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부대끼기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내 경우엔 그게, 아이돌이었다.

나의 첫 직업은 아이돌 프로그램 조연출

나의 첫 직장은 방송국이었다. 그러나 내가 정직원으로 방송국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다. 25만원의 주급이 모여 100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는, 그것도 정산이 밀리면 매달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 방송국의 최하층 프리랜서로 나는 일했다.

나는 3D 노동자였다. 그러나 이 글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진= CC, astrid westvang)

그런 내가 일했던 프로그램은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요즘 케이블 방송들은 어디든지 아이돌 프로그램을 우후죽순 쏟아내고 있다. 쉽고 싸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고, 일반 시청자보다 충성도 높은 ‘팬’들을 시청자로 사로잡을 수 있어 그렇다. 여튼 나는 매주 다른 아이돌들과 만날 수 있는, 누가 들으면 부러울만한 일을 했다.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 ‘아이돌’을 본다는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언젠가부터 빛이 바랬지만 학창시절 좋아했던 스타 한 둘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스탭들에 둘러싸여 관리를 받는 아이돌들을 보는 게 신기했다. 그들은 으레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내가 아이돌에게 인사를 받는다니, 하는 신기함은 물론 한 달을 못 갔다. 한 달이 뭐야, 일주일이나 갔을까.

내 눈 앞의 아이돌

가까이서 바라본 아이돌들은 생각보다 안쓰러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소속사에서 치이고, 방송국에서 치이고 또 팬들에게 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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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C, RYAN MCGUIRE)

소속사는 아이돌이 더 잘 팔리기를 바란다. 예고편을 위한 짧은 촬영을 하는데 이쪽은 애 얼굴에 뾰루지가 있어서, 저쪽에서 찍으면 피부가 어두워보여서-하며 휘두르던 매니저가 있었다. 그러면 그러는대로, 저러면 저러는대로 아이돌은 익숙한듯 움직인다. 뭐 이정도는 예삿일이다. 방송을 앞두고 긴장돼보이는 아이돌에게 ‘너네 그따위로 할 거면…’하고 윽박지르는 소속사 실장이 있었다. 그는 방송 분위기를 더 싸하게 만들었다.

방송국은 그들로부터 어디까지든, 최대한으로 뽑아먹기를 바란다. 이것저것 다 해주세요, 한다. 소위 말해 ‘급’이 있는 아이돌은 여기서 거부권을 가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직 더 떠야하는’ 아이돌들은 그 노동이 당연한 것인양 따를 수밖에 없다. 당황스러움도 제대로 티낼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본 아이돌은 사람이라기보단… 다른 무언가였다. 적어도 자신의 뜻대로 의지대로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늘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었다.

(사진=CC, RYAN MCGUIRE)

(사진=CC, RYAN MCGUIRE)

그 중 하나가 팬이라고 하면 참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팬들이야말로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돌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아이돌에게 이미지를 부여하고 방송은 그 이미지를 재생산하며 아이돌은 팬들에게 그렇게 다가가므로, 아이돌은 언제나 팬들 앞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 아이돌은 두 가지의 얼굴을 보인다. 아이돌로서의 자신과 그냥 자기 자신이 분리되어있는 것이다.

한껏 피곤한 표정으로 대기실 구석에 앉아있던 그가 카메라를 받으면 갑자기 그 방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양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안쓰러운 감정이 앞선다.

아이돌은 모든 일을 연기한다

만약 평소의 피곤한 모습이 그대로, 뒷배경에라도 잠시 방송에 비춘다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시 팬들이다. 카메라 뒤의 일을 알 일이 없는 팬들은 낯선 모습에 두려워한다. 아팠다, 싸웠다, 여튼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아니 원래 성격이 저렇다, 무슨 소리냐 그렇지 않다… 찰나의 노출도 금을 만든다. 그래서 아이돌은 연기해야 한다.

그런데 연기의 범위라는 게 생각보다 넓더라. JTBC <비정상회담>에 나온 조권은 ‘스마트폰에 중독’이라는 고민 사연을 들고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저에게는 SNS 하는 것도 일의 일부거든요’.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주 개인적인 공간인 SNS 또한 아이돌에게는 대중을 향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일하던 중 만난 아이돌로부터 트위터에서 쓰는 말투, 팬이 보낸 멘션에 대한 답변(예컨대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시간을 갖는다거나 했을 경우)을 다 ‘기획사 누나’들에게 관리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충격 받았다. 그 정도는 스스로 하는 일인 줄 알았건만. 일종의 ‘사전 검열’을 받는 셈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한국 연예인 최고 팔로워수를 가지고 있는 GD는 얼마 전 지인의 실수로 인해 사적으로 따로 관리하는 계정이 밝혀진 해프닝이 있었다. 그 계정 속 GD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아이돌이 편집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물론 아이돌이 가장 열심히 연기하는 곳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이다. 소위 말하는 ‘입덕’(入덕후, 즉 팬이 되다)의 계기가 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아이돌에게 있어서는 놓칠 수 없는 영업의 장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평소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믿음 하에서 팬들에게도 환영받는다. 아이돌과 팬 관계의 유대를 쌓는 일이 되는 거다.

(사진= CC, Paul Reynolds)

하지만 수십 개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그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진짜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킬 거란 믿음은 부질없는 것이다. 작가가 몇 명이 붙고 편집은 또 얼마나 섬세하게 치러지는지. 리얼리티 속 아이돌은 편집된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리고 아이돌은 매 순간 노동한다

한 번은 이런 걸 물어본 적이 있다. 흔히 말하는 찍덕(아이돌을 찍는 덕후, 커다란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들고 다녀 ‘대포’라고도 불린다)들에게 한바탕 사진세례를 받고 대기실에 들어온 아이돌에게 ‘저렇게 항상 따라다니면서 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무슨 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사실 나는 이전에 그 ‘찍힘’을 강제 체험한 적이 있었다. 내가 대기실에서 나오는데 밖에서 아이돌을 기다리던 팬들이 일단 문이 열리니 셔터부터 누르고 본 거다. 내가 체험한 건 일종의 공포감이었다. 1초에 몇 번이 눌렸는지 모를 어마어마한 셔터소리가, 나를 향해있던 렌즈들이 준 공포였다.

(사진= CC, Jacob Walti)

내 질문을 받은 아이돌의 답은 ‘피곤해요’였다. 그래, 너희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몇 분씩 팬들 앞에 서서 인사하고 사진 찍혀 주기는 하더라. 잘 나온 사진은 또 새로운 팬을 모으는 유입구가 되고 실제로 그 아이돌을 보러 가지 못하는 팬들에겐 기쁨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돌은 매 순간 노동한다. 무대 위에서만, 스튜디오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어디서나 아이돌은 ‘아이돌’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돌이랑 일하기 싫다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진실된 공감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아이돌은 어디서건 어쩔 수 없이 연기해야 하는 존재이며 이미지다. 일상과 직업의 구분이 없는 그들을 대하는 때면 나는 내가 지금 마주보고 있는 것이 한 명의 사람인지 하나의 만들어진 이미지인지 헷갈린다. 나는 그것이 불편하다. 싫다.

(사진=CC, RYAN MCGUIRE)

(사진=CC, RYAN MCGUIRE)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이 단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내가 복에 겨워 진짜 공감 나부랭이나 찾고 있는 거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들 저런들, 나는 그 불편함에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돌이랑 일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