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작년에 작성된 글을 재편집하였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HR 스타트업 회사는 홍콩 싱가폴 등에 해외 지사를 두어 크로스 보더 채용(해외 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일본 지사가 가장 오래되었고, 국가적인 인력난 때문에 한국 인재를 채용하려는 수요도 가장 많다. 그래서 일본의 취업에 대한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제작해왔는데 그 와중에 일본 취업과 관련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방에 남는 일본 청년들

일본은 구직난이 심하고 실질적인 청년 취업률이 거의 100%에 달한다.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사례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바로 지방에 사는 학부생만을 대상으로 기업과 매칭해주는 서비스들이다.

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할까? 일본 지방 학생들의 경우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고, 그 정보를 얻으려 도쿄나 오사카 등 큰 도시로 가기에는 교통비가 많이 들어 아예 큰 도시에서의 취업을 단념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고향에서 머무르면서 취업하고 결혼하여 평생을 산다. 인력난이 심해지자 인재를 유치하기 어려운 기업을 위해 이들이 도시에 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가 필요해졌다.

이를테면 대학생활협동조합인 ‘동경인터카레지코프’는 시부야의 한 호텔 회의실을 ‘취업지원 장소’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지방 학생을 위해 기업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취업지원 전문 상담사가 상담해주는 등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이곳에서는 멀리서 온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해 호텔의 목욕시설과 음료수도 무료로 제공한다.

일본의 대학생 협동조합 '동경인터카레지코프'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 세미나, 연수, 교육 등을 저렴하게 기획하고 있다.

일본의 대학생 협동조합 ‘동경인터카레지코프’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 세미나, 연수, 교육 등을 저렴하게 기획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다고 하면 너무 당연하게 서울, 부산 같은 큰 도시에서의 취업을 생각하는 나에게는 갓 졸업한 대학생이 지방에 머무른다는 게 생소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일본은 지방 소도시가 발달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래서일까? 한편으로는 대도시에서 스카웃하고 싶어 하는 학부생 중에는 분명 그저 고향을 좋아해서 남는 이들도 있을 텐데 도시로 가느냐 고향에 남느냐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초등학교까지 나온 친구가 오랜만에 일본에 놀러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동안 연락했던 거야?”라고 하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동네가 옛 모습 그대로고, 친구들도 초등학교 때 살던 집에 그대로 살고 있어서 그냥 찾아갔다고.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초등학교 때 살던 집을 아직도 산다고?’) 친구는 일본 사람들은 한 집에서 평생을 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내가 태어난 집에서 평생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또 내가 태어난 도시가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물론 여러 역사적인 맥락이나 환경적인 조건들이 작용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지방과 대도시의 격차, 그리고 무분별한 재개발을 생각하니(내가 태어난 동네도 재개발로 통째로 없어졌다)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아득한 편안함이 새삼 그리워졌다.

일본 사람이 성실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인력난이 워낙 심하다보니 일본 기업의 크로스보더 채용이 최근 부쩍 늘었다. 작년 일본 정부에서 5년 동안 30만 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겠다는 외국인 노동자 수용 정책을 발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 기업은 과연 한국 인재를 선호할까? 여러 일본 취업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많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기사에 따르면 일본기업 인사담당자를 직접 설문조사한 결과 무려 응답기업의 96%가 한국인재 채용을 희망한다고 한다(출처). 비슷한 문화권, 가까운 거리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나에게는 의외였는데) ‘성실함’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오면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성실함 하면 일본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유토리 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토리는 개성을 강조하며 ‘여유 있는 교육’을 교육 목표로 삼고 제창되었던 교육 방식으로, 유토리 교육을 받은 1987년부터 1999년생까지는 상대적으로 입시 경쟁에서 벗어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렇다보니 마인드가 프리한 사람이나 성실하다는 기존 일본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사람이 많다. 일본 사회에서 ‘유토리 세대’를 바라보는 편견은 다음과 같다1)한국일보, [카드뉴스]유토리 세대와 헬조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900868&memberNo=12475563&vType=VERTICAL

  • 경쟁 없이 자라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
  • 야단치면 금방 풀이 죽고 조금만 수틀리면 회사를 그만둔다.
  • 시키는 것만 하고 일과 후 술자리를 거절한다.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기성세대(a.k.a. 꼰대)가 한국 청년들을 비판할 때 하는 말이다! 나는 꼰대에 대한 엄청난 반감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이 비판하는 한국 청년도 일본에 가면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웃기면서 씁쓸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청년세대(20대 중후반)는 일본처럼 여유 있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오히려 엄청난 경쟁식 교육을 거쳤다. 그렇게 대학을 왔건만 졸업하니 취업이 너무 어렵다. 내 주위 사람들만 봐도 다들 참 열심히 산다. ‘일본 사람도 인정하는 성실함’을 보유했다는 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고 오히려 좀 씁쓸했다. 여유 있는 교육을 거쳐 프리한 마인드를 갖게 된 유토리 세대, 한국엔 언제쯤 가능하려나.

네...반성할게요... (출처: kbs '시사진단' 캡처)

네…반성할게요… (출처: kbs ‘시사진단’ 캡처)

채용 트렌드의 변화와 인생

그동안 일하며 일본 이직에 대한 여러 콘텐츠를 작성했지만, 일본 이직에 성공한 A양을 인터뷰 한 것이 이 글을 작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러모로 인상 깊었던 A양의 이직 스토리에서 어쩌면 가장 와닿았던 것은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도전이었다는 이야기였다. A양이 첫 일본 이직을 준비할 때만 해도 정보도 기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게 2015년 즈음, 그러니까 겨우 3~4년 전이다. 다르게 말하면 3~4년 사이에 일본 취업이 무척 활발해지고 (우리 회사처럼) 적극적으로 구직자와 일본 회사를 매칭해주려는 곳도 속속들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까지 취업 고민이 있었던 1인의 청년으로서, 일본 취업에 대한 콘텐츠를 제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본 취업이 이렇게 잘될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때 일본어 공부나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고등학교 때는 취업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중국어를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일본어를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아마 이렇게 일본의 인력난이 심각해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생각하면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맞나보다. 내 옆자리의 마케터는 “주위에서 뭐가 유망하다고 할 때 듣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뚝심대로 하는 사람이 결국 잘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3~4년 안에 채용 트렌드도 바뀌었는데 다른 게 못 바뀔 것도 없지 않나. 다만 타이밍은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다고, 한국에서 계속 일본 관련 업무를 해온 A양을 보면서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취준생으로 지내는 것, 혹은 취준생이 아닐지라도 이 고도의 경쟁 사회에서 살아갈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야만 하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쉽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뚝심대로 밀고가되, 동시에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보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되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개씨

편집/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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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일보, [카드뉴스]유토리 세대와 헬조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900868&memberNo=12475563&vType=VERT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