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일까? 정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오늘의 주제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으로 검증된 것이기에 더 직접적이지만 그만큼 표본이 적다는 단점이 있음을 다들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덕질을 하며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온라인에서 시작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먼저 알게 되어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좋아하는 게 같다는 사실은 쉽게 서로를 이어주었고 오히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편하기도 했다. 다만 덕질로 만난 인연이, 덕질이 끝났을 때 어떻게 되느냐는 전부 다른 모양새였다. 진짜 친구처럼 이어지는 사람도 있고 자연스레 멀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람끼리 친해졌다면 전자이고 오직 그것 하나만으로 뭉쳤던 사람은 후자의 전철을 밟았다. 둘 다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뭐 자연스러웠다. 그 안의 관계에서 별로 안 맞는 사람이 분명 있었고 그런 사람은 일찍 관계가 끊어졌다. 계속 덕질을 하며 마주치면 껄끄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일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가장 처음에 물었던 질문이다. ‘한 번 덕후는 영원히 덕후일까?’. 분명 덕후로 만났는데 인연이 이어지는 동안 완전히 머글이 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이 경우가 가장 드물다. 강렬한 감정적 체험 이후 어떻게 다시 일반적인 삶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으나 잠시 쉬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정말 아예 그만둔다(긴 공백기일지도 모르지만).

신기하다. 신기하긴 하지만 신기한 만큼 이들은 소수다. 나 역시 잠시 덕질을 쉬었던 시기가 있었다. 할 만한 게 없어서 짧게 가진 강제 공백기 말고 아예 생각도 안날 정도로 완전한 머글 시기. 새내기 시절이었다. 처음 만난 커다랗고 자유로운 세상에 덕질은 뒷전이 되었고 나는 온전히 내 주위의 현실만 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고 겨울부터 나는 다시 뭔가를 찾았고 결국 찾는 데에 성공해 또 다른 덕질을 시작했다. 결국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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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한 번 덕후 영원한 덕후의 예시다. 최애캐가 바뀌었다는 것 뿐..

 대부분이 사실 이렇다. 한 번 덕후면 영원히 덕후로 산다. 잠깐의 쉼은 있어도 덕질은 이제 삶의 필수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만 먹고 살 수 없듯, 덕후도 그렇다. 그래서 덕후들은 돌고 돈다. 아주 여러 번 목격하고 더 많은 사례를 들었다. 홍대판에서 매 주 보던 언니가 몇 년 후 대학로 극장의 계단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또 그 언니와 같이 보던 친구는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투디판에 빠져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매진된 뮤지컬의 시야제한석 선착순 판매 줄에서 친해졌던 동생을 아이돌 오프라인 현장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아이돌 덕분에 다 꿴 여의도 길을 배우 덕질하며 유용하게 써먹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딱 몇 개만 썼을 뿐이다.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덕후들이 오늘도 여러 판을 돌고 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줄줄이다. 그들은 완전히 옮겨가기도, 계속 걸쳐있기도 한다. 이건 특정한 판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한정적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또한 알면 알수록 괴로움이 커지는 곳 역시 적당하게 즐길 것만 즐기고 빠져나오는 것이 훨씬 이롭다.

결국 돌고 돌며 넓어지는 덕후의 인생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덕후들은 완전히 자기중심적이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엄청나게 긍정적이다. 예전 버디버디 시절 본진을 갈아타는 것은 어마어마한 죄악이었다1)요즘은 버디버디 이야기가 도시전설 급이라고 하던데 사실 트위터보다 더 재미있었음. 누가 갈아타면 얘가 철새2)계절에 따라 이주하는 철새처럼 본진을 옮겨가는 덕후를 비하하는 말. 편집 주.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갈아타기만 해도 욕먹던 그 시절에 겸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챙기는 결과였다. 덕질 대상에 대한 충성, 서로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분위기.

철새팬의 유사어로는 잡덕이 있다. 보통 철새팬은 '철새팬 꺼져라'와 같은 말이 덧붙여진다.

철새팬은 잡덕과 유사한 점도 있다. 다만 팬커뮤니티에서는 ‘철새팬 꺼져라’와 같은 말이 덧붙여지는 등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 주)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의 그들은 마음껏 원하는 걸 골라서 좋아하고 좋아하다가 질리거나 식으면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해나간다. 이 변화 자체와, 그 속의 덕후들을 리스펙한다. 남보다 나에게 돌아온 집중도는 모두에게 긍정적이다. 앞서 덕질을 안하던 시절에 온전히 나의 현실만 보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덕질을 한다는 사실이 현실을 보지 않고 내 삶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덕질은 내게만 집중하는 것 이상으로 감각의 촉수를 뻗어 자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가꾸는 것이다. 이는 머글의 삶보다 더 에너지가 필요한, 가능한 사람들만 가능한 멋진 일이다. 이것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덕후는 남보다 넓은 세계 속에 살면서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다닌다. 판을 확장할 때마다 그들의 세계는 넓어지고, 그렇게 영원히 돌고 돈다. 이 루트에서 탈주한 소수의 사람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남은 이들끼리 행복하게 사는 것이기에 그곳에 신경 쓰지 않고 여기 계속 애정을 쏟겠다. 오늘도 여러 개의 트위터 계정은 저마다 복작복작하다. 영원한 덕후들 파이팅.

글/ 박예은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요즘은 버디버디 이야기가 도시전설 급이라고 하던데 사실 트위터보다 더 재미있었음
2. 계절에 따라 이주하는 철새처럼 본진을 옮겨가는 덕후를 비하하는 말. 편집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