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이 없네요.”

회사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동료는 최근 길게 이어졌던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농작물 가격이 많이 올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4,000원 한 끼 단가를 맞추기 위해 식판에는 고구마 맛탕과 두부조림, 깍두기와 냉동만두 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흰 쌀밥과 함께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아 힘겹게 식판을 비웠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식당은 모두 한 칸씩 띄어 앉도록 의자가 배치되었다. 나와 동료들은 1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음식을 담고, 조용히 식사한 후 식당을 빠져나왔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마스크를 찾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요즘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한창 심할 때도 제 돈 주고 마스크를 사서 쓴 적이 없는 나인데, 어쩌다 이런 시국에 살고 있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원체 잔병치레도 적고 외부 환경에 몸이 둔감한 편이지만 지금은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니니까. 나와 내 주위 사람들, 나를 마주할 수 있는 낯선 이들 모두를 위해 껴야만 하는 이 마스크가 종종 ‘갑옷’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은 지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침입’하고, 인간의 면역 체계는 그 ‘공격’에 대응하는 항체를 형성한다. 마스크는 인간의 면역 체계가 작동하기 전 몸 바깥에서 가장 먼저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방어 최전선의 병사이자 갑옷이다. 부여된 이름과 숫자에 따라 비말을 막아내는 능력의 위계가 구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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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경계하고 감시하게 된 일상이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다. 밤길을 걸으며 흠칫흠칫 주위를 신경 쓰는 것처럼, 벌건 대낮에 눈만 드러내고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살핀다. 최근엔 마스크 착용 여부만큼 얼핏 느껴지는 외관상의 정치 성향(?)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핸드폰 케이스에 태극기 스티커가 붙어있고, 극우보수 유투브를 큰 소리로 시청하고 있는 한 어르신을 피해 다른 칸에 가서 앉은 적이 있다. 그분이 실제로 광복절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는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구국집회!”라는 구호가 들리는 영상 하나로 ‘저 사람이 혹시라도 그날 광화문에 있었다면?’하고 상상했을 뿐이다. 이렇게 낯선 타인에 대한 일상적인 무관심은 몇 가지 단서들을 통해 쉽게 의심과 불신으로 바뀌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한 불신이 특정 집단을 기피하게 하고, 결국 그들을 단순히 ‘비정상, 부적응자, 괴물’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나는 늘 경계한다. 그렇게 “두렵고 낯선 괴물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곳이었는지, 그 세계를 누가 만들었는지, 두렵고 낯선 모습을 하고 나타난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였는지”1)추지현 외(2020).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돌베개, 264쪽.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어쩌다 올해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날 때가 있다. “될 수 있다면 올해를 통째로 환불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친구들과 주고받는 와중에, 이리 화나는 사람이 어디 나뿐만이겠냐, 하고 또 한탄한다. 채용 공지가 자꾸만 미루어지는 상황을 맞닥뜨린 취준생 친구들, 휴업일이 늘어가는 영세 자영업자들, 새 학기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까지 모두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그런데 이 화를, 분노를 어떻게 해소하고 어디에다 분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취약한 타자를 ‘괴물’로 만들어 혐오하면 되는 걸까? 가장 쉬운 답인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발단을 잘못 겨냥한 비난의 화살이 결국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오히려 끝없는 혐오의 연결고리를 이어나갈 뿐이다. 중국인에서 신천지 교인으로, 성소수자로, 이주민과 기독교인, 노인 계층으로… “다음은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실제로도 팽배하다.2)“‘코로나 차별·혐오’에 국민 90% “나도 차별 당할 수 있다””, 2020.06.23., 아시아경제, https://view.asiae.co.kr/article/2020062311552585560

출처 : YTN

이처럼 불안하고 좌절스러운 감정은 코로나 블루로 이어져 많은 이들을 무기력하게 하고 있다.3)“’코로나 블루’ 대한민국이 앓는다…정신과 문의 4배 폭증”, 2020.09.17., 뉴시스, https://newsis.com/view/?id=NISX20200916_0001168677&cID=10201&pID=10200 거기에 바이러스 팬데믹과 자연재해라는 재앙은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게 일어나지 않고, 보이지 않던 이들을 낯선 모습으로 사회 한복판에 소환한다. 세 시간에 가까운 통근 시간을 절약해 재택근무가 편했던 나는, 원래라면 출근길에 있을 시간에 내 방에서 인터넷을 켜고 다양한 ‘코로나/재해 취약계층’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들을 읽는다. 정신과 폐쇄병동 입원환자들의 집단 감염 소식4)“정신병동 2명 빼고 전원 확진…열악한 폐쇄공간이 부른 비극”, 2020.02.24.,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9439.html, 콜센터, 택배 물류센터, 방문판매 비정규직의 연이은 확진 판정, 1년 동안 지은 농사가 하루아침에 날아간 농부들, 성별에 따라 다른 코로나 블루 취약성5)“‘코로나 블루’ 여성이 더 취약한 이유는…[박성민 기자의 더블케어]”, 2020.09.10.,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910/102875737/1 등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이들의 삶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기사 구성과 내용으로 온라인 뉴스판이 채워져 있다. 나와 그들의 코로나19 팬데믹 경험에 적잖은 차이를 느끼면서도, 그 차이를 연결하고 있는 삶의 경험과 장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몰아치는 강한 빗줄기에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 때, 클릭 한 번으로 집 문 앞까지 배달되던 택배들. 비에 젖은 흐물흐물한 택배 박스에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감염에 노출되기 쉬워진 택배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함께 묻어있다. 새벽 배송으로 받은 농산물의 상태가 시원찮은 건 올여름 유난히 길게 이어진 장마와 태풍 때문이고, 이런 이상기후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인간의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각종 개발과 자연 파괴에 따른 기후 위기를 들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각종 바이러스 질병의 확산과도 직접적으로 맞닿는다. 자연 생태계를 무분별하게 착취하고 침범해 감염병의 숙주로 지목되는 야생동물들과의 접촉이 늘면서 나타나는 게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국’을 구성하는 여러 문제는 뿔뿔이 흩어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하나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인수공통전염병의 발생을 증가시키는 요인은 무엇인가?>

  • 삼림파괴 및 기타 토지 용도 변경
  • 불법 야생동물 포획, 거래 및 느슨한 관련 규제
  • 심화된 농업과 가축 생산
  • 항균제 내성
  • 기후변화/위기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뉴 노말(New Normal)을 이야기하고, 하루빨리 코로나 이전 평화로웠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각국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입하고 있는 중이다. 백신 개발과정마저도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6)“[세계는 백신 전쟁 중(上)]코로나19 팬데믹 위기…’서막’ 오른 백신개발 전쟁”, 2020.09.14., 청년일보, http://www.youthdaily.co.kr/news/article.html?no=47373 정부의 강력한 조치로 많은 자영업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가게 문을 닫지만, 높은 임대료와 유지비를 감당하기엔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이번 지원금은 선별적이기 때문에 조건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분명 생겨날 것이다. 팬데믹이 누그러들기도 전에 인간이 자초한 자연재해의 피해마저 입은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성장과 개발을 중심에 둔 전혀 새롭지 않은 ‘뉴 노멀’도, ‘나(우리)만 아니면/잘하면 된다’는 식의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문제 접근도 아니다. “현재의 위기와 재난을 불러온 체제, 이윤과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자와 환경을 희생시켜온 불평등 구조를 더욱 강고하게 하는 것은 결코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7)황인철 (2020). 코로나, 그리고 생태와 기후위기. 월간 복지동향(260), 39쪽.

여전히 위기는 우리 곁에 있다. 점심 식판에 아직도 복귀하지 못한 초록색과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 자연스럽게 걸치는 마스크가 그 증거다. 전문가들은 이 위기가 지나간다 한들 앞으로 더 자주, 더 빠르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먼 과거부터 인간은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침략하고, 약탈했다. 혁명의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광대한 초록 들판을 없애고 각종 문명의 이기로 채워나갔는지 기억하고 있다. 이 역사가 축적되어 ‘이 시국’을 맞이한 지금, 한시라도 빨리 더 많고 싱그러운 초록색을 지구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이 파괴한 자연환경에서 막대한 이익을 축적한 이들, 거기서부터 시작된 시장구조의 모순까지 어느 것 하나도 이 위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회피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자. 이외의 대안은 없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초록(green)이 필요하다.

글, 편집 / 싱두

   [ + ]

1. 추지현 외(2020).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돌베개, 264쪽.
2. “‘코로나 차별·혐오’에 국민 90% “나도 차별 당할 수 있다””, 2020.06.23., 아시아경제, https://view.asiae.co.kr/article/2020062311552585560
3. “’코로나 블루’ 대한민국이 앓는다…정신과 문의 4배 폭증”, 2020.09.17., 뉴시스, https://newsis.com/view/?id=NISX20200916_0001168677&cID=10201&pID=10200
4. “정신병동 2명 빼고 전원 확진…열악한 폐쇄공간이 부른 비극”, 2020.02.24.,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9439.html
5. “‘코로나 블루’ 여성이 더 취약한 이유는…[박성민 기자의 더블케어]”, 2020.09.10.,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910/102875737/1
6. “[세계는 백신 전쟁 중(上)]코로나19 팬데믹 위기…’서막’ 오른 백신개발 전쟁”, 2020.09.14., 청년일보, http://www.youthdaily.co.kr/news/article.html?no=47373
7. 황인철 (2020). 코로나, 그리고 생태와 기후위기. 월간 복지동향(260),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