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핏츠 디자이너가 졸전 준비 중에 잠은행에 대출땡기면서 만들어낸 행사 포스터

미스핏츠 디자이너가 졸전 준비 중에 잠은행에 대출땡기면서 만들어낸 행사 포스터

참을 수 없는 아이돌 존재의 가벼움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다음 달 초에 내 아이돌1)모두들 아신다면 따라해주세요. All I wanna do!이 기습 컴백을 할 것이라는 기사가 났다. 이제 남은 5월 동안은 각종 스포와 티저 사진, 영상, 떡밥이 난무할 것이다. 여행도 가기 전 준비할 때가 가장 재밌듯, 이번엔 또 얼마나 멋짐이 터지는 모습으로 나올지 기대하는 이 시간이 모든 덕후들에게 컴백 자체만큼 소중하다. 컴백 시기가 다가오면 경건한 마음가짐과 함께 빵빵한 통장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새로 나오는 앨범, 신곡으로 채워질 콘서트 티켓, 공식 굿즈, 팬 싸인회, 콘서트가 끝난 후 나오는 DVD 등 소속사에서 내놓는 라인업만 해도 어마무시한데, 내 아이돌이 광고하는 상품이나 팬 커뮤니티에서 거래되는 비공식 굿즈도 만만치 않다. 이 모두를 구비할 수 있는 넉넉한 재정상황은 풍요로운 아이돌 덕질의 전제조건이다.

KakaoTalk_20180511_152404551

KakaoTalk_20180511_152452591

의도치 않은 실명공개는 차치하고..나는 콘서트도 가고 디비디도 샀다 에베베 에베베 풍요로운 덕질 체고,,,, (이렇게 지르고 이번 달 하루 한 끼를 줄인 건 함정 ㅎ)

바야흐로 아이돌 산업의 호황기다. BTS가 빌보드에서 컴백한다는 소식은 아이돌 팬들의 관심을 넘어 전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국내 인기 아이돌은 웬만한 중견기업 이상의 수익을 낸다. 일본, 중국, 미주 등에서 해외 투어를 하며 일명 ‘국위선양’하는 K-pop 선두주자들이 아이돌이다. 이들의 행보와 관련된 기사는 이제 연예면을 넘어 사회면, 경제면으로 진출했다. 이번 분기 어떤 아이돌 그룹이 얼마만큼 경제적 효과를 발생시켰는지, 한 아이돌이 광고한 기업의 연매출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그들의 영향력이 우리 사회 전반에 어떻게 퍼져있는지를 자주 이야기한다. 아이돌들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시장가치와 구체적인 숫자로 성공을 증명‘받는다.’ 2)호황인 만큼 아이돌 산업 내부 양극화, 격차도 매우 크다. 이 부분은 다른 하나의 글로 다뤄야 할 정도의 내용이어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DFASKLJFSLA DFKLADKFAS DKFSALFASLKDFAD FLJKDAL

그런데 가끔 웃픈 상황과 마주한다.

“야 뫄뫄 그룹 이번에 정산을 억 단위로 받았다더라.”

“뉴스에 계속 뜨던데. 어린 나이에 부럽다..”

“그치? 이번에 콘서트도 몇 초 만에 매진됐더라고. 근데 얘는 누구야? 얘도 아이돌인 것 같은데..”

“? 니가 방금 말한 뫄뫄 그룹 멤버요..(당황)”

숫자는 남고, 아이돌은 사라졌다. 아이돌의 경제적 성과가 치켜세워지는 동안 그를 이룩해낸 당사자들의 존재가 희미해졌다. 위 대화는 어쨌든 구성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들을 때가 종종 있다. 덕판3)덕후 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공간에 상주하고 있는 아이돌 덕후가 아니라면, 머글4)아이돌 팬이 아닌 비 덕후들을 비유하는 말. 해리포터에서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의미를 가져왔다.들이 아이돌 멤버들 이름을 모두 알거나 그들의 노래를 찾아듣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여러모로 후려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은 솨솨(가장 인기 있는 멤버) 그룹이잖아.”, “아이돌 노래는 음악성이 없어서 안 들어5)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악성은…뭘까…정말 뭘까…”, “1위하고 그런 거 다 팬들이 만들어주는 거지, 노래가 좋아서는 아니지 않나?(^^..노래 한 번은 들어보고 이런 말 하니…? 그냥 좀 궁금해서..)” 참고로 이 말들은 전부 아이돌 덕후인 내가 한 번 이상씩 들었던 적이 있는 레알 팩트이다.

KakaoTalk_20180511_153743262

(할많하않)

아이돌이 재현하는 자신들의 노래이자 작품. 그 속의 인문 찾기

내 아이돌이 높은 숫자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지 않다.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그 숫자를 이뤄낸 당사자는 어디 있는가? 아이돌이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해석될 수는 없을까? 그들의 음악은 정말 ‘음악성’ 없는 기계음에 불과한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던 중,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idol4

행사를 진행한 안암오거리 부근에 위치한 학술생활예술공간 @861[at861]

아이돌의 노랫말은 너무 가볍고 뻔하다고? 천만에, 거기엔 반짝이는 인문(人文)의 향취가 베여있다!

아이돌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는 경제 매거진과 상품 가치를 수치화하는 기사들 속에서, 「아이돌을 인문하다」는 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상상력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이돌의 노랫말에서 어떤 인문학적 키워드를 찾아냈을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미스핏츠에서 황금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5월 4일, 저자를 직접 모시고 북콘서트를 열었다.

idol1

책을 사면 받을 수 있는 한정판 굿즈(노트+엽서세트)의 모습

“왜 사람들은 아이돌 노래에 열광할까요? 저는 스토리텔링과 퍼포먼스의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뒤 흔들리고’ ‘Shaking’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잖아요?” (트와이스, Heart Shaker)

아이돌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살면서 한번은 겪어봄직한 사건들, 느껴봄직한 감정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사랑, 이별, 용서, 열정 등에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공감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6)현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제우스로 대표되는 수많은 빻음 포인트가 넘쳐나지만.. 몇천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드라마에서 활발히 차용하는 내용은 신화에서부터 이어져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가장 보고싶고 필요할 때 없어져버렸다는 서사는 얼마나 흔히 볼 수 있는가 아직까지도 인류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보편적인 인간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질투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측은히 여긴다. 정교화게 상품화된 아이돌의 노랫말에도 이런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 시장 가치를 위한 보편성을 획득해야 하는 대중 예술의 숙명은 역설적으로 그 작품이 (시장 가치와는 멀어 보이는)인문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idol3

중간중간 이렇게 아이돌의 뮤비도 함께 찾아봤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며 이런 참고자료를 함께 보기가 어디 자주 있는 경험인가.

“아이돌은 상품이면서 상품이 아닙니다. 음악을 통해 대중의 인기를 좇으면서 그 속에 자신들의 자의식을 녹여내죠.”

아이돌이 상품으로 기획되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철저한 시스템과 관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온전히 상품인 것만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아이돌은 표현하고, 경험을 재현하고, 성장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속사의 기획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작곡을 쓴다. 상품으로 세상에 등장한 이들이 스스로의 비 상품성을 증명하는 방식은 이렇듯 다양하다. 상품과 비 상품(예술, 자아실현 등의 가치)의 경계에서 미묘한 경계 넘기를 하며 아이돌은 아이돌로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책에서도 언급된 BTS이다. 데미안을 모티브로 한 ‘피 땀 눈물’, 세월호 추모 모티브와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7)소수를 희생시켜서 다수가 행복을 얻는 것은 옳은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소설을 차용한 ‘봄날’ 뮤직 비디오. 고전 인문 소설을 통해 개인 서사를 풀어냄과 동시에 ‘성장’하고 있는 아이돌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그들의 음악과 작품에 숨겨진 미묘한 인문학적 장치들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는가?"는 질문을 남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유토피아는 존재하는가?”는 질문을 남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나는 누구일까, 뭘 하는 사람일까. 아이돌의 노랫말을 통해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일, 나를 찾는 일은 ‘인문’의 시작이 아닐까. 그저 중독성 강한 후크송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돌들의 노랫말을 통해 저자는 인생을 관조했다. 자신은 아이돌 팬덤도 아니고 평범하게 자기 세대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제 3자의 시선에서 아이돌 음악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그들의 노래엔 분명 삶이 던지는 키워드와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처음 아이돌이 데뷔할 때 명확한 기본 컨셉을 잡고, 이후 발매되는 앨범에서 그를 점점 발전된 형태로 보여주는 과정 자체가 한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삶의 궤적과 닮아있다.

idol2

토크콘서트를 진행한 박지원 저자의 (거울에 비친) 모습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고민과 이야기는

독자 분들과 저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질문이 쏟아지고 의견 교환의 장이 이루어졌다. 방탄소년단의 초기 음악들에서 등장한 성차별적인 노래 가사와 그에 대한 사과, 여성 아이돌의 소아 성애적 컨셉에 대한 비판, 수동적인 여성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랫말 등 아이돌 산업에 대한 비판적 담론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었다.

“어딘가 멍하게 바라보고, 손을 숨기고, 모은 다리를 무릎부터 벌린 수동적인 아이유의 사진들을 사람들이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아, 소녀를 상징하는 듯한 모티브를 영향력 있는 대중가수가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린 아이를 성상품화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잖아요.” (독립 아이돌 비평 잡지 제작자 A)

“이번에 오마이걸 유닛이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라는 노래를 들고나와 좀 충격이었어요. 전 진짜 바나나 알러지가 있어서 (노랫말과는 다르게) 바나나 우유도 못 먹거든요. 춤 중에 다리를 벅벅 긁는 동작은 정말 불편했어요. 알러지 환자들을 희화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어쨌든 이 노래를 만든 사람들이 바나나 알러지를 겪는 사람들의 존재를 한 번이라도 고려했다면 이런 가사, 이런 춤이 나왔을까요?” (아이돌 엔터테인먼트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 B)

DSLKFJASL

논란이 된 다리를 긁는 듯한 안무 (출처 : 오마이걸 반하나 뮤비 캡처)

아이돌 산업의 성(性) 산업적 측면을 인문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 불가능할까?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했고, 저자도 중시했던 ‘보편’은 정확히 무엇일까? 아이돌과 그들의 노래에서 인문을 탐구한 「아이돌을 인문하다」는 이처럼 새로운 질문과 상상력을 남겼다.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이 아닌 작품이자 그를 구성해낸 인간으로서의 아이돌을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고전, 인문, 철학을 좀 더 살갑게 느낄 수 있었다. 미처 해결되지 못한 물음이 이렇게 끝나버리면 아쉬울 것 같아서 그런데

작가님, 다음 책은요? (악마의 미소)

지금 이 책은 여러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지금 이 책은 여러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글 및 편집 / 싱두

사진 / 수련

장소 / 학술,생활예술공간 @861 [at861]
(동대문구 안암로 86-1 1층)

   [ + ]

1. 모두들 아신다면 따라해주세요. All I wanna do!
2. 호황인 만큼 아이돌 산업 내부 양극화, 격차도 매우 크다. 이 부분은 다른 하나의 글로 다뤄야 할 정도의 내용이어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3. 덕후 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공간
4. 아이돌 팬이 아닌 비 덕후들을 비유하는 말. 해리포터에서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의미를 가져왔다.
5.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악성은…뭘까…정말 뭘까…
6. 현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제우스로 대표되는 수많은 빻음 포인트가 넘쳐나지만.. 몇천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드라마에서 활발히 차용하는 내용은 신화에서부터 이어져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가장 보고싶고 필요할 때 없어져버렸다는 서사는 얼마나 흔히 볼 수 있는가
7. 소수를 희생시켜서 다수가 행복을 얻는 것은 옳은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