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제 11회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열렸다.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지역에서 퀴어 축제가 열렸던 작년의 상황을 반영하듯, 이번 포럼의 타이틀은 ‘여기, 축제’였다. 제목에 걸맞게 퀴어 축제의 현 위치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퀴어문학, 소수자 난민, 교차성 모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세션들이 열렸다. 나는 이 중 마지막 날 열린 <대학 내 인권 백래시, 성소수자 운동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세션을 듣게 되었다. 최근 하고 있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2019년 총여학생회 선본이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 이후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가 진행되면서 결국 총여학생회 폐지안이 가결되었다.1)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연세대학교의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가 있기 전 이미 재개편안 투표가 진행되어 가결되었고, 이로 인해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가 만들어진 상태였기 때문. 게다가 재개편 요구의 안이 가결된 바로 그 날에 총여학생회폐지위원회 측은 폐지 투표를 위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재개편 TFT는 일을 해 볼 여지도 없이 바로 폐지 주장을 마주한 셈. 서울 내 많은 대학교에서 총여학생회가 폐지되거나 공석으로 남는 상황을 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내 학교 일’이 되어 버렸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듣게 된 세션이었다.

익명성 뒤의 혐오

2016~2017년은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릴 정도로 현 사회의 여성혐오와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 시기이다. 이 시기를 한창 지나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접하고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도 많아졌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과 반발, 즉 백래시2)‘백래시’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지만, 1991년 수전 팔루디가 쓴 책 <백래시>에서 ‘미국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의 성과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반격에 마주했음을 지적하며 쓴 용어로 유명해졌다. 출처: 한겨레21 ‘페미니즘, 반격을 맞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4633.html도 거세졌다. 초반에는 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커뮤니티를 통해 페미니즘을 희롱하고 비꼬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최근 들어 백래시는 점점 지능적으로 변해 가는 추세다.

이 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대학연구네트워크 대표 고준우 씨는 점점 진화해 가는 백래시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페미니즘을 하나의 추문으로 만드는 전략입니다. 페미니즘 연구자나 활동가 개인의 약점을 잡아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언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들,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돌이나 게임 개발자들에게 폭언을 쏟는 일. 이러한 과잉된 폭력의 과시는 페미니즘이 주류 담론 공간에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략이 계속되면서 페미니즘은 하나의 담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신 ‘문제적인 것’, ‘갈등의 불씨’와 같은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도 용기 내어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거나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낙인 찍히고 비난 당한다. 심지어 2018년 3월에는 한 게임 회사의 대표가 원화가가 ‘한국여성민우회’와 ‘페미위키’의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것때문에 ‘페미니스트인지 사상을 검증하는’ 면담을 한 후 그 결과를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3)경향신문, ‘게임업계, 만연한 페미니즘 사상 검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3272217015

2018년 라는 게임에서는 '메갈' 의혹이 제기된 작가의 일러스트를 삭제하고 하루가 지난 후 이런 글을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 몇몇 유저들은 의 이러한 행동을 '메갈 손절 마케팅'이라며 칭찬했다.

2018년 <소울워커>라는 게임에서는 ‘메갈’ 의혹이 제기된 작가의 일러스트를 삭제하고 하루가 지난 후 이런 글을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 몇몇 유저들은 <소울워커>의 이러한 행동을 ‘메갈 손절 마케팅’이라며 칭찬했다. (출처: <소울워커> 공식 페이스북)

이와 관련해 ‘에브리타임’4)대학교별 커뮤니티와 시간표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 어플과 웹사이트로 이용할 수 있다. 에브리타임 내 커뮤니티는 닉네임도 밝히지 않고 완전히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다. 등지에서 눈에 띄는 페미니즘 혐오 및 소수자 혐오를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고준우 씨 역시도 “오늘날 대학의 익명 커뮤니티들은 학벌이라는 코드와 남성중심적인 인터넷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폐쇄적 커뮤니티”라고 지적했다. 이 날 나온 질문 중에서도 “에브리타임 등의 커뮤니티는 신입생들이 특히나 자주 이용하는 곳인데,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혐오 문화’부터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혐오 표현 규제를 강화하게끔 하는 등의 방안은 없을까”라는 물음이 있었다.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들. 아래 글은 그날 '최고 핫한 글'로 올라가기도 했다.

<에브리타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들. 아래 글은 그날 ‘최고 핫한 글’로 올라가기도 했다.

‘중립’ 뒤안길로 사라진 목소리

이러한 흐름을 ‘정치성에 대한 혐오’라고 규정짓는 목소리도 있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에 이르는 반 박근혜 정권 투쟁 기간 동안, 촛불시위 현장에서든, 대학 캠퍼스 내에서든 ‘정치적으로’ 보이는 집단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분명히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정치적 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정치 색깔’을 띠는 것은 용납되지 못했다. 2016년 10월, 연세대학교에서 학내 여러 단체들이 모여 박 정권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했을 당시, ‘왜 총학생회도 아니면서 시국선언을 하냐’, ‘운동 단체들은 너무 정치적이라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 와중에 연세대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시국선언 서명에 동참해 달라’며 글을 올린 한 학생을 ‘사상검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역시 2016년 말 시국선언을 했을 당시, 시국선언문에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는 문구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아닌 외부 세력의 목소리가 들어갔다’며 탄핵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5)한국대학신문, ‘최순실 파문 시국선언문에 고려대 총학 탄핵위기’,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65210 누군가를 대표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립’의 자리를 지켜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논란이 되었던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시국선언 공지.

논란이 되었던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시국선언 공지.

이와 맞물려, 총여학생회 역시도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한다’는 이유로 ‘대표성이 없다’,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총여학생회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너희들도 총학생회로 대표되는데 왜 이중으로 대표되려 하냐?”는 것이다. 기존의 총학생회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묵인된다.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날 세션에는 한동대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당한 지민 씨도 발제자로 참여했다. 지민 씨는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로 전 교직원과 교수에게 자신의 폴리아모리6)비독점 다자 연애 관계를 아웃팅당했지만, 학교에 인권센터, 총여학생회, 소수자인권위원회 등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단체가 아무 곳도 없어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또한 한동대가 포항에 있어 외부 단체와의 연대도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한동대 입학 서약서에서는 ‘동성 행위, 낙태, 동거, 음주 금지’ 따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만큼, 지민 씨가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학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한동대가 있는 포항 지역의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한동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한동대가 있는 포항 지역의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한동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비단 한동대 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소수자는 냉담한 현실을 마주하거나,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점점 많은 대학에서 성소수자 동아리가 생겨나고 있지만, 학내에 존재하는 차별이나 억압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소수자의 정체성이나 가치관은 존중받지 못하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경계 밖에서도, 여전히

<성균관대학교 성평등어디로가나>의 노서영 씨는 성균관대에서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총여학생회가 회원을 지정성별 여성으로만 구성한다거나, 소통이 부족하다는 등의 부분이 지적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균관대 총여 선본 같은 경우에는 성소수자협의체나 장애인협의체 등 의결권을 가진 소수자기구 증설 지원을 공약으로 구상하고 있었고, 타 대학 총여의 기존 활동들을 살펴보면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무도 상호 소통하지 않는 대학 공간에서 총여의 필요성과 폐지 주장은 따로 울리고 있었습니다. 공식 토론회에 나갔지만 발의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에브리타임에 입장을 올리면 신고당하고 계정이 정지되었습니다. …(후략)”

그러면서 노서영 씨는 ‘총여가 폐지되어도 소수자를 대변할 필요성을 여전히 남아 있기에 우리는 기꺼이 경계 밖 정치를 해나갈 것’이라며, 경계 밖에서도 학내외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민 씨는 학생사회에서 연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포항 여성회를 중심으로 한 수십여 개의 지역 시민단체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며, 연대체 운동이 대학 내 인권 정치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학교 내 차별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 차별금지법 같은 더 다양한 사회적 논의로 의제를 확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수자들은, 그리고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은 상처 받고, 끝을 모르는 싸움을 이어가고, 부당한 시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백래시는 계속되고 있고 서울 시내 대학교에는 더 이상 총여학생회가 존재하지 않지만, 이 사실이 소수자 인권 정치의 좌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인권을 위해 용기를 내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성소수자 인권 포럼을 통해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이나마 희망을 본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소수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문제는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queer_@

글, 편집, 사진 / 린

 

   [ + ]

1.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연세대학교의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가 있기 전 이미 재개편안 투표가 진행되어 가결되었고, 이로 인해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가 만들어진 상태였기 때문. 게다가 재개편 요구의 안이 가결된 바로 그 날에 총여학생회폐지위원회 측은 폐지 투표를 위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재개편 TFT는 일을 해 볼 여지도 없이 바로 폐지 주장을 마주한 셈.
2. ‘백래시’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지만, 1991년 수전 팔루디가 쓴 책 <백래시>에서 ‘미국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의 성과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반격에 마주했음을 지적하며 쓴 용어로 유명해졌다. 출처: 한겨레21 ‘페미니즘, 반격을 맞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4633.html
3. 경향신문, ‘게임업계, 만연한 페미니즘 사상 검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3272217015
4. 대학교별 커뮤니티와 시간표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 어플과 웹사이트로 이용할 수 있다. 에브리타임 내 커뮤니티는 닉네임도 밝히지 않고 완전히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다.
5. 한국대학신문, ‘최순실 파문 시국선언문에 고려대 총학 탄핵위기’,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65210
6. 비독점 다자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