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북일보에도 발행되었던 글입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이면 괜히 우울해졌다. 창 밖으로 막힌 도로를 내다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방금까지 있었던 술자리에서 찍은 셀카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서울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서울에 간다. 전주에서 서울으로 올라갈 때면 한없이 기뻤던 기분은 전주로 돌아가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서울에 올라가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방에 사는 나를 그리워하고 나의 존재를 반가워하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나를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서울에 올라갈 때면 전주에 살고, 지방 대학교에 다니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권화담이 아닌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를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주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유리될 때 울적해졌다. 서울에서 미스핏츠 회의를 하거나, 택견 배틀 매니저로 활동하거나, 무형문화재를 취재하는 일은 모두 전주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전주에서의 나는 현실이지만 서울에서의 나는 꿈 속의 존재였다. 그 곳에 있을 때면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오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전주에서 날 찾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주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전주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주에서 활동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 같은 이들도 누군가는 시작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을 결국 스스로가 하게된 경우가 많았다. 개중에는 영원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은 느리다. 서울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고, 그 형태를 서울에서 빌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흔히 영남을 보수의 성지로 말하지만 어느 지방이든 변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지방은 고정되어있었던 것을 선호한다. 새로운 일을 하기에 나는 서툴었고 고정된 도시는 나에게 나는 하찮다고 말했다.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건가.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항상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했고 그리워했다. 동시에 그 사람들과 있으면 즐겁지만 별천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하루는 여전히 이어지지만 기차나 버스를 통해 나의 하루는 거기에서 끊기기 때문이었다. 전주로 돌아가면 나는 서툰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하루는 전주로 돌아가는 무궁화호 기차에서 지인과 카톡을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카톡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인은 오늘 하루도 현실이었다고 답을 해주었다. 맞다. 오늘도 현실이었지. 내가 전주에 조심히 내려가길 인사하는 사람들도, 전주에서 나와 여러가지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는 현실이었지. 나는 이 곳에서 서툴기도 하고 저 곳에서는 신이 나서 어리광을 피우기도 한다. 내 생업이 존재하는 곳과 조금 멀어 가끔 다른 세상 일 같지만 그렇다고 정말 다른 세상은 아니었다. 두 일은 별개의 일이 아니라 모두 나의 현실이었다. 전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는 덜컹거려 창문에 이마를 기대면 머리를 부딪히기 쉬웠다. 아팠다. 현실이다.

글/ 이점

편집/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