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사람. 흔히 말하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던 사람. 누군가에게 나의 특성에 대해 좀 더 깊게 소개하고자 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나의 ‘미스핏’ 상징이기도 했다. 다들 고등학교, 중학교,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초등학교 이야기까지 즐겁게 나눌 때,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진정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안 해본 생활이었으니까. 이런 순간 나의 ‘미스핏’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학내 자치언론 생활을 하며 퀴어 페미니즘을 조금씩 접하면서, 자, 이제 이렇게 내가 ‘소수자’라는 단어를 잘 이해하고 있다! 라고 뽐내는 기분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미스핏츠의 일원이 된지 삼 년째, 다양한 범주의, 하나의 이미지로 묶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음을 점점 더 뼈저리게 깨달아가고 있다. 퀴어, 노동자, 대학원생, 여성, 성소수자, 비건, 그 무엇으로도 대표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그랬듯이 혹은 내 친구들이 그랬듯이, 너무나 다양한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내가 ‘-한 사람들은 ~하지 않을까?’하던 이미지들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어 그런 사람들을 전혀 포괄하지 못했다.

행사에 참여하며 처음 먹어보았던 비건 쿠키.

행사에 참여하며 처음 먹어보았던 비건 쿠키.

대구퀴어축제에서 ‘우와, 미스핏츠다!’라며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었다. 분명 질문을 던지며 나는 어느 정도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을 거다. 이 사람들은 이래서 퀴어축제에 왔을 것이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퀴어임을 밝히는 게 꺼려질 거라고.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다양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왔다. “퀴어란 게 뭔가요?” “누구나 소수성을 갖고 있지 않나요?” 마냥 밖으로만 향하려던 질문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고정된 질문을 던졌음에도 ‘퀴어’라는 단어 안에 갇히지 않고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홈스쿨러’라는 말에 매몰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참여한 퀴어문화축제였던,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의 사진

처음으로 참여한 퀴어문화축제였던,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의 사진

분명히 그런 순간은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하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혼자서 공부했으면, 자립심이 강하겠네요?” “외로웠겠어요.” “사회성을 키우기가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 질문에 나는 아니오, 하고 단호하게 답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저울질하는 사이 어느새 그것은 나의 특성이자 개성이 되어 있었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말은 지워지고, 누군가 영어로 만들어낸 단어, 홈스쿨러라는 정의가 나를 지배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질문을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 또한 그러한 태도를 취했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질문을 해 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회성을 키우는 게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인간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곁에 머물러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독립심이 강하지도 않았다. 그 이전에 나는 영화와 소설을 좋아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옮기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할 수많은 정보로 이 책을 꽉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퀴어문화축제 등의 행사에서 취재진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들이 ‘당신은 성소수자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질문한다는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나도 이렇게 질문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마치 이미 답을 향하고 있는 듯한 질문에 나는 정답을 말하려고 했었고, 그런 노력은 결국 편견을 조성할 뿐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비가 많이 내렸던 2017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정말로 정말로 비가 많이 내렸던 2017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미스핏츠와 함께한 3년은 나에게 ‘질문하기 전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아이러니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인터뷰이들은 언제나 내가 그려냈던 대답과는 다른 이야기를 주었다. 한정되지 않고, 쉽게 정리되지 않으면서 조금이나마 한 사람을 담아내는 그런 이야기를. 더 이상 정답을 주거나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속에 나는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 ‘비건’ 대신,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글, 편집, 사진/ 린

미스핏츠 신간 『청년초상』 표지 이미지

미스핏츠 신간 『청년초상』 표지 이미지

어느덧 태어난지 5년이 지난 미스핏츠의 새 책,
『청년초상』구매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