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넣: ‘빌어서 넣는 행위’를 이르는 준말로, 수강신청에 실패한 손가락 고자들이 학점을 채우기 위해 교수님 및 조교에게 빌어서 수업에 들어가는 행위.

옥체 만장하신 여러분, 개강은 잘 맞이하고 계시온지요. 저는 요즘 유례없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그것은 몇 주 전의 그 날 그 아침에 1초를 머뭇거렸기 때문입니다. 네. 저는 수강신청을 망한 4학년, 이중전공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중생 중 한 명 입니다.

제가 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손가락이 고ㅈ…

0학점을 넣었고 (왜 그랬는지는 구구절절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 저는 상당히 컴퓨터와 친숙한 사람인데도 거의 매번 이러는 걸 보면 제가 수강신청에 그냥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6빌넣을 시전한 이른바 ‘빌넣 장인’, 제가 그 극한 직업 체험의 세계에 다녀왔(아니 아직도 있)습니다.

 

잇 캔 해픈 투 유, 맨

아니아니아니, 지금 ‘나는 7학기째 올킬인걸? ㅇㅇ? 글쓴이, 이런 호구를 봤나’ 하면서 창을 닫으려는 지금 거기 당신.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왜냐면 ‘빌넣’이란 상황은 아무 때나, 예고 없이 당신에게도 덮칠 수 있기 때문입죠.

다른 과목을 들으면 된다구요?

그 시간에 제가 가야 할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이 빌어먹을 전공 학점을 채워야만 졸업할 수 있는 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하핫. 이런 상황, 본인은 대학 다니는 4년 이상의 기간동안 한 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아직 대학의 쓴맛을 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저는 지나치게 많이 봤구요)

제가 이번엔 극한직업 중 하나인 ‘빌넣장인’을 체험해봤습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요, ‘빌어서 넣는’ 상황은 생각보다 꽤 자주, 꽤 많은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겁니다. 단지 저는 그 익스트림 – 6’빌넣’ – 을 이번 기회에 체험했을 뿐입니다. 무슨 극한직업 체험도 아니고, 이 6빌넣을 통해 제가 깊-숙히 깨달은 성공비결을 여러분의 후생에 도움이 되고자 나누려고 합니다.

 

1. 고학번이면서 저학번이 되어라

어떤 과목은 고학번 우선, 어떤 과목은 저학년 우선이니까 걍 둘다 해버리렴^^

네? 뭔 개소리냐고요? 제가 성공 비결을 알려드린다고 했잖아요. 그게 실현가능하다고는 안 했.찌.롱!

빌넣에 성공하시려면 고학번도, 저학번도 모두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왜요? 4학년부터 무조건 넣어주시는 교수님도 있고, 3학년부터 무조건 넣어주시는 교수님도 있고, 2학년부터, 1학년부터 넣어주시는 교수님도 있거든요. 과목따라 그거슨 천차만별. 무조건 전공은 고학번이, 교양은 저학번이 유리하다는 일반적인 상식은 절-대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네네, 그러게요.

졸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야 하는 심화전공들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 ‘ㅇㅇ 난 뿌잉뿌잉한 2013학번만 받을거야!’라고 이야기하시면 그 윗학번, 아랫학번은 모두 싸물고 집으로 돌아갈 짐이나 싸야 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구요, 교양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어이쿠 뿌잉! 나는 경로사상을 지지한다!’며 06 07 08 09학번먼저 넣어주시는 교수님도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빌넣의 절대 강자가 되려면 고학번이면서도, 저학번이어야만 한다구요. 안그러면 성공이란 백퍼 보장되지 않아효!

 

2. 교수님께 ‘내가 왜 이 과목을 꼭 들어야 하는지’가 담긴 메일을 보내라.

네네, 그리고 대학은 언제나 교수님이 절대권력인 사회고, 학생은 돈을 내고 학교에 가도 감-히 교수님께 맞서기는 커녕 빌빌 기어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억울해요? 그러면 클릭질을 잘 하란 말야. 1초 늦으면 빌넣 인생 당첨요. 그렇다니까요. 저는 350만원 내도 호갱도 아닌 그냥 호구, 슈퍼 을도 아닌 슈퍼 병, 혹은 정쯤이거든요. 교수님께 편람에 나온 메일주소로 메일을 보내서 본인의 간절함을 어필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빌넣 메일 계속 쓰니까 레퍼토리가 닳아서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두번이지, 여러 개 쓰다보면 본인의 멘탈에 슬슬 금이 가는 게 느껴질 겁니다. 아니, 내가 미디어 편성과 수용자에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어필을 해? 다른 사람들도 다 졸업해야 해서 얌전히 앉아서 듣는 건데 나는 왜! 왜! 왜! 이 과목에 대한 흥미와 나의 인생사를 조목조목 털어가면서 길고 긴 메일을 써야 할까.

게다가 메일은 써봤자 큰 메리트도 안됩니다. 교수님들은 대부분 바쁘고, 수강신청때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아해하시기 때문에 메일을 잘 읽지 않으시거든요. 읽씹, 혹은 안읽씹을 부지기수로 당합니다. 내가 힘들여 쓴 ‘앙망메일’이 교수님의 메일함 휴지통 속으로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없습니다. 촤하하!

3. 그렇지만 실권자는 조교다

그리고 정작 추가수강신청을 담당하는 실권자는 교수가 아닌 조교죠. 만장-하신 교수님들은 (실제로 연구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계신지와는 상관없이) 너-무 바쁘시고 귀찮으셔서 그런 자잘한 업무를 본인 손으로 할 시간이 없으시거든요.

울희_교수님_반신반인.jpg

쓰다 보니까 대학 안에서의 교수는 진심 반신반인같다. ㅇㅇ. 귀찮은거 다 조교가 해줌! 그래서 추가수강신청도 조교랑 잘 딜을 봐야 하는데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놔도 조교가 나를 넣어줄 지, 넣어주지 않을지는 수강변경기간이 끝나봐야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또죠. 운 좋은 사람만 추천. 그 수업이 안 들어가질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 시간표를 짜야 하는데, 넣어준다, 안 넣어준다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희망고문류 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자리는 꼭 미리 가서 선점해라 – 그것이 너가 수업을 넣은 자를 능욕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니콰 (수업 넣었다고 늦게 들어오면 첫시간 너는 벽에 서있을끼야)

그리고 프로 빌넣러라면 당연히 수업 10분 전에 가서 자리를 선점해야 합니다. 왜냐면, 빌넣러에게 주어지는 자리따윈 없으니까요.

인기 강의의 첫 시간은 이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 사진 = list25.com

심지어 수강신청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키라고까지 하는 슬픈 상황도 있지만 일단 첫시간이니까 개깁니다.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이 그 수업을 듣는 때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나 대신 수강신청에 성공한 저 사람들을 능욕할 유일한 기회입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썩소를 지으며 그들을 비웃어줍시다. 도떼기시장같이 바글거리는 강의실에서 착석해서 즐기는 생수 한 잔의 여유! 크!

이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종종걸음으로 달려나가서 추가수강신청자 명단을 적어야 하니 앞자리에 앉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왠만한 저녁 6시 마감세일하는 아주머니들 줄보다 길고 빡셉니다. 저 같은 경우엔 이번에 강의실 한 바퀴를 빙-둘러서 줄서보기까지 했거든요. 촤하핫!

뭐, 1,2,3에서 누누히 말씀드렸듯이 적는다고 다 수업에 넣어주지 않기 때문에 (안 넣어주는 경우가 훨-씬 많음) 한 학기에 한번 밖에 못 맛볼 수업이라면 앞자리에 앉아서 즐거이 들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5.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단 3일 안에 해치워버렷!

3일안에 하지 않으면 유어 시간표 망 ㅋ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팁. 이 모든 과정은 3일 안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여기서 3일이라 함은 한 학기를 좌지우지하는 수강변경기간을 말하는데요, 한 학기 내내 – 겨우 15주 밖에 안되지만 – 매여 살 스케쥴을 확정하는 기간은 단 3일. 미드 <24>를 <72>로 늘린 상황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24말고…72요.

하지만 난관은 매우 많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기에 대충대충, 느릿느릿 일을 처리하는 조교님들은 대부분 수강변경기간 마지막날에 갑자기 ‘학생은 이 강의를 듣지 못하십니다‘ 따위의 폭탄을 날리는 데 도가 튼 분들이거든요.

그렇다고 과사무실에 찾아가 봤자 소용없어요. 과사무실에서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일단 기다려 보라’는 말만 반복하거든요. 물론, 교수님께 관련 문의를 보내봤자 답장도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놈의 과사무실, 조교님들 근무시간은 어찌나 짧으신지, 또 점심시간은 왜 한시간 반씩이나 되시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겠지만 여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빌넣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매일 겨우 7시간쯤 된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메일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한 시대라지만, 그래서 퇴근해서도 업무메일로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수두룩 빽뺵한 시대라지만 이건 교직원 및 조교님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아닌 이야기에요. ㅎㅎ 쓰다 보니 이분들 진짜 부럽네요. 교직원으로 취직하고 싶다.

빌넣! 참 쉽죠?

여튼 그 3일 안에 조교와 교직원, 교수님을 모두 구워삶아야 하는 것은 물론 행정처리까지 완료가 되어야 내 수업을 ‘내 수업’이라고 부를 자격이 생긴답니다! ^0^! 참 쉽죠?

빌넣, 씨-바.

네. 사실 저는 팁을 드리기보다는 그냥 저의 6빌넣 모험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빌넣에는 팁따위 없고, 내가 등록금을 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과, 교직원, 조교는 3종 트리플 세트로 저에게 안하무인이라는 것도요.

억울하고 화가 납니다. 제 350만원은 수강신청에 성공한 다른 이들의 350만원보다 평가절하된 350만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몇 초의 차이가 저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줄 권리를 갖는단 말입니까.

마음이 복잡해요. 허그허그ㅓ거겅거극ㅇ겅

마음이 복잡해요. 허그허그ㅓ거겅거극ㅇ겅

이미 수많은 대학언론에서 끝도없이 우려내는 사골이 닳고 달아 바스라질 정도로 수강신청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매-우 다양한 타대학 사례들을 제시했지만, 그 기사의 말미에는 모두 교직원의 무적 “불가능합니다” 스킬이 시전돼 있더군요.

아마도 다음학기도 빌넣 예정인 저는 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앙망메일과 조교-딜과 교수님 굾굾을 행해야 할지 생각해보다가 눈앞이 까-매집니다. 외쳐!빌넣!씨-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