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대도시 한 가운데에서 그럭저럭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으며, 여성 인권과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트윗과 기사를 매일같이 체크하고 퍼나르는 부지런한  LGBT+당사자이지만, 막상 신주쿠에서 성차별과 성폭력 철폐를 위한 집회「私は黙らない(나는 입다물지 않겠다)」가 열린다는 사실은 몰랐다. 저 멀리(?) 한국에 있는 친구가 전날에 해시태그가 붙은 트위터로 정보를 전해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모를 뻔 했다.

기적과도 같은 스케줄. 마침 그 날은 같은 LGBT 당사자인 친구와 신주쿠의 퀴어 거리에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집회가 열리는 오후 4시쯤 신주쿠에 도착했다. 

뒷편으로 JR선 신주쿠역과 방탄소년단(!)이 보인다

뒷편으로 JR선 신주쿠역과 방탄소년단(!)이 보인다

허겁지겁 도착한 신주쿠 동쪽 출구의 큰 광장. 그곳에서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LGBT 관련한 분야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한국보다 다소 진보적인 추세를 보이는 일본이지만, 여성인권, 특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연 이것이 선진국의 의식인가 의심을 품을 정도로 많이 뒤쳐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선은 이런 집회가 도쿄의 중심 신주쿠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충격을 넘어 하나의 끓어오르는 희열로 다가왔다.

일상적인 セクハラ1)세쿠하라. sexual harassment성희롱을 뜻하는 용어

수많은 플랜카드, 여성, 남성, 어쩌면 제 3의 성, 젊은 사람, 노인, 외국인, 각종 미디어. 간이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평범했고, 밝은 배경음악과 함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로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숱한 차별적인 발언, 패션잡지를 여는 순간 쏟아지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 듯한 문구,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성폭력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사회 구조. 그동안 아무도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았을 뿐, 정말로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간이무대와 북적이는 참가자들

간이무대와 북적이는 참가자들

페미니즘과 젠더 사상을 공부하는 남성 대학원생은 이렇게 말했다.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의 당사자는 여성과 성 소수자 뿐만이 아닌 남성도 포함된다고. 이렇게 집회에 나와있는 본인도, 압도적으로 남성 우위인 사회 구조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억압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사회구조 안에서 남성이 주장하는 ‘남자도 힘들게 산다’ 라는 불편함과, 생명과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일상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여성의 불편함은 애초에 같은 선 상에 놓고 비교해서는 안되는 문제라고.

편집자주 : 그리고 이 말 뒤에는 "너희 여자는 좋겠다. 멋있는 남자를 고르기만 하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마츠이 유세이 작  1기 20화 갈무리)

편집자주 : 그리고 이 말 뒤에는 “너희 여자는 좋겠다. 멋있는 남자를 고르기만 하면 되잖아.”라고 한다. (마츠이 유세이 작 <암살교실> 1기 20화 갈무리)

일본에서 숱한 폭력을 겪고 살아남아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피해자가 비난 받아야하는 이 사회 구조 안에서, 결국 듣지 못했던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그 말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며. ‘나의 몸은 상품이 아니다’, ‘나의 복장은 너의 범죄를 용납하는 초대장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가 여성에게 덮어 씌우려 하는 ‘여성다움’은 하나의 저주라고. 매일이 즐거운 당신, 매일이 살기 힘든 당신, 목소리를 내어 싸우는 당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당신, 모든 당신들의 생각과 발언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그리고 모든 여성들에게, 자유로워지라고, 일어나자고, 네 자신이 생각하는 굉장한 여성이 되라고.

지나가던 사람이 혹여 야유와 비난을 던지거나 폭력적인 태도로 무대를 방해하는 것을 아닐까 하는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찬동의 박수, 나도 그렇다 라는 목소리, 공감의 눈물, 반성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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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도 같은 또다른 일상, 연대

연설이 끝났다.

이 순간 벌어지는 기적과도 같은 또다른 일상을 눈 앞에 두고 나는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우뚝 서있었다.

멋있다. 사람답다. 자유롭다.

너무 고맙다.

같은 성 소수자 당사자인 친구에게도, 페미니즘에 대한 막연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으면 어쩌지, 집회에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도 될까 하고 고민했던 나. 집회 장소에 도착해서도 사진은 찍히기 싫어서 쭈뼛쭈뼛 조마조마 하면서 현장을 촬영 했던 나.

나는 정말이지 겁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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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고 해야할지2)이것을 다행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겁쟁이의 방증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집중해서 진지하게 경청하며 때론 함께 박수도 쳐주는 친구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너는 나보다 더 경청한 것 같다.

「すごかった (대단했어)」라고 내 눈을 보고 이야기해줬다.
연대라는 것이 그런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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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O의 야마구치 타츠야가 벌인 미성년 대상의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여전히 ‘피해자인 고등학생이 야마구치의 부름을 받고 간 것 자체가 잘못이다’, ’키스 한 것 정도로 유난을 떤다’, ‘자기 방어를 하지 않고 성폭력을 예측하지 못한 피해자가 잘못이다’ 등 믿을 수 없는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벌벌 떨고 비난부터 하고 보는 잘못된 분위기가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 인기 그룹 토키오(TOKIO)의 멤버 야마구치 타츠야가 과음 후 미성년자인 피해자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했다고 전해졌다. 영상 갈무리 출처 - NHK NEWS WEB (TOKIO 山口達也メンバー 強制わいせつ容疑で書類送検, https://www3.nhk.or.jp/news/html/20180425/k10011417181000.html?utm_int=news-new_contents_list-items_002)

일본 인기 그룹 토키오(TOKIO)의 멤버 야마구치 타츠야가 과음 후 미성년자인 피해자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했다고 전해졌다. 영상 갈무리 출처 – NHK NEWS WEB3)TOKIO 山口達也メンバー 強制わいせつ容疑で書類送検, https://www3.nhk.or.jp/news/html/20180425/k10011417181000.html?utm_int=news-new_contents_list-items_002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에게 범죄의 원인을 묻는 발언은 잘못되었다’, ‘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 자체가 애초에 불균형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고쳐 나가야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다’라고 의식 계몽에 힘쓰는 수많은 이름 없는 목소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가 너의 가족이라고 생각해봐” 라는 말을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약자가 보호되어야 할 이유는 그가 누군가의 소중한 관계에 놓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명제를 주장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목소리를 더 내야하는 걸까.

지금까지 쉬쉬하며 은폐되어왔던 폭력, 권력의 불균형, 약자의 목소리가 하나 둘 ‘Me too’를 외치며 답답한 옷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한 줄기의 빛이 모여 두꺼운 벽에 구멍을 내기 시작한다. 작은 파동이 하나 둘 모여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점점 큰 원을 그려나가는 그런 이미지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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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지금은 하나의 과도기를 살고 있다. 이 통증은 누군가 특정 인간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픔이며, 이 사회가 더 큰 평등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지독한 성장통이라고, 그리고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인간 답게 살고, 자신답게 사는,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너와 내가 가진 생각의 힘, 가능성과 함께.

 

글 및 사진 / 스칼라
편집 / 수련

   [ + ]

1. 세쿠하라. sexual harassment성희롱을 뜻하는 용어
2. 이것을 다행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겁쟁이의 방증이다
3. TOKIO 山口達也メンバー 強制わいせつ容疑で書類送検, https://www3.nhk.or.jp/news/html/20180425/k10011417181000.html?utm_int=news-new_contents_list-items_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