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08년 겨울, 정확히는 2009년이 시작되던 때,

친척분의 소개로 과외를 처음 하게 됐다. 낮에는 과외하고 밤에 pc방에서 알바를 하다니, 주경야독도 아니고 주경야경. 대견스럽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급을 계산해보니 대략 2만원 정도가 나왔다. 전화를 드렸다.

나의 첫 과외 학생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준비를 하던 남학생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도 이제 성인이 되어 어디선가 알바를 하거나, 이 글을 읽고 있을 수도 있겠다. 군대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에 맞춰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평생을 배우기만 하다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이 된다니, 이거 원, 영 어색해 견딜 수가 없다.

가르치는 일은 존나 만만한 줄 알았죠.

처음엔 별 준비를 해 가지 않았다. 중딩수학?ㅋㅋㅋ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첫날, 발로도 풀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중딩수학에서 난관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언제부턴가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 있던 나는 중학생의 원론적 개념문제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또다시 별 생각이 다 뇌리를 스쳐갔다. 아 난 참 중학교 때 똑똑했구나 이런 것도 다 알고. 이래서 문과 나온 놈들은 안 돼 등. 버벅거리며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다행히 별 의문 없이 나를 따라왔다. 늦었지만, 미안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첫 과외학생아.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도 학생에게도

 

어설프던 나의 첫 과외 역시,

pc방과 같은 이유로 그만두게 됐다. 다시 생각해봐도 입학처가 나쁘다.

재수 기간을 거쳐 대학엘 왔다. 대학생은 생각보다 재밌는 직업이 아니었고 먹고 살려면 뭔가 일을 하긴 해야 했다. 입학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풍문으로 떠돌던 서울은 마음만 먹으면 과외 재벌도 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역시나, 소문 같은 건 믿을 게 못 된다.

서울만 오면 과외마스터가 되리라던 그는 결국 과외마스터 사이트에 떨리는 손으로 회원가입을 하고 있었다. 과외 알선 사이트란 게 가입한다고 꼭 연결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 아직까지 인터넷을 통해 과외를 구해 본 적이 없다. 남학생들은 여선생님을 원하고, 여학생들도 여선생님을 원한다. 심지어 수학은 이과 출신 선생님을 선호한다. 역시, 문과 나온 놈들은 안 된다. 이과를 갔어야 했다.

조금만… 더 일찍 말해주시지 그랬어요 ㅠㅠ

고향에서 벌어온 돈도 다 까먹어 갈 무렵이 되어서 과외가 들어왔다. 고등학교 선배의 주선이었다. 역시 한국은 인맥사회다. 대한민국 만세! 심지어 과외학생은 쌍둥이였기에 돈도 한 명을 가르칠 때에 비해 훨씬 잘 받았다.  묘하게도 쌍둥이는 미대를 함께 준비하고 있었고, 더욱 묘하게도 함께 재수를 하고 있었다. 수학은 버리고 언어와 외국어를 가르쳐 줄 것을 주문받았다.

풍족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 멀리에는 끝이 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재수생이었다. 수능이 끝나고도 과외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필멸자의 고민이 이와도 같은 것일까. 11월이 다가올수록 몰래 다른 과외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역시나, 구해질 리가 없다. 나는 서울에 연고도 없는 문과출신 남자니까.

그들의 수능이 끝남에 따라 나도 졸지에 백수.

결국 그 친구들의 수능이 끝나자 다시 백수가 됐다. 그 해 방학에는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을 마셨고, 숙취가 찾아왔고, 다시 술을 마셨던 느낌이다. 발전하는 한국사회에 발맞춰 주5일제로 술을 먹어야 한다고 헛소리를 하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돈이 없으니 술집보단 노상을 선호했다. 하지만 여기선 술 얘기가 아니라 알바 얘기를 해야지. 그러니까, 알바를 못 구했단 말이다.

다음 학기도 역시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이번엔 한국장학재단에서 100만원 생활비 대출을 받아 생활했다. 친구들은 이제 대출 받아서 술을 먹냐고 웃었다. 학기가 끝나니 학점이 나왔다. 입대를 했다.

시간이 흘렀다.

복학생은 복학복학해 따위의 말을 하며 복학을 했다. 가을바람은 선선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소득이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에선 역시나 2.5 언저리 학점의 학생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떻게 밥을 벌어먹을까 걱정하던 즈음 군대 선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원에서 일 해볼 생각 없느냐는 말이었다.

소개받은 학원을 찾아갔다. 삼보일배를 하며 가고픈 심정이었지만 훌륭한 대중교통을 놔두고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학원에서 원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고 갔다. 원장선생님은 처음부터 인상이 좋다며 나를 썩 마음에 들어하셨다. 그래 술은 좀 하나? 아 세 병 정도 마십니다. 그래, 다음 주부터 나오면 되겠다. 역시나 미묘하다.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면접이란 느낌은 들었지만 그렇게 새 직장을 구했다. 안녕, 학관 앞에서 망설이다 돌아서던 나날아.

이런 면접까진 아니었어도… 술은 좀 하냐라뇨.

학원이라기보단 그룹과외에 가까운 수업 형태를 보이는 곳이었다. 각각 중2와 고1, 고3 세 반을 맡아 영어를 가르쳤다. 중 2 친구들은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자랑했다. 수업 시작 인사는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하면 안돼요?”였고, 수업 15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인사는 “선생님 수업 그만해요” 였다. 그녀들은 꾸준히 나에게서 과자와 삼각김밥 등을 갈취하려 시도하다 이내 틴탑의 싸인씨디를 구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랬지. 선생님을 하러갔는데 호구가 되어버렸었지. 에이 선생님 돈 많이 벌잖아요 같은 말을 던질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벌긴 버는데 어제 공과금을 내버렸어 얘들아.

 

짤을 보던 그의 팔에는 소름이 오도도 돋아났다(…)

고3반은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수업 중 다른 얘기를 꺼내면 허허 왜 그러실까 하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허허 죄송합니다 하는 눈빛으로 다시 지문을 읽어내렸다.

고1반은 가장 좋아하던 반이다. 똘망똘망했던 이 친구들은 훨씬 간접적으로 수업하기 싫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하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로 운을 슬쩍 띄우면 나는 못이기는 척 얘기를 들어줬고 ‘그러니까 인생은 싸인그래프 같은거야. 가끔 y절편이 높은 친구들은 있지만 모양은 대충 비슷한거지.’ 따위의 헛소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아아 훈훈해라.

헛소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가있다. 그 때 쯤 몰랐던 척 ‘허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 우리 남은 것만 빨리 끝내자’ 류의 말을 하면 똘망똘망한 친구들은 빠르게 문제를 풀어내리며 훈훈하게 수업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혹여 몰래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때 친구들이 있다면, 그렇다고 선생님이 대충한 건 아니야 알지? 아 그리고 꼭 이과가라. 문과는 망했어.

 

사정이 생겨 여기서도 일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

5월 경에 학원을 그만뒀다.

적잖은 대학생이 과외나 학원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며 생존을 근근히 이어나간다. 여타 알바에 비해 시간당 급여가 꽤나 높은 축에 속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큰 시간 투자 없이 적절한 생활비를 얻으며 일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알바는 그렇게 많지 않다. 덕분에 조모임의 가장 큰 적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친구에게서 ‘과외비 받았다. 술 먹자’ 따위의 카톡이 오면 이보다 반가운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조모임의 불편함 따위는 충분히 감사할 만 하다.

하지만 그보단 알바를 구하지 못해 영양실조가 걸릴 것만 같은 친구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돈까스를 놔두고 백반을 고른다. 사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과외학생 구합니다. 문과출신남자구요….. 아 젠장 문과는 망했어 이과나 갈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