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남동에 산다.

우연히도, 동네엔 맛집이 많다.네이버에 동네 이름만 치면 [연남동 맛집]을 달고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온다. 클릭을 해 보자. 주로 누구와 데이트를 했느니, 누구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느니 그런 글과 함께 음식 사진이 촤라락 뜬다. 마지막엔 지도를 간단히 캡쳐한 사진과 위치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영업시간까지 나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고향에서 친구가 올라왔다거나, 늦은 시간에 집 근처에서 술을 먹고 싶을 때면 동네 이름을 검색하고 익숙한 지도를 따라 가면 된다.

그러니까, 어느 토요일이었다.

인천에서 납품 일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같이 일한 형에게 저녁이나 먹자고 제안을 했다. 그 형은 우리 동네서 밥술을 함께 하자는 의사를 밝혔다. 몇 군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버스를 타고 동교동 삼거리에 내렸다. 이효리는 거꾸로 해도 이효리고 동교동은 거꾸로 해도 동교동이다. 연남동은 동남연인데, 왠지 아쉽다.

토마토, 기러기, 무려 이효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교동 되시겠다.

첫 목표는, 이름부터 밥술이 함께 들어간 ‘해달밥술’이었다. 나름 유명하고 컨셉도 맘에 들지만 가격이 좀 있어서 한번도 가 보지는 못한 그런 집. 오늘의 노동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상은 줘도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문 밖에는 네 명 정도의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기다리기엔 턱없이 배가 고팠다.

다음 목표는 가지볶음이 유명한 중국집 ‘하하’다. 연남동의 많은 중국집 가운데서도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연남동만 검색해도 1~2페이지 사이에 등장하는 맛집이다. 요리 하나를 시켜놓고 칭따오에 소맥을 말아 먹으면 흐아,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다. 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입고 있던 티에는 땀이 말라붙어 소금이 허옇게 떠 있었다. 문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의 얼굴도 허옇게 떠올랐다.

하하는 더 이상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늘어선 줄에는 장엄함마저 느껴졌다. 아니, 이미 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좁은 인도는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찼고 일부는 차도로 내려와 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러 나온 사람들-식당 안은 금연구역이다-과 어울려 혼돈의 카오스를 이뤘다. 당혹스럽다. 이렇게까지 대단한  음식점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주방장 아저씨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맛집’에서 웨이팅을 하는 것은 요즘 들어 당연시 여겨진다. 식당 안을 슥 둘러보고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 것인지 물어본다. 알바는 곤란한 얼굴로 3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잠깐 갈등한 후 바깥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기다리거나 다른 곳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식당 바깥에 한 줄로 서서 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을 보면 내가 밥을 먹으러 왔는지 에버랜드에 왔는지 정신이 아득해진다.

웨이팅 3~4시간이 기본이다. 어마어마하다 정말.

'연남동 맛집'을 검색하면 블로그 섹션이 가장 위에 뙇! 맛집계는 이미 블로그가 꽉 잡고 있다.

‘연남동 맛집’을 검색하면 블로그 섹션이 가장 위에 뙇! 맛집계는 이미 블로그가 꽉 잡고 있다.

현대의 맛집은 블로그를 통해 전파된다. 친구와 밥 약속을 잡으며 xx맛집을 검색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블로그 역시 뭐니뭐니해도 식당이다. 시사/인문 분야에서 나름의 명성을 구축하고 있는 박가분의 ‘붉은서재’가 평균 유입량이 170~80명 후반대에서 이뤄지는 반면 네이버 기준 맛집을 검색해 나오는 블로그는 평균 방문자 수가 많게는 6000명에 달한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양극화 심화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별 상관없어 보이던 음식점도 예외가 아니다. 한 번 유명세를 탄 식당은 다시 많은 블로거가 찾는다. 그들 역시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선 유명한 곳을 포스팅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는 유명 맛집 위주로 찾아다니게 된다. 유동인구와 평균 영업 기간은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역설적이다.

당연히 이를 이용한 시장도 있다. 블로그를 통한 음식점 광고는 더 이상 낯선 얘기가 아니다. 이름도 찬란하신 바이럴 마케팅이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나, 사기로밖엔 느껴지지 않는다.

라디오를 듣던 중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DJ는 ‘맛집’이 아닌 ‘오빠랑’을 검색해야 진짜 맛집을 찾을 수 있고 말했다. 오호, 그럴듯하다. 허나 이에 굴할 블로거들이 아니다. 이제 오빠랑은 식당 포스팅의 단골 말머리가 됐다. ‘오빠랑 데이트하기 좋은 맛집이네요.’정도는 귀엽다. 말머리에 당당히 ‘오빠랑’을 적은 한 블로그의 주인장은 안타깝게도, 남성이었다.

오빠랑

‘오빠랑’의 다른 포스팅에는 동원예비군을 가야 한다는 불평이 보였다.

다시 그 토요일로 돌아가자. 사실 그 근처엔 몇 군데의 중식집이 더 있다. 당장 맞은편에 있는 ‘향미’만 해도 내가 하하보다 선호하는 중식집이다. 그 날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새로운 곳으로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주변을 잠깐 걸어다닌 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홍복’이란 중식집으로 갔다.

그곳의 그 청경채 볶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경채 볶음’.

식당엔 한 커플만 양꼬치를 먹으며 시시덕대고 있었다. 저들도 집에 가선 오빠랑 포스팅을 올리려나. 잠깐 생각을 해 봤다. 장육과 청경채볶음을 주문해 몇 병의 술을 걸치곤 집으로 향했다. 청경채볶음엔 진짜 청경채만 있더라. 그래도 고기 한 점 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어쨌거나 만족스러웠다. 취향 차가 있겠지만 하하와 비교한대도 큰 차이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람 숫자가 이렇게 차이가 날 정도인지는 더욱.

집에 가는 길에는 하하가 있다. 줄이 좀 더 길어져 있었다.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것 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난 기다리는 일보다 사랑하는 게 좋다. 당연히, 웨이팅을 하는 것보다 밥을 먹는 게 더 좋다. 언제까지 웨이팅을 하게할거야. 시민들이여 단결하자. 우리가 잃을 것은 웨이팅의 쇠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만국의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