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은 인천에서 첫 퀴어문화축제가 있었던 날이자, 한국에 소수자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늘도 우리 편’이라는 인천퀴어문화축제(이하 인천퀴퍼)의 슬로건처럼 날씨는 청명했고, ‘첫 퀴어문화축제인데 참가자가 많을까?’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많은 이들이 왔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을 막아선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무장한 혐오세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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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폭력

9월 8일 아침 일찍부터 트위터를 통해 ‘인천퀴퍼가 열리는 동인천역 북광장을 혐오세력이 점거해 어떤 축제 준비도 할 수 없는 상태다’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스핏츠 멤버들은 걱정을 품은 채 오전에 광장에 도착했다. 후원자들에게 전할 선물을 가득 들고 택시에서 내리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무지갯빛으로 물든 광장이 아닌 어림 잡아 수백 명 가량의 혐오세력들이었다. 인천퀴퍼 스태프는 광장이 혐오세력으로 둘러싸여 지금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렸다. 일단 광장 이곳저곳에 진을 치고 있던 혐오세력들로부터 떨어지려는데 ‘동성애 반대’,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등의 피켓을 든 이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귀에 온갖 폭언이 날아와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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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좀 먹는 놈들아!”

“집에 가! 집에 가라고!”

“어머니가 집에서 울고 계신다!”

“너희들은 지금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다가 에이즈 걸린다!”

“에이즈 걸리면 취업도 안 되고 인생도 망치는 거야!”

꽃추(..)나 시장님 운운하던 팻말에는 그저 환멸담긴 웃음만 났다.

꽃추(..)나 시장님 운운하던 팻말에는 그저 환멸담긴 웃음만 났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폭언을 내뱉고 있었다. 비켜 가려고 해도 그들은 자꾸 참가자들 앞으로 뛰어들며 피켓을 코앞에 들이댔다. 다행히 미스핏츠 멤버들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함께 있었기에 꿋꿋이 걸어갔지만, 한편으로 울컥했다. 단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혐오발언을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2년이 넘게 퀴어 인권에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혐오발언에는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쉴 새 없이 귀에 날아와 꽂히는 폭언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멍해졌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위축되었다.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난다 정말

겨우 한 구석으로 모여 있는데도 혐오세력은 참가자들의 코 앞까지 다가와 ‘집에 가’라며 위협했다. 혐오세력은 너무 많고, 목소리가 너무 컸고, 너무 폭력적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회 신고까지 모두 마친, ‘광장의 정당한 주인’이었음에도 한 구석에 모여 온갖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어야 했다.

‘불법 집회’는 누가 한 건지

인천퀴퍼는 9월 8일 동인천역 북광장에 대한 집회 신고를 마쳤고, 광장을 쓸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을 부여 받았다. 하지만 동구청은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광장 승인 문제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동구의회 측은 ‘통행 불편이 우려되어 광장 사용을 불승인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지난 5월 하루에 6만명 가량이 참여한 다른 축제에는 승인을 내렸다. 9월 3일 동구의회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성 정체성 혼란 및 인성파괴 등 심각한 피해 우려가 있는 성소수자들의 집회 활동을 강력히 반대한다”라는 성명을 낸 것1)경기일보, ““강행” vs “반대” 퀴어축제 전운…동구청, 동인천역 북광장 사용 불승인“, 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516658을 고려하면, 성소수자를 탄압하기 위한 결정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축제 참가자들이 축제 장소인 광장에 진입하지 못 하도록 스크럼을 짜고 누워있던 혐오세력. 그런데 아이폰과 나이키 신발이 눈에 띄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왜 LGBT를 지지할까?" 2016. 03. 04 http://m.ize.co.kr/view.html?no=2016022810067246661 이 기사가 떠올라서 띠용했다

축제 참가자들이 축제 장소인 광장에 진입하지 못 하도록 스크럼을 짜고 누워있던 혐오세력. 그런데 아이폰과 나이키 신발이 눈에 띄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왜 LGBT를 지지할까?” 2016. 03. 04 http://m.ize.co.kr/view.html?no=2016022810067246661 이 기사가 떠올라서 띠용했다

이와 같은 동구청의 ‘불승인’ 결정을 등에 업고, 혐오세력들은 ‘인천퀴퍼는 불법집회’라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미 집회 신고를 마쳤기 때문에 인천퀴퍼는 합법적이었다. ‘불법 집회’를 누가 했는지를 따진다면, 오히려 정당한 행사에 끼어 들어 참가자들을 위협하고 행사의 진행을 집요하게 방해한 혐오세력이 더 불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분에 동성애라는 단어를 30번은 말하고 있는 듯하던 빨간 십자가 든 저 아저씨

1분에 동성애라는 단어를 30번은 말하고 있는 듯하던 빨간 십자가 든 저 아저씨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경찰에 의해 폴리스 라인 밖으로 나오게 되긴 했다

오후 12시 반이 넘어서야 경찰에 의해 폴리스 라인 밖으로 나오게 되긴 했다

혐오세력에 둘러싸여 고립된 행사 참가자들은 오전 10시 가량부터 먹지도, 마시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한 채 폭언만 듣고 있어야 했다. 혐오세력은 축제 준비위원회가 행사 물품을 옮기기 위해 준비한 트럭 3대의 바퀴를 모두 펑크내고, 사물놀이 용품을 훔쳐 가기까지 했다.2)시사인천 “인천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여기있다”“, http://www.isisa.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607 오후에 들어 경찰이 조금씩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3시경 겨우 몇몇 참가자들의 광장 출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혐오세력들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광장을 떠나려는 참가자들의 팔을 붙잡거나, 손목을 끌어 당기고, ‘어디 가는 거냐’, ‘너도 동성애하냐’며 소리를 쳤다. 폭행으로 고발해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었지만, 보고 있던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후 늦게 시작된 퍼레이드 역시도 혐오세력이 참가자들을 막아서면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경찰이 몇 번이나 ‘불법집회 해산하라’며 혐오세력에게 방송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무대가 설치되지 못해 광장 안에서 간이로 마련된 임시 무대 자리. 한사람이 앞구르기 할 수도 없을만큼 좁은 공간이었다.

무대가 설치되지 못해 광장 안에서 간이로 마련된 임시 무대 자리. 한사람이 앞구르기 할 수도 없을만큼 좁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함께라서 다행이야

이처럼 행사 내내 참가자들은 혐오세력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고 몇 시간씩 한 자리에 고립되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막상 현장 분위기는 밝았다. 고립된 참가자들은 떼지어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나긴 시간을 버텼다. 부스조차 제대로 세울 수 없게 되자, 부스 참가자들은 보따리를 깔고 후원자를 모집했다.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웃음이 넘쳐났다.

바닥에 마련했던 미스핏츠 임시부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신 후원자분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바닥에 마련했던 미스핏츠 임시부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신 후원자분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9월 8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인천퀴퍼 참가자들은 소수였다. 사회적 소수자였고, 혐오세력에 비해서도 소수였다.3)경찰 추산 혐오세력은 1,500명, 참가자는 600명이었다. 혐오세력이 뻔뻔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혐오발언을 쏟아내는데도, ‘소수자이기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혐오세력을 피해 모였고, 모인 곳에서는 노래와 웃음과 이야기가 흘렀다. 그곳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비록 소수지만 이 세상에 함께 있다는 걸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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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언론사에서는 ‘인천퀴어축제 무산’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냈다. 부스도 제대로 열지 못했고, 퍼레이드도 중간중간 가로막혔으며, 수많은 참가자들이 몇 시간을 고립되어 있었기에 ‘무산’이라는 걸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은 외쳤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몇 천 명의 혐오세력이 우리를 막아섰음에도. 그날 신과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던 혐오세력들에게, ‘퀴어들의 18번’이라 불리는 ‘Born this way’의 가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I’m beautiful in my way 나는 나 그대로 아름다워

‘Cause god makes no mistakes 신은 실수를 하지 않으니까

I’m on the right track baby 나는 바른 길을 가고 있어

I was born this way 나는 이렇게 태어났어

저녁 7시에도 퍼레이드 행렬 이외에 광장에 남아있는 참가자들을 향해 이러고 있었다

저녁 7시에도 퍼레이드 행렬 이외에 광장에 남아있는 참가자들을 향해 이러고 있었다

하나님 : ???????? 나는 그러라고 한 적 없다

하나님 : ???????? 나는 그러라고 한 적 없다

글 및 편집 / 린

사진 및 편집 /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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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일보, ““강행” vs “반대” 퀴어축제 전운…동구청, 동인천역 북광장 사용 불승인“, 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516658
2. 시사인천 “인천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여기있다”“, http://www.isisa.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607
3. 경찰 추산 혐오세력은 1,500명, 참가자는 60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