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말하기란 무엇인가. 쓰기는 또 어떤가. 초 단위로 올라오는 수많은 기사와 논평, 입장문을 오늘 아침에도 읽었다. 학자들은 글과 말로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발표하고, 공인들은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기자회견을 연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와 쓰기의 예시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람들은 그것들에 충분히 둘러싸여있다. 우리는 말과 글의 세상에 살고 있다.

뉴스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설명해줬다. 순간 눈을 의심 (출처 : JTBC 뉴스룸 캡쳐)

뉴스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설명해줬다. 순간 눈을 의심 (출처 : JTBC 뉴스룸 캡쳐)

모든 사람은 말하고 글을 쓴다. 직접적일수도, 어떤 매개를 통해서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4년 전 4월 16일을 언제나 기억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은 많이 없지만, 그날 이후 가방에 달고 다니는 노란 리본이 나 대신 그 사실을 말해준다. 노란 리본을 달기로 결정한 사람은 나 자신이고, 사람들은 그 작은 소품을 나의 말하기로 이해했다. 그걸 보고 자신도 140416을 추모한다며 공감을 표시한 사람이 있었고, 그런 거 달고 다니면 이상한 오해를 산다며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요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 많이 본다. 저기...빨간 거는 익숙한데...읍읍... (출처 : 스브스 뉴스 공식 페이스북 영상 캡쳐)

요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 많이 본다. 저기…빨간색 사자는 익숙한데…uㅅu)*..읍읍… (출처 : 스브스 뉴스 공식 페이스북 영상 캡쳐)

이런 세상에서 말하고 쓰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셀 수 없는 말과 글들이 조용히 사라지거나 묻힌다. 뉴스로 살아남는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특이하고 중대한 내용이거나, 강력한 어조, 문체, 매개를 통해 나온 것들 정도다. 말하는 이, 글쓴이 앞에 여러 권위 있는 수식어가 붙을 때 그의 발화는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공적 영역에서 ‘선택된’ 이야기는 이처럼 그럴싸한 조건 몇 가지 이상을 충족한다. 그런데 그 조건은 누가 만든 것일까. 말과 글의 세상에서 아침을 맞지 못해 어두운 밤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들은 왜 그곳에 있는 것일까.

# 2

지난 2009년 배우 장자연은 연예계 성상납 리스트의 존재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록에는 우리 사회 남성 권력자들의 이름이 상당수 적혀있었다. 안타까운 죽음을 동반한 글쓰기는 처음 공개되었을 때 대중의 공분을 샀다. 많은 여성단체에서 엄중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의 시의성과 특이성이 점점 바랬다. 관련 보도가 줄어들고 사람들은 그 일을 입에 잘 담지 않게 됐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리스트에 올랐던 남성들이 대부분 무혐의를 받거나 약한 처벌로 사건이 마무리됐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죽음을 감수했던 애처로운 글 하나가 그렇게 그 시기의 황혼 너머로 졌다.

출처 : 채널A 뉴스 장자연 리스트 관련 보도 캡쳐

출처 : 채널A 뉴스 장자연 리스트 관련 보도 캡쳐

2016년 10월 중순, 트위터 상에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오타쿠 문화, 게임회사, 문단, 공연계, 교회, 대학, 스포츠계 등 다양한 분야에 속한 트위터 유저들이 내집단의 공공연한 성폭력 문화를 고발해 공론화시키려 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가해 사실을 부정했다.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상에 만연했던 성폭력 문화는 폭력과 범죄로 기록됐다. 이전부터 활동했던 혹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생겨난 반성폭력 지향 모임, 시민단체들은 피해자 여성들의 증언을 정리했다.

1년 뒤 미국 영화계에서 유명 영화감독의 오랜 성폭력을 폭로하는 여성 배우들의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많은 여성 배우들이 #MeToo 해시태그를 걸며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권위 있는 몇몇 시상식에서 레드카펫을 밟은 이들은 미투 운동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한동안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 미투의 물결은 곧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뉴스에 출연해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증언한 이후 #ㅇㅇ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에 #MeToo 해시태그가 함께했다. 연대한다는 의미의 #WithYou도 생겼다. 몇몇 여성의 용기 있는 말하기와 쓰기에서 시작한 운동은 일상적 투쟁으로 이어졌다.

성폭행 사건을 폭로한 여성들을 표지 모델로 한 타임지

성폭행 사건을 폭로한 여성들을 표지 모델로 한 타임지

# 3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여성의 말하기는, 쓰기는 무엇인가? 여성의 이야기가 당사자의 입장에서 서술됐던 역사는 존재했던가. 수많은 텍스트와 발화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여성의 말과 글이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살아남은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 장자연이 생존을 포기하며 써내려간 유서는 남성 기득권의 입장에서 그들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으로 풀이됐다. 그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에서 여성 영웅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여성의 이야기가 ‘여성’ 이라는 수식어를 단 채 예외이고 특별한 케이스로 남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그들의 발화를 어두운 밤에서 아침으로 끌어내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성' 아이돌이 최근 읽은 책 한 번 소개했다고 포토카드 불지르는 현실... 그 책 다른 '남성' 연예인들이 읽을 땐 왜 아무 말 없으셨어요..? 아니 진짜 궁금해서.. (출처 : 스브스뉴스 캡쳐)

‘여성’ 아이돌이 최근 읽은 책 한 번 소개했다고 포토카드 불지르는 현실… 그 책 다른 ‘남성’ 연예인들이 읽었다고 했을 땐 왜 아무 말 없으셨어요..? 아니 진짜 궁금해서.. (출처 : 스브스뉴스 캡쳐)

여성의 말과 글은 오랫동안 대리하는 무언가를 통해서만 주목받았다. 무언가는 대부분 아버지, 아들, 남편의 입이거나 그와 연관된 남성 중심적 언어 및 매개였다. 여성들은 어느 순간 이 한계를 본인의 의지로 극복하기 시작했다. 타인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자신 그 자체인 이야기를 스스로의 입과 손으로 구성했다. 선거권과 교육권을 요구하는 강력한 투쟁을 벌였고 다양한 형식으로 신체 자기결정권 확립, 성평등 사회 구현을 주장했다. 때로는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 거대한 사회 구조를 흔든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 여성의 글과 목소리는 남성의 언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OO계_내_성폭력과 #MeToo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여성의 말하기와 글쓰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여성들이 함께 말하고 이어 쓰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값이었던 성폭력/강간 문화를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공격하고 있다. 연대는 한 국가를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기존 규칙대로면 선택받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공적 영역에서 뉴스로 재구성되고 있다. 재편된 이야기가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는가는 아직 의문이지만, 이후 여성들의 발화가 거대한 변화의 가능성지금을 이어갈 수 있는 용기라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4

지난 3월 7일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토크콘서트에 다녀왔다. 그 며칠 전에는 미투 운동 이후 모든 성폭력에 저항하는 성토대회에도 참여했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말하는 행사에 가는 날은 언제나 설렌다. 타인의 입장에서 그려진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상상하기 힘든 개별 서사를 지닌 주체로서의 여성들과 한 자리에서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투 블럭 머리 스타일을 다듬으러 갈 때마다 이상한 시선을 받는다는 분, 가정 내 성폭력으로 남편과 이혼한 후 남성 중심적 법조항 때문에 아들을 몇 년 째 못 보신 분, 월경을 주제로 여성의 몸과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신 분, 사이버 성폭력의 특수성과 심각성을 주장하며 관련 피해자들을 지원하시는 분 등이 말하고 쓰면서, 혹은 언어화할 수 있는 다른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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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속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여성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새벽녘 즈음에 와있다. 완전한 아침을 맞고 햇빛과 마주하려면 앞으로의 말하기와 글쓰기를 더욱 상상해야 한다. 여성의 말과 글이 당연했던 모든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해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여성을 타자화했던 남성의 언어와 어떤 점에서 더욱 차이를 둬야하는가. 다른 이를 배제하고 삭제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여성의 말하기와 쓰기에서 왜 중요한가. 우리는 아직 할 말, 쓸 글이 많기에 이 같은 상상력과 질문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 말과 글의 세상에 새롭게 도래할 밝은 아침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독점적이지 않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이다.

글, 사진, 편집 / 싱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