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유사연애 안 해!’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과거의 다짐이 한낱 자기부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한다. 유사연애가 짱이야.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지 (이미지 출처 – 애니메이션 <이누야사> 중)

나는 1n년 동안 덕질을 했다. 아주 가끔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건 짧았고,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 긴 시간의 덕질동안 가장 재미있던 건 단연 유사연애다. 물론 이전까지는 죽어도 그게 유사연애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머글이 빠순이를 천민취급하는 이유가 바로 유사연애이니 기를 쓰고 부정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유사연애를 잘 먹고, 그건 아주 맛있다.

유사연애란 덕질대상을 연애 감정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를 미리 짚고 가자면 유사연애와 망붕은 구분해야한다. 둘의 카테고리가 전혀 다르지는 않아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망붕은 유사연애보다 좀 더 노답인 의미확장형이다. 망상분자라는 단어가 줄어들고 발음의 편의에 따라 바뀌어 형성된 단어인 망붕은 말 그대로 덕질대상에 망상을 가지고 있는 부류를 말한다. 주로 대상과 본인의 관계에 대한 망상이다. 가까운 거리 탓에 본격적인 망붕도 있고 말 못하게 허황된1)개인적으로 이건 정상범주를 벗어났다고 생각 망붕도 존재한다.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망붕은 대부분 유사연애로 이루어지지만, 유사연애로 덕질하는 이들이 모두 망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먼저 구별하는 이유는 앞으로 나올 유사연애 이야기에 망붕의 정도가 낮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플러스 이것은 90년대 생인 내가 보고 겪은 특정 세대의 이야기이고 당연히 아이돌을 비롯 유사연애 유통이 가능하고 활발히 매매되는 장르만 해당한다. 수많은 이야깃거리 중 오늘은 오직 유사연애의 ‘재미’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그게 가장 재미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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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약한 정도의 망상짤 중 하나

현실에서 우리는 연애-결혼의 형식을 너무나 오래 강요받았다. 90년대 생들의 세상은 지각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자라왔다. 어떤 그림이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 무조건 사귀는 사이로 보는 이성애 중독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가 다양한 소재로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기승전연애로 끝나던 나라. 여기서 우리는 로맨스의 판타지를 주입받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은 혼자 완전해지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자신을 완성해줄 반쪽을 찾아 헤매는 데 힘썼다. 하지만 이미 판타지가 주입된 뇌가 현실에서 만족을 얻기란 힘들었다. 그런 눈앞에 -미디어를 통해 실제 거리는 먼-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는 이들이 나타나자 우리 모두는 너무 쉽게 함락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유사연애를 샀다. 실제 연애에 수반하는 귀찮은 것도 필요 없었다. 모두에게 웃어주는 것이라 해도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면 그건 곧 나를 보고 웃는 게 되었고 그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여럿이 모인 곳에서 달콤한 말을 하고, 일대일이 아님을 똑똑히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가 말을 거는 대상은 ‘하나’였고2)한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무리였지만 내가 그 안에 속해있었기에 그건 너무나 달콤했다. 그게 소수가 계를 타면 언짢았던 이유였다. 전에는 이런 감정이 당혹스러웠다. 왜 부러움을 넘어 짜증이 나지? 하지만 이젠 안다. 공공재인 사람이 하는 행동은 혼자 알아서 소비할 수 있었지만, 특정한 누군가 생기는 이상 나의 자유로운 소비는 막힌다. 이 ‘소비’의 소유욕이 동하는 이유는, 연애감정이기 때문이다. 맞다. 그렇게도 인정하기 싫었던 유사연애였다.

아주 예전부터 머글이 덕후를 엿먹이는 고정멘트로

어른 버전

‘그런다고 걔네가 밥 먹여 주냐.’

동년배 버전

 ‘네가 아무리 그래도 걔는 너 몰라’

가 있다.

놀랍게도 이 두 가지는 덕후들에게 어떤 데미지도 입히지 못한다. 다만 거기서 조금만 더 구체화된 문장은 치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하다. ‘니가 써서 번 돈 여친한테 쓸걸?’ 류의 공격이 그러하다. 몰라서가 아니다.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이기에 더 치명적이다. 덕후들이, 자신의 덕질 대상에 있어 자기가 아는 게 단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를까? 다 안다3)사생, 친목 등 예외 배제. 겉으로는 끊임없이 서로뿐이라고 하하호호 해도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다 안다. 이게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 유대감을 깨뜨리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이다. 물론 그걸 덕후 쪽에서 깨는 경우는 잘 없다. 조심하지 않았거나, 의도치 않게 걸렸거나 등의 이유로 사고는 늘 상대편에서 일어난다. 유사연애도 덕질 대상에 대한 세계관 구축의 한 방법이기 때문에 진짜 연애가 드러나는 순간 쌓아온 것들은 와장창 깨진다. 이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야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와 같은 맹목의 깊이는 절대 다시 가질 수 없다. 겉으로는 예전과 똑같다고 해도 서로 속으로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다른 측면에서의 교감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연애의 결이 아닌 인간 대 인간, 작품 등의 덕질로. 하지만 분명한 건, 재미없다. 유사연애보다 재미있는 건 없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전부 까발림 당해놓고도 덮어놓고 흐린 눈하며 다시 유사연애를 팔고, 또 같이 흐린 눈으로 그걸 사는 덕후도 이러한 사실 때문에 그렇다. 다른 사람(머글)의 눈에 그게 돈 사람들처럼 보일지언정 그 재미와 강렬함을 한번 맛본 이상 다른 것으로는 만족하기 힘들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연애’의 강박이 덜해지고 옅어지는 시대에 성장한 미래의 덕후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들의 덕질 비중은 어떻게 형성될까. 만약 그때도 유사연애가 1군이라면 정말 흥미로울 듯.

집중적으로 하나에 버닝하지 않는 이상 나는 보통 한 번에 세 장르 정도의 덕질을 한다. 꽂히면 기존 장르의 소식도 모를 정도로 하나만 파기도 한다. 미자4)미성년자의 줄임말 때 아주 딥하게 판 장르가 있는데, 남자 솔로였고 그는 유사연애 팔이의 장인이었다5)주어는 보다보면 알 수 있음. 서사도 어마어마하고 창작물도 고퀄인데다가 유사연애까지 팔았다. 동안인 외모 덕에 나이도 상관없었다. 그 덕질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지방미자였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무 상관없을 정도였다. 존재 자체가 너무 덕질 최적형 옵션이었기에 당시 나는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어려도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기에 ‘이럴 수가 있나? 뭔가 불안한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면 다같이 모르는 것이고 모르면 상관없다며 신경을 껐다. 그때 나는 내가 그와 결혼할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본격적인 망붕이 아니라 언젠가 달나라에 가서 토끼를 만나야지 정도의 허황되고 깜찍한 희망사항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사정상 강제로 덕질을 쉬고 있을 때 핵폭탄 급 사건이 터졌다.

이혼소송 기사였다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도 아닌 이혼6)게다가 처음 터졌을 땐 와전되어 자식도 둘 있다고 했음. 와우. 당시 심경은 참담했고, 유사연애로 단단히 묶여있던 팬덤은 처참했다. 탈주와 혼란의 결정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얘기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꼽는다. 사실 나는 그때 팬덤의 소용돌이 속에 있지는 않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위의 덕후들 몇명과만 소통했고 사실 그래서 아직까지 그의 덕후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때 분열의 현장에 있었다면 분명 감정적으로 휩쓸렸을 것이다. 정말 아예 탈덕을 했을지도 모른다7)다만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자료를 모아놓은 외장하드 폴더를 아예 지워버렸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회중. 원래 공백기가 겁나 긴 사람이었기에 나는 내 삶을 사느라 좀 멀어져있었고 그로부터 2년 후 이번에는 진짜 결혼이 떴다ㅋㅋㅋㅋ. 당시 트잉여이던 나는 수업시간 중 새로고침을 하다가 뜻밖의 충격을 받았고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짐을 싸 탈주했다. 그리고 같은 덕후 친구를 만나 애매한 한탄의 자리를 가졌다. 축하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나 아픈 그런… 그 친구 역시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진심으로 나와 어쩐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지만(이게 망붕과의 차이), 남의 남자가 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헛헛했다. 그나마… 결혼 전에 이혼을 이미 겪어서 충격이 덜했다. 겁나 웃기다. 과거의 결혼과 이혼을 소송으로 알게 되어 예방주사를 맞고 덕분에 진짜 결혼(재혼)은 대강 축하 속에 넘어간 사실이. 물론 그 사이 그가 덕후들의 마음을 잘 추슬러준 덕이지만, 어쨌든 거기서 시간이 더 지나 드디어 그가 컴백을 했다. 여자팬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여전히 파이는 컸지만 정말 예전과 다르게 남자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나는 여전히 덕질을 하긴 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놀랍게도!

NO JAM. . . . . . .

NO JAM. . . . . . .

난리통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팬덤과 그의 관계는 훨씬 더 끈끈하고 깊어지긴 했으나 전과 같은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못했다. 음악과 공연에서 느껴지는 충만함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기가 태어나 그가 새로운 세계에 눈 뜨는 게 보이고 그 확장은 너무나 반갑고 감정은 숭고하기까지 했지만, 재미는 없었다. 세상에. 심지어 나는 아기 영상을 본 적도 없다. 새언니(…)도 예뻐서 좋고, 아기도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거기까지 덕질할 마음은 없다. 마음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분명 그것 또한 그(덕질 대상)의 세계이지만 냉정하게도 나는 그랬다. 덕심이 식은 건 아니다. 굳이 내가, 거기까지? 그뿐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산 유사연애와 그 대단함에 대해.

다행히 이제까지 내가 파던 ‘아이돌’의 열애설이 직접적으로 터진 적은 없다. 터졌지만 최애는 아니라거나, 증거 없이 부인하고 흐지부지 흐린 눈 하거나 그 정도였다. 만약 제대로 터져서 공개연애 하는 날이 온다면 팬 기만이든 아니는 나는 탈덕 할 것이다. 물론 최애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각 최애마다 덕질의 양상도 다르긴 하지만 아마 대부분 탈덕이 예상된다. 누구는 내가 해놓은 캐릭터 구축이 망가져 전처럼 이입할 수 없어 탈덕할 것이고, 앞과 다르게 유사연애로 파고 있는 멤버의 연애설이 터지면 말해 뭐해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울면서 탈덕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의 내 연애와 전혀 관련 없다. 나는 애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유사연애를 소비한다. 그 점에서 진짜 연애와는 다르고 더욱 재미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못 만나서 웅앵은 머글의 무식한 논리일 뿐이다.

덕질이 어떤 거리감을 가지고 있든 유사연애는 재미있다. 가장 재미있고 그래서 가장 위험하다. 한국과 달리 외국 팬들은 남자여자 연예인을 가상으로 엮어 오히려 커플로 미는 망붕이 많던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어 신기할 따름. 어쨌든 유사연애는 정말 재미있고 대부분의 덕질 대상들 역시 그걸 알아서 유사연애를 판다. 특히 아이돌. 암묵적으로 판 내부의 모든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 인정 하든 안 하든 그건 개인 문제다. 그래서 아이돌 열애설에 분노하는 팬들을 향한 머글의 일침이 쓸데없는 것이다. ‘그 나이대의 애들이 연애 할 수도 있지 어쩌구’ 이 판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정보도 없고 알 의지도 없으면서 빠수니 패는 머글이 제일 싫다. 쟤가 팔고 내가 샀는데 불량품이라 욕하는 건데요. 물론 머글은 평생 이해 못하겠지만.

덕질이 어떤 갈래든 유사연애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꽤 어렵다. 덕후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 머글에게 맞아 왔고, 그래서 애써 아닌 척하다가 졸지에 자기부정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고고한 척 덕질 대상의 본업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척 더욱 오버하며 부정했지만 다 지나고 감정을 내려놓고 보니 보였다. 나는 계속 유사연애를 소비해왔다. 그건 정말 재미있다. 어느 방향이든 본인의 소비가 어떤 모습인지 인정하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한 방향으로 덕질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짜피 할 덕질, 돌더라도 모두가 좀 건강하게 돌았으면 한다. 참 많은 것을 잃게 할 수도 얻게 할 수도 있는 게 덕질이고, 다들 잃기보단 얻기를 바라므로!

글/ 박예은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개인적으로 이건 정상범주를 벗어났다고 생각
2. 한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무리였지만
3. 사생, 친목 등 예외 배제
4. 미성년자의 줄임말
5. 주어는 보다보면 알 수 있음
6. 게다가 처음 터졌을 땐 와전되어 자식도 둘 있다고 했음
7. 다만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자료를 모아놓은 외장하드 폴더를 아예 지워버렸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회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