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LA 홈페이지의 행사 소개글. 2017년부터 시작된 WMLA 행사에서는 재생산권, 폭력, 성소수자 권리, 환경, 장애 인권, 이주 인권 등의 이슈와 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WMLA 홈페이지의 행사 소개글. 2017년부터 시작된 WMLA 행사에서는 재생산권, 폭력, 성소수자 권리, 환경, 장애 인권, 이주 인권 등의 이슈와 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Women’s March in Los Angeles-로스앤젤레스 세계여성공동행진-행사1)공식 사이트 https://womensmarchla.org/womens-march-la-2018는 2018년 1월 20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Pershire Square에서 아침 8시 30분부터(!) 연단행사를 시작으로 10시부터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 Grand Park까지 행진하는 행사이다. 특히 트럼프의 여성혐오/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들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로스앤젤레스 외 다른 도시에서도 매우 큰 규모로 열렸다.2)주최즉 집계 약 6십만 명 참가 학교 프로그램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와 있는 미스핏츠의 이점은 행사를 한다는 걸 전날 알아버리고 후다닥 행사에 참가했다.

WMLA 행렬 경로. WMLA2018 공식 홈페이지 출처.

한참을 걸었다. 급하게 온 Women’s March in Los Angeles 행사는 생각보다 매우 컸고, 사람들도 많았다. 뜨거운 햇살과 다르게 로스 앤젤레스의 1월 바람은 찼다. 행진 시작점인 Pershire Square에서 Grand Park로 이동하는 중에 조금 지쳐 무작정 건물에 걸터 앉았다. 정말 사람 많다 싶었다. 2017년 1월, 갑자기 아는 오빠가 세계여성공동행진에 참여하러 왔다며 사진을 보내왔었다. 원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던 오빠였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신나서 사진을 보내오는 오빠의 카톡을 보며 웃음이 났었다. 지금은… 그렇게 웃음이 나진 않았다. 조금 지쳤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나름 취재 차 WMLA 참가한 것인데, 인터뷰도 따야하거늘.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행진을 이어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하던 와중, 내 옆에 한 장년 여성 두 분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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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pussy grab’ 발언 이후로 이제는 상징이 된 ‘pussy cat hat’

분홍색 귀가 달린 모자를 쓴 두 분의 소소한 대화가 이어졌다. 괜히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됐다. 그러고보니 이 행진에는 장년 여성이 꽤 많았다. 편하게 말하자면 ‘할머니’가 많았다.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전동 휠체어를 타기도 하고, 그냥 걷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옆에 앉은 장년 여성 분들께 말이 너무 걸고 싶었다. 몇 분을 그렇게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Excuse me.” 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한국의 독립 미디어 미스핏츠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혹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요?”

두 분이 나를 바라봤다가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한 분은 손사래를 치며 자기 말고 이 친구를 인터뷰하라며 웃었다. 그 친구 분은 그러지 뭐,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조금 신이 나서 천천히 정해뒀던 질문들을 물어봤다. 자신을 페기Peggie라고 소개한 그는 1회였던 작년부터 참여했고, 트럼프가 당선된 해가 너무 실망스러워 다른 사람들과 토론도 많이 하고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3)실제로 행진은 반 트럼프 성향이 굉장히 강했다. 이게 여성행진일까 트럼프 탄핵 시위일까 싶을 정도로… 작년은 지금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서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세 시간을 서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모든 연단 행사들이 끝나기도 했단다. 행사를 일 년에 한 번보다 더 많이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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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진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계세요?”
“여성 활동가지Women’s activist. 특히 아시아 여성의.”
“그러고보니 여기서 백인이나 흑인 참가자들은 많이 봤는데 저 같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좀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지. 우린 조용하잖아.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 그렇지만 자기 권리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언제 또 소리 쳐보겠니?”

페기의 말은 굉장히 또렷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페기에게 지금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 같냐고 물었다. 페기는 단박에 아니라고 답했다. 순간 인터뷰어로서의 자아를 잊고 ‘잉?’이라고 소리내버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아니라니. 트럼프가 당선된 현실이 역시 절망스러운 건가?

“서로 멀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정치를 이야기하자면 좌파 정당은 왼쪽으로, 우파 정당은 오른쪽으로 가고 있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살잖아. 뭐겠어? 잘 살고 싶은 마음이지. 안전하게 살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내 가족들과 살고 싶은 건데, 왜 이걸 자꾸 나눠진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와서 이야기를 많이 해줘야지. 우리도 똑같이 잘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이야.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일수록.”

나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내 인터뷰는 어디에 올라가니?”
“아, 미스핏츠 홈페이지랑,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런 곳이요.”
“온라인으로 올라가는구나?”
“네. 가끔 책도 만들고. 그런데 유명하진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읽진 않을 거예요. 그건 좀 죄송해요.”
“그걸 네가 왜 미안해 해. 그냥 물어본 거야. 나만큼 나이가 차면 젊은 애들이 뭘 하는지 궁금하고 나 같은 사람은 이제 그걸 잘 알았다가 지켜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물어봤어. 너는 왜 나한테 인터뷰를 하고 싶었니?

솔직히 대답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페기가 나와 닮아서 편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나이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것도 신기했고. 영어로 말을 정리하는 와중에 페기가 먼저 입을 뗐다.

“나는 네가 인터뷰 요청했을 때 사실 하기 싫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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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나 같은 늙은 사람 이야기 들어서 뭐해. 그래서 성(姓)도 말 안했고. 약간 익명이라고 할까. 나 말고 더 젊은 사람 이야기 많이 들어. 저기 밑에 많이 있잖아. 사람들.”

하지만 정말 페기의 이야기가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장년 여성의 목소리도 분명 의미가 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미 없는 이야기가 아님이 분명했다. 하지만 페기가 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여기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페기는 턱으로 군중들을 가리켰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인종도, 성별도 다양했다. 저마다 다양한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춤을 추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며 Grand Park로 모이고 있었다.

“춥네. 슬슬 다시 움직여야겠어. 자네도 이제 움직여야지.”

나와 페기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했다. 페기도 친구와 자리를 옮겼는지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페기의 말대로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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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및 편집 / 이점

   [ + ]

1. 공식 사이트 https://womensmarchla.org/womens-march-la-2018
2. 주최즉 집계 약 6십만 명 참가
3. 실제로 행진은 반 트럼프 성향이 굉장히 강했다. 이게 여성행진일까 트럼프 탄핵 시위일까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