깔린 듯하다. ‘침묵이 중립이다’라는 금언 하에 온갖 목소리를 죽이는 것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목소리를 내야할 때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자들을 막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사회를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야 일단 떠들고 보자!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다른 주장들과 경쟁하게 하라. 경쟁력 있는 주장이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라질 것이다.”

라는 민주사희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겨울공화국 시절의 작태를 보여주고 있는 서병수 시장이다. 전 인류에서 너만 다른 의견을 가져도 우리가 너를 침묵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다이빙벨>이 설령 틀려 ‘보여도’ 그것을 침묵하게끔 할 수는 없다. 일베가 진짜 개호로십샹스키들이지만, 일베 폐쇄는 반대하는 것처럼 우린 그들의 목소리를 음소거시킬 권리가 없다.

마무리는 대법원의 판결과 함께 하겠다.

자유로운 견해의 개진과 공개된 토론과정에서 다소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다. 무릇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이 생존함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하므로 진실에의 부합 여부는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가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고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객관적 진실과 일치할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

P.S 부디 이 걸 계기로 부산국제영화제가 다른 곳으로 이전됐으면 좋겠다. 대형 게임쇼 G-STAR에 이어 BIFF도 이전되면 정신차리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