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광고가 불러낸 불안

작년 2학기의 일이다. 당시 학교를 다니며 경영학을 부전공하고 있었는데 때문에 문화인류학과인 나는 사회과학대와 경영대를 뻔질나게 왔다 갔다 했다.

2014년 신축된 신경영관1)편집자주: 경영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건물의 시설은 한눈에 보기에도 훌륭하고 세련되었다. 오래되고 낡은 연희관(사회과학대) 건물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신경영관에서 내가 특히 좋아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응?) 연희관은 여자화장실이 두 층에 하나 있다. 높은 확률로 기다려야 한다. 반면 신경영관에는 한 층에 남녀 화장실이 각각 4개씩 있으며, 내부에 칸도 많다. 그리고 엄청 깨끗하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굳이 신경영관까지 가곤 했다.

하지만 훌륭한 화장실에도 불구하고 학기 내내 거슬렸던 것이 있다. 여자화장실의 칸마다 붙여진 스티커 광고였다. 한 산부인과의 성형 광고, 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외음부 성형에 대한 광고였다. 그 광고 문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색, 모양에 대한 고민 해결” “대학생은 특별 할인” “남친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였다. 특히 마지막 문구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장담하건대 어떤 남친도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남자친구의 견해와는 별개로, 여성마다 모양도 색도 다른 게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팩트’이다. 마치 얼굴 생김새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이건 남성의 페니스도 마찬가지다.

이런 광고는 여자화장실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ㅈ까 소음순으로 박수칠거임

이런 광고는 여자화장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ㅈ까 소음순으로 박수칠거임

그런데 그런 팩트를 아는 나조차도 무심코 그 광고를 보면서 ‘혹시 나 비정상인가?’ ‘혹시 내 남친도 내 모양이 이상하다고 생각할까?’라는 불안을 느꼈다. 반쯤 불안함으로, 반쯤 호기심으로 남자친구에게 물어봤다.

“여자 성기의 모양이랑 색이 중요해? 성형이 필요할 만큼?”
“아니. 대체 누가 그래?”
“여자 화장실에 그런 광고가 붙어 있었어.”
“말도 안 돼!”

물론 그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남자화장실에는 그 광고가 없을 것이므로.

연희관 화장실에도 같은 광고가 있었다. 다만 학기 초에 이미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뜯겨나가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반면 신경영관의 화장실에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공포 마케팅

신경영관 여자화장실의 스티커에 대해 광고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자. 아무튼 병원(기업)은 그 광고를 위해 시간을 들여 문구를 생각해냈으며 대학의 여자화장실이라는 참신한 장소를 모색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 돈을 들여 이미지를 제작했고 인쇄했으며, 학교의 여자화장실의 모든 칸에 일일이 들어가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짐작컨대 누군가는 그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서 실제로 성형수술을 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성과가 나왔으니 마케팅에 성공해서 광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 단순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공포 마케팅이란 ‘공포 소구’라고도 한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고통, 손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강조하며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이상적인 모습, 유쾌한 결과를 기대하도록 하는 일반적인 마케팅과 달리 불행을 예방하거나 부정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상품을 소개하고 구매를 권유한다.2)출처: [마켓&마케팅(16) 공포 마케팅의 명암] 두려움 자극하라, 그러면 팔린다…메르스때 마스크처럼,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18168453

대중에게 공포의 감정을 불어 일으켜 소비를 일으키는 방법을 공포 마케팅이라고 한다. 실제로 담배 등에 공포 마케팅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주입하는 공포가 앞선 사례처럼 ‘허구’의 공포일 때는 어떨까? 단순히 소비를 일으키기 위해 허구의 공포를 주입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자신의 성기 모양에 대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를 본 누군가는 성관계를 할 때마다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정상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아직까지 성적인 고민을 털어놓기가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비정상인가?’라는 고민이 있어도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한 채 혼자서 속앓이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불안함과 수치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콤플렉스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불안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특수한 케이스만이 공포 마케팅은 아니다. 페이스북을 보다 보면 외모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쓴 계기가 된 광고도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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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2만 명이나 좋아요 하고 1.2만 번이나 공유된 이 광고는 건강기구의 광고인데, 그 기구를 착용함으로써 자세 교정이 되고 안면비대칭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메시지이다.

좋아요가 2천도 아니고 2만이다. (아마 지금쯤 더 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에 성공했으니, 광고의 목적만 따지자면 성공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성공의 요인이 자극적인 문구에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남이 사진 찍어줄 때랑, 셀카랑 다른 사람?’라는 문구에 누구나 ‘그거 난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남이 찍어준 사진보다 내가 가장 예쁜 각도로 공들여 찍은 셀카가 당연히 더 예쁘다. 그리고 애초에 완벽히 좌우의 얼굴이 같은 사람은 없다. 아래 글을 참고하자.

이 세상에 완벽한 대칭은 없다. 얼굴의 대칭을 아름다움의 본질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작은 비대칭성이 중요하다. 심지어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이나 아폴로 벨베데레의 조각상도 완전한 대칭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좌우 완벽한 대칭을 가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클로리어스 갈렌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존재의 현실성을 통해 표현된다. 모든 신체 근육과 얼굴 근육이 조화롭게 (일정하게) 발달했다면 현실성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얼굴의 개성은, 어떤 특정한 근육만 과도히 발달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출처: mymedinform.com)

하지만 댓글에는 “역시 내 얼굴에 문제가 있었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약간은 비대칭인 (사실은 정상인) 얼굴이 ‘비정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외모에 자신이 없어지고,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 심한 경우 필요하지 않은 성형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페이스북을 보다 보면 훨씬 더 많은 외모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볼 수 있다. 거의 무차별적인 폭격 수준이다. 그것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 당신은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 당신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이 제품(혹은 서비스)을 구입해라!

외모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멈춰야 하는 이유

‘뭐가 문제야? 아무튼 더 예뻐지면 좋잖아?’

사실 나도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 넘어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페이스북에서 다이어트 광고를 일상적으로 봐도 문제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링크를 저장해뒀다가 ‘나중에 다이어트 자극받아야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두 가지 계기가 있다. 하나는 올해 초 만난 사촌동생이다.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피트3)편집자주: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 준비를 하면서 살이 10킬로 넘게 쪘다. 사촌들끼리 모여있을 때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살이 찐 내 모습이 싫다’라고 대답했다. 엉엉 우는 그녀를 보며 당황스러운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다른 사촌은 그녀를 위로하며 “나도 살이 쪄서 너처럼 힘든 적이 있었다. 그럴 때는 독하게 살을 빼라”라고 말했다. 의도는 알겠지만 그 위로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금 ‘통통’할지언정 ‘뚱뚱’한 편은 절대 아니었다.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오랫동안 만나는 사이좋은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녀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살쪘다는 시선에 주눅 들고 고생하며 살을 빼기보다는 당당하게 맞서 ‘너네가 나한테 왜 이래라저래라 해?’라는 태도를 가졌으면 했다. 그녀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이 너무 공허하게 느껴졌다. “너는 잘못한 것 없어. 외모에 대한 강박이 이렇게까지 심한 한국 사회가 이상한 거야”라고 말해봤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와 닿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어쩌면 잠시 동안은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곧 전과 같아질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그토록 싫어하는 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무척 큰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엔...이러한 광고 카피들부터가 너무 많다.

한 다이어트 제품의 광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엔…이러한 광고 카피들부터가 너무 많다.

두 번째는 얼마 전 만난, 뉴질랜드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알게 된 H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이후 보지 못했으니 H와의 만남은 거의 이 년 만이었다. 대화 중 그녀가 자신이 원래 패션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학교 1학년 때 ‘패션 테러리스트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뒤 유행에 무척 민감해지고 자신의 스타일에 자신이 없어 이대 등에서 마네킹이 입은 그대로 옷을 사기도 했다고.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일 년 동안의 교환학생 기간 동안 사람들이 너무나 자유롭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유행과 관계없이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덧붙였다. “페이스북에서 글램* 광고를 볼 때마다 너무 불쾌해. 대체 내게 왜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거야?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아.” 그녀는 결코 마른 편은 아니었고, 어느 쪽이냐 하면 ‘건강해 보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H는 에너지가 넘치고, 표정이 밝은, 좋은 에너지를 주는 친구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비로소 내가 글램*의 광고를 볼 때마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강박과 충분히 마르지 않은 내 몸매에 대해 불안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강박과 불안이 모두 실체가 없는 ‘허구’였다는 사실도. 그녀가 그토록 당당할 수 있다는 건 그 허구의 불안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때문이리라.

그게 허구의 공포라는 확신할 수 있는 건 나의 경험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일 년 동안 살며 한국에서 형성된 나의 많은 욕구와 불안이 대부분 거짓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외모다. 뉴질랜드에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판단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외모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더 매력적이기 마련이지만, 내 외모가 특별히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불행해하진 않다. 외모에 ‘아쉬운’ 것과 외모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크게 다르다. 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지만 후자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와 H는 뉴질랜드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사실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외모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외모지상주의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나의 다음 글에 더 상세히 나와있다.) 하지만 한국에 있으면서 외모 콤플렉스에서 자유롭기는 무척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세계 각국의 문화, 사회에 대해 토론하는 tvn 에서는 한 회차를 할애해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세계 각국의 문화, 사회에 대해 토론하는 tvn <외계통신>에서는 한 회차를 할애해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의 외모지상주의가 문제라고 한다. 특히 여자에게 끊임없이 예쁜 외모가 강요되는 탓에, 자신이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느끼며 불안해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외모지상주의와, 외모로 인한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네 외모를 사랑해”라며 개인의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회적으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성찰이 있기 전에는 개인이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무척 어렵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데, 나 혼자 생각을 바꾼다고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페이스북에서는, 최소 몇 만 명의 사람들이 매일 그런 광고를 보고 ‘내가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 혹은 ‘내 얼굴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허구의 공포를 주입당하고 있다. 심지어 친구를 태그 해서 ‘우리 그렇대’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아무리 허구라도 지속적으로 말해지면,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믿는다면 ‘진실’이 된다. 그런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자신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그로 인해 물건은 더 잘 팔릴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광고를 만드는 당사자들 그리고 그 주변인들 조차 그런 공포 마케팅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라도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이 (나의 사촌동생처럼) 외모 콤플렉스에 갇혀 자신을 싫어하며 우울해하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H처럼)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하길 바랄 것이다.

자존감이 화두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불행할 가능성이 크고,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행복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며, 끊임없이 높은 자존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외모적인 것도 자존감에서 분명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는, 외모 자존감을 키우기에 너무 불리한 곳인 것 같다. 나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디어의 끊임없는 공포 마케팅이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 내게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는 신경영관의 화장실에서 그 광고를 봤을 때 떼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 광고를 보는 하루의 수 백명의 학생들이 순간적이나마 느꼈을 나와 같은 불안을 차단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한 그리고 거짓된 공포를 심어 내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공포 마케팅은 그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은 뭘까? 두 번 말해 입 아프다. 페이스북에서의 공포 마케팅에 제재가 가해지고, 최소한 외모에 대해 말해지는 ‘팩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비정상이거나 열등한 외모는 없다고, 단지 조금씩 다른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글/ 개씨

편집/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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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자주: 경영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건물
2. 출처: [마켓&마케팅(16) 공포 마케팅의 명암] 두려움 자극하라, 그러면 팔린다…메르스때 마스크처럼,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18168453
3. 편집자주: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