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저녁, 세계여/성노동자대회 4월 월례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의 정식 명칭은 ‘페미니즘의 물결과 세계여/성노동자대회: ‘4비’1)연애, 섹스, 결혼, 출산을 모두 하지 않는 것을 말함에서 성적 생산과 노동까지’였다.

먼저 나처럼 ‘세계여/성노동자대회’에 사전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2018년 10월 27일 제1회 세계여/성노동자대회(이하 세여노)가 열렸다. 이는 ‘비생산, 비노동으로 여겨지는 여/성 노동을 가치화하고, 성소수자들의 노동을 가시화하며,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과 임금 노동 현장의 불평등한 성적 구조를 함께 바꾸어 나가기 위한’ 대회였다. 그렇다면 왜 ‘여성노동자’라고 하지 않고 ‘여/성노동자’라고 빗금을 그었을까? 우선 ‘여/성’이란 ‘여성(women)’과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를 가로지르는 ‘성’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또한 ‘여/성노동자’란 이러한 의미에 더해 현재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여성의 노동과 생산임을 드러내면서 어떤 노동과 생산이든 ‘성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말할 수는 없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대회의 궁극적인 의미는 ‘노동과 생산의 개념 전환 및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1회 세계 여/성노동자대회 포스터

제1회 세계 여/성노동자대회 포스터



4월 월례 토론회는 제1회 세여노의 아쉬움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세부적 주제를 발표하는 패널로 퀴어노동자이자 ‘월급쟁이 퀴어모임’의 운영하고 있는 ‘긍정’, 성노동자 ‘녜녕’,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부장 백선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고정갑희가 참여하였다.

4월 월례 토론회의 포스터

4월 월례 토론회의 포스터

세여노에 대한 설명과, 토론회 홍보자료를 읽어본 후 그동안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노동과 여성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지점을 놓고 고민해볼 수 있었다. 동시에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배제와 낙인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당사자를 눈 앞에 두고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는데, 더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풀어보겠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

처음으로 발표를 맡은 긍정은 여성 퀴어로서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비록 페미니즘은 이전보다 훨씬 가시화되어 ‘말조심’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퀴어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상황임을 이야기했다.

“스스로 ‘퀴어프렌들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차별적인 지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짧은 머리를 했다거나, 어쨌든 여성이 ‘퀴어처럼’ 보이면, 무조건 레즈비언일 것이라 짐작하고, 그것을 당사자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물어본다거나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소위 말하는 ‘여성적 외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황하는 반응을 마주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들을 계속 겪고, 차별임을 인지한다고 해도 쉽게 지적할 수 없다. ‘월급쟁이퀴어모임’에서도 다양한 퀴어 노동자들이 이와 같은 어려움을 고백한다고 한다. 또한 긍정은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도 쉽게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도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론회에서 스스로가 에이로맨틱2)타인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임을 밝힌 한 참여자는, “일하는 그 순간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서 ‘애인 있냐’는 말을 듣거나 ‘당연히 연애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연애 이야기’가 친분의 요소로 쓰이는 것이 괴롭다”고 이야기했다.

'에이로맨틱 진단문항'의 일부. (원문 링크: http://anagnori.tumblr.com/post/69145328274/you-might-be-aromantic-if)

‘에이로맨틱 진단문항’의 일부. (원문 링크: http://anagnori.tumblr.com/post/69145328274/you-might-be-aromantic-if)

이후 발표를 맡은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부장 백선영 씨는 “민주노총이 기존에 포함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 선원, 특성화고 실습생, 돌봄 노동자 등 아직까지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며, 이주민이라는 특성상 쉽게 신고하거나 주변에 알리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와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0365)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와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0365)

성노동에 낙인을 찍는 이는 누구인가

성노동자 녜녕은 “성노동자는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고 말하면서, 제1회 세여노에서 성노동자를 조금이나마 가시화하고,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임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이 주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윽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녜녕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페미니즘에서도 가장 논란이 거센 이슈가 성노동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중 많은 질문은, 페미니즘 내에서도 성노동자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 낙인을 찍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참여자 중 한 명은, 녜녕이 트위터에서 ‘교복 코스프레를 하며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고 말하며 ‘왜 이런 사람을 패널로 불렀는지’를 질문했다. 질문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이는 패널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실 자체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고정갑희 씨는 ‘왜 이런 사람을 패널로 불렀냐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 발언이다’라고 지적했다. 녜녕은 질문자가 말한 ‘성적 대상화’에 대해 ‘수요가 많아서 교복 코스프레를 했지만,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고 앞으로 중단해 가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녜녕이 “가출 청소년에게 조건만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 수도 있기에 가출 청소년에게 ‘조건만남 당장 그만둬’라고 강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을 거론하다가, 갑자기 “그러한 청소년들이 버닝썬 사건의 피해자와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습니까?”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 질문자는 녜녕에게 소리를 치고 씩씩거리는 등 지나치게 흥분한 모습을 보여, 주변에 앉아 있던 다른 참여자들이 말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미성년자가 조건만남을 하는 것을 어떻게 놔둘 수 있냐’며 분개하자, 한 남성 참여자가 “지금 청소년을 ‘미성년자’라고 비하하고 계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질문자가 토론회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남성은 발언할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사회자나 주최 측도 아닌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타인의 발언을 제지한 데다가, 점점 질문이 아니라 ‘막말’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결국 사회자가 ‘인신공격을 자제하라’고 지적하며 잠시 토론회를 중단했다.

여기까지 본 나는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문제점이나, 조건만남을 하는 청소년이 마주할 상황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인신공격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시각과 비난이 존재하기에 성노동이 보이지 않게 되고, 성노동자가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 아닐까?

'성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법률'이란 TED 강연의 한 장면, 강연자는 성노동을 규제하는 법률이 오히려 성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_OtbsFshDkQ)

‘성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법률’이란 TED 강연의 한 장면, 강연자는 성노동을 규제하는 법률이 오히려 성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_OtbsFshDkQ)

이윽고 다시 진행된 토론회에서 녜녕은 “조건만남을 하는 청소년들이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는 것이 좋겠지만, ‘너희들은 왜 조건만남을 하냐’며 비난하기만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답했고, 고정갑희 씨도 ‘성노동자를 ‘창녀’라고 낙인 찍고 욕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과 생산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토론회에서, ‘노동과 생산’이 얼마나 좁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으며 ‘정상’의 틀을 벗어난 노동이 어떤 혐오를 마주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목격한 기분이었다.

페미니즘이 지속적인 물결로 흘러가려면

마지막 순서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인 고정갑희 씨의 발제였다. 고 씨는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재 한국 사회의 쟁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운동인 ‘탈코르셋’과 ‘4비 운동3)섹스, 연애, 결혼, 출산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거론하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차별과 혐오, 배제가 생산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페미니즘 운동 속에서 어떠한 주체들은 여전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간 계급 등 다양한 계급적 시선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차별의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법촬영 반대시위의 주최 단체인 '불편한 용기'에서 만든 시위 관련 주의사항 만화의 한 장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불법촬영 반대시위의 주최 단체인 ‘불편한 용기’에서 만든 시위 관련 주의사항 만화의 한 장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성노동 현장에서 성적 착취가 일어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성노동을 철폐하자’라는 협소한 주장으로 흘러가거나, ‘성구매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노동에도 분명히 주체가 존재하며 이러한 주체들과 무엇을 철폐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노동에 낙인을 찍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녜녕에게 쏟아졌던 공격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노동 자체에 대한 윤리적, 도의적인 벽과 틀 때문에 생산과 노동의 주체들이 정작 소외되고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윽고 한 참여자가 ‘현재 가장 시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생물학적 여성들의 인권을 먼저 챙기는 게 절실하지 않은지’ 질문했고, 여기에 고 씨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여성은 ‘최하위 젠더’이기에 오로지 ‘여성’의 권리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은, 결국은 다양한 여성들을 비가시화하는 길로 갑니다. 이렇게 계속 누군가를 배제하고, 주변화하고, 비난하는 흐름은 끝나야 하고, 그래야 무언가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법촬영 문제, 낙태죄와 같은 보이는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더 넓은 영역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추진되어 나가야 합니다.”

노동과 생산, 그 속에도 여전히 젠더 위계와 성적인 구조가 존재한다. 하지만 제1회 세여노의 슬로건인 “당신의 일상이 우리의 노동이다”라는 말처럼, 이는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기에 간과하기 쉽다.  지금 ‘제3의 물결’이라고 불릴 만큼 페미니즘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노동과 생산의 주체들이 목소리를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에 못지 않게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억압하려는 이들도 등장했다.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여성성을 타파하자’며 시작된 운동이 어느새 ‘완벽한 여성’에게만 발언권을 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논바이너리에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영상의 한 장면. '논바이너리'란 젠더 이분법에 의해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논바이너리에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영상의 한 장면. ‘논바이너리’란 젠더 이분법에 의해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로지 ‘성기’만으로 누군가의 성적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은 이렇게 폭력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XX 염색체를 가졌다’는 말로 페미니즘의 주체들을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여/남’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분류하는 것엔 분명 한계가 있다. 성별 이분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를 강요할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터섹스로 태어난 사람이 출생 직후 곧바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성전환 수술을 거치고, 성장하며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가 그렇다. 현실이 이렇기에, 페미니즘은 더욱 다양한 여성을 포괄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장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만이 페미니즘이다’라고 자꾸 한계를 짓는 것은, 결국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들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글, 편집/ 린

   [ + ]

1. 연애, 섹스, 결혼, 출산을 모두 하지 않는 것을 말함
2. 타인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
3. 섹스, 연애, 결혼, 출산을 거부하는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