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목요일의 부엉이’ 노션에 올라온 글을 미스핏츠에 맞게 편집한 것입니다.

공부하는 연구자라면 아마 이런 피피티 슬라이드 많이 보았을 것 같습니다. 하얀 기본 바탕에 맑은 고딕으로 빼곡히 적힌 글자들. MS에서 제공하는 기본 템플릿에서 어느 하나 손보지 아니하고 그저 자신이 발표해야 할 텍스트만 컨트롤 C, 컨트롤 V한 자료들.. 형식은 따지지 말고 내용만 보라는 외침 같지만, 정작 그런 자료물을 보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그 내용마저 무성의해보이는 그런 자료들..

글로 밥벌이하는 것도 모자라 글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글쟁인 연구자들에게 ‘글’은 단순한 글로 머물지 않습니다. 글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글을 읽는 방법과 의미는 달라집니다. 본문에 위치한 글과 각주에 위한 글의 무게(글자의 크기에서부터 다르지만)는 분명 다릅니다. 글 쓰는 연구자라면 자고로 글을 디자인 할 줄도 알아야겠죠. 그러나 희한하게도 글을 디자인한다는 것에 대해 연구자들의 관심은 적어 보입니다. 형식보다는 내용에 더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일까요?

하지만 문서를 디자인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단 문서를 만드는 일이 재밌어집니다. 두 번째, 이 문서를 누가 읽는지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문서디자인의 초심자로서 읽을만한 좋은 책이 있어서 오늘은 소개해볼까 합니다. 2012년 안그라픽스 출판사에서 나온<좋은 문서디자인 기본 원리29>입니다.

이 책이 설정하는 주요 독자는 보고서와 안내문을 주로 만들어야 하는 회사의 (막내)직원입니다. “회사라니!”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교, 연구소, 심지어 동아리에도 보고서와 안내문과 같은 문서는 필요합니다. 책이나 연구논문보다는 밀도는 낮겠지만 일상생활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이런 문서들은 인간은 물론 연구자들의 협업을 위해서도 중요한 양식임이 틀림이 없죠.

이 책이 알려주는 유익한 팁을 몇 개 공유해보겠습니다. 다 적으면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엄선한 3가지를 꼽아볼게요.

첫 번째, <각각의 무리에 위계를 부여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라> 입니다. 아래 예시처럼 글머리에 번호를 붙이거나 줄을 바꾸는 정도로 문서를 작성한 것과 제목, 소제목, 부가설명 등 글 무리의 위계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한 문서는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누가 봐도 두 번째 문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어떤 내용을 전달하려 하는지 더 쉽게 이해되죠. MS워드의 경우 자동양식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한글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디자인은 손수 작업해줘야 합니다.

두 번째, <차이는 분명히 다르게 주되, 일관적이어야 한다>입니다. 시각적으로 글 무리의 위계를 나타내려면, 확실히 그 차이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매한 차이는 오히려 문서를 읽는 독자에게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강하게 하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통일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제목이 20pt에 맑은고딕 Bold 남색이어야 하는데, 25pt 맑은고딕 regular 남색이면 어딘가 이상하지만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라고 반응하지 않을까요? 아래 예시처럼 말이죠.

세 번째, <비어있는 공간을 주시한다> 입니다. 문서에 비어있는 공간, 즉 글이 적히지 않는 여백을 말합니다. 문서를 작성하다보면 여백이 신경쓰이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더 이상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때 입니다. 여백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으레 내용이 너무 없어보이는 걸 막기 위해 의미 없는 문장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이 책이주는 팁은 문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글과 사진을 재배치해보는 겁니다. 혹시 윗부분에 글 무리가 몰려있진 않은지, 무리가 띄엄 띄엄 산재한 느낌이라면 알맞게 문단 사이 여백을 조절하는 것이죠. 잘만 한다면 사족을 추가하지 않고 문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3가지 팁을 읽어보니 별 거 아닌 것 같다고요? 사실 별거가 아닐 수도, 별거 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별거라고 한다면 결국 문서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문서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글을 쓰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서,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문서를 검토하는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해 내려면 ‘일상의 작은 일을 그냥 대충 넘기고 말자’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라는 작성자의 태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그런 마음가짐을 먹는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하면 될지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까요. 이 책은 일상에서 만들어야 하는 다양한 문서를 예시로 들어서 실제 현실 적용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또 한글을 주 편집프로그램으로 두고 설명하고 있어서 실제 적용에도 유리합니다. 다만 2012년도에 나온 책이라 편집프로그램의 기능이 다소 오래되어 볼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세요.!

편집/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