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앤젤레스의 1월 셋째주 기온표. 으악 추워.

로스 앤젤레스의 1월 셋째주 기온표. 으악 추워.

 WMLA2018이 있었던 1월 20일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로스엔젤레스는 1월임에도 섭씨 이십도를 웃도는 기온이기 때문에 평소라면 최대한 얇은 옷을 걸치고 길을 나섰겠지만 이 날만큼은 두꺼운 후드집업을 벗을 수 없었다. 나의 최후 양심으로 왼쪽 가슴에 붉은 장미가 자수로 박힌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지퍼를 열고 걸었다. 바람이 적당히 멎으면 벗어 던지려고 했지만 바람이 추워서 도저히 벗을 수가 없었다. 과거의 투표권이 없었던 여성들은 이러한 찬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겠지. 2018년의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찬 바람을 맞으며 Pershing square에서 Grand park까지 걸었다. 그 길을 함께 걸어 공원까지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진 못했다. 나는 인터뷰하기에 영어가 아직 서툴다는 사실도 깨달았다.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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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춤 추기도 하고, 팻말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함께 걸었다. 나도 그 속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WMLA는 다양한 사회 이슈와 연대하고 함께하는 행진이었다. 장애, 노동, 성정체성과 지향성, 의료, 이민, 동물권 등의 이슈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함께 모였다. 하이데 알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연대하는-이슈

하이데는 신기한 향을 들고 다니는 참가자였다. 마리화나인지, 그저 테라피인지 물어보기에 조금 조심스러웠다.1)로스 앤젤레스는 마리화나 흡연이 합법인 카운티이다. 다운타운에서 묘한 허브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마리화나일 가능성이 높다. 이 행진에 왜 오게 되셨나요? 라는 흔한 질문에 하이데는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다른 운동과 연대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가부장제를 타파해야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번 행진이 첫 참여라는 하이데 역시 Grand Park 건너편 한 곳에서 공화당 사람들이 반대 시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공화당 사람들의 반대 시위(?)에 맞서 확성기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공화당 사람들의 반대 시위(?)에 맞서 확성기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사실 트럼프를 반대하는 백인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죠. 백인들은 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반대 시위에 있었던 사람들 봤어요? 생각보다 백인 아닌 사람들도 있지 않았어요? 흑인도 있고, 아시아계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도 또 놀랐죠. 평등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 나서서 불평등을 지지하는 게 이상해요.”

하이데는 그래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많아서 기운이 났다고 말을 이었다. 나중에는 5억 명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2)당일 주최측 추산 약 명 참가

취재 이전에 사람 멀미로 내가 죽을 것 같은데욧…!

취재 이전에 사람 멀미로 내가 죽을 것 같은데욧…!

 이 곳에 모인 사람들 중 몇 명은 ‘교차 페미니즘’3)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또는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은 상호교차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의 한 갈래이다. 페미위키, https://femiwiki.com/w/%EC%83%81%ED%98%B8%EA%B5%90%EC%B0%A8%EC%84%B1_%ED%8E%98%EB%AF%B8%EB%8B%88%EC%A6%98에 대한 팻말을 들고 있었다. 백인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같은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로스 앤젤레스에 있는 동안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손에 꼽고, 그 정도도 매우 얕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안전했다는 것은 아니다. 겨우 몇 달 이 곳에서 머무는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이데는 더 많은 문제들이 밝혀져야한다고 말했다. 이 행진이 인종차별 이슈를 연대하며 진행한 것처럼, 더 많은 이슈들과 함께 연대해야한다고 말했다.

'교차성 없는 페미니즘은 백인우월주의이다'

‘교차성 없는 페미니즘은 백인우월주의이다’

연대하는-사람들

WMLA2018에는 나 같이 혼자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 심지어 댕댕이들(!) 등 어쨌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들이 함께 참여해서 선창에 맞춰 문구를 외치고 북을 두드리며 춤을 췄다. 4)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춤신춤왕 못지 않은 사람들이 내 안의 흑염룡을 불러일으켰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그냥 카메라를 흔드는 정도로만 표출했다. 둠칫둠칫.다들 신이 나 있었고, 웃고 있었다. 학교 친구들끼리 참여한 몇 인물과 이야기를 나눴고 다들 너무 신이 나있었다. 그 중 제이린과 그 친구들5)이름을 모르는 게 아니라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스스로를 소개했다…!6)이하 답변들은 제이린 개인이 답한 부분도, 제이린의 친구들이 답한 부분도, 함께 답한 부분을 포함했다. 역시 내가 행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점 찍어둔 인터뷰이 중 한 명… 아니, 한 무리였다. 제이린과 그 친구들은 하이데가 말했던 공화당의 반대 시위에서 춤 추고 소리 지르던 무리 중 하나로, 특히 확성기도 없는데 쩌렁쩌렁하게 “응 안들려~(I can’t hear you!)”라고 외쳤다.

완전 잘 노는 흥페미~

완전 잘 노는 흥페미~ (이분들은 제이린과 친구들이 아닙니다)

 

저 무리 중에 제이린과 친구들이 있다.

저 무리 중에 제이린과 친구들이 있다.

제이린과 친구들에게 역시 이 행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우리가 이 이슈에 관심이 많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참가자라고 말하고는 고민하다가 쑥쓰러운 듯이 “응원하는 사람…?”하고 덧붙였다. 말을 끝내고 나서는 서로를 바라보며 큭큭 웃었다.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WMLA2018에 참가한 제이린과 친구들은 이 행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며 아주 강한 확신이 보였다고한다. 그리고 그 확신 안에서 편안했고. 아마 사람 멀미가 있는 내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제이린과 친구들이 느꼈던 편안함을 나 역시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마리화나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어쨌든 이곳은 안전했다. 나와 똑같지 않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이곳에 있었다. 제이린과 친구들은,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갈 길은 멀죠. 하지만 계속 바뀔 거예요. 사람들이 힘이 생기고 이 곳에서도 그렇듯이 주의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저희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희망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앞으로 좋아질 거라고 믿어요.”

나는 제이린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행진이 사라지는 끝으로 향했다. 후속 행사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나누기도 하고, 행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눈이 마주친 제이린과 친구들이 아는 체를 해주었다. 끝났다! 라는 말이 없이 나 역시 숙소로 돌아갔다. 전부 꿈 같기도 했다. 저 규모로 이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길로 나와줄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끼리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어느 새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 쪽에 서 아마 친구들과 함께 행진에 참가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행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Pink pussy cat 모자를 쓰고, 팻말을 든 채로 스스로의 집으로 돌아가 아마 각자의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이 곳에 모였지만, 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언젠가 다시 모이겠지. WMLA2018이 끝난 그 다음 주, 우연히 Pershing Square 근처에 왔다가 바닥에 흔적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탄산분필로 써서 이제 색만 남아있었지만 나는 이 흔적이 아주 오랫동안 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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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및 편집 / 이점

 

   [ + ]

1. 로스 앤젤레스는 마리화나 흡연이 합법인 카운티이다. 다운타운에서 묘한 허브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마리화나일 가능성이 높다.
2. 당일 주최측 추산 약 명 참가
3.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또는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은 상호교차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의 한 갈래이다. 페미위키, https://femiwiki.com/w/%EC%83%81%ED%98%B8%EA%B5%90%EC%B0%A8%EC%84%B1_%ED%8E%98%EB%AF%B8%EB%8B%88%EC%A6%98
4.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춤신춤왕 못지 않은 사람들이 내 안의 흑염룡을 불러일으켰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그냥 카메라를 흔드는 정도로만 표출했다. 둠칫둠칫.
5. 이름을 모르는 게 아니라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6. 이하 답변들은 제이린 개인이 답한 부분도, 제이린의 친구들이 답한 부분도, 함께 답한 부분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