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서는 ‘전주퀴어문화축제’를 ‘퀴어문화축제’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queer on jeonju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2019년의 첫 퀴어문화축제가 내 지역에서 열리고 심지어 서울퀴어문화축제 이후로 시청광장을 빌려 진행하는 퀴어문화축제가 될 줄이야! ‘애향심’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 만큼은 ‘전주뽕’에 찼다. 사실 나는 전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기회만 있다면 전주를 벗어나는 것-탈전주가 목표다. 많은 지방 사람들에게는 탈고향을 하는 것이 목표다. 왜냐하면 서울과 얼마나 먼 곳인지, 주변에 어떤 광역시가 있는지에 따라 인프라는 천차만별이 되고, 더 나은 인프라를 가진 곳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느니, 서울이나 해외로 떠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전주 사람이라서 기뻤다. 365일 중 하루 정도, 내가 자란 곳을 좋아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퀴어문화축제는 당일 아르바이트 때문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풀타임으로 즐기게 되었으니 더더욱 신이 났다! 특히 작년에 했던 아르바이트는 행사장에서 꽤 가까이에서 했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뛰쳐나가고 싶었던지. 작게나마 무지개뱃지를 달고 일할 뿐이었다.

작년에 달고 일했던 뱃지.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작년에 달고 일했던 뱃지.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퀴어문화축제는 조그마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주는 애초에 작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군 이상 도시 중에서 17위로, 전라북도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에 비해서 비슷한 순위의 16위가 경기도 화성시, 18위가 충청남도 천안시인 것을 감안하면 꽤 굉장히 작은 편이다. 게다가 작은 도시인 만큼 건너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이니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전주 사람에게 리스크가 꽤 큰 일이다. (나만 해도 작년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잘 안다며 여러 질문들을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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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전주시청광장, 노송광장이라고 불리는 그 시청 광장의 잔디가 유달리 잘 보이도록 넓어보였다. 휑해보인다기보다는 우리에게 충분히 넓었다는 느낌이었다. 부스도 넓어서 미스핏츠의 옆 부스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식사를 시도했다(!) 미스핏츠의 이수련 대표도 그 뒤 공간에 누워있곤 했다. 퍼레이드 취재를 다녀온 나도 지쳐 누워있었다. 가끔 소낙비가 쏟아질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비를 무작정 피하지 않고 그 비를 맞거나, 자연스럽게 우산을 펴거나, 부스 안으로 들어와 춤을 추곤 했다. 부스로 비를 피하러 오신 분들과는 가볍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퀴어문화축제가 끝날 때까지 스콜처럼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하늘은 끝까지 맑아지진 않았다. 혹시 무지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무지개는 커녕 하늘은 여전히 구렸고 기분은 조금 꿉꿉했다.

하지만 퍼레이드에서 전주 한옥마을을 통과한 대형 무지개 깃발은 하늘의 무지개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작년부터 전주퀴어문화축제 기획단으로 일하고 있는 분께서 그렇게 희열을 느꼈다는 그 장면을 퍼레이드에서 직접 보니 하늘의 무지개보다 이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막 퍼레이드를 진행하던 중에는 그 무지개 깃발을 뺏어가겠다는 사람이 난입했다. 그 뒤로 스크럼이 익숙하지 않은 청년들이 스크럼 아닌 팔짱을 끼며 끼어들었고, 퍼레이드 선두에 선 민주노총 소속의 풍물패의 악기들을 뺏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결국 꽹과리채였나 징채였나 채를 사유지 펜스 너머로 던져버렸다.1)재물손괴죄에 해당될 수 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어쩌지 싶었는데, 어느새 보니 다른 채를 꺼내 악기를 연주하고 계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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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에 난입했던 사람들은 곧바로 경찰들이 연행해갔다. 솔직히 지금까지 다녀왔던, 혹은 소식을 들은 퀴어문화축제 중에 가장 대처가 빨랐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고, 퍼레이드는 기린대로를 거쳐 한옥마을로 향했다. 지정된 성별에 맞지 않는 한복을 입으면 한복할인을 받을 수 없지만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로 붐비던 태조로를 갈라, 낙태한 여성에게 죄를 묻는 카톨릭 전동성당을 지나, 전주특례시를 외치는 시청 광장으로 다시 복귀하던 그 기분이란! 중간에 한 교회 차량이 퍼레이드를 보고는 클랙션을 길게 눌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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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구름을 가르는 무지개만큼이나, 아니 무지개보다 더!  그 광경은 아름다웠다. ‘저게 뭐야?’라고 말하는 관광객들도 있는 한 편,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달리던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관광객들도 있었다. 퀴어문화축제를 금방 이해하고 ‘생각보다 많다’라고 하던 관광객도 있었다. 사실 퍼레이드를 촬영하는 것이 늘 그렇게 달가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 시선들이 언제나 환영이 가득한 일이기를, ‘생각보다 많다’가 아니라 ‘있어왔던 존재’로서 환영받게 되었으면 한다.

글/ 이점

   [ + ]

1. 재물손괴죄에 해당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