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SNS 상에서 을지로는 어느 날 이른바 ‘힙한’ 동네로 떠올랐다. 레트로한 감성을 드러낸 카페와 식당들이 을지로 골목 곳곳에 녹아들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이 자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을지로는 그리 젊은 공간이 아니었다. 을지로 공구 거리과 인쇄골목, 방산시장과 건어물 시장 등 그곳을 구성하고 있는 거리와 장소들은 오래된 사람들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6, 70년대 외래어 표기법을 고수하는 낡은 가게 간판은 나이 든 을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얼굴 같다.

낡은 건물 외벽에 쓰여있는 가게 이름. 철거를 앞둔 것 같다.

낡은 건물 외벽에 쓰여있는 가게 이름. 철거를 앞둔 것 같다.

을지로가 힙해진 데는 서울시의 정책도 한몫 거들었다. 서울시와 중구는 2015년부터 을지로 일대를 제조업과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유인 정책을 실시했다. 홍대와 같은 거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쫓겨난 청년 사업과들과 예술가들은 지자체가 보장하는 저렴한 임대료와 개발제한구역 설정을 믿고 을지로로 들어왔다. 어쩌면 이 시점이 을지로가 ‘인스타 핫플’로 떠오른 때와 일치하는지도 모르겠다. 청년들은 을지로에서 오랜 시간 생업을 이어가고 있던 제조업 장인들과 손을 잡았다. “도안만 정확하면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던 을지로 터주대감들과의 협업은 새로운 상상력이 무기인 젊은 디자이너, 사업가들에게 꿈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서울특별시 중구청에서 을지로의 예술가들을 주제로 찍은 영상의 썸네일. 출처 :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5287404&auto=1

서울특별시 중구청에서 을지로의 예술가들을 주제로 찍은 영상의 썸네일. 출처 :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5287404&auto=1

그런 을지로가 요즈음 시끄럽다. 2006년 청계천을 비롯한 을지로 일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세운상가 전체를 철거한 후 그곳에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고 밀도 높은 도시 개발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입주민 보상 문제와 2008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맞닥뜨리며 사업이 휘청했다. 2014년엔 결국 서울시가 세운상가 철거 계획을 철회하며 기존의 재정비 사업 방향을 분리 개발방식을 골자로 한 도시 재생 쪽으로 변경했다. 그러던 사업이 최근 들어 진행에 속도가 붙었다. 공구상이 밀집한 구역에서 오래된 건물이 하나 둘씩 철거되기 시작했고, 그곳에 고층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급 오피스텔이 을지로를 지켜온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분노한 공구거리 제조업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재개발 대책위원회는 자신들의 생존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건물을 허무는 소음과 주민들의 외침이 뒤섞이며 을지로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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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3가역 근처 공구거리 도로 일대에서 청계천 거리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 포스터와 현장 모습

을지로 3가역 근처 공구거리 도로 일대에서 청계천 거리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 포스터와 현장 모습

을지로 생태계는 복잡하다. 언뜻 보기에 비슷해보이는 일을 하는 을지로 제조업 장인들 간에는 단순한 경쟁관계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한 사람이 A라는 것을 만들고 싶어 을지로의 B 업체를 방문한다. B 업체 사장은 A의 도안을 구현해낼 수 있는 정밀 기계와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사장은 그 사람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C라는 을지로 내의 또 다른 업체를 추천해준다. 오랜 시간 같은 거리에서 일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온 시간과 기억이 이러한 ‘다리놓기’를 가능하게 한다. 을지로 제조업 골목이 사라지면 이 의미 있는 연결이 터를 잃는다. 오래되고 거대한 기계들과 가게들을 대부분 수용할 수 있는 적절한 입지도, 충분한 부지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는 제조업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요한 손님이었던 영세한 디자이너, 출판업자, 발명가 등에게까지 미친다. 사실상 이번 철거와 재개발 움직임은 을지로의 사람들에게 삶 전체를 포기하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조업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생산 없는 소득(임대료 등)이 들어와 거대자본화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자본없는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세계와 그곳에서 쌓아온 역사를 동시에 잃고 쫓겨난다. 이후 어느 도심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쇼핑몰, 주상복합, 고층 빌딩이 그곳의 역사가 재현해왔던 장소성을 잠식한다. 그 길의 ‘진짜’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잊혀지고, 도시 빈곤, 사회 양극화 문제를 이야기하는 곳들에서 그들의 삶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을지로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가게 '을지면옥'.

을지로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가게 ‘을지면옥’.

지금 을지로는 도시 재개발과 도시 재생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세운상가에서는 전자제품, 공구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청년 예술가들이 공존한다. 여러 새로운 시도들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곳은 도시 재생 사업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낡은 건물에서 아직도 철물, 인쇄출판 디자인 관련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곳을 허물고 들어오려 했던 고급 오피스텔은 도시 재개발의 한 부분이다. 재생과 재개발의 가장 큰 차이는 누구를 중심으로 두느냐에 있다. 재생은 그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반면 재개발은 그곳을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이의 이익을 가장 우위에 둔다. 도시 내 낙후지역에 재개발 사업이 예정되면, 원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고 그곳을 비워줘야 한다. 그곳에서 그들이 일궈낸 삶과 독특한 장소성은 미래의 고층 빌딩이 가져다 줄 높은 임대료 앞에서 평가절하된다. 보상을 논의하는 테이블에서도 주도권은 자본을 쥐고 있는 소유주와 개발 사업자에게 있다. 낮은 가치로 책정된 삶들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려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때문에 개발 주체와 원주민 간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는 서울의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2009년의 용산 남일당1)2009년 설연휴를 앞둔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4층과 옥상에서 1월 19일 새벽부터 망루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였다. 용산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70번지 일대 국제빌딩 주변 제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철거와 이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용산4구역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상가세입자 23세대와 다른 지역 세입자들이 함께 이주대책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출처 :  2017 용산참사백서이 그랬고, 청계천 복원사업이 그랬으며, 피맛골 재개발 사업2)2000년대 초중반, 서울 종로 교보생명 건물 동쪽 지역이 재개발로 대규모 철거됐다. 당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서민이 즐겨 찾던 ‘피맛골’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교보문구 후문에서 지하철 종각역까지 뻗어 있던 피맛골이 철거됨에 따라, 서민의 사랑을 받던 빈대떡, 해장국, 생선구이 집들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이 이를 안타까워했다. […] 조선시대부터 서민의 애환이 서린 청진동 166번지 피맛골은 1983년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이래 수차례에 걸쳐 재개발이 시도됐다. 지역 상인과 문학·예술인, 정치인 등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사업이 미뤄졌지만, 2003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결국 피맛골을 철거하고 거대한 오피스 건물을 건설하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출처 : 김경민, 2013.07.10.,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프레시안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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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의 기억을 담은 다큐. 출처 : KBS 다큐 3일 피맛골 편 캡쳐 (2009.03.21)

서울은 전 지구적인 세계 도시(global city)3)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주장한 개념으로, 뉴욕, 런던, 도쿄와 같이 세계  경제활동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고차 서비스활동과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설이 집중된 장소로서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집적하며, 경제활동의 지리적 분산과 체제통합, 세계화의 진행으로 계속되는 경제활동의 컨트롤 타워가 되는 곳을 말한다.들과의 연결 속에서 거대한 자본이 유입되고, 신자유주의적인 개발 광풍을 맞았다. 그 바람 속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는 것은 역시 사람이고 삶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던 공간에 자본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면서 도시는 한층 말끔해지고 보기 좋아졌다. 이러한 정돈된 감각은 누구의 것인가? 누구에게만 허용된 편리함인가? 피맛골에서 몇 십 년 동안 생선구이를 팔며 그곳만의 냄새를 만들어냈던 대림식당의 주인은 그곳을 밀고 들어온 고층 빌딩에서 더 이상 비린내 나는 생선을 만질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을지로에서 평생을 기계와 씨름하며 살아온 소상공인들은 다른 곳에서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의 새로운 가능성과 장소성을 만들어 내려했던 청년들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상황 속에서 거리를 지켜온 사람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로를 둘러싼 재개발을 오래된 골목과 가게들을 없애지 않는 선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4)김미향, 2019.01.21., “박원순 “을지로 재개발 전면 재검토”…쓸 수 있는 카드 있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79332.html 다시 한 번, 삶의 기억이 사라진 곳에 ‘장소’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글 및 사진 / 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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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설연휴를 앞둔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4층과 옥상에서 1월 19일 새벽부터 망루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였다. 용산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70번지 일대 국제빌딩 주변 제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철거와 이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용산4구역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상가세입자 23세대와 다른 지역 세입자들이 함께 이주대책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출처 :  2017 용산참사백서
2. 2000년대 초중반, 서울 종로 교보생명 건물 동쪽 지역이 재개발로 대규모 철거됐다. 당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서민이 즐겨 찾던 ‘피맛골’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교보문구 후문에서 지하철 종각역까지 뻗어 있던 피맛골이 철거됨에 따라, 서민의 사랑을 받던 빈대떡, 해장국, 생선구이 집들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이 이를 안타까워했다. […] 조선시대부터 서민의 애환이 서린 청진동 166번지 피맛골은 1983년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이래 수차례에 걸쳐 재개발이 시도됐다. 지역 상인과 문학·예술인, 정치인 등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사업이 미뤄졌지만, 2003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결국 피맛골을 철거하고 거대한 오피스 건물을 건설하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출처 : 김경민, 2013.07.10.,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프레시안
3.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주장한 개념으로, 뉴욕, 런던, 도쿄와 같이 세계  경제활동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고차 서비스활동과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설이 집중된 장소로서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집적하며, 경제활동의 지리적 분산과 체제통합, 세계화의 진행으로 계속되는 경제활동의 컨트롤 타워가 되는 곳을 말한다.
4. 김미향, 2019.01.21., “박원순 “을지로 재개발 전면 재검토”…쓸 수 있는 카드 있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79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