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내용을 손으로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발언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말의 요지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방청연대에서 공지한 집합 시간은 8시 30분이었지만, 늦으면 선착순 명단에 못 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이미 법원 앞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가 온 뒤로도 줄이 길게 이어졌다. 30분이 되자 법원 문이 열렸다. 소지품 검사를 한 후 법원에 들어갔다. 재판이 열리는 법정은 3층에 있었다. 3층에 올라가서 한 차례 더 줄을 섰다. 법원 관리자처럼 보이는 분이 선착순 40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공지했다. 다행히 나는 20번 째 즈음에 섰다. 9시 40분부터 입장이라고 해 법정 앞에서 또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황색 저널리즘과 따옴표 저널리즘, 두 민낯

방청신청을 위해 법원 안에서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 출처 : 한국여성의전화 공식 트위터

방청신청을 위해 법원 안에서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 출처 : 한국여성의전화 공식 트위터

 9시에 신분증을 확인하고 대기 명단을 적었다. 24번을 받았다. 30분 정도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입장하는 느낌이 들어 법정 안에 자리를 잡았다. 10시가 되어가자 원고 측과 피고 측 모두 입장하고 판사 두 명이 배석했다. 중앙에 앉은 판사 분이 오늘의 재판 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오전엔 피해자 최후진술 및 피해자 변호사가 최후변론을 마무리하고, 휴정 후 오후엔 검사 측 최후변론, 구형과 피고인 최후진술 및 피고인 변호사 최후변론을 진행한다고 했다. 첫 재판 방청이라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판사는 원고, 피고 모두에게 혹시 더 제출할 자료나 증거가 있냐고 물었다. 각 측은 약간씩 자료를 더 제출했다. 그 중 하나는 증거 수집 과정에 위법 소지가 있어 정식 증거로 채택할지에 대한 논의가 짧게 오갔다. 본격적으로 재판이 시작되기 전, 판사 측에서 중요한 공지 하나를 내렸다. 본 사건의 언론 보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방청석 오른편엔 프레스를 건 기자들이 앉아있었다. 판사는 “원래 모든 재판은 공개 재판으로 진행해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특수성 및 피해자의 요구로 (피해자 측 증언 등)일부 재판 내용이 비공개 처리됐고, 상당 수 언론은 피고인 측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다.” 는 요지로 말했다. “아직 재판부의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사람들이 마치 피고 측 발언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한다.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보도에 있어 진중해야 한다.”는 식의 말도 덧붙였다.

 재판 하루 전,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가장 큰 화두였다. 발제자들은 입을 모아 2차 가해를 일삼는 선정적인 언론의 성폭력 사건 보도를 지적했다. 여러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서 연예 가십 기사 제목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이번 사건을 보도했다. 보통 큰 제목만 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곡해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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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피고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쓰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이번 사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한 종편 앵커가 피해자 증언이 일부 비공개 처리되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소리를 듣는 건 억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황색 저널리즘과 따옴표 저널리즘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의 언론 보도 행태는 기존의 성폭력 사건 보도 윤리 지침에서 봐도 어긋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언론보도를 막을 수 있는 방법과 명분이 없다. 기자의 양심과 자성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끝까지 예의주시하며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 방청석에서 흐른 눈물

긴급토론회 패널들의 모습

긴급토론회 패널들의 모습

 재판부 입장 전달이 끝나고 공판이 시작됐다. 10분 정도 휴식하고 피해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 진술했다. 법정 방청석에선 기자 포함 모든 사람들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받아쓸 수 있는 부분을 수첩에 기록했다. 그런데 도저히 피해자 진술 부분을 써 내릴 수 없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재판부에 전달하는데, 그 고통이 너무 뼈저리게 느껴졌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방청석 곳곳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옆 사람 등을 토닥이고 서로에게 기대기도 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피해자가 진술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했다. 자신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이며 그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는 점, 자신과 피고인의 관계는 상하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점,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하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포기할 수 없었다는 점, 피고가 적합한 법의 심판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 피고인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은 부분도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강했다. 그저 지금까지 힘내줘서,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피해자 최후진술 후 변호인 분이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정리해 10분 정도 최후 변론했다. 12시가 조금 안된 시간 즈음에 판사가 한 시간 반 휴정을 공지했다. 법정을 관리하시는 분이 방청인들에게 1시 20분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대기번호를 받은 분들에게 방청권이 넘어간다고 말했다. 아침에 40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왔었기 때문에 순번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대기 번호를 받았다. 그 중 일부는 법원 앞에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안희정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멀리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법원 근처 빵집에서 간단히 요기만 채웠다.

검찰 측의 최후 진술 중 “왜 성폭력 범죄에서는 특정한 피해자상을 요구하는가”

 점심을 먹고 조금 일찍 들어와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판사들이 입장하고 재판이 재개됐다. 검찰 측이 먼저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사건의 경위, 피해자와 피고인의 극도로 비대칭적인 관계, 구형에 영향을 준 법적 근거, ‘위력’의 정의 해석 등의 내용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줘 이해가 쉬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업무, 고용 등 기타 관계”라는 사적 지위까지 포괄하는 규정을 둔 업무상 위력간음죄를 신설한 이유는 한국사회 내 위계적 관계의 특수성이 반영된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성적 폭력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1)[긴급 토론회]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 의 네 번째 발제문 “업무상 위력간음에서의 ‘위력’ 해석(장임다혜)” 37쪽 하지만 이때까지 위력간음이 실형으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5년 이하 유기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이라는 낮은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어 감경요소가 있으면 대부분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되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에 분명한 ‘위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어떠한 연애감정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피고 스스로도 업무 시간 외에 피해자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데이트를 하는 등의 행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위력간음 외에도 강제추행 등의 공소사실도 곧이어 입증했다.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해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중간에 앉아있던 검사 분이 일어나 검찰 측 발언을 갈무리했다.

 “검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다. 때문에 검찰도 피해자의 말을 무턱대고 믿진 않는다. 하지만 증거를 모으면 모을수록 피해자를 의심하지 않게 됐다. 이 사건은 모든 범죄 성립 요건이 충족된다. 모든 조직이 위계질서에 따라 움직이지만 정무직은 그것이 한 인물을 중심으로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면 아랫사람들의 직위가 결정된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 가장 비민주적인 것은 아이러니다. 그런 조직에서 성폭력이 발생했다. 피고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해 그를 성적 도구화했다. 범행 기간이 장기적이고 횟수도 많다. 새로운 법리를 적용해달라는 게 아니다. 있는 법 그대로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대법원의 관련 판례도 일관적이다.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범죄에서, 왜 말하지 않으면 동의했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왜 특정한 피해자상을 요구하는가?

 검찰은 징역 4년과 성폭력 관련 교육 이수, 신상정보공개고지명령을 구형했다.

‘5인의 안희정’, 피고인과 변호인단

 이어 피고인 측 변호사가 최후 변론을 시작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위축된 상태에서 변론을 진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진 변론은 왜 피해자가 피고인과 변호인단을 ‘5명의 안희정’으로 느꼈는지 공감할 만 했다. 변호인단은 피해자의 허위진술과 피해 이후 보여준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의 모습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대화에 등장한 이모티콘, 사소한 말투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는 인지능력과 의사표시 능력이 매우 우수한데 왜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는가를 의문시했다.(;;) 느낀 점 그대로를 말하자면 많이 당황했다. 안희정 정도의 권력자(물론 지금은 그저 피고인일 뿐이지만)라면 분명 실력 좋은 변호인단을 섭외했을 텐데 저 정도 수준의 변론을 하는 건가 싶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변론이 나올 때마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법정 관리자는 소란한 방청석을 진정시켰다. 재판관 입장이라면 물론 다를 수도 있지만, 법적 지식이 거의 0인 내가 봐도 논리가 많이 부족한 변론이었다. 피고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증언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 방청 중 가장 충격을 받은 건 피고인 안희정이 최후 변론을 할 때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사랑해준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사과를 올렸다. 물론(내 예상이지만 아마 95% 이상의 확률로) 그 공간에 피고인 변호인단과 재판부를 제외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에서 야유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애쓰는 검사, 판사들에게까지 미안한 마음을 표했지만 끝까지 피해자 본인에게 직접 사과하진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정말 엄청난 말을 내뱉었다. 매우 억울한 말투로 정말 딱 이렇게 말했다.

지위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어떻게 뺏습니까?”

너무 충격적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분명 괴물이었다. 빈번하게 성폭력을 저지르며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당시 인권, 젠더 감수성을 입에 올렸다.2)“안희정 “세계적 수준의 새로운 규칙 요구””, 2018.02.15., 굿모닝충청 미투를 지지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피해자가 미투 운동에 동참할까 노심초사했다. 이런 괴물을 키우고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게 한 한국 사회는 대체 무엇일까. 안희정 개인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안희정은 사회적, 도덕적 책임은 달게 받겠지만 법의 판단만은 진실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업무상 위력 성폭력 사건의 판단 기표가 될 판결

법원 입구에 몰려있는 취재 카메라들

법원 입구에 몰려있는 취재 카메라들

 아침 10시부터 이어진 재판은 오후 네 시가 넘어 끝났다. 재판부는 최종 선고가 8월 14일 오전 10시 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법원 앞에는 안희정이 나오길 기다리는 카메라들이 줄서있었다. 추접한 가는 길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법원을 빠져나왔다. 전날 참관한 긴급 토론회에서 들은 말이 기억났다. 이번 재판의 결과가 이후 등장할 수 있는 다른 업무상 위력 성폭력 사건의 판단 기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 이길 것이다. 이길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토론회 마지막 발제문이었던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 일부로 채우고자 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안희정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법적 정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하던 사회에서 성폭력은 정조의 문제이지만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인정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성적 자율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판에서 성폭력은 정조를 지키지 못한 피해 여성의 불행으로 취급되고, 피해자의 혼인여부와 사생활이 성폭력 유죄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마저 이런 판결이 반복된다면 한국 사회의 사법정의에 대한 여성들의 불신은 극에 달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감독자를 간음하여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피고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행위를 부디 법으로 엄단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및 사진 / 싱두

   [ + ]

1. [긴급 토론회]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 의 네 번째 발제문 “업무상 위력간음에서의 ‘위력’ 해석(장임다혜)” 37쪽
2. “안희정 “세계적 수준의 새로운 규칙 요구””, 2018.02.15., 굿모닝충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