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도 퀴어 축제가 열린다. 주변 사람들에게 대구 퀴어 축제에 간다고 하면 열에 일곱은 대구에도 그런 게 열리냐며 반문한다. 네, 대구에서도 열립니다. 서울에서만 열리는 줄 알았죠? 그 도시에서도 그런 걸 하냐고 묻는 게 실례일 정도로, 대구의 퀴어 축제는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 십 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2009년 제1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홍보 포스터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 트위터 공식계정)

제1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홍보 포스터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 트위터 공식계정)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 공식 트위터 계정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 공식 트위터 계정)

대구의 퀴어 축제는 성소수자 운동에서 서울이 가지고 있는 과도한 중심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많은 것들, 예를 들어 문화 생활, 정치, 고등교육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운동과 관련된 단체, 활동, 세미나 역시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더군다나 지방 도시에는 서울에 비해 성소수자 의제가 가시화되어 있지도 않다.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이 높지 않은데다 담론의 유통마저도 특정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은 지방의 퀴어들이 성적 지향성과 정체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지역 불균등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만든다.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뭔가를 해보자는 뜻이 모여 서울 밖에서 첫 퀴어 축제가 만들어졌다. 첫 해엔 트럭에 현수막이 전부였던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지금은 천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축제로 성장했다.

올해에도 역시나 대구는 더웠다. 6월 23일 대구의 최고 기온은 33도였고 축제 참가자들은 여느 때보다도 많았으며, 혐오 집회 참가자도 그만큼 많았다. 경찰과 부스로 겹겹이 둘러싸인 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와는 달리,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동성로 한 가운데에 부스가 차려져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 축제 참가자들이 마구 섞일 수 있다.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사람들도 시내에 나왔다가 괜히 한번 구경하게 되는 것이 대구의 퀴어 축제다. 한편 때때로 혐오 집회자들이 일반 시민인척 난입을 하기에도 쉽기 때문에 긴장감 역시 높다.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 공식 트위터 계정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 공식 트위터 계정

설 연휴 직전,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 회의에서 조직위원장은 올해는 10주년인만큼 아주 성대하게 축제를 치르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호언장담처럼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의 부스가 참가했다. 축제를 며칠 앞두고 중구청에서 중앙 무대 뒤편의 공간 사용 요청을 허가해준 덕분에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넓은 공간과 더 많은 부스로 축제를 꾸릴 수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낸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와 '구글'

올해 처음으로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낸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와 ‘구글’

참여 부스 중 주목할만한 부스로는 ‘국가인권위원회’,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구글’, ‘미국 대사관’이 있었다. 네 부스는 서울의 퀴어 축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단체들일 것이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전까지 대구퀴어문화축제에는 대구 경북지역 기반의 시민단체와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정당 지부, 여타 성소수자 단체들의 참여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반해 기업과 대형 인권 관련 단체, 대사관의 참여는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 축제가 성장하면서 부스 참여 단체 역시 다양성을 띠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와 ‘구글’은 올해 처음으로 대구 축제에 부스를 냈다. 미국 대사관은 작년부터 대구퀴어문화축제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위 단체들의 부스 참여로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위상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혐오 세력은 인근의 2.28 공원에 탈의실까지 마련해놓고 맞불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작년에 비해 혐오 집회 역시 규모가 커졌고, 더 조직적으로 행동했다. 혐오 집회자들은 2014년의 반대집회처럼 흰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입고 있었다.

미스핏츠 부스 앞에서 버티고 있던 젊은 혐오세력 그룹

미스핏츠 부스 앞에서 버티고 있던 젊은 혐오세력 그룹

그들은 작은 부채도 나눠주고 있었는데 동행한 프랑스인 친구가 혐오 집회자들이 나눠준 부채에 그려진 4인 가족 그림을 보고 프랑스에서도 혐오 집회자들은 같은 그림을 사용한다고 알려주었다. 혐오 집회자들은 더러 부스 앞을 막아서고 사람들이 부스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도 했으며, 퍼레이드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백 남문’으로 모이라고 서로에게 소리치며 퍼레이드 경로에 운집하기 시작했다.

2012년 동성혼 법제화반대시위의 모습, '아빠+엄마: 이보다 더 아이에게 좋은 것은 없다!'라고 적혀 있다.

2012년 동성혼 법제화반대시위의 모습, ‘아빠+엄마: 이보다 더 아이에게 좋은 것은 없다!’라고 적혀 있다. (출처: https://www.caminteresse.fr/economie-societe/arguments-contre-mariage-homosexuel-1155491/)

퀴어혐오세력에서 나눠준 부채와 옆에 이질적이게도 껴있는(!) 라엘리안(http://ko.rael.org/)의 부채

퀴어혐오세력에서 나눠준 부채와 옆에 이질적이게도 껴있는(!) 라엘리안(http://ko.rael.org/)의 부채

결국 혐오 세력의 방해 때문에 퍼레이드는 40여분 간 정체되었다. 경찰은 혐오 집회자들과 퍼레이드 참가자들 사이를 막아섰으나, 그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퀴어 축제 측이 적법한 집회신고 절차를 거쳐 퍼레이드 경로를 사전에 허가 받은 것을 생각하면, 집회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한 경찰의 대처가 매우 아쉬웠던 부분이다.

퍼레이드 행렬은 혐오 집회를 피해 트럭을 포기하고 경로를 아예 바꾸어 한일 극장으로 나가 공평로를 거쳐 대구광역시청 앞을 돌아서 다시 들어오는 경로를 택했다. 흥을 돋구는 노래와 춤사위는 없었지만, 대구 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던 장애인 단체에 깜짝 연대 방문을 하는 등 퍼레이드의 즐거움은 여전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경로로 행진해 길가에 바글거리던 혐오 집회자들이 없어 몹시 쾌적한 퍼레이드였다.

queer_parade

대구 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분위기를 가진 지역이라고 한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열흘 전에 있었던 지방 선거는 자유한국당이 아직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는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동대구역을 나서자마자 빨간색 선거 현수막이 온 사방에 있는 것을 보고 제주에서 24년을 산 친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주요 정당 중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정당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보수 정당들은 특히 실망스러운 인권 감수성과 젠더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 도시, 특히 ‘보수의 성지’ 대구에서는 퀴어 축제와 같은 역동성이 있을거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퀴어문화축제를 조직하는 활동가들조차도 대구의 척박함에 난색을 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퀴어 축제는 낙동강과 팔공산이 한 번은 바뀌었을 십 년 동안 지역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보수의 성지’ 대구를 ‘퀴어풀’ 대구로 변화시키고 있다.

 

글/ 예륜

편집/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