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았다. 싱가포르를 이어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서울핑크닷’ 연속강연회, 한국퀴어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들이 5월 21일부터 6월 9일까지 진행되었다. 성소수자 인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서울시 한복판에서 성소수자 축제가 열린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크고, 그러한 행사가 2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주변을 둘러 보자면, 이번 축제는 유난히 참여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스폰서 기업 중 하나였던 ‘블루드’와 연관된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 결과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블루드와의 계약을 해지하였으나,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와 입장 발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블루드 베이비’가 뭐기에?

여기서 이번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한 독자를 위해 ‘블루드’와 ‘블루드 베이비’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블루드’는 게이 채팅앱으로, 홍콩에 설립된 법인 회사이다.

'블루드' 웹 사이트의 메인화면

‘블루드’ 웹 사이트의 메인화면

 

‘블루드’의 창립자인 겅 러는 동성애자이고, 아이를 원했지만 중국에서 대리모가 불법이었기에 캘리포니아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낳았다. 이후 그는 ‘블루드 베이비’라는 동성애자를 위한 해외 원정 대리모 출산 서비스를 출시했다. 블루드의 설명에 따르면 블루드 베이비는 블루드의 자회사라고 한다. 이러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면에 떠오르면서, 조직위 역시도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블루드와 논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블루드는 “블루드 베이비는 게이 뿐만 아니라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들을 위해 관련된 법규가 마련되어 있고 해당 분야에서 선진적인 의료 기관들이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관련 법규 및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조직위는 1차 입장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대리모와 관련된 복잡한 맥락에 대한 논의나 담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조직위가 어떠한 합의된 입장을 마련할 수 없다”고 밝혔다1)추후 논란이 이어지자 조직위는 여성 단체에 자문을 구한 후 입장문을 쓴 것이며, 대리모 산업에 대한 부정적 입장만을 피력하면 아직까지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상황에서 대리모 그 자체가 악마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을 얻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이라고 밝혔다. 그 후 논란이 시작되었다.

조직위에서 낸 1차 입장문 전문

조직위에서 낸 1차 입장문 전문

대리모를 둘러싼 논쟁

대리모는 한국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불법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난임 부부가 대리모와 계약을 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20대 초반에 직장암 선고 등으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제 아이를 너무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고 어려움을 알리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법적인 측면에서 대리모 계약은 불법이다. 몇몇 국가에서는 합법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가장 주요한 반대 의견은 결국 부유한 커플의 ‘주문’을 받아 취약계층 여성의 자궁을 착취하는 것이 대리모 관계라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건강에 커다란 부담을 준다는 점, 따라서 대리모 계약에서 필연적으로 여성은 자신의 자궁을 담보로 하여 돈을 받게 된다는 부분에서 결국 대리모 산업은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블루드 베이비’의 경우 부유한 커플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있는 제3세계 여성들과 대리모 계약을 맺게 한다는 점에서, ‘임신 출산의 외주화’라는 논쟁거리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 대해 조직위가 보인 입장은 중립에 가까웠다. 비록 대리모가 아니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여성 착취를 배제할 수 없는 이슈에서 조직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은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해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 단체들까지도 비판 성명을 냈다. 여성주의 잡지 <BOSHU>에서는 아예 참여를 철회하기도 했다.

에서 낸 부스 참가 철회 입장문

에서 낸 부스 참가 철회 입장문

“근본적으로 대리모 사업은 여성의 몸을 착취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산업이며, 따라서 해당 주장에는 명확한 어폐가 존재한다. 모든 형태의 대리모 산업은 여성의 신체를 필요로 한다. 조직위는 대리모 사업과 관련하여 여성 단체에 자문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업 논의에서 사아느이 본질과 복합성을 다루지 않았다. (중략) 현재 대리모 산업을 하고 있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해당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판단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대리모 사업이 엄연히 여성의 몸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도구로 취급하는 일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여대 퀴어 연합에서 작성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여성인권의식 비판 성명서 일부

이렇게 비판이 잇따르자, 조직위는 추가적인 논의를 거친 끝에 “대리모 문제에 대해 기계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며,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여 착취하는 형태의 대리모 사업에 반대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1차 입장문과 같이 쓴 것은) 저희가 미처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을 존중하는 차원이었습니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2차 입장문을 발표했다.

조직위에서 발표한 추가 입장문 전문

조직위에서 발표한 추가 입장문 전문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

나 역시도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면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성소수자 인권의 축제라고 불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오히려 여성 인권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수동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시에 대리모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학 기술은 임신과 출산을 다른 여성에게 맡길 수 있을 만큼 발전했지만, 그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인권에 부합하는가? 결국 누군가가 착취당하는 상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 대리모는 여성들이 ‘어머니-태아 연결’의 절대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2차 입장문에서 ‘1차 입장문을 쓰게 된 경위’를 밝히며 설명하였듯이, 대리모 사업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대리모 당사자를 음지로 숨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대리모 사업은 경제적 계층을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임신과 출산의 노동을 전가하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조직위 역시도 2차 입장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나로 하여금 다시 서울퀴어문화축제로 발걸음을 향하게 했던 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이 축제가 많은 성소수자에게 희망과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도 퀴어문화축제를 구경하면서부터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고, 막연히 ‘이성애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본인 역시도 단순히 정의될 수 없는 스펙트럼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성소수자는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고 정의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 다채로운 모습의 사람임을 보여준 것은 서울퀴어문화축제였다.

시청을 코 앞에 두고 퀴어가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늘 감격스러웠다.

시청을 코 앞에 두고 퀴어가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늘 감격스러웠다.

스무 번째 무지갯빛 길은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주최측 추산 6만 명 이상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그래서인지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의 물결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부스를 구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조계종 부스에서 연꽃이 그려진 부채를 나누어 주던 것, 찬송가를 부르는 혐오세력 옆에서 ‘혐오는 예수의 방법이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던 시민 등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축제의 일부가 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생 인생 망치는 동성애'라는 혐오 팻말 옆에 '혐오는 예수의 방법이 아니다'라는 피켓이 있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학생 인생 망치는 동성애’라는 혐오 팻말 옆에 ‘혐오는 예수의 방법이 아니다’라는 피켓이 있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무성애 엄브렐라(에이엄이라고도 함, 무성애라는 스펙트럼에 들어가는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는 말)을 파란 하늘 아래 활짝 펼친 모습

무성애 엄브렐라(에이엄이라고도 함, 무성애라는 스펙트럼에 들어가는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는 말)을 파란 하늘 아래 활짝 펼친 모습

4시부터 시작된 퀴어퍼레이드는 역대 최장 루트를 따라 모두 함께 걸었는데,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옆을 지나가며 무지개 깃발을 흔들던 순간은 찬란했다. 곳곳에 서 있던 시민들이 퍼레이드를 구경하다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던 어린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사람도 보였다. 성소수자는 미디어 속이나 신문 기사에서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 이렇게, 서울 한복판을 뛰어다니는 ‘그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있을까?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8대의 트럭 중 하나인 '러쉬'의 트럭, 무지개무지개하다!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8대의 트럭 중 하나인 ‘러쉬’의 트럭, 무지개무지개하다!

행렬이 광화문을 지나던 바로 그 순간!

행렬이 광화문을 지나던 바로 그 순간!

4.5km를 넘어가던 퍼레이드 거리 탓에 중도 포기를 예상했지만, 나는 에디터 싱두와 함께 끝까지 모두와 완주했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지만 마지막으로 서울광장에 다시 들어가며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하던 그 때, 꿈 같은 무지갯빛 길을 걸어 마음이 벅차 올랐다.

앞에서 언급한 여대 퀴어 연합이 성명서에서 지적했듯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모두를 위한 평등”에 이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번 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면서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중에도 소수에 속하는 스펙트럼은 쉽게 간과된다는 비판 역시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평등을 향한 도약’이라는 이번 축제의 슬로건처럼, 평등으로 가는 길에는 누구도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라는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처럼, 아직 그리고 언제나 고민해야 할 지점도 생각해야 할 부분도 놓치지 않으면서, 우리는 계속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린

사진/ 린, 싱두

 

   [ + ]

1. 추후 논란이 이어지자 조직위는 여성 단체에 자문을 구한 후 입장문을 쓴 것이며, 대리모 산업에 대한 부정적 입장만을 피력하면 아직까지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상황에서 대리모 그 자체가 악마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을 얻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