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덕질에 있어서의’ 거리감. 하지만 이는 실제적인 거리감과 같기도 하다. 덕질 대상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판 자체의 분위기가 어마어마하게 바뀌기 때문. 이 얘기도 할 게 많다.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또 중간의 거리도 있는 다양함 탓에 별별 일이 다 있다. 비교군이 많으면 좋겠지만 내가 오프에 발 담가본 게 그닥 많지 않아서 아쉽다. 앞으로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오프’는 공식-비공식적 루트를 모두 포함한다. 허나 눈이 뒤집히는 건 역시 비공식적 루트 아닐까? 나도 처음에 그쪽에서 재미를 보고 미쳤던 기억이 난다. 덕질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비공식적 루트는 사라지거나 접근이 아주 어려워진다. 그게 존재하는 판의 얘기는 길고, 없거나 경험하지 못한 판의 이야기는 짧을 것이다. 그야말로 초밀착 덕후생태보고서. 가까운 거리부터 먼 거리로 이어진다.

 1. 유사연애 맛집! 홍대클공판

지방 미자였던 나는 오랜 덕질을 대부분 넷상으로만 했다. 공방, 팬미팅 이런건 8년간 다섯 번 정도 경험해본. 게다가 전부 공식 오프였으니 비공식의 맛을 몰랐다. 새내기빨이 다 떨어져갈 무렵 어찌어찌 이어진 취향으로 홍대 클공(연의 준말)에 발을 디디게 된다. 거기서 또 덕통사고를 당하고 트위터를 시작했다. 공연만 보고 얌전히 집에 가던 나는 트위터 친목을 넓히다 본 한 트친의 프로필 사진에 충격을 받는다. 밴드맨과 찍은 셀카였다. 이제까지 먼 덕질만 하던 나에게 그건 정말 충격이었다. 심지어 밴드도 페스티벌 팬사인회에서나 가까이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셀카라니!

그때 나에게 밴드는 이제껏 좋아했던 덕질 대상들과 거리가 같은 거의 연예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퇴근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신세계가 열렸다. 함께 얘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그래서 홍대판은 진심으로 유사연애 맛집이었다(유사연애 파지 않는 사람들도 많긴 하다). 심지어 밴드맨들은 레슨을 했고 레슨생들은 정직하게 좋아하는 밴드맨에게 악기를 배우는 사람과 순도 높은 흑심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했다. 유사연애와 망붕이 판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클럽 사운드만큼 날것의 분위기에서, 덕질 중 가장 가까운 오프를 경험했다. 나는 어땠냐고? 노코멘트한다.

이쪽은 사생활 관해서도 자유분방했다. 만나는 사람을 숨길 사람은 숨기고 공개할 사람은 공개하고 전반적으로 자유로웠다.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소속사가 있긴 했으나 스케쥴 관리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편하게 팔 수 있고 동시에 가장 악질적인 망붕이 될 수 있는 홍대판. 지금은 떠난 지 오래여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나, 주말에 다들 홍대에 모여 복작복작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hongdaelive

2. 요상하고 또 요상한 대학로판

그 다음이 연뮤배(지컬우의 준말). 연뮤 덕질은 라이트하게 팠다. 분위기가 어떤지만 보고 깊이 들어가기 전에 접었는데, 개인적으로 겪은 모든 곳 중에 이곳이 가장 이상했다. 그래서 깊이 안 들어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거리 순으로 얘기중이라 아직 대형 아이돌이나 가수는 언급 전인데, 거긴 이상한 사람이 많아도 애초에 머릿수가 많아서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머릿수는 적은데 이상한 사람도 많은… 요상한 곳이다. 잠시 친목을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탈주하고 지금은 실친들에게 영업을 하여 함께 덕질중인데, 이 분위기가 연뮤 배우 덕질 쪽의 요상한 특징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심리적 거리는 아주 먼데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 메이크업과 의상을 갖추고 무대에 서고, 매체를 왔다갔다 하기도 해서 많은 이들이 연예인 느낌이 딱 난다. 그런데? 퇴근길에서 얼굴보고 얘기하고 싸인 받고 셀카 찍고 다 할 수 있다. 다만 대학로1)판 자체를 칭하는 말 퇴근길은 홍대판과 완전히 다르다.

무려 조선일보에서 연뮤배 퇴근길 취재한 기사도 있다

조선일보에서 연뮤배 퇴근길 취재한 기사도 있다

홍대의 퇴근길은 밴드가 공연을 하고 쉬는 타이밍에 잠시 팬들을 보거나 아예 퇴근할 때 출구에서 팬들이 우르르 모여 좀 떠들고 사진을 찍고 바이바이 하는 비공식적인 자리인데 여긴 거의 공식적이다. 퇴근길 장소를 공지하고 줄 서서 한명씩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관객 수가 많은 극에 길게 대화하는 배우들은 과하게 늦게 끝날 때도 있어 종종 너무하다는 말이 나온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과하게 격식차리며 눈치 주는 게 심한 것이다. 오빠라고 눈치 보여서 못하고 배우님이라고 해야 하고, 각 배우마다 팬카페의 임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력이 있다. 그 중 카페를 만든 사람을 ‘클짱’이라고 부르는데… 올드한 이름에서부터 이상한 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과하게 퇴근길의 진행에서 예민한 동시에 심지어 망붕도 존재한다. 배우마다 다르지만 유사연애를 좀 덜 파는 편이고 사생활 면에서도 (겉으로는) 지켜줘야 한다는 관념이 투철하여 연애나 결혼 면에서 크게 영향이 없다. 뒤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그래 보인다. 다만 웃긴 건 유부남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어도 망붕이 붙는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다. 인지부조화 같다. 심리적인 거리는 멀지만 물리적으로는 눈앞에 있으니 거기서 발생하는 괴리감. 안 파는 유사연애를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망붕까지는 심하지 않나? 여러모로 신기한 곳이다. 모든 것들이 가장 특이하다.

3.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 망돌판

그 다음 어쩌다 망돌(한 아이의 준말) 간잽을 하게 된 적이 있다. 여긴 오프를 제대로 뛰기도 전에 소소한 병크가 터져 빠르게 발을 뺐는데, 고인물의 견제와 멤버들과의 친목… 시작도 전에 ‘망돌판이란 이런 것이군’ 하고 알 수 있었다. 인원이 전체적으로 적고, 그래서 거리가 나름대로 가까운데 아이돌의 외모와 스타일링으로 유사연애를 팔기 때문에 훨씬 더 눈이 돌기 좋다. 더 재미있는 얘기도 많지만 직접 겪은 게 아니므로 패스한다. 겪어봤으면 분량이 가장 길었을지도 모르겠다.

4. 유사연애 디쉬와 알페스 반찬의 대형 아이돌

eunhon

그리고 대망의 대형아이돌. 거리는 아주 멀지만 소통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기에 씨버러버(cyber lover) 유사연애가 많다. 피해자도 다수. 이런 경우는 디스패치가 걸리면 우수수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다2)여기선 헤비오프나 사생을 예외로 둔다. 애써서 유사연애를 팔지 않는다고 해도 자연스레 그쪽 소비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유사연애가 없어 보인다면 유사연애편에서 말했듯 다들 부정하고 있는 이유가 크다. 그리고 유사연애와 비슷한 맥락으로 거리감을 캐해석으로 메꾸는 알페스3)Real Person Slash 의 앞발음만 딴 단어로, 실존인물을 엮어먹는… 이건 망붕에 가까운 개념이다. 편집자 주도 많다(너무나 재미있는 주제지만 그만큼 위험하여 건드리지 못함). 이들은 이 먼 거리의 공백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채워 덕질을 한다. 사실 거리감이 먼 상대에 대해서는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 졸라 멀어서 대부분은 덕후들끼리 우당탕탕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sns 안하고 공백기가 겁나 긴 남솔. 일 년에 글 하나. 그나마 말은 통하니 다행이다.

다음은 해외 덕질. 소통을 한다 해도 언어의 장벽이 있고, 배움으로 언어를 해결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미묘한 벽 때문에 엄청난 유대감을 느끼기는 사실 어렵다. 그걸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도저히 다른 세계 사람 같은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정말 다른 세계 사람, 이미 고인이신 분 덕질이 있다. 이것도 해봤다… 여기는 존재하는 떡밥이 한정적이고 새로 생기는 게 없기 때문에 떡밥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소소하고 아련하게 굴러가기는 한다.

ㅠ

자, 이렇게 가까운 것부터 먼 것까지 쭉 한번 훑고 왔다. 거리가 가까우면 그만큼 괴로움도 크다. 과몰입을 저지할 방지턱이 그만큼 사라지는 것이니까. 덕후의 무한한 애정으로 뭔가 더욱 가까워지고 싶지만 덕후와 최애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 차라리 어느정도의 거리가 있는게 그 거리를 잊을 수 있어 나을지도 모른다. 홍대판에서 저런 이유로 땅굴파는 덕후들이 오지게 많았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러한 이유로 슬퍼할 사람은 사라진다.

덕질의 과몰입이 위험하다는 건 온 덕후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현생을 갈고, 내가 없어지는 단계. 실제적인 거리가 어떻든 적당한 거리감만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너는 너 나는 나. 과몰입이 심한 덕후에게 ‘최애와 나는 남이다’를 삼창하라고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항상 내게 가까움과 멂에 대한 기준은 홍대판과 대형 아이돌판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다른 곳들은 또 어떨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스스로 선을 그어 건강한 덕질을 했으면 좋겠다. 늘 마지막은 득이 되는 덕질 하자 캠페인 같지만, 그게 옳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내가 주가 되는 덕질을 하자.

글/ 박예은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판 자체를 칭하는 말
2. 여기선 헤비오프나 사생을 예외로 둔다
3. Real Person Slash 의 앞발음만 딴 단어로, 실존인물을 엮어먹는… 이건 망붕에 가까운 개념이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