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핏츠가 창간한 지도 한 달이 약간 넘어서자, 랫사팬더와 박궁그미는 ‘우리도 이제 언론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읏흥!‘이라고 생각하며 언론사 등록을 단행하기로 했다. (우리보다 더 쓰레기같은 언론사도 언론사 등록하는데 우리야 못할 이유도 없ㅈ…) 그.래.서 찾아본 언론사 등록 절차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니,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기 위한 랫사의 대모험.gif

언론사 등록, 어렵지 않아ㅇ….

언론사 등록을 위해서는 언론사의 (형식상) 직함을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른바 발행인이라고 하는 사람, 편집인이라고 하는 사람 등등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발행인과 편집인의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가면 등록 준비는 완료다. 신청만 하면 약간의 행정 절차 기간을 거쳐 언론사 등록이 완료되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정보가 공시된 곳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시, 도 소재지에서 등록하라 했기 때문에 시청과 도청에서 해당 자료 검색을 해 봤지만 찾지 못했다. 대신 ‘인터넷 신문 솔루션 **소프트’ 등지에서 정리한 언론사 등록 정보만 넘쳐 흐를 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저 정보는 모두 나와 박궁그미씨가 귀동냥 눈동냥으로 알음알음 모은 것 뿐이다.

행정 2.0을 넘어 3.0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정부 시스템에서 왜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에 관한 정보를 찾기 힘들까, 거참 모르겠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냥 말 안할게여

그러니까 그냥 말 안할게여

여튼, 절차 자체는 ‘호, 이것봐라? ㅈㄴ..쉽네?’라고 생각한 랫사와 박궁그미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끊는 것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끊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음을 랫사는 알지 못했다.

자취: 모험의 시작

자 이제 독자 열허분은 저와 함께 뜻밖의 모험을 떠나시게 됩니다.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다. 나는 자취생이다. 그리고 자취집에 구동이 되는 프린터를 놓고 사는 부르주아 정도라면 그건 그냥 자취집이 아니라 그냥 ‘집’이다. 일단 집에 프린터가 없는 매우 평범한 자취생인 나는 요즘 세상에 온라인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딨냐며 일단 노트북을 켰다.나름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 아니던가.

습관적으로 크롬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3초후에 후회했다. 아 맞다, 우리나라는 크롬은 있는 취급도 안 하는 나라 중 하나였지! 근데 이게 좀 심하긴 했다. 인터넷 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 들어가려고 하니, 이 사이트는 ‘익스플로러에서만 실행’된다면서 아예 접근을 차단하더라고.

2014-10-01 01;41;40

크롬에서 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 접근하면 다음과 같은 창을 볼 수 있다! 촤하핫. 대체 우리나라는 마소에서 뭘 받아 쳐먹은걸까

그래서 단지 내가 우리나라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지우지 않고 있는 먼지쌓인 익스플로러를 오랜만에 실행시켰다. 오오, 그러니까 접속은 되더라. 단, 8개나 되는 엑티브X를 무려 ‘통합 설치’하라는 홈페이지에 딱 걸렸다. 이걸 다 설치할 때까지는 화면이 절대 넘어가지 않도록 해놨다. 일단 8개라는 개수에 한 번 질리고, 설치하라는 프로그램들도 다 어디선가 본 악명높은 프로그램들(Veraport, Xecure 따위)이라서 두 번 질렸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그것이 필요한 을 중 을이니 일단 설치하고 본다.

그래서 그 엑티브엑스 8개를 찍으려고 들어갔는데 심지어 운영시간이 아니라서 못씁니다 어 인터넷 시스템에서 운영시간 있는거 진심 처음 봤어여

그래서 그 엑티브엑스 8개를 찍으려고 들어갔는데 심지어 운영시간이 아니라서 못씁니다 어 인터넷 시스템에서 운영시간 있는거 진심 처음 봤어여

설치하고 난 후, 나는 뭔가 거대한 산맥을 하나 넘은 느낌이었으나 알고보니 그거슨 이 모험의 서막의 ㅅ도 안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피디에프로 저장할 수 있는 옵션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들어가봤더니 역시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날을 마감하고, 깔았던 8개의 엑티브X를 모두 지운 다음 다음날 중도에 가서 이를 프린트 해보기로 했다.

중도포기하고싶던 중도

다음 날, 중앙도서관에 갔다. 그래도 이 구린 환경에서 몇 년을 서식해온 나는 공인인증서가 담긴 USB를 들고 가야 일이 처리될 거라는 기본 상식은 탑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서 공인인증서가 들어간 USB를 챙겨서 중도로 갈 때만 해도 나는 내 스스로의 똑똑함과 적응력에 감탄했다.

와!난 짱이야!

와!난 짱이야!

시행착오로 배운 교훈을 적용해서 이번엔 애초에 익스플로러로 들어갔다(중도 컴에 익플밖에 없기도 했다^_^). 그리고 그냥 체념한 채로 8개의 엑티브엑스를 모두 깔았다. 뭐, 중도 컴퓨터는 그나마 리부팅하면 설치되거나 저장된 프로그램 및 문서가 전부 날아가게 세팅이 돼 있기 때문에 죄책감은 좀 덜했다. 그리고 가져간 공인인증서까지 훗, 하며 꺼내든 그 순간, 중도 컴퓨터에 연결된 프린터는 보안상의 문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아주 작고 네모난 안내상자가 띙- 하고 떴다.

야!!!! 야!!!!!! 이게 무슨소리야!!!!!!!!!!!!!!

참고로 구글에 ‘민원 24’를 치면 상위 검색어 중 하나가 ‘민원24 지원 프린터’다. 나만 그 곶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ㄸr…☆ 정부에서는 지원 가능한 프린터 목록을 무려 엑셀 파일로 정리하셨다! 와! 엑셀을 열어보니 총 2031개나 된다! 물논 엑섹 파일의 가독성이 ㅈㄴ 떨어지는 건 논외로 하자. 근데 그 중에 IP를 공유하는 방식의 프린터는 쓸 수가 없다. 지원목록에 포함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이 지원목록은 한마디로 풰이크.

오, 오오. 오오오. 아?으아? 스스로의 똑똑함에 대한 자부심은 곧 스스로의 멍청멍청함에 대한 한심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하하하하하, 어쩐지 안될 것만 같더라니, 어쩐지 공인인증서로 들고 와도 불안불안하더라니. 불가능의 이유는 그 이름도 거창한 ‘보안’. 아 예, 얼마나 보안이 철저하시길래 엑티브엑스를 8개 깔고 따로 문서뷰어를 설치하는 등의 컴퓨터 나치짓을 해도 문제의 소지가 있답니까? 그래놓고 안털리면 내가 말이라도 안해.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주 보안강국이겠다? 그래서 결국 중도 루트도 실패. 학교에서 인쇄가 가능한 인쇄기를 찾을 수 있을 지 의문이 든 나는 작전상 후퇴를 외치고 다음날 무인발급기 루트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여담인데, 아무리 분노했어도 나는 중도 컴퓨터를 리부팅해 쓰잘데기없는 엑티브액스를 척결하는 선진시민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무-인발급기의 무쓸모성

처음에는 동사무소까지 찾아가야 하나 하고 좌절하던 귀차니즘 환자 1인에게 무인발급기는 꽤 스마트해 보이는 초이스였다. 가서 지문인식만 제대로 되면 왠만큼 필요한 생활 문서는 다 뽑을 수 있단다. 호, 요것봐라. 그래도 세금을 어디다 제대로 쓰기는 하는구먼?

민원 24 홈페이지에는 무인발급기 안내 페이지가 있다. 그리고 전국 전역에 있는 무인발급기의 모든 위치와 기타 등등의 정보가 그냥 엑셀에 나열돼 있다.

나는 목록에 가족관계증명서가 있길래, 당연히 ‘어느 무인발급기든 가족관계증명서가 되겠지! 하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 위의 ‘주의’ 한 줄을 잘 읽었어야 했다.

※ 접수처리할 수 있는 민원 및 발급시간은 자치단체 무인민원발급창구 운영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설치장소에 안내되어 있는 전화번호로 문의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그 한 줄. 결국 무인발급기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미리 각 관공서에 전화해서 확인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무인발급기의 좌표추적에 돌입했다. 무인발급기가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 알기 위해 다시 민원24 사이트를 들어갔다. 무인발급시스템 위치 안내 페이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전국에 설치돼 있는 모든 무인발급기의 위치를 정리한 방대한 엑셀 파일을 내려받아야만 했다. (정말 그게 최선이냐… 아오…) 그리고 그 쓰잘데기 없는 엑셀 파일은 무인발급기의 위치를 무려 ‘말’로 설명하고 있었다.

시대가 세상에 어느 시대인데, 구글과 크롬에 그렇게 (비이성적인) 거부감이 있으면 네이버나 다음 맵으로라도 위치는 표시해 줄 수 있잔하. 그리고 그거 색인해서 검색 가능하게 하는 거 어려운 거 아니잖아(…). 피자 치킨 브랜드들도 하는 일을 왜 정부가 못하냐고(…).

이거 말이에요 이거. 지도 만드는 거요.

이거 말이에요 이거. 지도 만드는 거요.

(참고로 민원 24 홈페이지는 아니고 그나마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는 서울시 소재 무인민원발급기를 구 별로 지도를 클릭하면 목록이 보이도록 정리해 놨다. 하지만 그 위치라는 것도 주소상 위치인 데다가 동별로 세부 분류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인발급기의 실질적인 위치를 찾는 데는 매우 쓰잘데기가 없는 것이다. ex)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세브란스병원 본관3층) 이런 식으로 정리돼 있…

여튼 그 엑셀 파일에서 신촌 근처에 있는 무인발급기를 세 군데 찾았다. 연희동 주민센터에 하나, 신촌동 주민센터에 하나, 세브란스에 하나. 오전에 학교에 가야만 할 약속이 있었던 나란 사람은 이 세 개의 선택지 중 세브란스를 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다. 나란사람, 나란인간, 아아…

한 번 더 들어갈게요

자취집에서 세브란스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서 걷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도착했다. 그리고 약간의 산등성이를 걸어 올라가 본관에 당도했다. 다행히도 본관에 들어가서 몇번 두리번거리는 것만으로도 무인발급기를 찾았다. 그 순간 농담이 아니고, 무인발급기에서 후광이 보이는 것과 같은 착시 현상을 보았다. 오오, 무인발급기님. 이렇게 가까이서 당신의 우직한 덩치를 숨기고 계셨습니까.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발급기님 뒤에서 후광 나는 줄 알았어요.

발급기님 뒤에서 후광 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약 3분 뒤, 나는 이 새퀴를 한 번 걷어차고 또 한 번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이 무인발급기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뽑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무인발급기에서도 가족증명서를 뽑을 수 있는 경우는 그 무인발급기가 동사무소에 있거나 매우 큰 역(서울역, 수원역 등)에 있을 때에만 한한다고 한다. ^^…..

후...

후…

그리고 나는 그러한 설명을 정말로, 단 한줄도, 민원 24 사이트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 팁을 전수해 준 수많은 넷상의 도사님들은 모두 나와 같은 빡침을 경험한 것으로 보이는 블로거들이었다. 아니, 그 서류 한장 발급하러 동사무소까지 가기 싫어서 무인발급기를 찾는데 그 서류가 발급되는 무인발급기는 동사무소 안에 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모험의 피날레, 신촌 주민센터

참고로 개빡치게도, 무인발급기의 측면에는 아주 상세하게 ‘여기서 해결이 안 되는 문서 및 민원 업무는 신촌동 주민센터에 오시라’며 도보로 올 수 있는 경로를 그려놓은 지도가 있었다. 그 지도를 보면서 열불과 허탈함이 밀려 왔지만 오늘까지 이 서류를 반드시 뽑아서 전달해야 하는 나는 사명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와… 진심 내 인생 미션 임파서블인 줄 알았다. 혹은 다이하드.

유난히 따가운 햇살을 재치고 걸어 걸어 도착한 주민센터에는 나와 같이 무인발급기를 이용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희극적인 장치 중 하나는 눈 앞에 동사무소 직원을 두고도 무인발급기를 기다리는 게 이득인 상황이었다. 무인발급기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하면 수수료를 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안내를 앞 옆 뒤에 다 붙여놓으면(...)

이런 안내를 앞 옆 뒤에 다 붙여놓으면(…)

심지어 무인발급기 옆, 앞, 뒤로 그 내용(무인발급기로 떼면 수수료 면제!)을 홍보하며 직원보다 무인발급기를 사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무인발급기 설치의 의도가 국민의 편의성인지, 공무원의 편의성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더불어 내 정신도 아득해 진다. 거기까지 가서 수수료를 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긴 나는 두어 사람을 기다려서 단 한 대 있는 무인발급기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뽑는 데 성공했다.

내 신분 증명하는 종이 쪼가리 하나 뽑기가 미션 임파서블인 나라

정작 뽑은 그, 이름도 거창한 가족관계증명서는 딸랑 세 줄, 내 이름, 엄마 이름, 아빠 이름이 다였다. 그리고 각각 이 사람이 나의 아빠, 이 사람이 나의 엄마임이 표시돼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서류가 언론사를 등록하는 데에 대체 무슨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부터 고작 이 종이 쪼가리 한 장을 뽑기 위해 내가 버린 뻘 시간들이 눈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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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보살처럼 넓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엑티브엑스와의 매일매일 전쟁을 일상적으로 견뎌내고 있다. 얼마나 노이로제가 걸렸으면 이게 내 컴퓨터를 얼만큼 손상시키고 메모리를 얼마나 잡아먹는지 알면서도 그냥 설치 동의, 동의, 동의를 누르겠나.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눌러주는 거다.

어쩌면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그 종이 한 장을 뽑는 데에 하나로 제대로 된 프로세스가 없는지. 인생은 아무리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이제 엑티브 엑스를 깔라는 팝업창이 주는 놀라움은 그만 느끼고 싶은데 말이다, 그게 맘대로 안되니 슬플 따름이다. 이것저것 안 되는 놀라움 말고, 이것저것 한 번에 한 큐에 편리하게 되는 놀라움을 좀 주면 안 되겠니.

아아, 엑티브엑스는 8개나 깔게 하면서도 보안에 대해 안심을 못해서 공용 프린터로는 그것을 못 뽑게 하는 소심쟁이에 공무원의 편의를 너무나 아끼다 못해 국민의 편의를 침해하는 공무원 내리사랑 대한민국아. ‘IT강국’, ‘인프라 강국’이라는 표어가 한없이 힘없어 보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