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년, 반올림하면 20년의 시간동안 덕질을 했다. 많은 장르를 지나왔지만 케이국 국민이기에 자연스럽게 시작은 케이팝이었다. 대상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케이팝 덕질은 진행중이다.

파이가 커다랗기에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았고, 매우 양질의 콘텐츠들이 있었다. 어디어디라고 이름을 까진 못하지만 특히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채널은 ‘케이팝블로그’들이었다. 그 곳들은 음지인지 양지인지 모를 경계에서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모두 아주 유명하고 시끄러웠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고 그곳의 글을 읽은 덕분에 나는 내 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케이팝 덕질을 어느정도 정리하게 되었다. 웃기게도 거기엔 고통이 따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들을 인정하는, 자기객관화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약간의 고통. 내게 케이팝블로그들이 그것을 선사했다.

나는 원래 덕질을 나름 객관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맹목과 부정(不定)의 사항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내가 덮어두었던 것들을 짚어주었다. 물론 여전히 깊은 곳에는 남아있겠지만, 이제는 적어도 그게 ‘헛된’ 것임을 안다. 과몰입을 해도 안전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었다. 그러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건 모든 장르의 덕질을 전보다 훨씬 재미있게 만들어줬다.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재미.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덕질. 심지어 대체 단어도 없다. 수많은 변형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기묘한 파생어. 언어가 지나온 길보다 더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바로 그 행동양식과 감정인 덕질은 사람, 팀, 장르, 작품을 사랑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이런 것들을 사랑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축복이다. 나는 한없이 덕질을 예찬한다. 머글 메롱.

덕질 무시하는 사람들 봐라봐

덕후 마음에 깊게 와닿는 타블로의 말 (이미지 출처 – 마이크임팩트 청춘아레나

세상을 덕질을 이해하는 자와 이해하지 못하는 자로 나뉜다.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권력1)현실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더 컸다면, 이제는 반대다. 물론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는 일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제 모두가 ‘덕후’의 대단함을 안다. 그들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해까지는 못해도, 무시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서히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얼마나 고생하였는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무지의 말들은 너무나 쉬웠다. 상처인줄도 모르고 상처 내던 수많은 머글들. 악의 없는 몰이해의 산물에 화내기도 민망하던 기억들. 허나 이제 대외적으로 덕후들은 엄청난 열정의 대단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깊이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신의 판에서 덕질을 한다. 나는 내가 직접 겪고 보고 들은 모든 덕질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바탕으로 이번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러나 거창하게 이 거대한 문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함은 아니다. 이것은 다만 내가 겪은 장르의 시간과 사건 속에서 느낀, ‘나의 덕질’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구는 자신의 덕질을 생각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될 것이다.

KBS2TV 19971230 가요대상 무대 중 JYP

멋진 무대와 노래의 1997JYP(이미지 출처 – KBS2TV 19971230 가요대상 무대 중)

아주 어릴 때는 박진영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무대와 노래가 멋있었지만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보는 친척어른들의 질문에는 항상 귓속말로 대답하곤 했다. 왜 부끄러워했는지 희미하게 기억나는 바로는 아마 얼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때...

애교 가득해보이는 2019JYP (이미지 출처 – JTBC <아는 형님> 중)

어쨌든 차례로 god와 배우 김재원, 보아를 좋아했다. 여기까지 ‘좋아’했고, 생애 첫 덕통사고는 그 다음이었다. 동방신기. 그 십 몇년 전의 상황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밥을 먹고 있었고, 데뷔 무대 중 하나였는지 엠씨가 ‘멤버들이 전부 고등학생’이라는 소개멘트를 했다. 그 말이 대체 왜 나의 시선을 잡아챘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 무대로 나는 입덕이라는 것을 했다. 당시 당연히 그 단어는 없었고, 아마 예전의 나는 그 순간을 설명할 때 ‘좋아하기 시작했다’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위의 좋아하다와 아래의 좋아하다가 전혀 다른 의미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멤버 전원이 고등학생이던 시절엔 이런 것도 있었다

멤버 전원이 고등학생이던 시절의 유물

 

그저 무시의 의미인 ‘빠순이’라는 단어만 존재하던 때로부터 – 지금의 ‘덕후’라고 무시하는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 15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판 자체도, 나도. 특히 이제 우리는 은어일지라도 다양한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절절하게 수식어를 늘어놓지 않고도 덕질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했던 언어가 풍족함을 향해 가는 시간동안 나는 수많은 대상을 팠다. 라이트하게 파서 가끔셀 때 잊곤 하는 것부터 내 전부를 갈아 넣어 현생이 없던 것까지 참 별 일이 많았다. 무슨 판을 지나왔는지는 앞으로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있던 일과 느낀 점들 중에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골랐다. 당신이 덕질의 세계에 있어 어떤 사람이든 내 이야기는 재미있을 것이다. 1편부터 세게 시작한다. ‘유사연애’. 많은 기대를 부탁드린다.

글/ 박예은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현실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