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월 23일에 작성되었습니다)

너른 풀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무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반짝이는 눈빛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에서 본 뮤직 페스티벌이란 그런 이미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 여럿을 그것도 저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감동했지만 꿈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있었고 가장 가까운 광역시조차 버스로 1시간은 가야 했다. 그리고 그 가장 가까운 광역시에도 뮤직 페스티벌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게 열렸다. 대학 입학 이후 서울에 살게 되면서 신세계가 열렸다. 서울은 음악을 향한 기회가 활짝 펼쳐진 곳이었다. 서울에 가면서야 비로소 내가 좋아하던 가수들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축제를 즐긴다는 것

그러면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 내가 한창 덕질하던 일본의 ‘Perfume'1)2018년 현재 활동 13년째에 접어드는 일본 결그룹. 테크노 사운드를 이용한 팝 음악을 주 장르로 한다.이라는 가수가 ‘최초로’ 내한했을 때, 나는 지방 소도시에 사는 가난한 청소년이었기에 공연에 직접 가는 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서울에 가는 건 너무 멀고 힘들고 비쌌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본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8년으로 데뷔 13주년을 맞이하는 퍼퓸은 2012년, 2014년 2회 내한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감감 무소식...

2018년으로 데뷔 13주년을 맞이하는 퍼퓸은 2012년, 2014년 2회 내한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감감 무소식…

그래서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이 경주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신기했다. 서울도, 광역시도 아닌 곳에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경주 그린플러그드’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나를 반겨준 것은 ‘기존의 뮤직 페스티벌이 서울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는 말이었다.

출처: '그린플러그드 경주' 홈페이지

출처: ‘그린플러그드 경주’ 홈페이지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은 서울, 경주 외에 강원도 동해시에서도 열린다. 전주, 광주, 부산 등 광역시에서 열리는 축제는 그래도 자주 보았지만 광주와 동해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위해 노력한 흔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보고 자취방이 아닌 본가로 돌아간다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을 기대하며 서울살이를 꿈꾸던 시절, 이렇게 내가 사는 도시 주변에서 여러 페스티벌이 열렸다면 나는 어땠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꼭 서울에 살고 말거야’라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잦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환경을 생각하는 축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문구다. ‘그린플러그드’는 ‘더 나은 내일과 착한 실천’을 모토로 하는 캠페인으로,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은 이에 맞게 모두 친환경을 키워드로 한다.

실제로 페스티벌 현장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것은 모든 관객들에게 쓰레기봉투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반적인 축제와 달리 ‘그린플러그드 경주’는 무대 안내 지도를 책자로 제공해주지 않고, 전용 앱을 다운받거나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는 안내 요원들에게 물어볼 것을 권유했다. 이는 대부분의 안내 책자가 행사가 끝난 후 버려지는 현실을 반영하여,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한 방침이라고 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버린 수많은 책자들이 떠올랐다.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는 영상을 통해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에 동참해 줄 것을 독려했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들 역시도 공연이 끝나면 쓰레기를 잘 모아 가져가는 등, 밤늦게까지도 현장은 깔끔하게 유지되었다.

행사 현장에서는 '그린컬쳐마켓'이라는 이벤트가 열려 중고 물품이나 다회용 컵 등 다양한 물품을 팔고 있었다

행사 현장에서는 ‘그린컬쳐마켓’이라는 이벤트가 열려 중고 물품이나 다회용 컵 등 다양한 물품을 팔고 있었다

선우정아에 입덕한 후기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 온 만큼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페스티벌에 가기 전 라인업을 보면서 나는 저질 체력을 고려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세웠다. 세 가수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는데, 그 세 가수는 CHEEZE, 선우정아, 10cm였다. 특히 CHEEZE는 20살 무렵부터 정말 좋아했기에 꼭 보고 싶었다. 실제로 세 가수의 무대가 모두 좋았지만, 선우정아의 무대가 너무 인상적이었고 집에 돌아가면서도 계속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런 걸 ‘치였다’고 하려나.

이날 CHEEZE는 '어떻게 생각해', '좋아해', '퇴근시간', 'Be there', '다음에 또 만나요' 등의 곡을 불렀다.

이날 CHEEZE는 ‘어떻게 생각해’, ‘좋아해’, ‘퇴근시간’, ‘Be there’, ‘다음에 또 만나요’ 등의 곡을 불렀다.

원래 선우정아를 알긴 했었지만, ‘덕질’한다고 할만큼 열심히 듣진 않았는데, 무대 위에서 보여준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표정이나 몸짓이 노래 가사나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렸다. 모두가 ‘수 십 마리의 고양이가 된 것처럼’ 떼창한 ‘고양이’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감동이었던 순간은 ‘삐뚤어졌어’를 공연할 때였다. 음원으로 들을 때는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단순 노동(…) 등의 순간이 많아서 가사를 그렇게 주의 깊게 듣지 않았는데, 라이브로 들으니 나도 모르게 노랫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뭉클한 가사였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진행되었던 선우정아의 공연 모습, CHEEZE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뛰어간 덕분에, 시작 시간보다 좀 늦었음에도 앞쪽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진행되었던 선우정아의 공연 모습, CHEEZE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뛰어간 덕분에, 시작 시간보다 좀 늦었음에도 앞쪽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선우정아의 무대 장악력이나 관객 호응 유도가 너무 좋았던 탓에, 방방 신나게 뛰었던 나는 다음 10cm의 차례에서 체력이 바닥을 치면서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후회는 남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부터 그날의 세트리스트들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내게 그린플러그드 경주는 ‘친환경’, ‘경주’, ‘선우정아’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남았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아주 오래된 개드립이 있다. 이 말이 처음 웃음 소재가 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자주 쓰이고 있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세상에, 사람에 질려 고단한 날 집에 가는 길에 듣는 음악은 조금이나마 피로를 잊게 하지 않던가. 그 바로 전 주의 ‘인천퀴어문화축제’부터 너무 지쳐 있던 나에게 ‘그린 플러그드 경주’는 좋은 치료제가 되었다. 끝맺으면서 그날 내 마음을 가장 달래주었던 노래 가사를 당신에게도 전하고자 한다.

난 거꾸로 서서 세상을 봐

그리고 말을 해 모든 건 잘못됐어

세상도 날 둘러싼 사람들도

모두 삐뚤어졌어

아니 나만

– 삐뚤어졌어, 선우정아

 

글, 사진, 편집 /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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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년 현재 활동 13년째에 접어드는 일본 결그룹. 테크노 사운드를 이용한 팝 음악을 주 장르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