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 글은 2019년 3월 11일에 쓰여진 글 입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내게 노란 장미를 건넸다. 오늘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한다. 왜 하필 노란 장미일까 궁금해서 그 의미를 검색해보았다. 노란색은 성평등 사회로의 희망과 기대, 장미는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의미했다. 향기를 맡아보니 그냥 꽃이 아니고 비누꽃이었다. 그 향기를, 전해진 마음을 오래 남길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인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한쪽에 마련된 노란 리본은 여기 올 때마다 챙겨가는 느낌이다. 멀리서 날 보고 손 흔드는 친구의 다른 손에도 노란 장미가 있다. 어, 너도 받았네? 오늘 대화는 이렇게 시작해야겠다.

하늘은 오늘도 뿌옇다. 미세먼지 지수를 알려주는 어플에 노란색 경고등이 켜져있다. 언제까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살아야하는지 궁금하다. 핸드폰에 미세먼지 관련 아이디어 상품을 검색하는 중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확인해보니 연예기사 링크였다. 유명 아이돌 빅뱅의 멤버 승리가 성매매 알선 및 디지털 성범죄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단다. 그가 동료 및 지인들과 함께 있던 카톡방에서는 ‘몸 대줄’여자를 구하기도 했고, 상대방 여성은 알지도 못하는 새에 성관계 영상이 공유되기도 했다. 학창 시절을 빅뱅으로 채웠던 내 친구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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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그 친구 집에 있던 노란 왕관봉을 기억한다. 빅뱅 공식 팬클럽인 VIP의 필수 응원용품이자 빅뱅 팬의 상징이었다. 그의 노래를 듣고 행복해하고 비싼 콘서트 티켓을 겨우 구해 안도하던, 그런 ‘소녀팬’이었던 내 친구는 이제 그의 잘못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스스로를 ‘국민 역적’으로 칭한 승리는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오히려 억울해보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은 진정한 국민 역적이 광주에 간 날이었다. 죄 없는 수천, 수만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던 군부정권의 수장도 자신을 국민 역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데, 참으로 기묘했다. 다만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은 똑 닮았다.

갑자기 아득해져서 눈 앞이 노랗다. 내가 노란 장미를 받아 기뻤던 그 날, 승리의 카톡방에서는, 아니 정준영의 카톡방에서는, 아니 대학 내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연루되었던 적 있는 이들의 카톡방에서는 어떤 대화와 어떤 사진들이 오고 갔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처절할 정도로 뚜렷한 리얼리티와 마주한 듯 하다. 노란 왕관봉을 들었던 17살 소녀가 어느덧 20대 중반에 다다를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 세상은 과연 얼마만큼 변했을까. 적어도 그 소녀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불평등하게 뒤틀려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왕관봉을 놓은 손에는 노란 장미가 있다. 더욱 큰 변화가 이제 시작될 것이다.

글/ 싱두

편집 및 교정/ 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