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일기를 열심히 쓴 건 뉴질랜드에서 교환학생 하던 시절이다. 얼마 전 그때 썼던 일기를 다시 읽다가 새삼스레 감상에 젖었다. 일기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울 만큼 절절하다. 그건 내가 교환학생 때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거의 일 년 동안 실연한 자의 마음가짐으로 지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언어장벽, 문화 차이, 향수병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기 내 일기를 보면 (사실 요즘도 그렇지만) 자기성찰과 반성 투성이이다. 고백하자면 일 년간 즐겁고 슬픈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부끄러웠던 적이 많다. 평범하게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자괴감부터,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 괜찮다가도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지곤 했는데 그것으로부터 오는 괴로움도 컸다. 한창 심할 때는 낮에 친구를 만나 느닷없이 눈물 콧물 흘리고선 밤에 느닷없이 유쾌한 마음이 되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다음 날 똑같이 반복하곤 했다. 그때는 진지하게 내가 이중인격자, 혹은 최소한 머저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행인 것은 나의 주위에 너그럽고 관대한 누군가가 늘 있었다는 사실이다.

힘들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덕분에 누구보다 성공적인 교환학생을 보냈다. 힘들었던 첫 반년으로 인해 후의 반년은 무척 즐거웠다.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생 친구를 만났고, 평생 잊지 못할 만큼 기억에 남는 여행을 했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뚜렷이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교환학생을 하는 일 년 동안 내 안의 많은 것이 변했고, 교환을 가기 전과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내가 겪은 이 변화를 타인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에 일기를 읽다가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는지 알았다. “스스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깨달음인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2015년 8월 17일의 일기를 읽다가 기억난 사건이다.


싱가포르 출신의 리즈는 뉴질랜드에서 만난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으로, 그 친구와 있으면 언제나 편하고 외국인하고도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의리 있고 고마운 친구이다. 그녀와 언젠가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잘생긴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남자보다 여자가 예쁜 커플은 많은데 여자보다 남자가 더 잘생긴 커플은 극히 드물다는 데에서 비롯된 치기 어린 반발심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용감하게 실천에 옮기기도 했는데, 종강하는 날 어김없이 잘생긴 남자의 번호를 물어본다던지 하는 식이었다. (물론 대부분 잘 안 되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친구들에게 말했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웃었다. 사실 그동안 외모지상주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잘생긴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그날도 나는 별생각 없이 리즈에게 “잘생긴 남자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정색하며 내게 진지하게 화를 냈다. 리즈는 한국이 얼마나 외모지상주의가 심한지 말해주었다. 자기가 만난 한국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외모에 너무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의 다른 모든 점이 좋은데도 단지 너의 외모 때문에 네가 아닌 너보다 조금 더 예쁜 사람과 사귄다면, 네 기분이 어떻겠어?”

그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입장을 바꿔 생각한 적 없지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런 선택을 한다면 분명 슬프고 화가 날 것이다. 무엇보다 불합리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잘생긴 게 사람을 만나는 데에 중요한 요소일까? 그러다 문득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가장 많이 사랑했던 전남자친구는 객관적으로 잘생긴 사람은 아니었지만 대화가 잘 통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것이었고,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외모보다는 차라리 다정함, 유머 코드의 일치 같은 것이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막상 사귀고 나면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 다 잘생겨 보였다!

그런데도 왜 나는 잘생긴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또 말하고 다녔을까? 그건 세상이 (특히 한국 사회가) 그것이 좋은 거라고, 당연한 거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의 모순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 안의 외모지상주의를 크게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모가 출중한 애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취향이니 말이다. 다만 그게 정말 ‘나로부터 비롯된 생각’인지는 중요하다. 내가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라면, 남들이 하는 얘기이기 때문에 나도 하는 거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나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잘못된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으면서도 이성을 만날 때 외모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지거나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그건 내가 상대방을 외모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판단기준을 없애고 나서야 스스로의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 스스로의 가치관에 좀 더 일관성을 갖게 되었고 마음도 편해졌다.

외모지상주의뿐 아니라 뉴질랜드라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에서 일 년간 지내면서 내 사고의 굉장히 많은 부분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과 뉴질랜드 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뉴질랜드에서는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고 굉장히 경계한다는 것이다. (judging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인다.) 뉴질랜드에서는 말을 생각 없이 했다가는 정색하며 지적당할 수 있다. 내가 리즈에게서 지적당했듯이 말이다.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세운 기준을 돌아보고 수정하거나 공고히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생활의 리듬 자체가 빠르고 타인에 대한 판단이 난무하며 지배적인 판단기준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다. 즉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기회’가 잘 없다.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당연한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이다. 끝끝내 나의 결론에 이르는 법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났고, 지금까지 잘 사귀고 있다. 그는 아직도 내가 해맑은 얼굴로 “난 내가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너를 만나고 나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라고 말했던 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말한다. 좀 못된 말이긴 하지만 진심이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잘생기지 않아도 내게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남자친구가 더 잘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부모님이 쌍꺼풀 수술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해보라고 말했던 적도 있다. “쌍수 후 원빈이 될지 누가 알아?”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나에게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는 안다. 스스로의 모순으로 나를 괴롭게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만큼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없고 ‘정말 그럴까?’ ‘내가 틀린 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반성이나 자기성찰이 당시에는 힘들어도 결국에는 나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전에는 몰랐던 이런 감사함이 교환학생 경험으로 내가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언젠가 리즈가 준 그림. 뒷면에는 Love yourself라고 적혀 있다.

언젠가 리즈가 준 그림. 뒷면에는 Love yourself라고 적혀 있다.

글/ 개씨

편집 및 교정/ 싱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