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석사과정 중에 프로젝트 조교를 했었습니다. 덕분에 학교 안에 제 책상이 있었습니다. 지하 109호. 그리 크지 않은 방에 석사과정 조교가 5명, 그리고 109호 안에 있는 또다른 방에는 박사과정 조교가 5명 정도 있었습니다. 석사과정 조교들이 있는 방은 프로젝트 이름을 따서 ‘중점’, 박사과정 조교들이 있는 방은 (이제는 소름끼치는 단어가 되고 말았지만) ‘박사방’이라 불렀죠. 입학 후 1-2년이 지나면서 중점 외에도 여러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졸업 후에 방을 나가고 누군가는 입학하여 방에 들어왔죠. 같이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수업도 듣고, 연구도 하고, 교수님의 행방도 공유하는 일종의 연구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모두가 다른 주제로 연구를 했지만 지하109호는 다른 층에 있는 조교들도 식사 후 커피 한 잔 하러 자연스레 들르는 대학원 조교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지하 109호에는 우리끼리 붙인 다른 이름이 있었습니다. ‘지하 109호집체논문창작단’ 재미로 붙인 이름이지만 아주 걸맞는 이름이었죠. 학위논문 심사철이 오면 조교들이 심사를 받고 자연스럽게 109호로 들렀습니다. 심사결과는 전반적으로 대폭 수정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몇 명이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수정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목차를 함께 보완하고, 자료 찾는 걸 도와주고, 형식을 맞추는 데 손을 보태기도 했죠. 어디 학위논문 뿐일까요. 수업 별 소논문이나 에세이를 쓸 때도 서로 글을 봐주고 돕는 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지하109호에서 글 쓰는 걸 배웠으니까요.

여러분에게는 ‘자기-감시’가 작동하는 공간이 있나요?

그렇다고 해서 이 공간에서 늘 연구가 불일듯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죠. 누군가가 “오늘도 한 줄도 못 썼네!” 라고 외치면 옆에서 “나도! 나도! 나도!”라고 외치는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두 명은 연달아 터지는 “나도!”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와중에도 뭔가 썼다는 것을! 우리가 열심히 수다 떠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키보드 소리를 ‘타다다다닥’ 내는 누군가를 의식하며, 비록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연구 공간의 가장 큰 장점인 ‘자기-감시’가 작동합니다. 마치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니지만, 다이어트 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면 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덜 먹게 되는 그런 ‘자기-감시’ 말입니다.

사실 제가 연달아 터지는 “나도!”에 동참하지 않았던 그 사람입니다. 제가 부지런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 글쓰기 방식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방식은 다르죠. 누군가는 고뇌하면서 문장을 해산하고, 누군가는 제출시간이 다가오면 슈퍼파워가 나와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말을 글로 써내려갑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쓰는 것이죠. 이건 저의 말하기 방식과 닮았는데요. 저는 말을 한 후에 그 말을 내 귀로 들으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생각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타이핑을 해두고 나서 다시 읽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문장을 다시 쓰고 논리에 맞춰 위치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썼던 글은 100% 지워지고 맙니다.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아요. 정말 여러번 처음부터 끝까지 매번 정독해야 합니다. 저는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