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을 오라고 그렇게 빌어보지만

사람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묻는다면 아마 비슷한 장르로 묶을 수 있는 아티스트를 주르륵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너의 페이버릿은 뭐니 읏흥?☆’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음… 음… 음… ‘하다가 몇 명의 외국 여자 이름을 중얼거릴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의 반응은…

대략 이런 반응

  1.  ??!? 그게 뭐야
  2.  아~ 그.. (한 명 쯤은 알 것 같다는 흐응- 등의 콧소리 포함)
  3. 너… 여자 아티스트만 엄청 좋아하는구나?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 장르불문(이라기보단 사실 그분들은 각자 그냥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느낌이라 장르 구분 불가)하고 내가 빠순이처럼 들으며 콧김을 뿜는 노래들은 거의 다 여자 보컬리스트들이다. 목소리 하나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에 이들을 혹자는 ‘디바’라고도 명명한다.

그렇지만 난 항상 모종의 억울함을 품고 살아 왔다. 진-짜 유명한 아티스트들인데 (내가 보기에도,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은근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단 말이다. 이 여신님들을 하루빨리 전파해야 하는데 이름 한 번 안 들어 봤다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그, 빠순이만의 맹목적인 빡침. 열심히 전도해서 한국 팬을 늘리면 혹시 이 분들이 한번이라도 우리나라에 왕림해 주실까 해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포교를 위해 나서본다. 오늘의 첫 번째 아티스트는 그래도 비교적 유명한 라나 델 레이!

마약류 갑, 라나 델 레이

으아니 당신… 라나 델 레이를 모르는가?

라나 델 레이를 이야기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게 누구냐’는 반응을 보이면 나는 다음과 같이 (거의) 준비된 듯한 대사를 랩처럼 읊는다. “뇌쇄적인 외모란 말은 이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서 태어난 단어와도 같다고? 진심, 앨범커버 한 번만 보면 그 눈동자에 쏙 빠진다니까… 그리고 나도 모르게 노래를 찾아서 뮤직비디오를 보게 된다고.

정규 1집의 커버 사진 촬영 당시. 사진/CC by the tericalper

얽… 그… 뮤직비디오가 진짜 아무것도 아닌 풍경과 사람에 라나찡을 가져다 놓은 것 뿐인데 무한대로 돌려보게 되는 힘이 있어. 특히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말이지….”

<객관적인 소개>

2011년 ‘Video Games’ 의 싱글로, 그리고 2012년 정규앨범 ‘Born to Die’로 데뷔한 라나 델 레이(본명은 충격스럽게도 ‘엘리자벳’ – 심지어 나는 라나 델 레이도 본명인 줄로만 알았다) 는 이미 상이라면 상, 평단이라면 평단, 대중이라면 대중에게 모두 인정받은 21세기의 대박 히트 아티스트 중 하나다. 아마도 지나치면서 무심코 한 곡쯤은 그녀의 노래를 들어봤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Born to Die>(2012)와 <Ultraviolence>(2014) 두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으며, 정규앨범 이외의 작업으로는 ‘위대한 개츠비’의 OST ‘Young and Beautiful’ 등이 있다.

<매력포인트>

  1. 별에서 온 그대

2011년 데뷔 당시 라나 델 레이가 파리에서 공연하던 시절. 사진/CC by stars are underground

2011년 데뷔 당시 라나 델 레이가 파리에서 공연하던 모습. 사진/CC by stars are underground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척 외계적인 외모를 지닌 이 소녀같은 여자는 사실 알고 보니 1985년생이었다. 구글링을 해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이 사람이 나랑 비슷한 나이거나 더욱 어린 줄로만 알았다. 물론 ‘외쿡인의 나이는 정확히 알 쑤가 없써효!’ 버프가 있긴 한데, 그녀의 목소리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매우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1. 데카당스라는 단어가 실체를 갖췄다면 아마 이 사람일거야

어릴 때  다양한 학문과 책과 음악을 섭렵한 배경의 아우라 때문인지 뭔진 몰라도, ‘데카당트’한 음악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다. 가사에서 꽤나 현실비판적인 내용도 등장하는 편이다. 그 현실비판 마저도 뭐랄까… 세상 풍파 다 겪은 17세 소녀의 목소리로 전달한다는 게 라나 델 레이의 매력이다. (아무리 이 사람이 현실 28살이라도 노래 속의 화자는 딱 그 지점 쯤이라고 생각한다.) 그 몽롱한 목소리에 홀려서 그렇지 문학이나 음악에서의 다양한 레퍼런스들도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정말 그 인어같은 목소리에 홀리지 않고 그러한 디테일을 다 들으려면 상당한 반복청취가 필요함을 인정한다).

2012년 발표했던 ‘ride’란 곡의 뮤직비디오 스틸컷.

라나 델 레이의 음악을 대낮에 들으면 뭔가 해서는 안 될 듯한 일을 하는 느낌이고, 밤에 들으면 밤의 음험하고 어두침침하고 환상적인 느낌이 매-우 부각되는 느낌이라고 굳이 표현해야 할까. 똑같은 이야기를 노래해도 라나찡이 노래하면 그 이야기의 ‘잔혹동화’ 버전이 자동생성된다. 음… 그 목소리를 듣는 게 미쿡인들 표현으로는 마치 ‘guilty pleasure’ 같다. 그래서인지 특히 음험한 혹은 지나치게 위험한 사랑에 관한 노래가 주특기.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절로 섹시하되 천박하지 않다는 건 진심 엄청난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1. 난 느낌 뿐만 아니라 테크닉에서도 밀리지 않지

때로는 아티스트의 ‘필’이 지나치게 강력한 나머지 보컬 능력이 후달려도 장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ex. 솔직히 아담 리바인이 노래를 겁-나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딱 그 마룬5만의 느낌을 잘 만들어주는 보컬이지 아니 이렇게 쓰면 나 마룬까인줄 아는데 저 마룬까 아닙니다 팬이에요 팬 팬 팬 저도 아담찡이 결혼했을때 통곡했다고요) 라나 델 레이는 테크닉적인 면에서도 여타 가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일단 넓디 넓은 보컬 레인지부터 (좋은 의미로) 충격과 공포다.

<Ultra Violence>의 수록곡 ‘Old Money’의 도입부에서 ‘우와’ 싶은 저음역대는 곧 차분히 고조돼서 여성 보컬의 왠만한 고음역대로 올라가는데, 사실 들으면서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음역대가 바뀌는 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게 노래를 부른다. ‘뭐야 이거, 그냥 노래 부르는 거 아냐? 무슨 음역대 ㅋㅎ’ 하시는 분들은 직접 따라 불러보시면 감이 올 거다. (딱히 내가 따라 부르려다 실패하고 오열한 건 아니다)

<추천 플레이리스트>

 <Born To Die> – Blue Jeans

처음 시작할 때 딩,딩,딩,딩 하는 (도저히 다른 말로 설명할 말이 생각하지 않아! 진짜라규!) 소리마저도 야하게 들리게 만드는 이 사람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곡이다. 맹목적인 사랑에 대해서 노래하지만 라나 델 레이가 노래하니까 그 사랑의 위험도가 10.5배쯤 증가한 아슬아슬하면서도 느릿느릿한 곡으로, 그녀의 중간 음역대 목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느끼게 해 주는 정규 1집의 대표곡 중 하나.

‘K’라는 알려지지 않은 남자와의 실제 사랑 이야기를 옮겨 만든 노래라고 전해진다. 이 곡은 꼭 뮤비로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그냥 수영장에 남자랑 라나 델 레이 이렇게 세 요소 뿐인데 왜때문에 난 3분 30초 내내 눈을 뗄 수 없을까 아하하하하하하. 흑백의 영상미가 매우 돋보인다.

<Born To Die> – Body Electric

Elvis is my daddy, Marilyn’s my mother,

Jesus is my bestest friend.

We don’t need nobody ’cause we got each other,

Or at least I pretend.

(…)

Whitman is my daddy, Monaco’s my mother,

Diamonds are my bestest friend.

Heaven is my baby, suicide’s her father,

Opulence is the end.

예수님이고 뭐고 다 가사의 일부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라나 델 레이의 패기와 가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자꾸 목소리가 너무 야해서 Body Electric이 그…런 전율인 줄로만 알았기에 추천. 순수하고 평범하고 반복적인 동요 뺨치는 가사도 이 사람의 목소리를 만나면 퇴폐적으로 들릴 수 있다긔.

<Ultraviolence>- Florida Kilos

독특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추어 시작하는 노래. 달랑 악기 하나에 달랑 목소리 하나가 엄청 매력적으로 들린다. 라나 델 레이의 특이한 보컬 톤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고음역대로 올라가지 않지만 노래에 묘한 중독성과 힘이 있어서 4분대의 짧지 않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듣게 된다.

이 곡이 실린 두 번째 정규앨범 <Ultraviolence>는 전체적으로 발표된 시기에 맞게 약간 봄과 여름, 미국 서부의 쨍쨍한 햇살에 관한 레퍼런스들이 가득 담긴 앨범인데, 그렇다고 해서 여타 가수들이 이를 풀어내는 것처럼 매우 밝고 빠른 음악을 선보이지 않았다. 눈부시게 밝은 태양빛도 음험해 보이도록 표현된다.

<Ultraviolence> – West Coast

캘리포니아, 햇빛 쨍쨍한 해변, 그리고 남자 이야기가 이-렇게 흑백으로 풀어헤쳐져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 이 뮤직비디오를 위시해서 라나 델 레이의 주요 곡 뮤직비디오에서는 꼭 상대적으로 늙어 보이는 남자가 상대역으로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팬들은 라나 델 레이가 롤리타 레퍼런스를 차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규 1집의  Paradise Edition에도 아예 ‘Lolita’라는 제목의 노래가 실리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이 컨셉이 라나 델 레이가 가장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페르소나 중 하나라는 것에는 팬들 사이에서도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아직 노코멘트. 노래 자체는 미디엄 템포와 느린 템포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제법 흡입력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Dark Paradise – <Born to Die>

라나 델 레이의 어떤 퇴폐성이 느릿느릿하고 끈적끈적한 노래에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소개하는 노래들 중에서 가장 뭐랄까, 템포도 빠르고 (그래 봤자 미디엄 템포 이상은 아니다. 촤하핫) 가장 절박한 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노래다. 그래서 가사는 조금 중2병 오글주의보를 발령해야 할 지도. 최근 유행하고 있는(그리고 당분간 유행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트와일라잇 류의 ‘음험하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래도 조금 덜 오글거리고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