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연희관015B>에도 실린 글입니다.)

“포르노를 자주 보시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성별에 따라 답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자주 본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보는 포르노에 만족하는가? 만약 자주 보지 않거나 아예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방영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가 대놓고 ‘야동’을 보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야동순재’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야동은 더는 숨겨야 할 것조차 아니게 되었다. ‘포르노’라는 말보다 ‘야동’이라는 말은 어쩐지 친근한 느낌마저 들게 하여 이제는 농담처럼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기 쉬워졌다 한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남자가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심지어 ‘정상적’인 것으로까지 여겨지지만, 여자가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다. ‘야동을 한 번도 안 본 남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1)실제로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연구팀이 20대 남성의 포르노를 접한 경험 여부에 따른 비교연구를 위해 실험대상자를 모집했으나 무경험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세상에 ‘야동’ 안본 남자는 한 명도 없다”, <조선일보>, 2009.12.03. 야동은 오로지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세계였다. 왜 포르노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었을까?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2)2012년 출간된 책 제목이기도 하다. 오기 오가스•사이 가담,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웅진지식하우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는 포르노를 좋아하고, 여자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 남성은 시각적 반응에 민감하고 육체적 결합을 중시하며, 여성은 후각이나 촉각에 민감하고 정서적 교감을 중시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성의 경우 자신의 대를 이을 자손을 최대한 많이 남기기 위해 더 많은 파트너를 추구하고, 여성의 경우 아이를 배면 10 달 동안 품어야 할뿐더러 향후 그 자식을 양육해야 하므로 파트너의 질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한다.3)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도널스 시먼스, 『섹슈얼리티의 진화』, 한길사, 2007, 특히 6장이나 몸문화연구소, 『포르노 이슈』, 그린비, 2013 1장을 참고할 것. 그 결과 남성은 여성보다 성욕이 더 활발하고 성적 다양성을 더 강하게 추구하며, 여성은 성관계에 더 신중하고 민감하며 파트너와의 친밀감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포르노가 남성만의 전유물이 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차로 인해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것보다 강렬하다 해도 여성에게 성욕이 전무한 것이 아니듯, ‘로맨스 읽는 여자’는 여전히 유효하긴 하나 여성들은 포르노 또한 많이 찾고 있다. 세계 최대 포르노 사이트 중 하나인 Pornhub의 통계에 따르면 여성 방문객은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으며 사이트 전체 방문객의 1/4이 여성이라고 한다.4)Pornhub에서는 매년 자사 사이트 방문객들에 대해 국가, 성별, 연령, 성 지향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세분화된 통계를 낸다. 올해의 인기 키워드나 장르는 물론, 심지어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접속한 시간대나 기기에 대해서까지 통계가 있다. 2017년 통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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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여성들은 점점 더 포르노와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는데 여전히 여성과 포르노의 조합이 친숙하지 않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는 여성에게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은정(2013, p.187)은 사회가 여성의 ‘성적 쾌락의 향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의 성을 은폐하여 결국 여성으로 하여금 성적 쾌락에서 멀어지게 하였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 ’몸가짐 조심해야 한다, 안 그러면 여자는 인생 망친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필자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야동을 단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고 막연하게 ’섹스는 더럽고 불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듯 여성의 주체적인 섹슈얼리티 추구를 죄악시하는 사회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은 성적인 것에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혐오하도록 만들어진다. 혹여나 자신의 성적 욕망에 눈뜨게 되더라도 여성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포르노를 탐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두 번째는 기존의 포르노들이 굉장히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포르노의 수요자 중 절대다수가 남성이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겠지만, 이같이 남성을 주요 소비자로 상정하고 제작된 포르노들은 여성들에게는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불쾌감만 주기 쉽다. 왜냐하면, 이들 포르노에서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오로지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의 문제점들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일단 철저하게 남성의 시선만을 따라간다는 점이 있다. 포르노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젊고, 예쁘고, 비현실적인 몸매지만 남성들은 배 나온 아저씨에 못생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요하게 여성의 신체만 훑고, 여성기만 집중적으로 촬영하는 등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연출하여 남성에게 훨씬 이입이 쉽게 한다.

게다가 섹스의 기준과 중심이 남성에게만 있다. 보통의 전형적인 포르노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해보았다.

남녀 한 쌍이 열심히 키스한다. 키스하며 여자의 가슴을 만지던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핥다가 대뜸 여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여자에게 자신의 성기를 입으로 빨게 한다. 그러다 여자 성기에 자기 손가락을 쑤셔 넣고는 마구 흔들면서 ‘기분 좋지?’같은 대사를 던진다. 그리고는 여자에게 자기 성기를 삽입하고 마구 움직인다. 이때 러브젤 따위는 바르지 않으며 콘돔 같은 건 물론 없다. 여자는 연신 신음소리를 내며 ‘기분 좋아’라고 한다. 남자는 성기를 빼더니 여자 얼굴에 대고 사정한다.

이러한 포르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성기 중심적이다. 남성의 성기 삽입이 반드시 등장하며 남성이 사정하면 끝난다. 이 같은 방식은 삽입 섹스 신화를 공고히 하며 섹스를 남성의 성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 여성의 성기와 오르가슴은 지워진다. 혹여나 여성기와 여성의 오르가슴이 묘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볼거리로써 제공되거나, 남성의 흥분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포르노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여성이 흥분할 수 있을까?

남성 포르노의 클리셰로 자리 잡은 것 중에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코웃음 칠만한 내용이 많다. (출처: 레진코믹스  45화 「망가 리뷰」 갈무리)

남성 포르노의 클리셰로 자리 잡은 것 중에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코웃음 칠만한 내용이 많다. (출처: 레진코믹스 <연애고자 모하나> 45화 「망가 리뷰」 갈무리)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는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 ‘남성 중심적 포르노를 전부 다 없애버리자!’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포르노는 남성을 더욱 성차별주의적으로 만들며, 구조적으로 여성을 착취한다는 포르노의 본질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5)페미니즘 진영에서 포르노는 성매매와 마찬가지로 몇십 년에 걸쳐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인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지점에서 포르노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Mackinnon)은 포르노그래피의 생산이 여성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강제를 수반한다고 비난했다. (참고 : “Feminist views on pornography”, Wikipedia) 하지만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포르노 자체의 정당성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포르노 대다수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어서, 여성을 위한 포르노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의 불균형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성에게 포르노를 즐길 권리가 있다면 여성도 마땅히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란

사실 기존의 포르노가 과도하게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그다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여성 포르노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 또한 이미 기존에도 존재했었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는 2005년 봄호 특집에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의 대안으로 여성을 위한 ‘포르나(Porna)’를 제시하고 안티성폭력 페스티벌 ‘포르노 포르나(porNO porNa)’를 주최한 바 있다.6)“포르노는 이제 노(No!) 포르나(Porna)를 논한다”, <미디어 오늘>, 2005.03.23. 그 외에도 다양한 매체들에서 포르노의 남성 중심성과 여성 포르노에 대한 논의를 조금씩 이어왔다. 그러나 필자가 또다시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로 국내에서 여성을 위한 포르노와 관련한 논의에 뚜렷한 진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안 언론 <고함>의 한 칼럼에서는 이에 대한 이유를 우리나라가 모든 종류의 음란물 수입과 배포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7)“[동상이몽] 포르노 – 심리학 vs 현대사”, <Goham>, 2012.05.14. 포르노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포르노 산업에 대한 논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누구든지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을 유통해서는 안 된다.’ ‘음란물’이란 성인들은 봐도 괜찮은 ‘성인물’과 달리, 성인조차 봐선 안 되는 것으로 음란물이 무엇인지는 법률적 판단에 따른다. 판례에 따르면 ‘음란’은 ‘인간 존엄 또는 인간성을 왜곡하는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아무런 문학적·예술적·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단순 성기 노출만으로도 음란물로 분류되는 등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포르노 제작이 공식적으로 가능한 외국에서는 이미 여성을 위한 포르노에 대한 논의가 진작부터 활발하게 있었다. 1985년 칸디다 로얄(Candida Royalle)이 내놓은 영화 <Femme>은 여성을 위한 포르노 영화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로얄을 필두로 기존 포르노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70, 80년대 포르노 스타들은 감독으로 데뷔하며 여성용 포르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9)“여성이여, 욕망하며 사랑하라!”, <고대신문>, 2008.09.28. . 1999년에는 최초로 여성이 제작한 여성을 위한 포르노 사이트인 sssh.com이 등장하였고 2003년에는 또 다른 여성을 위한 포르노 사이트 forthegirls.com이 생겨났다. 이같이 여성 전용 포르노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porn for women’ 이나 ‘female-friendly’ 같은 키워드들을 독립된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있는 포르노 사이트들도 있다. 또한, 포르노가 합법인 여러 나라에서는 매년 보통의 영화제처럼 포르노 영화제나 시상식들이 열리는데, 캐나다에서는 2006년부터 매년 페미니스트 포르노 시상식(Feminist Porn Awards)10)올해부터는 토론토 국제 포르노 페스티벌(Toronto International Porn Festival)로 이름을 바꾼다. 공식 홈페이지이 개최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성을 위한 포르노인가?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이야기할 때 가장 쉽게 거론되는 유형은 실제 연인이 하는듯한,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포르노다. 일본의 여성향 AV 레이블인 실크 라보(SILK LABO)가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로, 실크 라보의 AV들은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서 추천 포르노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실크 라보의 AV들은 마치 연애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남자 배우가 잘 생겼고(스즈키 잇테츠라는 간판 배우가 유명하다) 상대 여성에 게 다정하고 사소한 부분들까지 배려하며, 지긋이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컨택, 다정한 키스와 포옹 등이 자주 연출되며 애무가 길고 세세하다.

실크라보의 AV 표지

실크라보의 AV 표지

토론토 국제 포르노 페스티벌은 이러한 부류의 포르노들을 ‘여성 친화적 포르노(Female-Friendly Porn)’로 분류한다. 여성 친화적 포르노는 커플 포르노나 로맨스 포르노로도 불리는데, 주로 이성애자 여성을 타깃으로 한다. 키스가 많고 감정선이 섬세하며 소프트한 편으로 대부분 기존의 젠더규범을 따른다는 특징이 있다.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많은 여성이 이런 여성 친화적 포르노를 찾는다. 그러나 여성들이 이러한 소위 로맨스 포르노‘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 마치 여성은 포르노가 아닌 로맨스 소설만 찾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은 얌전하고 잔잔하고 소프트한 포르노만 좋아할 것이라 예상하거나,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성에게 다시 한번 고정된 성 역할을 고착화하는 일이다. Pornhub의 통계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분명 남성들보다 유의미하게 여성용 포르노(Porn for Women) 카테고리를 더 많이 찾지만 동시에 하드코어, 거친 섹스, 갱뱅, 쓰리썸 등의 카테고리 또한 남성보다 더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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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전문 여성 감독인 스토미 다니엘스(Stormy Daniels)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영화들 – 포르노계의 ‘사랑스러운 로맨스’ 물 – 이 사실은 그녀가 쓰고 감독하기 가장 싫은 영화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11)같은 기사, <허핑턴포스트>

여성을 위한 포르노에 대한 논의에서 여성주의적 포르노는 자주 함께 언급된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토론토 국제 페스티벌은 윤리적 포르노(Ethical Porn)와 함께 여성주의적 포르노(Feminist Porn)에 대한 정의와 기준 또한 마련해놓고 있다. 윤리적 포르노는 제작과정이 윤리적인 포르노를 의미한다. 즉 참여자, 특히 배우가 마약이나 강압 없이 제작에 참여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방식으로 섹스하는 것을 존중받으며 만들어진 포르노를 말한다. 여성주의적 포르노는 앞서 이야기한 여성친화적 포르노와 윤리적 포르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으로, 윤리적으로 제작하되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표현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르노를 의미한다. 토론토 국제 포르노 페스티벌은 매년 시상할 여성주의적 포르노 작품을 선정할 때, 1)여성에 의해 제작되며, 2)여성의 진정한 즐거움을 묘사하고, 3)지금까지 포르노물에서 그려져 온 여성의 성적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는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른다. 영화 <벌거벗은 페미니스트>는 포르노 여배우, 여성 제작자, 여성 운동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한 여성주의적 포르노 제작자에 따르면 여성주의적 포르노란 여성에 의해 제작되며 여성의 통제 하에 여성의 욕망이 전달되는 포르노를 말한다.12)“[필진] 벌거벗은 페미니스트와 여성주의적 포르노”, 한겨례, 06.09.13

여성주의적 포르노는 기존의 페미니즘 진영에서 지속되어온 포르노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 속에서 반포르노주의자들이 지적했던 점들을 보완하려 한 결과물이다. 즉 제작과정의 측면에서는 여성이 착취당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제작에 참여하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포르노와 달리 여성이 중심이 되며 성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이다. 여성이 여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포르노는 여성을 위한 포르노와 상당 부분의 교집합을 갖지만, 이 둘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는다. 여성주의적 포르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포르노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주의적 포르노들은 폭력을 지양하며 합의하에 이루어지고, 평등한 관계를 그리려고 한다.

그에 비교해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이와 조금 다르다. Forthegirls.com이 지향하는 바는 필자가 생각하는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잘 보여준다. Forthegirls.com은 여성 시점(Female Gaze)을 강조하며 ‘여성을 위한 포르노란 여성이 좋아하는 포르노다. 많은 논쟁이 있긴 하지만, 여성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로맨스 포르노는 기존의 고정된 성 역할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포르노라고 하기 어렵지만, 여성들이 원하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포르노이다. 포르노는 상당 부분 성적 판타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완벽하게 도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의 기준으로 각자가 원하는 대로

결국 ‘여성을 위한 포르노’가 여성이 좋아하는 모든 포르노라면, 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각자의 취향만큼 무수히 다양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이란 범주로 묶이는 만큼, 세부적인 부분들은 다르더라도 상당 부분의 공통지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을 위한 포르노’에 대해 자주 논의되는 기준과 필자가 원하는 기준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포르노를 볼 때 포르노를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대상에게 이입하거나, 혹은 대상을 관음하거나. 여성을 위한 포르노에 대해 논의할 때 여러 매체에서 공통으로 ‘여성의 쾌락을 제대로 묘사할 것’이 언급된다. 여성이 여성에게 이입하려면 누가 봐도 연기인 게 뻔히 보이는 가짜 오르가슴이 아니라 정말로 절정에 달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묘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충분한 전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침 좀 대충 바르거나 손가락으로 헤집어놓고 무작정 삽입하는 포르노를 보면 흥분은 커녕 보는 사람이 다 아프다. 실제로 여성들은 보지 애무와 관련된 키워드들을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검색한다. 또한, 레즈비언과 관련된 키워드들도 많이 검색하는데, 이성애 섹스보다 레즈비언 섹스에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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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성을 위한 포르노에서는 여성이 보는 주체로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이 보고 싶은 것들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예를 들어 이성애자 여성의 경우라면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 배우가 등장하여 자신의 섹시함을 어필하고, 카메라는 남성의 신체와 얼굴 등을 집중하여 촬영하며, 카메라의 시점을 그 남성을 보는 여성의 시점으로 고정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 혼자 등장하는 포르노나 게이 포르노도 많이 찾는데, 그것은 이처럼 여성이 보는 주체가 되어 ‘볼 대상’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추가적으로 여성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포르노를 꼽고 싶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포르노 말이다. 가만히 누운 채 신음만 내거나 남성이 자신의 신체를 자위 도구인 것처럼 다뤄도 불평조차 하지 않는 인형 같은 여성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또한 ‘몰카’ 구도가 아닌 포르노(불법촬영물13)기존에는 흔히 ‘몰카’라고 불렸으나 ‘예능에서 유래된 ’몰카’라는 표현이 범죄의식을 약화한다’라는 비판 때문에 정부에서 범죄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불법촬영’으로 용어를 변경했다. 소위 ‘국산 야동’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영상들은 절대다수가 불법촬영물에 해당한다.은 말할 것도 없다), 피임 장면이 등장하는 포르노를 원한다. 화장실에서조차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어떻게 불법촬영을 연상시키는 영상에 몰입하고 흥분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있어 임신이 지니는 함의와 그 무게가 있기 때문에 피임 없는 섹스 따위 결코 섹시하지 않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부수는 포르노도 좋다. 음모 제거도 하지 않고, 뱃살도 있고, 가슴이 크지 않고 마르지 않은 여성과 탄탄한 근육질에 실한 성기를 가진 미남의 포르노라던가, 삽입 없이 서로 애무만 하는 포르노라던가.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에게 삽입하는 포르노를 보고 싶다. 여성의 신체를 가진 ‘나’는 생물학적 구조로 인해 ‘삽입 당하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언제나 불만족스러웠다. 왜 항상 얼굴을 붉히며 신음소리를 내지르는 건 여자만이어야 하는가? 여성이 삽입하는 입장에서, 삽입 당하는 남성을 보고 싶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포르노를 자주 보시나요?” 당신이 포르노를 자주 보지 않는다면, 혹은 싫어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 본다면, 포르노를 볼 때 불편했던 순간들은 없었는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포르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행히도 세상은 넓고 포르노는 많다. 특히 해외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포르노들이 있다. 당신의 입맛에 딱 맞는, 당신을 위한 포르노를 찾길 바라며.

 


 

[부록]

<다양한 여성용 포르노 사례들>

흔히 포르노는 ‘야동’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사실 포르노그라피는 동영상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포르노그라피란 ‘성적 자극을 목적으로 인간의 신체나 성적 행동을 명확히 묘사한 것’으로, 포르노는 내용적 측면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포르노적인 것을 담고 있는 매체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본문에서는 주로 동영상을 다뤘으므로, 부록에서는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동영상 외의 다양한 여성용 포르노 사례를 소개한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 사이트 추천선

: <The 19 Best Porn Sites for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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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코스모폴리탄지에 실린 기사로, 여성을 위한 19가지 포르노 사이트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 사이트를 유료 여부와 동영상, 사진, 글, gif(움직이는 사진) 등 어떤 형식으로 되어있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별점까지 매겨 알아보기 쉽게 정리해놓았다. 오로지 소리만 있는 사이트, 여성에게 에로소설을 읽게 하고 그 미묘한 변화를 담아낸 동영상들만 있는 사이트, 사람들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모습을 상반신만 담아낸 동영상들만 있는 사이트들 등 기발하고 다양한 형태의 포르노 사이트들이 소개되어 있다.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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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미스터쇼> : 한때 TV프로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을 지휘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박칼린이 감독 및 연출을 맡은 성인여성 전용 쇼다. 8명의 ‘미스터’들이 정장, 교복, 제복 등의 다양한 페티시를 자극하는 컨셉으로 등장하여 옷을 찢어 복근이나 엉덩이 등을 노출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여성 감독이 여성 관객들을 위해 만든, 여성을 볼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 원하는 ‘섹시함’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 없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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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 : 일본 70~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닛카츠사의 ‘로망 포르노’를 2016년 5명의 감독이 ‘페로티시즘’의 관점에서 새롭게 제작하였다. 로망포르노란 의무적인 성애장면만 제외하면 그 외 것은 모두 자유였던 닛카츠사의 방침 아래 탄생한, 완성도와 개성을 갖춘 포르노 영화를 말한다.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는 소노 시온의 <안티포르노>, 시오타 아키히코의 <바람에 젖은 여자>를 포함해 총 5편이다.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 선보인 차병길 PD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여성 관점에서의 포르노라는 점에서는) 많이 부족했다.’라는 평을 남기긴 했으나, 이러한 시도 자체가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하다.

*만화(웹툰)

웹툰 쪽에 주목할 작품들이 많다. 기존 성인만화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작품들이 대다수였지만 최근 여성 작가들이 그리는 성인만화들이 늘어나면서 좋은 작품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 중 추천할만한 몇 가지 작품들을 소개한다.

– <나쁜 상사> (네온비, 레진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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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진코믹스 초창기의 매출을 담당한 레진 초기 대표작. 동글동글한 그림체에 코믹한 분위기였던 전작 <다이어터>에서 극화체에 치정 멜로극 으로의 파격적인 변신이 화제가 되었다.

– <밥보다 남친> (R수없음, 레진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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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작가 애인 커플의 섹스라이프 생활툰. 적극적인 여자x조신한 남자의 조합으로 그림체는 귀엽고 아기자기하지만 수위는 절대 만만치 않다. 솔직달달한 것이 특징.

– <새디스틱 뷰티> (글:우연희, 그림:이금산, 레진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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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이 아닌, 여성을 위한 성인웹툰에 한줄기 획을 그은 작품. BDSM에서 펨돔(여성 도미넌트)인 천두나가 주인공으로, 여성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가 적극적으로 표현되며 남 x 여 관계가 전복된 여 x 남 관계가 주로 등장한다. 여, 남 할 것 없이 몸을 예쁘게 그리는 것도 장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레진코믹스 사태에 대해 항의의 의미로 무기한 휴재하다가 결국 연재를 종료했다.

*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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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이란 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 동성 간의 성애 서사를 그린 장르의 총칭이다. 아이돌 팬픽부터 오리지널 만화까지 BL의 범위는 다양하다. BL은 창작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며 향유자 또한 마찬가지인 그야말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포르노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여성 포르노로서의 BL에 대해서도 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BL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독립된 주제로 따로 다루려고 한다. 기대해주시길.

<<더 알고 싶다면 읽어보기>>

– 몸문화연구소, 『포르노 이슈』, 그린비, 2013 : 진화심리학부터 법학, 페미니즘까지 7명의 연구자가 7개의 관점에서 바라본 포르노를 담은 책. 각 분야에서 포르노에 대해 깊이 있게 논하고 있기 때문에 포르노와 관련된 이슈를 한 번에 압축적으로 보기 좋다.

– 한가지가지, 015B 4호 <자학하지 말고 자위하세요> : 여성 포르노 이전에 여성 자위부터 생소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자. 연희관 자치도서관과 015B 티스토리에서 열람 가능.

– 알리스 슈바르처,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 전 유럽을 뒤흔든 여자들의 섹스 이야기』, 미디어일다, 2017 : 여성 오르가슴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여성 오르가슴에 대한 여성들의 진솔한 인터뷰들을 담았다.

 

글 / 오늘

편집 / 저년이

   [ + ]

1. 실제로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연구팀이 20대 남성의 포르노를 접한 경험 여부에 따른 비교연구를 위해 실험대상자를 모집했으나 무경험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세상에 ‘야동’ 안본 남자는 한 명도 없다”, <조선일보>, 2009.12.03.
2. 2012년 출간된 책 제목이기도 하다. 오기 오가스•사이 가담,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웅진지식하우스
3.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도널스 시먼스, 『섹슈얼리티의 진화』, 한길사, 2007, 특히 6장이나 몸문화연구소, 『포르노 이슈』, 그린비, 2013 1장을 참고할 것.
4. Pornhub에서는 매년 자사 사이트 방문객들에 대해 국가, 성별, 연령, 성 지향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세분화된 통계를 낸다. 올해의 인기 키워드나 장르는 물론, 심지어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접속한 시간대나 기기에 대해서까지 통계가 있다. 2017년 통계 링크
5. 페미니즘 진영에서 포르노는 성매매와 마찬가지로 몇십 년에 걸쳐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인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지점에서 포르노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Mackinnon)은 포르노그래피의 생산이 여성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강제를 수반한다고 비난했다. (참고 : “Feminist views on pornography”, Wikipedia)
6. “포르노는 이제 노(No!) 포르나(Porna)를 논한다”, <미디어 오늘>, 2005.03.23.
7. “[동상이몽] 포르노 – 심리학 vs 현대사”, <Goham>, 2012.05.14.
8.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누구든지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을 유통해서는 안 된다.’ ‘음란물’이란 성인들은 봐도 괜찮은 ‘성인물’과 달리, 성인조차 봐선 안 되는 것으로 음란물이 무엇인지는 법률적 판단에 따른다. 판례에 따르면 ‘음란’은 ‘인간 존엄 또는 인간성을 왜곡하는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아무런 문학적·예술적·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단순 성기 노출만으로도 음란물로 분류되는 등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9. “여성이여, 욕망하며 사랑하라!”, <고대신문>, 2008.09.28.
10. 올해부터는 토론토 국제 포르노 페스티벌(Toronto International Porn Festival)로 이름을 바꾼다. 공식 홈페이지
11. 같은 기사, <허핑턴포스트>
12. “[필진] 벌거벗은 페미니스트와 여성주의적 포르노”, 한겨례, 06.09.13
13. 기존에는 흔히 ‘몰카’라고 불렸으나 ‘예능에서 유래된 ’몰카’라는 표현이 범죄의식을 약화한다’라는 비판 때문에 정부에서 범죄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불법촬영’으로 용어를 변경했다. 소위 ‘국산 야동’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영상들은 절대다수가 불법촬영물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