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연희관015B>에도 실린 글입니다.)

2015년 5월 13일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최 모 씨가 훈련 도중 예비군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후 자살했다. “GOP때 다 죽여버릴만큼 더 죽이고 자살할 껄1)조영빈 기자, “[유서 전문] 예비군 총기난사 예비군 “다 죽여버리고 싶다””, 『뉴스1』, 15. 5. 13”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김종대 의원실에 의하면 “한 해 9,500여 명의 병사가 복무부적응과 사건사고로 전역2)김충열 기자, “김종대, 군 피해자 치유·지원 전담센터 설립 토론회 개최!”, 『브레이크뉴스』, 17. 4. 12”한다. 또한 “‘군 피해자’는 그 가족을 포함하여 30,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3)김충열 기자, “김종대, 군 피해자 치유·지원 전담센터 설립 토론회 개최!”, 『브레이크뉴스』, 17. 4. 12” 아들은 무사히 전역했지만, 괴롭힘의 도구였던 매미를 피해서 이사를 해야 했던 가족이 있다.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다가 교통사고만 9번이 난 가족이 있다.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만 보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가족이 있다. 손자가 죽은 지 3년이 되었지만 가끔 손자가 언제 전역하느냐고 묻는 가족이 있다.

이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여태껏 전무하다. “국가유공자 내지 보훈보상대상자로 등록되더라도 이들에 대한 지원은 금전적 지원과 신체 장애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보철구 지급과 재활 훈련 서비스만 제공되고 있어 사고 발생으로 인하여 겪는 정신적 어려움과 관련한 서비스는 결국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남게 된다.4)국회 사무처, “군 복무 중 사망 군인의 가족 지원 방안 : 군 피해자 치유・지원 센터 설립 필요성을 중심으로”” 심지어 한민구 전(前) 국방부 장관은 군 피해자 문제를 논하는 것은 “작은 것을 갖고 전체를 문제시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군대에서 사건사고로 전역한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이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마땅치가 않다. 자비를 부담해가며 심리 치료를 받는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자비를 부담해서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 일반적으로 1회 당 5-10만 원 상당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은 무료로 상담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던 중에 2016년 1월 16일 군피해치유센터 ‘함께’가 개소했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여서 운영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역자들이나 군 피해자들에게는 이런 단체가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방문했다.

현욱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현욱이라고 합니다.

공복순(군피해치유센터 ‘함께’ 대표, 이하 공) : 안녕하세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 대표를 맡고 있는 공복순이라고 합니다.

현욱 : 군피해치유센터가 어떤 곳인지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저희 ‘함께’는 2016년 1월 16일에 개소했습니다. 군 피해 당사자 및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돕는 활동을 하고 있고요, 군 인권 침해나 상해, 사망 사고 같은 안 좋은 일들을 예방하고자 하는 교육 정보 제공 및 구조적인 문제 개선을 위한 제도, 사회 인식 변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현욱 : 군인권센터와는 다른 곳이죠? 어떻게 다른가요?

: 그렇죠. 군인권센터는 주로 군 관련 사건/사고의 진상 규명 및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군피해치유센터는 사건이 지나간 후, 혹은 사건 해결 중에 상처받고, 남겨진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이름이 ‘함께’인 것도 있어요. 군에서 피해를 입은 피해 당사자와 가족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또 위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현욱 : ‘함께’의 출발부터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 우리 애(故노우빈 훈련병5)현역 1급 판정을 받을 정도로 건강했던 노우빈 훈련병은 사망 2주 전부터 감기 증상이 있었고 야간행군 당시 고열과 독감 증상이 있었으나 훈련소에서는 야간행군에서 열외시키지 않았다. 행군 중에는 이미 탈진상태였고, 행군이 끝나고도 의무병은 타이레놀 두 알만 처방했다. 실제로 노우빈 훈련병은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급성호흡곤란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는 규정을 따지느라 1차, 2차, 3차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2011년 4월 24일 사망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야 군은 예방접종을 4종에서 6종으로 늘렸고, 상병 종합검진을 전(全)군 실시하게 되었다. )가 2011년 4월 24일에 논산 훈련소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서 사망했어요.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왔는데, 한 편의 연극 같은 거 있죠. 다른 사람은 연극 끝나고 다 제자리로 갔는데 우리 애 자리에 우리 애만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무섭고 공포스러웠어요. 누구한테라도 자꾸 얘기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죠.

현욱 :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도움을 받고 한 곳이 있으신가요?

: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생각나네요. 그때는 임태훈 소장 목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되고 그랬어요. 훨씬 견디기 쉬웠어요. 만약 아무것도 할 게 없다 했으면 절망했겠죠. 근데 제가 울고 그러면 옆에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우시면 어떻게 해요.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벌써 우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해요. 그러면, ‘정말 할 일이 남아 있나 보다. 내가 정신 차려야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임태훈 소장이 내 아이를 위해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비전을 주고, 상담사분도 소개해주고 했어요.

현욱 : “할 일”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었나요?

: 군부대에도 가고, 사건 해결을 위해서도 사람 많이 만나고 그런 거였죠. 그러면서 ‘함께’ 개소에 시발점이 되었던 경험이 있어요. 어느 날 임태훈 소장이랑 결핵이 뇌에 올라가서 죽은 아들이 있는 장례식장에 갔어요. 갔는데, 부모가 엄청 환대를 해줘요. 장례식장에 제가 들어가니까, 죽었다 살아와도 그렇게 환대할까 싶더라고요. 제가 故노우빈 훈련병 어머니로 많이 알려져서 절 아시더라고요. 제가 위로가 된대요. 살아생전 처음으로 제가 밥값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이거구나 했어요. 제 손을 붙잡고 너무 감사해 하셨거든요.

현욱 : 그렇게 함께를 개소하게 된 것인가요?

: 바로는 못 했어요. 처음에는 군인권센터에 요구를 했는데, 여력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제 생각은 ‘가족들이 이런 상태로 방치되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그게 2015년 여름이었어요. 그때 사람들을 엄청 만났는데 거의 모두가 안 된다고 했지만, 저를 지지해준 두 분이 계셨어요. 그분들이랑 만나면서 저도 제가 밥값을 제대로 하는 역할이 ‘함께’ 개소가 아닐까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결국 그분들 덕분에 힘을 내서 ‘함께’를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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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욱 : 그렇게 ‘함께’가 개소한 게 2016년 1월 16일이었으니, 만으로 2년이 넘었네요. 안 그래도 힘든 일을 혼자 시작하셨는데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초창기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이게 열심히 해서 될 일은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게 밭 매고 하는 그런 일이면 작물이라도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게다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부분에서 저도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잠도 잘 못 자고, 시행착오도 많았죠. 요즘은 거기에서 담대해지려고 노력해요. 상처받지 않으려고. 그게 제 숙제인 것 같아요.

현욱 : 그런 과정에서 힘이 되었던 분들이 있으신가요?

: ‘함께’를 같이 하시는 어머니들이 일단 생각이 나요. ‘함께’에서 아픔을 가지고,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을 돕고,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에요. 차봉숙 선생님이라고 상담해주시는 분도 계신데 ‘함께’ 개소식 때 학춤을 춰주셨거든요. 차봉숙 선생님이 그 날 저를 보신 거예요. 그때 제가 인터뷰에서 아무도 없다 상담사도 없다 정신과 의사도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셨대요. 차봉숙 선생님께서 상담사니까 1년만 도와주시겠다 하고 오신 거죠. 그런데 그게 2년이 되고 3년째로 접어들고 있네요. 또, 조현우 쌤이라고, 대학생이신데 참 귀한 시간 내서 도와주시고 있는 분이 계세요. 운영회의나 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해서 참 열심히 하셔요. 그리고 제가 부족한 게 많은데도 전국 각지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주시고 마음을 모아주시는 분들이 참 많으셔요. 이런 분들 덕분에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현욱 : 청년 모임은 어떤 모임인가요?

: 제가 직접 진행하는 건 아니고, 조현우 쌤이 주도하고 계세요. 작년 9월부터 시작한 모임이고, 군대 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공유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청년들끼리 모여서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어요. 한국 군대 문제에 관해 고민, 토론을 함께하고 있는. 여태까지 4번 정도 모여서 유명했던 사건들의 케이스 스터디를 했고 그 뒤에는 군대 문제들을 범주화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왜 11월에도 오마이뉴스랑 다음에 기사가 나갔잖아요. 거기에 더 잘 나와 있을 것 같네요6)“예비역 청년은 왜 죽은 군인의 엄마를 찾아갔을까”. 나아가서 뉴스 아카이빙도 진행하고 있어요. 이후에도 모임 아카이빙이나 팟캐스트, 카드뉴스 만들기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군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킹을 해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하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해주시면 좋겠네요. 저도 청년 모임 덕분에 많이 힘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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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욱 : 이외에도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있으신가요?

: 작년에는 군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사업이 중심이 되었어요. 군 인권 피해사건에 관련해서 다양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분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고요, 동시에 군 피해자 회복지지모임이라고 해서 같은 고통을 가진 군 피해자분들과 모임을 많이 했습니다. 집단 상담도 받고 뭐 산책도 나가고 놀러도 가고요. 군대에서 힘든 일들로 고생하는 현역 장병 면회나 전역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외에도 군 인권 피해 예방사업으로 교육을 한다든지, 군 인권 캠페인 같은 것도 좀 진행할 여력이 되면 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현욱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 보통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99%는 잘 갔다 와요. 상처가 남아도 인내하고 넘어가고 그렇게 전역해요. 그런데 아픈 사람들도 있잖아요. 군대 갔다가 상해서 나오는 극소수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너네가 찌질해서 그런 거잖아.”하고 말하는 것,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혹여나 내가 군대에서 아프고 힘들더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버티는 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현욱 : 사실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병이 군대에서 심해지는 경우도 많지만, 사회에서 없던 힘듦이 군대에서 생기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잖아요.

: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에요. 아들이 군대 가기 1달 전에 같은 훈련소에서 죽은 친구가 있어요. 저는 그 뉴스를 봤는데, 이건 TV에나 나오는 이야기지 나한테 올 것이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 0.0001%라도 나에게 오면 그것은 현실이 되는 거예요. 군 피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너무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만 그게 나에게 찾아왔을 때 당황하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군대 제도와 분위기와 모든 게 바뀌어가면서 가능하겠죠. 이를테면 군대에서 힘든 사람들이 사회에서 복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거나 하는 것들이겠죠.

현욱 : 네. 긴 시간 인터뷰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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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거대한 한 번의 사건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드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기도 쉽고, 외부에서도 큰 사건으로 간주해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사건 해결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 하나의 종류는 한 사건이 하나의 피해자를 만들지만 비슷한 양상의 사건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피해자가 서로를 알아보기도 어렵고, 설령 안다고 해도 각자가 가진 사소한 차이들이 연대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외부에서도 ‘운이 없는 경우’라고 치부해서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해결에도 많은 힘이 들어가게 된다.

군 피해자의 문제는 후자의 경우다. 군 피해자라는 명명이 익숙해진 지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군에서 많은 사건을 은폐해왔고, 사회적으로도 쉬쉬해왔다. 이제 사회도 변하고 정부도 교체되면서 현역 군인의 문제들이 하나 둘 씩 풀려가고 있지만, 아직 군 피해자 문제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군 피해자 문제를 군피해치유센터 ‘함께’가 전부 해결해내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필자가 속했던 청년 모임이 대단한 것을 해내리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혹은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꼭 ‘함께’에 연락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이 글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했던 많은 한 걸음들이 나에게는 하나씩의 파문이었다. 군대 문제에만 한정해보면, 내 주변 친구들에게 힘듦을 이야기했던 것, 상담센터를 방문한 것, ‘함께’에서 청년 모임을 했던 것, 어떤 책을 읽었던 것 모두가 각각의 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한 걸음 딛고자 했을 때 내 주변에 보이는 옵션들 중 하나였다. 이 인터뷰가 누군가에게 그런 옵션으로 남아 있다가 필요한 때에 떠오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군피해치유센터 ‘함께’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04 (성북동) 글라렛미션센터 2층

블로그 : https://blog.naver.com/lillytogether

대표번호 : 02-313-2588

 

글 / 현욱

편집 / 저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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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영빈 기자, “[유서 전문] 예비군 총기난사 예비군 “다 죽여버리고 싶다””, 『뉴스1』, 15. 5. 13
2, 3. 김충열 기자, “김종대, 군 피해자 치유·지원 전담센터 설립 토론회 개최!”, 『브레이크뉴스』, 17. 4. 12
4. 국회 사무처, “군 복무 중 사망 군인의 가족 지원 방안 : 군 피해자 치유・지원 센터 설립 필요성을 중심으로”
5. 현역 1급 판정을 받을 정도로 건강했던 노우빈 훈련병은 사망 2주 전부터 감기 증상이 있었고 야간행군 당시 고열과 독감 증상이 있었으나 훈련소에서는 야간행군에서 열외시키지 않았다. 행군 중에는 이미 탈진상태였고, 행군이 끝나고도 의무병은 타이레놀 두 알만 처방했다. 실제로 노우빈 훈련병은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급성호흡곤란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는 규정을 따지느라 1차, 2차, 3차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2011년 4월 24일 사망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야 군은 예방접종을 4종에서 6종으로 늘렸고, 상병 종합검진을 전(全)군 실시하게 되었다.
6. “예비역 청년은 왜 죽은 군인의 엄마를 찾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