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쇼마루 일화’가 웃긴 당신에게 

덕질의 전당 트위터에서 쓰이는 밈(meme)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멋진 드립을 치는 사람들은 많고 그 드립을 늘 도둑맞는 트위터 사람들이지만 덕질 관련한 밈은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머글들은 그런 것엔 관심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이 요괴는 인간과...?

라고 말한 이 요괴는 인간과…? (출처 :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그 중 하나가 셋쇼마루에 관한 것이다. 평생 싫어할 줄 알았는데-혹은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셋쇼마루 일화’라고 부른다. 셋쇼마루와 링의 관계성 때문이다. 인간을 극혐하던 셋쇼마루가 링에게 빠져 사는 모습을 보고 덕후들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익숙한데?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셋쇼마루 일화를 털어놓는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남들의 일화를 비웃으면서도 자신의 한치 앞을 모른다. 트위터에 셋쇼마루 일화라고만 검색해도 많은 이들이 과거의 자신을 비웃고 있다. 특히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말을 조심해야한다. 어쩌다가 내겐 이런 일이 많았고 특히 모든 일은 입을 함부로 놀리고 다니다가 일어났다. 덕후가 어찌 덕통사고를 예상하겠는가.

나의 셋쇼마루 일화

잡지사에서 일하던 시절 아이돌에 관해 (내게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스튜디오에 일찍 가서 기다리면서 앞 매체 촬영을 멍하니 지켜봤다. 회사가 달랐으니 거기 있던 직원들은 전부 남이었고 나는 생각없이 앉아있었다. 연예인의 회사 직원인듯 보이는 사람들과 담당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화를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화보를 찍고 있던 사람은 남자였고 굉장히 화려하게 생겼는데 누구인지 전혀 감이 안왔다. 연예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못알아봐서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아이돌인 것 같은데! 내가 아이돌을 모르다니? 얼굴을 계속 보면서도 모르겠어서 모니터를 봤다.

그런데 모니터 안에 태민이 있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태민을 못알아보다니! 내가 덕질한 적은 없지만 아이돌판의 바이블 중 하나인 그를? 나쁜 충격은 아니었다. 실물이 훨씬 날카롭고 화려해 이제까지 화면으로 보던 느낌과 전혀 달라 못 알아봤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큰 충격을 느낀 이유는 뼛속까지 느껴진 ‘남’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리감 때문이었다. 이전에 내가 태민과 남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전혀 아니다. 연예인을 본 게 처음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내가 기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던 아이돌이라 그랬을까. 누군지 모르고 들었던 그 직원들의 대화도 알고 나니 까마득한 거리감에 일조했다. 이토록 철저한 남이구나. 나는 그 공간에서 관련 없는 직원 1이었고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빠순이였으면 제지라도 당했지,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며 생각했다. 저게, 태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었다면? 당시 나는 열렬한 아이돌 덕질을 하던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건 상상만으로도 슬펐다. 당연히 머릿속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직접 겪은 거리감은 생각보다 더 큰 타격을 가져왔다.

‘앞으로 절대 아이돌 덕질 안 해’

그 다음부터 나는 스스로 다짐하며 여기저기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어차피 남인데 내 시간 내 돈 써가며 좋아해서 뭐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냉소적인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애초에 ‘남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리고 많은 아이돌과 연예인을 봤지만 나머지는 별 생각이 없었고 그때가 제일 충격이 컸다. 그 후 케이팝 덕질이 아닌 다른 장르의 덕질을 하다가 일시정지의 삶을 살았다(연애 때문에). 전혀 생각도 관심도 없었지만 유구한 트위터리안의 삶으로 친구들의 트위터를 보느라 요새 이런이런 팀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구나. 맞아 걔네 무대 잘 하더라. 그러던 차에 친구가 영업을 시작했다. 제발 제발, 하는 친구에게 나는 ‘아이돌 이제 절대 안 좋아해’ 라는 차가운 반응을 베이스로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친구 하루라도 빨리 입덕할 걸 하고 매일매일 후회해’. 강력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때 그냥 계속 ^^ 이 반응이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매력 있는 팀이지. 그리고 일주일 정도 후 나는 매일매일 후회를 하게 된다. 하루라도 빨리 입덕할 걸. 그때 말할 때 들을 걸…!

출처: 네이버 웹툰

출처: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수능 응원 트윗과 인트로 음악으로 멤버 한 명에 대해 관심은 갖고 있었으나 그렇게 아주 치여버릴줄은 정말 몰랐다. 신곡 뮤직비디오를 보고 당한 덕통사고였다. 고고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던 것은 단번에 무너졌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겼다. 이렇게도 쉽게 무너질 다짐이라니! 역시 감정이란 위대했다. 나는 입덕부정기를 겪지 않는 편이다. 약간 꽂히면 바로 인정하고 간잽1)덕질을 할 지 말 지를 고민하며 가볍게 덕질을 시작하는 시기. 편집자 주을 시작한다. 그래서 더 요상했다. 아예 부정하다가 한순간에 덕후가 되어버린 것. 분명 그때 촬영장에서 느낀 감정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전히 아이돌 덕질 중이기도 하다. 물론 초반에는 인지부조화의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뛰어든 후 그 후로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것엔 그때 느낀 거리감을 뛰어넘는 무엇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내 아이돌을 만나도 여전히 남일 것이지만 표면적인 ‘남’이라는 관계보다 더 큰 것을 나누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서 똑같은 상황을 상상해도 현타를 맞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만 4년째 여전히 케이팝 과몰입녀로 살고 있다. 그 후에도 또 새로운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3

 이번엔 말이 아니라 글로 남겼던 일이다. 뮤지컬은 내게 있어 굉장히 먼 장르였다. 고등학생 때 소극장 뮤지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어 받은 엄청난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문화라곤 인터넷으로 접하는 게 대부분이던 지방미자는 그때까지 뮤지컬은 대극장 작품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게 새로운 인상이었고 그 다음 만난 건 1년 후 좋아하는 아이돌이 뮤지컬을 하게 되며 연뮤갤2)연극/뮤지컬 갤러리의 준말. 편집자 주에 생전 처음 들어가 본 일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분명 똑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데, 읽을 수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알 수 없었다. 십 분정도를 헤롱거리다 도망쳐 나왔다. 당시엔 거의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생각 없이 궁금함에 들어갔다가 어마어마한 진입장벽을 경험하고는 가까이 지낼 일이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선물해준 초대권으로 2인극을 처음 경험하고, 대학로를 매번 지나치는 집 위치에 몇 개의 포스터가 눈에 띄고,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고, 이제는 혼자 찾아가보고, 어느새 연뮤갤의 모든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발견한 블로그의 한마디. ‘난 뮤지컬 덕질할 일은 절대 없을 듯’. 그 글을 다시 봤을 때 이미 나는 대학로의 지박령이 되어 밥 먹을 돈까지 바치며 회전을 돌고3)회전문을 돌다: 연극 또는 뮤지컬을 계속 반복해서 본다. 극장에 입장 할 때 극장에 있는 회전문을 돌리며 입장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편집자 주) 난 후였다.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아마 연뮤갤의 요상한 단어와 뮤지컬의 가격에 대해 알게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썼던 글 같다. 그러게. 저렇게 다짐에 가까운 문장을 써놓고도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나 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셋쇼마루도 같은 오류를 저질렀고, 수많은 사람들의 셋쇼마루 일화가 존재하겠지. 특히나 덕후는 (직접 경험한 것들에 의거하여)함부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도 할 수 있어, 셋쇼마루

너도 할 수 있어, 셋쇼마루

너도 할 수 있어, 셋쇼마루

별별 장르를 다 덕질한 친구들과 종종 얘기하곤 한다. ‘이제 정치인 덕질이랑 e스포츠 덕질까지 하면 진짜 다 하는 거임’. 이제까지 해온 덕질에 대한 자조와 ‘저것만은 할 일 없다’라는 의미가 더해진 말인데, 언제든 준비하고 있다. 누군가가 둘 중에 하나의 덕질을 시작하더라도 놀라지 말기로. 물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하긴 지금도, ‘난 영화처럼 한 번에 끝나는 게 좋고 드라마는 지루해서 안 봐’하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드라마를 파고 있다. 쓰다가 생각했는데 이쯤 되면 거의 셋쇼마루 장인 아닐까? 이제는 저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지만 과거에 쌓았던 어떤 업보가 어떤 덕통사고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오늘도 조심하며 지내는 중이다. 물론 어떤 종류든 덕통사고는 환영이지만… 일화를 더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

여담을 하나 하고 넘어가자면 이제까지 본 모든 연예인 중에 실물이 최고였던 건 차승원이다. 그냥 배우 1로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본 순간 자동으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우라도 장난 아니었다…

글/ 박예은

편집 및 교점/ 이점

   [ + ]

1. 덕질을 할 지 말 지를 고민하며 가볍게 덕질을 시작하는 시기. 편집자 주
2. 연극/뮤지컬 갤러리의 준말. 편집자 주
3. 회전문을 돌다: 연극 또는 뮤지컬을 계속 반복해서 본다. 극장에 입장 할 때 극장에 있는 회전문을 돌리며 입장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