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세요…?

평소처럼 카톡을 보고 있던 김선영(가명•24)씨는 친구 추천란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친구 추천 숫자가 늘어났길래 별 생각 없이 확인을 해봤어요. 그런데 제 얼굴이 딱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가지고. 맨 처음에는 이게 핸드폰이 고장 났나 했거든요. 근데 핸드폰을 바꾼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라 고장은 아닌 것 같았고. 스토킹이나 피싱류 사기인가 싶었어요.

김선영씨

그녀가 목격한 ‘카톡 친구추천’에 뜬 그녀 자신의 얼굴….(소름)

이런 일은 연예인이나 유명인만 당하는 줄 알았다는 선영씨. 그녀가 올려둔 프로필 사진은 친구가 피자집에서 찍어준 평범한 일상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녀는 잘 알려진 얼짱도 아니고, 해당 프로필 사진을 공유할 목적으로 퍼뜨린 적도 없었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내 사진을 도용한 걸까?” 선영씨는 이렇게 추측했습니다.

스토킹인가 싶기도 했고, 피싱류 사기를 치려는 건가도 생각했어요. 제 얼굴이 똑같이 프로필 사진에 있으니까 제가 관심을 갖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면 그걸 이용해서 뭔가 사기를 치려는 건가 했거든요. 그래서 대응방법을 먼저 찾아보고 나서야 연락을 했어요.

그녀를 사칭한 사람은 그녀가 전혀 모르는 중학생 여자아이였습니다. 왜 알지도 못하는 남의 사진을 멋대로 갖다 썼느냐. 그렇게 묻자 아이는 횡설수설하며 ‘자기 친구와 얼굴도 똑같고 이름도 똑같아서, 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친구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캡처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녀는 도오플갱어를 만난… 걸까요?

아마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중학생 친구가 신고를 하겠다는 으름장에 꼬리를 내리고, “한번만 봐달라”며 사정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남의 일상을 훔쳐보고, 보관하는 걸 넘어서 이제는 내 것인양 전시하기까지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SNS에서 도플갱어를 만나는 겁니다.

현대판 옹고집전

옛날 옛날에 옹고집은~ 옹고집을 만나서~ 어머 니가 옹고집이니~ 나도 옹고집이야~ 뭐야 니가 왜 옹고집이야~ 여러분 제가 진짜 옹고집입니다. 이 옹고집 놈은 옹고집이 아니고……(사진=옹고집 대 옹고집 마당놀이)

“내가 CL이야!”
“아니야 내가 CL이야!”
예전부터 SNS 계정 사칭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표적이 된 것은 ‘연예인’들이었죠. SNS 사칭은 SNS 가입 시에 실명을 공개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고, 본인이 올린 사진과 직접 입력한 신상 정보로 한 캐릭터가 구성되기 때문에 사칭이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CL 사진을 올려두겠다, CL의 일상인양 수건으로 땀을 닦은 사진과 “오늘 하루도 강렬한 Dance와 함께한 나”이런 걸 적어 올리겠다, 그러면 내가 CL로 연출이 되는 겁니다.

Chaelinlee

페이스북에서 찾은 수많은 CL 들 …

수많은 연예인들이 사칭 계정의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개그맨 신보라를 사칭한 계정은 아주 소름이 오소소 돋게 정교했더랬지요. 공개연인인 개그맨 김기리의 사진에 연애편지까지 써두고! (무서워) 신보라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걸 알고 성경구절도 올려뒀습니다. (진짜 무서워;)

신보라 사칭 계정에 올라온 글

이 밖에도 소녀시대 수영의 사칭계정은 소녀시대를 대신해 팬들과의 소통을 주도했고 (…), 독고영재씨의 사칭계정은 “박원순 나빠! 안철수 나빠!”를 외치는 정치글을 올려서 주목을 받으면서 사칭계정임이 드러나기도 했지요 (어맛 국정원 냄시!) 독고영재 본인은 트위터가 뭔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고.. 소시 수영은 사칭계정을 ‘가짜 수영님’이라고 부르며 경고 메시지를 다소곳이 보냈습니다. 이 밖에도 기린 이광수, 거꾸로해도 이효리, 애프터스쿨 리지, 개그맨 김준현 등, 많은 연예인이 현대판 옹고집전을 겪었더라~ 하는 이야깁니다.

나도 소녀시대로 한 번 살아보자

사칭이 어렵지도 않습니다.

  1.  좋아하는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서 일상 사진 몇 개를 훔쳐온다.
  2. 말투나 취향, 종교, 평소 스케쥴, 친한 지인을 기억해뒀다 스토리를 만든다.
  3. SNS 계정을 하나 판다.
  4. 연예인의 이미지를 올려놓고 몇 개 글을 올린다.
  5.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이런 구도. 요즘 연예인들은 무대에서 자기를 전시하는 게 끝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일상을 전시하는 것도 일입니다. 그들의 일상이 화제를 만들고, 화제가 일이 되고, 일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몇 토막을 잘라와서 연예인 행세를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입니다. 관심 받고 싶고, 그 사람인 척 하고 싶은 욕망. 이 욕망은 연예인에서 유명한 일반인에게까지 뻗쳐나갑니다. TV엔 수천의 인생만 전시되지만 페이스북엔 수억의 인생이 전시됩니다. 남의 인생을 펼쳐보고 슬쩍 ‘공유하기’를 누릅니다. 내 인생에 남의 인생을 한 조각 퍼옵니다.

그냥 네가 좋아보여서 그래.
너 좀 ‘퍼가요~☆’

박근호(가명•25)씨는 얼마 전,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근호씨를 건너건너 아는 지인에게 ‘박근호 얼굴을 한 ***이 나에게 친구 신청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근호씨는 그 친구에게 친구 신청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는 친구가 보여준 페이지를 보고 경악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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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도플갱어. 그 도플갱어는 자신의 얼굴을 달고, ○○대학교라고 학교까지 똑같이 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학번도 비슷했습니다. 박근호씨는 09학번이었고, 가짜 박근호는 10학번이라고 프로필을 달아놨습니다. 가짜 박근호씨에겐 30명이 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진짜 박근호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런 낯선 30명이었습니다. 아니 뭐 이런 일이? 황당했던 박근호씨.

너 뭐냐!? 뭐하는 놈이냐!?! 뭐하는 옹고집이야!?!? (이렇게 말했을 리 없지만)

박근호씨는 먼저 9월 22일에 사칭 여부를 따지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도플갱어 박근호는 일주일을 어디 가서 고민을 하고 온 건지, 9월 29일에 답을 보냈습니다. 그는 횡설수설 이상한 핑계를 댔더랍니다.

(선요약 후사진)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내 친구가 도용 당한 걸 잡기 위해 내가 너를 도용해 도용범 잡는 도용범이 되려고 한 것이야. 도용을 도용도용해~ 제 2의 자아가 필요해서 그런 것 뿌니야~ 이건 원래 버려둔 계정이었는데 도용범 잡으려고 쓰는 거… 아니 예쁜 사람들만 친구로 남아있는건 그냥 ‘사람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무제-2 복사

박근호 도플갱어의 횡설수설….. 사칭 계정엔 30여명의 친구들도 있었답니다요.

그리고 박근호씨가 화를 내며 “그럼 왜 학교며 나이며 이렇게 해놨냐. 사칭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자 “대충 보니까 졸업반인신 것 같아서 10학번으로 해놨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흠. 그러니까 사진만 내건 게 아니라 정~말 이 사람의 정체성을 복사하기 위해 나이를 ‘추측’하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타임라인을 열심히 염탐하여 얻은 정보로 말입니다.

참고로 박근호 씨는 좀 객관적으로 잘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그의 사진이 페이스북 어느 페이지에 ‘일반인 훈훈남…훈..후후후후….클클클..’ 이러면서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플갱어가 프로필에 올린 사진은 그 때 퍼진 사진은 아니었습니다. 그 SNS상에 퍼진 사진을 보정,편집하기 전, 원본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 사진을 손에 얻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는 경로는 무지 많습니다. 일단 그 사진의 공개 범위가 ‘전체 공개’로 된 게시글이었기 때문에 그 도플갱어가 타임라인을 샅샅이 훑다 ‘다른 이름을 저장’을 눌렀거나, 친구의 좋아요로 그 도플갱어의 타임라인에 그의 사진이 넘어갔을 수 있겠습니다.

아니 좀 잘생겼어도 그래도 박근호 씨는 그냥 일반인인데! 대체 왜 사진이며 프로필까지 복붙복붙했던 걸까. 뭔가 심오한 사기와 음모를 꾸미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인삼 아가씨랑 친구하고 싶어서…

박근호 씨는 특별히 다른 피해를 본 것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가짜 박근호는 진짜진짜로 왜 그를 사칭한 걸까? 정말 도용범을 도용도용해서 잡으려고 도용한건가? 그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 고민에 빠져있던 중 가짜 박근호 씨의 친구목록 30명을 보게 됩니다. 그 30명은 90%이상이 여자였습니다. 한눈에 띄는 연예인 같은 프로필 사진. 그녀들의 경력사항엔 어느 어느대 항공학과, 인삼 아가씨, 모델, 이런 것들이 적혀있었더랍니다. 그녀들의 타임라인은 휘황찬란 쭉쭉빵…빵….. 가짜 박근호씨의 소원은 ‘기획사 사장님’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예쁜 여자랑 친구하기? 친구라도 해보기…? 친…친구라도…(울먹) 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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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니..?

가짜 박근호씨는 진짜 박근호와의 대화가 있은 지 얼마 뒤, 소멸했다고 합니다. 마치 도플갱어 전설처럼요. 페이스북 암행어사가 출두하기도 전에 계정을 자진 삭제한 겁니다. 박근호 씨는 너무 쉽게 자기 행세를 하고 사라져버린 그를 잊지 못하고 아직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경찰서에 다녀올 날도 다 스케쥴에 넣어놨답니다. 대체 나인 척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걸까. 뭘 하려고 했던 걸까. 그런 불안이 든다고 합니다.

‘남의 인생 퍼오기. 그게 뭐 어때서?’ 라는 마인드

김선영씨의 카톡 도플갱어, 박근호씨의 페이스북 도플갱어. 대체 뭘 하려고 그랬던 걸까요? 중학생 애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카톡 사진을 자기 프로필에 올려뒀을까요? 이 소심한 도플갱어들의 행적을 보면 딱히 대단한 범죄의 음모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박근호 씨의 도플갱어는 ‘잘생긴 박근호’를 도용해서 이쁜 페친을 얻고 싶었던 것 같고 (뭐지 이 불쌍함의 스멜은;;;) 김선영 씨 도플갱어는 ‘그냥’ 이쁘고 좋아보이는 사진을 퍼와서 자기 프로필에 챱챱 걸어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왜 그랬냐구요…? 그냥…그냥요…

그냥 막 퍼갑니다. 그냥 막이요. 일반인 사진이든 누가 찍은 집앞 놀이터든 상관 없이 그냥 ‘오? 사진 이쁘네. 퍼가야지’하고 퍼갑니다. ‘오? 재밌는 영상이네. 퍼가야지.“하고 다운로드 받아 내 담벼락에 올립니다. 그렇게 ’퍼가요,퍼가요,‘ 하다보면 ’퍼가..퍼가..퍼…(..)‘ 하다 뭐 그냥 조용히 내가 퍼간다고 굳이 말할 필요 있나 하면서 ’그냥‘ 가져가서 막 씁니다. 어차피 남이 전시해둔 건데 뭐 어떤가 하면서 말입니다. 그게 그냥 사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 생각하지 않고 말이죠.

SNS는 사실 ‘전시’나 다름 없습니다. 오죽하면 페이스북 개인 페이지 이름이 ‘담벼락’일까. 내 담벼락에 내 그림이랑 내 글을 걸어두고 전시합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이미지를 만들고, 날 부러워하고, 나에게 말을 걸고, 욕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수많은 이미지가 타임라인 위에 흘러갑니다. 그 많은 이미지를 훑어내리며 사람들은 우습고,재밌고,이상하다 하는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 부러워합니다. 스크롤을 쓱쓱 내리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좋아 보인다. 잘 사는 것 같다. 이렇게 친구도 많고,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네. 사진도 좋아보인다. 그냥 걸어놓고 싶다. 갖고 싶다. 내가 이러면 좋겠다. 내가, 이러면 좋겠다. 내가 이러면 되지 않나? 이래볼까?

‘나’를 위해 남의 좋은 인생으로, 솔솔 양념을 칩니다. 사진 속의 상대방이 살아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냥 가져와서 막 씁니다. 그냥 재밌으니까. 좋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까. 킬킬킬. 웃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SNS 도플갱어가 탄생합니다.

남친 짤과 SNS 도플갱어

혹시 남친 짤이란 거 아십니까? 이런 게 남친 짤입니다.


‘프로필로 작게 해놓으면 다 남친 있는 줄 암’. 이런 의도로 쓰이는 사진입니다. 멋진 남자 손만 조금 나오거나, 남자어깨가 슬쩍 앵글에 걸친다거나 하는 식. 연관검색어로는 ‘일반인 훈남 남친짤’이 있습니다. 남친과 함께 데이트할 때 찍을 법한 앵글로 찍힌 연예인 사진도 남친짤로 쓰입니다. 까톡 프로필로 해놓으면 (혹은 텔레그램 프로필로 해놓거나?) 핸드폰이 “까톡왔숑~”을 연발하게 된다는 그 남친짤. 너 남친 생겼냐? 이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마성의 짤입니다.

남친 짤과 SNS 도플갱어는 비슷한 지점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자연스러운 사진을 ‘그냥’ 떼와서, 내 인생에 양념을 챱챱치고 싶다는 욕망. 남들에게 더 좋아보이고, 부러운 걸 내가 ‘가진 척’하고 싶다는 욕망인 겁니다. 그래도 되는 걸까요? 정말 그냥 ‘일반인 훈남짤’로 퍼나르고 있는 사진들을 우리가 맘대로 써도 되는 걸까요?

이게 뭐냐!! 후냐냐!!!

이것은 왜 도둑질이 아니란 말입니까?

P.S.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김선영 씨의 경우)

  1. 선캡처 후신고
    스토킹 또는 피싱류 사기를 염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먼저 구했습니다. 먼저 카톡에 연락을 하고, 경찰서를 가기로 했습니다. 카카오톡 고객센터에선 “그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낸 후 카카오톡 홈페이지에서 신고 문서를 작성하시면 계정 정지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후에 김선영 씨는 계정 정지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17번의 전화 끝에 ‘현재 이용자 고객이 많아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빡치는 기계음을 듣다 통화를 포기했습니다. 그 후 카카오톡에 메일도 보냈으나 답메일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야 카톡 왜이래요)
카카오톡 권리소명

카카오톡 권리 소명 페이지

박근호씨의 경우)

1) 증거확보 2) 지인에게 알리기 3) 도플갱어에게 말 걸기 4) 페이스북에 다같이 신고하기 5)경찰서에 신고하기

박근호씨는 대화 내용과 사칭 계정의 웹페이지를 모두 캡처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이러이러한 주소의 계정에서 저를 사칭하고 있습니다”하고 알렸습니다. 추가 피해가 있을까봐요. 그리고 도플갱어에게 말을 걸어 “이 시베리아귤까먹을십장생…..”을 한 후 페이스북에 해당 계정을 신고했습니다. 페이스북이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아무 답이 없었고 일주일 후엔 도플갱어가 답메시지를 보내고 게정을 자진 삭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서에 갈 예정이라네요. ( 이런 사진 도용의 경우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명예훼손 또는 허위사실 유포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