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종이 위의 풍경

흰 와이셔츠가 잘 어울리는 그녀. 면접장에 들어선다.

“면접 번호 18번 강지은이라고 합니다.”

면접관들은 손깍지를 끼고 무표정하게 그녀를 응시한다.

“그래요. 강지은씨. 우리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알기 위해서 몇 가지 좀 알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 하십시오.”

당찬 그녀다. 대답 소리도 우렁차다.

“질문 바로 시작해도 되나요? 좀 긴데. 아.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하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예상치 못한 면접관의 말에 강지은 씨는 좀 의아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래. 뭐, 대답 못할 게 뭐가 있으랴. 그녀는 자신이 그들이 원하는 인재임을 증명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네. 질문 주십시오.”

그리고 그녀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집은 월세야 자가야 어쩌구 저쩌구 이것은 구인을 위한 질문일 뿐이여! 인재인지 알기 위한 거라니까!  (사진=CC by Nathan Moody, Flickr)

집은 월세야 자가야 어쩌구 저쩌구 이것은 구인을 위한 질문일 뿐이여! 인재인지 알기 위한 거라니까! (사진=CC by Nathan Moody, Flickr)

“키가 얼마죠? 몸무게? 본적은? 나이는? 지금 연애는 하고 있어요? 집은 월세? 아님 자가? 혹시 전세? 능력 있네. 아니면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부모님은 뭐하시는데?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어머니는 대학 나오셨어? 어이구. 석사로 졸업하셨네, 아버지. 아버지는 가방끈이 좀 기시네. 그리고 핸드폰 번호만 알려주지 말고 집전화도 좀 알려줘. 집으로 전화해야 할 수도 있잖아. 혈액형은 뭐야? 에이. 에이형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비형이네.

종교는 있어요? 기독교? 어느 교회 다녀? 교회 주소랑 교회에서 하는 일 좀 말해봐. 아는 목사님 있어? 목사님 전화번호 좀 불러줘요. 전화해볼 건 아닌데 혹시 필요할 수도 있잖아. 아. 술은 잘 마셔? 얼마나 마셔? 주량 말이야 주량. 소주 몇 병? 담배는? 흡연자인가? 하루에 몇 개비? 꼴초는 아니네. 아.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아니 아니, 고등학교 이름을 말하라는 게 아니라, 특목고인지, 일반고인지, 실업계인지 말해보라고. 아, 혹시 해외에서 다녔나? 그럼 그렇게 말해주고. 우리 회사에 아는 사람 있어? 누군데? 이름이 뭐야? 직급은? 그 사람? 아아. 오케이. 저기 있잖아. 그리고 … ”

처음엔 질문 먹고 답 토하는 기계처럼 꼿꼿하던 강지은씨는, 끊이지 않는 질문에 점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이건 거의 스토킹 수준이 아닌가. 아니, 스토킹이다. 그녀는 어렵게 입을 뗀다.

“저 근데…이게 제가 이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 알기 위한 질문인 게 맞나요?”

서류를 뒤적이던 면접관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본다.

“ 강지은 씨는 그런 질문은 하실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요. 우리가 알아서 뽑을 테니까. ”

이때쯤 되면 강지은 씨도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아, 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혼란스럽다.

빡친다, 이력서 스토킹

강지은 씨의 면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채용지원서, 그러니까 ‘이력서 위’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회사는 묻고, 지원자는 답한다. 반문할 기회도 없이 지원자는 완벽한 을이다. 별별걸 다 묻는 오지랖 넓은 이력서 앞에 지원자는 ‘사장님 나빠요’ 한 마디 외쳐볼 기회조차 없다.

그래~ 우린 구직자니까~ 워메 이 취업박람회 사진 좀 보소; (사진=이데일리)

입사 지원자라는 완벽한 ‘을’의 입장에서도, 가끔 제정신이 들면 생각한다.

‘대체 왜 이딴 걸 묻는 거지? 이걸 알아서 어디 쓰게? 나랑 사귀게? 결혼하게?’

이력서는 진짜 이해 못 할 갑질의 향연이다. 어느 지점에서 스크리닝을 당할지 몰라 가슴이 콩닥콩닥 하다가도 대체 내가 왜 이걸 적고 있나 싶다. 회사, 니가 뭔데 나한테 이런 것까지 묻니?! 회사가 실제로 저런 질문을 하냐고? 말도 마라. 이제부터 하나하나 삐딱하게 까볼테니까.

지원자 너님,

네 몸에 대해 우리 깊은 대화를 나눠볼까?

키나 몸무게는 기본. ‘당신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기엔 너무 키가 작고 무거워!’ 면접장에서 이런 소리를 하기엔 너무 민망했던 걸까. 정중히, 이력서에 몸무게를 적으시라 하신다. 한라 그룹에 지원한 S양은 찝찝하게 키와 몸무게를 적어냈다. 그녀는 “건설업이니 신체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긴 하지만 몸무게도 쓰라니 뭔가…ㅋ”라며 말을 줄였다.

차라리 앉은 키를 내라지. 어차피 사무 업무라 앉아만 있을 건데 내 몸무게랑 키는 왜 궁금한 걸까. 내가 난쟁이 똥자루든 키커 최홍만이든 그게 대체 업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목욕탕도 아닌데 몸무게를 까발려야 하다니 부..부끄러워! 떳떳하게 차라리 면접장에 저울을 달아라. 싫어? 그러면 묻지를 마. ‘그건 그냥 으레 묻는 거다, 채용이랑 상관 없다.’ 이런 말을 할 거면 처음부터 항목을 지워라. 내 몸에 제발 신경 꺼줭!

신경 끄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옹오오ㅗ오오!!!!

수많은 기업이 A형이니, B형이니, O형이니, 혈액형도 묻는다. 오!? 회사에서 수혈을 해주려나? 내가 지원하려는 회사는 수혈도 막 해주고 막 내가 야근하다 코피라도 흘리면 막 응급처치를 해주고 그러나? 그것도 아니면 아! 혈액형 궁합 보려고 그러는구나! A형은 B형과 상극이라는데 A형 상사가 내 이력서를 볼까 두렵다. 성격 좋고 리더십 있다는 O형으로 바꿔 적어야겠다. 그래. 이쯤 되면 별자리를 안 물어본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흡연을 하는지, 주량은 얼만지 묻는 곳도 여러 곳이다. 금호 아시아나 그룹은 흡연 여부뿐만 아니라 흡연을 하고 있다면 하루에 몇 개비나 태우는지 까지 묻는다. 혹시 지원자가 입냄새가 나지는 않을지, 폐가 안 좋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세심한 배려인가 싶다. 나랑 키스할 것도 아닌데 담배는 피냐 묻지 마라. 술 사줄 것도 아니면서 술은 얼마나 먹냐 묻지 좀 말아줬으면 좋겠다. 동아 쏘시오 그룹은 담배는 물론이고 주량은 얼마인지도 함께 물었다. 소주 20병이라 하면 믿으실 건가요? 박스 단위로 먹어서 병 단위로는 모르겠는데~ ‘우리 회사는 회식이 잦아. 술 못 마시는 넌 아웃이야.’ 이런 기준이라도 있는 걸까. 얼마나 피는지, 얼마나 먹는지, 그런 게 그렇게 ‘인재선발’에 중요한 일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지원자 너님,

네 흔적이 남은 모든 곳에 대해 알고 싶어.

주소를 물을 때까진 태연했다. 쓰다 보니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지도-이건 아주 많은 회사가 묻는데 확인한 일례로는 동아쏘시오 그룹-  묻는다. 취준생 오모양(25)은 “ 조부, 조모도 함께 사시는지  묻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효심을 테스트 하나…? 태어난 곳(본적)부터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로 사는 집 주소까지 꼼꼼히 따져가며 묻는다. 이력서만 훑어봐도 내 인생의 이동 경로가 보인다. 아, 오케이. 직원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건 회사의 의무 중 하나렷다. 그렇다면 집이 월세인지 자가인지-일례로 LS 정유회사- 는 왜 묻는 걸까? 왜…? 왜…..?

그래서 집이 월세야 자가야….?

지원자가 ‘인재’인지 따지려면 지원자가 다닌 학교를 살피지 아니할 수 없다! 삼성 그룹은 고등학교,대학교 졸업 이력뿐만 아니라 출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묻는다. LG 생활건강은 출신 고등학교의 계열을 분류해서 표시하도록 했는데, 그 분류가 참 고깝다.

특목고/ 일반고/ 실업계/ 해외 거주.

이 중에서 출신을 선택하도록 했다. LG 생활건강에 지원한 L모군은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 지원자였다면 왠지 찝찝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 분류가 실업계를 우대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해외 고교 출신자를 우대하기 위한 것인지는 고깝지만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슈퍼 을! 슈퍼 을이니까! 질문이 고까워도 어쩔 수 없다. 왜 이런 걸 묻냐고 물을 자격도, 저 항목을 표시하지 않을 권리도 없는 것이다.

가족은 건들지 마라

CEO 개객기야

가족은 건들지마으리이 ! (사진=스포츠서울)

너를 알고 너의 가족을 알면 백전 백승? 회사 인사팀의 마수를 가족도 피해갈 수 없다. 영화 ‘친구’가 남긴 명대사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부터 시작해서 조부모,부모,형제 자매의 학력과 직업을 탈탈 턴다. 동아 쏘시오 그룹은 부모님의 직업, 학력을 물었고, M양은 “부모님의 이혼 여부를 묻는 곳도 있었다”며 “남의 가정사에 뭐 그리 관심들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창의 인재를 원한다는 분들이라 그런지 참 세세하게 중요한 것만 골라 묻는다.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잉~?’ 어머머머 왜 이러세요. 우리 처음 본 사인데 ; 회사 너님,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구나? (식은 땀이 흐른다)

지원자 너님,

…믿습니까?

신자는 신자를 알아보고, 신실한 믿음은 지원자를 배반하지 않나니. CE0선서 18:35장. 이런 구절이 있더랬나. 종교가 있느냐!? 이 정도 질문이면 양반이다. ‘아씨. 그냥 종교 있다고 거짓말 할까?’ 이런 생각은 하덜덜 마시라. 살벌한 Reference checking이 기다리고 있다. 이랜드 그룹은 기독교라면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 그 교회에 아는 목사님의 이름을 적을 것까지 요구한다.

목사님 뿐이당가? 이랜드 내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 이름은 무엇인지, 직급은 무엇인지 상세하게 적으라는 칸도 있다. 오오오;;;  이렇게 본격적으로 학연지연혈연의 인맥 네트워크를 과시해버려요? 우와 이랜드 정말 끝내준다!!!

암요. 믿습니다. 믿어요.

신성학교로 소문난 연세대학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연세대학교는 교직원 채용에서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 성함과 교회 주소, 교회에서 본인이 하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자, 고해성사의 시간이 돌아왔다. 평소 교회를 신실하게 다니지 않았다면 울며 회개하자! 어떻게 교회에서 청년부 활동도 안 할 수가 있는가? ‘교회에서 본인이 하는 일’을 적기 위해선 봉사하고 베푸는 종교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본인의 종교관에 대한 주관식 서술 문항도 있다. 무려 1000자 짜리 문제다. 사제를 뽑는 건지 교직원을 뽑는 건지 모를 일이다. 그래그래. 신성 학교의 교직원으로 일하려면 이 정도는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다 하고 있겠지요?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SNS도 안심할 수 없다. SNS를 아직도 정말 솔직하게 쓰고 있는가? 이 멍청이바보해삼말미잘!! SNS도 디자인이 필요하다. 왜냐면 회사님이 다 보고 있으니까~

작게 지저귀는 새가 너의 소식을 회사에게 물어다줄거야~

취업포탈 사이트가 인사 담당자 397명에게 물었다. 채용 때 구직자들의 SNS를 참고하는가? 예. 52%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왜 참고하는가? ‘인재 선발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94%였다. 불건전한 내용이 있으면 탈락 시킨단다. 우리야 이 불건전한 내용이 뭔지 모르지만… 이 염탐꾼 놈들이 우리의 페이스북을 훔쳐보고 우리를 데려갈지 말지 결정한다는 거다. ‘대인관계가 원만한가’, ‘평소 언행이나 가치관이 바른가’ 등을 유추할 수 있다며 SNS를 참고한다고. SNS를 참고하고 있다고 대답한 인사 담당자 중 무려 88%가 앞으로 SNS 평가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대답했다.

 

이 와중에 한국경제는 2012년에 창간 30주년 기획 특집으로 취업준비생 SNS 관리법을 기사로 냈다. 피할 수 없으면 이용해라! 참 적응도 순응도 빠른 사람들이다. 평소에 취업 관련 포스팅을 많이 공유해두면 좋다는 팁까지 제시했다. 나는 항상 취업에 목매고 있던 사람이오- 하는 것을 티내라는 뜻이다. 회사도 고깝지만 참 이 충고도 고깝다.

당연한 얘기지만, 취준생들은 이런 상황에 반감을 나타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포트폴리오 SNS 웰던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너무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64.3%)

△SNS와 업무능력 파악은 별개의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에 (55.9%)

△자유롭게 SNS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29.6%) ( 복수 응답 가능)

싫다고 답했다고 한다. 파놉티콘의 밖에서 낄끼덕 대는 회사 너, 진짜 재수 없다.

자, 이제 닥치고

회사 너님이 대답할 차례야.

까놓고 물어보자. 회사야, 저 모든 것이 내가 쓸모 있는 인재인지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게 맞니? 정말? 지원자 입장에선 안 쓸 수도 없다. 고깝지만 안 쓰긴 찝찝하고, 써놔도 이걸로 날 어떻게 평가할까 싶어 찝찝하다. 본적부터 출신 고등학교, 가족 학력에 종교관까지. 어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 몰라. 그런 생각이 엄습한다. 차별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갖다대보고, ‘그래. 그래도 난 인문계니까.’, ‘그래, 종교는 무교라고 쓰자.’ 이렇게 자기를 재단하고 잘라낸다. 아, 정말 이력서 쓰기 싫다.

인상 혹은 관상?, 이상한 이력서 사진

 

이력서를 꼼꼼히 뜯어보며 생각하니 고까운 게 또 있다.

요즘 사진관들이 짭짤하게 수입을 잡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력서 사진’이다. 적게는 3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 대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헤어, 메이크업, 정장 대여 여부에서 가격이 차이가 난다. 비싸게 찍으면 배경도 여러 가지로 넣어준다. 갈색, 회색, 파랑색… 각 배경마다 사람 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해서, 좀 더 밝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원하는 기업에는 파란 배경 사진을 쓰고, 차분한 분위기를 원하면 갈색 배경 사진을 쓰라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을 보면 “아니 이게 누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포토샵으로 잘 다듬은 치열에 잔머리 하나 없이 머리에 뽕도 넣어서 ‘깔끔한 신입사원’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여러 이력서 사진을 쭉 늘어놓고 보면, 다 똑같은 머리에 어깨에, 이목구비만 달리해서 갖다 박은 것 같다. 신입사원을 찍어내는 공장이라도 있는가.

 

천편일률. 분명히 어딘가에 신입사원 찍어내는 공장이 있을 것만 같아.,………….(사진=대전일보)

 사진도 열심히 찍고, 면접 갈 때는 삐까뻔쩍 광을 내고 미용실에서 올림 머리를 한다. 왜? 남들도 하니까. 남들만큼은 잘 보여야 하니까. 한 친구는 취직을 준비하면서 긴 생머리를 싹둑 자를까 고민했다. 면접 때마다 매번 미용실에 가서 뽕을 넣기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드니 차라리 단발이 낫겠다 생각했다고. 면접 1회당 구직자의 평균 지출 비용은 5만 2000원 (의상구입비 제외). 구직자 10명 중 3명이 과도한 면접 비용 때문에 면접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헤럴드경제 2014.1).

아아. 서러운 우리네 인생아. 그렇게 왁스를 쳐발라도 80명 중에 1명만 뽑히는 것을. 우리들은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나.

네가 너무 소심한 거 아니야? 이 구직자 소인배!

그렇다. 한 인사 담당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취업비용 평균 105만원 쓴다. 2014.3.17)

“취업 준비생이 지원할 직종에 따라 적절히 스펙을 쌓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원 분야와 관련 없는 자격증을 많이 딴다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한마디 요약: 쓸 데 없이 스펙 쌓지마.

“면접시험을 볼 때도 면접관은 지원자가 얼마짜리 화장을 했는지 알 수 없고, 비싼 메이크업 비용이 반드시 좋은 인상을 준다는 보장도 없다. 나이에 맞지 않게 완벽한 ‘면접 테크닉’을 자랑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지원자의 인성과 서류의 진실성, 면접관의 질문에 대한 이해도 등이 면접시험 관건이다.”

-> 한마디 요약: 화장에 신경 쓰지 말고 인성에 신경 써.

그렇다! 우리가 괜히 쫄았던 것 아닐까…?

이것들이 다 헛짓거리였어…? 이이…?

아닌가봐. 잡코리아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들이 이력서를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이력서 사진’ 이라고 한다. 왜? 그 대답이 가관이다. 성격 및 성향을 검토하기 위해서(57.5%) 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어디 관상쟁이라도 납시셨나. 사진을 보면 성격이 보인다고? 개중에 업종,직종 특성 상 외모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11.9% 뿐이었다. 언론들도 이 이력서 사진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 중인 것 같다. 이력서 사진을 본다고는 하는데 중요하게는 또 안 본다고 하고 그러다가 제일 많이 본다고 하고 난리도 아니다. 아이고 어쨌든 나는 서럽구료. 못 생긴게 무슨 죄야. 얼굴이 무슨 죄여.

덧붙이는 개그 하나,

MBC는 개멋진 MBC 뉴스는 9월 16일 이브닝 뉴스에서 이력서 사진이 이력서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친근함은 코와 관련이 깊다며 첫인상 공식도 파헤쳐줌.

MBC 뉴스 크라스2 MBC 뉴스 클라스

그리고 한경닷컴은 “신입사원 공채 몰린 하반기, 사진성형 감점보다 인상 좋은 안면윤곽 성형”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었다아 – 본격 성형 권유! 포토샵 하지 말고 정말 성형을 하란 말이야!

오만한 회사 너님,

인재가 없어? 이력서부터 뜯어 고쳐라!

경제면, 사회면 기사를 보면 채용 시즌에 꼭 관련 기사가 하나씩 난다. 꼬리표처럼 붙는 ‘A 대기업의 인사담당자’ 인터뷰는 결국 ‘ㅉㅉ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고게 아니라 요거야!’라는 충고로 끝난다. 묻고 싶다. 인재가 있으면 알아볼 눈들은 있으신가? 이리 저리 지원자들 사생활을 탈탈 털어 그 회사 인재풀에 알찬 수확은 좀 있으셨는지?

다른 나라는 어떨까? 부러운 샘플 몇 개를 비교해보자.

얼굴 없는 너! 난 너를 몰라!

 사진이 없다. 이력서 위에 CG로 그려낸 듯한 미소들이 없다! 캐나다,미국,영국,호주의 이력서를 비교해보면, (회사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굳이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건 예시 이력서. 그러나 자기가 알아서 디자인하는 거라 폼이 다 다르다. CC BY Senthamarai kannan A , Flickr

미국은 구직자가 내키는 대로 이력서 양식을 만든다. Resume 라고 부르는 특이한 양식. 가려는 회사에 따라, 분야에 따라 자신이 이력서를 디자인한다. 학력,경험,특기를 적을 때도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앞으로 빼는 등 순서도 제각각이다. 이 이력서를 소개한 Tiffany 님은 “자신의 나이나, 종교, 국적, 장애 등은 절대 밝힐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원문보기: http://garisangod.egloos.com/viewer/3114372)

유럽,호주 등지의 이력서 양식인 CV. (사진=CC by Nap Pon-an, Flickr)

유럽,호주 등지의 이력서 양식인 CV. (사진=CC by Nap Pon-an, Flickr)

영국에선 지원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경력을 묻는다. 유럽 호주 등지에서 쓰는 이 서양식 ‘이력서’는 CV(curriculum vitae)이다. 여기엔 정식 직장이나 인턴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자원봉사 또한 기입할 수 있다. 얼핏보면 학력,스펙을 칸칸이 나열하는 우리나라 이력서랑 비슷하다. 그러나 영국의 이력서를 소개한 블로거 Beansj의 말에 따르면 ‘이력서에 들어갈 수 있는  경력’과 ‘그럴 수 없는 경력’이 확연히 다른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더 유연한 양식이다.  ‘스카우트 보이 20년 째’, ‘신문 배달을 하며 신문을 봄’. 모두 오케이. 적을 수 있다.  (원문보기: http://blog.daum.net/beansj/7468983) 스펙란을 없애도 스펙말고  감히 신문 배달 이력은 적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남조선 이력서와 클라쓰가 다르네 크으- (사대주의 폭발)

차별의 근거를 요구하지 말라고!!

이 개인정보 도적놈들!!

 왜 이런 게 부럽냐고? 굳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쓸 데 없는 정보들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본적부터 주량까지 탈탈 털어놓고, 어떤 잣대로 날 평가하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그 정보를 어떻게 보관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폐기는 하는지, 아니면 영원히 나의 서류가 그 회사에 남는지. 알 길이 없다. 2012년에 정부가 배포한 가이드라인이 있다고는 하는데…

“채용전형에 필요 없는 본적, 주민번호 등의 개인정보와 종교·정치적 견해 등의 민감정보의 수집·이용은 원칙적으로 금지” 하라고, “채용전형 및 이의신청 절차 등이 종료된 후에는 입사지원자의 개인정보를 지체 없이 통상적으로 5일 이내 파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권했다고 한다. 2014년인 지금도 개미똥만큼도 이 가이드라인의 ‘가이드’를 체감할 수 없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아까 ‘회사 놈들, 이거 스토커네’라고 말했던가? 스토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도적놈이다. 도적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늘도 취준생은 비굴비굴 웁니다

참. 그래. 그게 그렇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장 내 앞에 채용 마감이 다가오는데 어쩌랴. 열심히 쓰고 또 쓰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우리가 열심히 써낸 이력서는 7,8분 만에 쓰레기통 직행인지 아닌지가 결정 난다고.

썸머 베짱이는 베짱베짱 울고 싶어요. 하지만 당장 주변의 취준생들을 보면 아련아련- 글썽글썽. 비록 우리가 당장은 비굴비굴 울지만 회사 너님들, 기억하세요. 이런 식이면 니들도 손해야… (P.S. 그리고 이 시즌만 끝나면 우리가 니들의 그 ‘고갱님’이다…?)

째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