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뿌리깊은 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무려 9년 전에 방송되었던! 그 뿌리깊은 나무 말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사극이라 그런지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지지도 않고, 오히려 시나리오의 전개가 흥미진진해서 매우 즐겁게 시청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혹시 아직 뿌리깊은 나무를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강력 추천 드립니다.)

<뿌리깊은 나무>하면 유명한 짤이 있죠. 바로 세종이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며 비속어를 쓰는 모습인데요.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세간에 유행어가 되는 등 인기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간 생각해왔던 근엄한 왕의 이미지와 달라 모두가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일텐데요. 얼마 전 우연히 접한 기사와 함께 이 장면으로 역사 속 이미지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얼마나 강한 ‘고정관념’으로 작용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접한 기사의 내용은 바로 성군으로 잘 알려진 정조는 실은 ‘폭군’에 가깝다는 해석을 내놓은 연구자의 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정조의 공포정치>(출간예정)라는 이름의 책을 준비한 변원림 박사의 연구성과인데요. 책에서 그가 내놓는 정조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변 박사가 그려 낸 정조의 진짜 모습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군으로 연출하고자 했으나 결코 성군이 되지 못한 위선자’다. 그는 “정조가 개혁 군주라는 건 오늘날 학자들의 희망사항이지 사료에 근거한 게 아니다”라며 “정조는 과거를 지향한 보수반동적 군주”라고 평가했다.

정조가 당대에 유행하던 연암 박지원풍의 문장을 기존 고문(古文)들로 되돌려야 한다며 일으킨 ‘문체반정’이 그가 드는 예다. “문체반정을 통해 정조가 조선인의 사고를 주자학의 감옥에 가둬 조선을 명나라의 축소판으로 화석화했고, 조선인들이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조, 실상은 폭군이었다” 70대 재독 사학자의 도발

세종 이후 조선의 르네상스를 불러왔다고 평가 받았던 정조가, 실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를 위하여 반동적인 사고와 행동을 보여왔다는 평가, 신선하지 않나요? 이 주장이 얼마나 그럴듯한지는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저는 이 주장 자체가 가져오는 ‘충격’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처음으로 세종이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던 때처럼 말이죠.

역사 속 이미지가 고정관념, 다른 말로 일반의 상식이 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어떤 해석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리고 어떤 해석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그 해석이 가지고 있는 설득력뿐 아니라, 그 해석이 확장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해석이 일반의 상식의 지위에 오르는 것, 그것을 뒤집은 해석이 등장하는 것은 한 사회의 인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단서가 됩니다. 이를테면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전환 같이 말이죠.

우리의 상식(혹은 고정관념)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요한 ‘집단의 기억’이자 ‘서사’라면, 집단 서사가 변화한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단서로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데에 그 사람의 삶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듯이, 어떤 사회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려면 그 사회가 지나 온 역사를 살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선지 요즘은 예전엔 지루했던 역사책 읽기가 조금 달리 읽힙니다. 어떤 역사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한 감각도 생겼죠. 역사가 단순히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잊혀진 여성의 서사를 담은 역사 소설들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세 여자>나, 최초의 고성 농성 시위 여성 노동자 <체공녀 강주룡> ,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초언니> 등등…

그리고 이러한 작품에서 역사적 사실 뒤에 벌어진 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상상하는 연구자들을 떠올렸습니다. 이 작품들의 재료가 되고 영감이 되었을 연구가 분명 있었겠죠.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역사 연구란 매우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작업이며 총체적인 학문인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며 과거의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야기’에 가깝죠. 그리고 역사가 크게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과정이라면, 역사 연구자에 손에는 사실과 상상, 이 두 가지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역사 전공 부엉이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부엉이들에게 울림이 있을, 홍석률 선생님의 책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역사공부는 어쩌면 이처럼 희생된 가능성, 버려진 가능성을 캐내어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자고 하지만 현실은 이미 결정된 결과만을 보여주기 쉽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의 상상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과거에 희생되었던 가능성, 실패한 가능성도 함께 보아야 미래의 다양한 길을 상상할 힘이 나올 수 있다.

  • 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 410쪽

‘실패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상상하는 것. 부엉이들이 놓치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