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똥)글은 왜 나왔냐면

애초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진 않았다. 미스핏츠 정기회의에서 내가 낸 안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행률’이었고, 우리는 저것에 있어서 보다 청년정책위주로 공약이행률을 찾아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기록물홈페이지에 보관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홈페이지를 뒤져봤다. 손쉽게 공약이 보인다. 세대별로, 특징별로 세세히 공약이 구분되어 있다. 공약집의 마력이란, 그걸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내일은 유토피아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아니 아니 정신차려야지, ‘오늘 글의 목적은 공약뽕에 맞는 게 아니라 공약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보는 건데 말이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가 수두룩빽빽한 청년공약들을 보니 갑자기 염증이 느껴진다.

‘아니 이 놈의 정치인 새끼들은 챙기지도 않으면서 왜 선거철에만 청년가지고 지랄이지’ 싶다. 자기네가 언제부터 청년 챙겨줬다고 갑자기 선거철만 고놈의 청년타령이 끊이질 않는다. 아 근데 이 청년타령, 1960년대부터 있었다. 1960년도 새벽사에서 출판한 간행물 새벽에 실린 기사 중 하나의 제목은 ‘청년에 매력이 없는 정당은 망한다’였다. 어쨌거나 짜증나도 참고 박근혜 대통령의 청년 공약을 꾸역꾸역 읽어본다.

 

1. 2014년까지 반값등록금 실천
2. 대학 기숙사 확충 및 기숙사비 인하
3.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 사회 구현
4. 청년들을 위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5. 지방대학 발전사업 추진 및 지역대학 출신 채용할당제 도입
6. 고졸 취업중심 교육체제 강화
7. 청년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청년창업 대폭 지원

 

그니까,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은 2014년에 반값등록금과 저가의 기숙사에 살 수 있고 취업준비생들은 능력 중심으로 취업이 될 것이며 휴학생들은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경험을 쌓으면 된다. 지방대학생들은 걱정없이 곧 발전할 지방대학에 떳떳하게 다니면 되고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은 취업 중심으로 고등학교에서 교육받았을테니 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면 된다. 그리고 취업보단 자신의 사업을 꿈꾸어야 청년이지 아니겠는가.

그래. 존나 장밋빛이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방선거부터 대통령선거까지 온갖 공약과 선거 그리고 정치쇼에 청년이 빠지질 않더라. 근데 그거랑 다르게 내 현실은 왜 점점 시궁창이 되는지 모르겠더라. 갑자기 분노가 차오른다. 아니 난 분노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에서 쓰는 청년마케팅에 염증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그것을 믿지도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글 주제를 바꿨다. 선거철에만 오는 ‘정치권의 청년마케팅’으로.

나한테 왜 뽕줬어요… (분노)

내 현실이 점점 시궁창이 된 것과는 별개로, 정치권에서 청년정치인이 많아졌으면 정치권의 청년마케팅을 나름 인정해주려 했다. 하지만 의회에서도 청년은 없다. 지금 국회인 19대 국회의 30대 의원-20대는 없다- 은 지역구로는 3명, 비례대표로는 6명이 있다.

즉 300명 중에 9명만 실제 청년이다. 청년들을 위한다면서, 청년들이 직접 혁신할 기회를 준다면서, 청년국회의원을 뽑을거라면서 9명이다. 이렇게 할 거면서 청년마케팅은 오지게 한 거다.

웃긴 점은 역대 국회를 보면 16대 13명, 17대 24명, 18대 7명이 30대 의원으로 배지를 달았다. 청년 마케팅은 피크를 찍었는데, 실제 청년 국회의원 수는 역으로 피크를 찍었던 거다.

나만 이런 청년마케팅에 염증을 느낀 건 아닌가보다. 정당 내에서도 선거 전엔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처럼 하다가 막상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나 몰라라 한다.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장을 지냈던 손수조 전 위원장(그래, 문재인을 상대로 무려 43.8%를 따낸 그 손수조!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화문에서 500배를 하며 새누리당을 도와주라했던 그 손수조!)마저

새누리당은 청년의 열정을 결국 허망함으로 돌려주고 말았다”며 “윗선이 바뀌면 모든 구성원들의 판을 갈아버리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새누리당에 남아 있을 올바른 청년은 없다고 본다

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솔직히 ‘그거 모르고 새누리당 들어갔냐?’고 묻고 싶지만, 트위터로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정치권 내에서도 청년은 ‘마케팅’일 뿐인 거 같다(말이 좋아야 마케팅이지 사기극이다).

악의는 없고요, 그냥 귀여워서

정도무생(정치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대체 정치권은 쓰지도 않을 청년들을 왜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걸까. 내 첫번째 대답은 ‘그게 트렌드니까’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권의 청년마케팅과 미디어의 힐링마케팅이 같은 맥락에 서있다. ‘아무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제대로 쓸 생각은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그걸 쓰니 안 쓰면 도태되니까’ 쓰는 거다.

촛불시위, 반값등록금 등 여러 사건과 이슈를 통해 검증된 청년의 힘을 최대한 자기네 쪽으로 끌기 위해 ‘청년 마케팅’이 존재하는 거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첫 위기는 반값등록금으로 시작했다. 대권 준비 때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추진한 반값등록금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공약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의 불만은 터져나왔고, 이른바 ‘고대녀’ 등이 이슈가 됐다.

이 불만을 흡수하려고 했던 건 민주당인데 세련되게 사용한 건 새누리당이었다. 반값등록금으로 표출된 불만 많은 대학생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혁신’ 이미지를 갖기 위해 새롭게 “청년 정치인”들을 앞으로 내세웠다. 그 마케팅이 손수조, 이준석으로 나타났고 2012년 4월 총선에 정점을 찍었다.

당장 야권에 큰 열풍이 된 박원순 시장의 당선도 20대의 69.3%, 30대의 75.8%의 지지가 없으면 이뤄지지 않았을 거다. 이런 선거에서의 결과를 제외하고 기성정당의 청년활용을 보면 청년의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지형, 새로운 의제를 꺼낸다기보다는 저런 마케팅 안 하면 반값등록금 이슈에서 보듯이 청년들이 ‘지랄’하니깐 그거 달래기 위해서, 자기네들 이미지 포장하기 위해서 한 거다. ‘힐링’이 매력적인 키워드니깐 갖가지 미디어에서 이해는 없고 그저 덕지덕지 붙이는 모냥과 같다.

생각없이 하니까 이딴 거나 만들지. 슈스케 하세여?

두 번째 대답은 ‘청년들을 호도시키기 위해서다. 솔직히 의회가 우리를 위해서 일한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청년마케팅은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마저도 ‘어, 이거 하면 우리한테 좋아지나?’ 라고 착각하게끔 만든다. 청년에 대한 공약뻥튀기와 더불어 20~30대 정치인을 내세운 마케팅은 충분히 그럴듯하고, 맛있게 보인다.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준석은 틈만 나면 혁신위원장 등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더 무서운 건 이 착각이 필연적으로 청년유권자들이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 ‘뽕’에 취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취함은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불만을 ‘표심’으로만 묶어둔다. 그니깐 현대민주주의사회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불만이 의회에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거리에 나가는 게 당연한데, 저런 취함은 청년들이 거리로 나갈 생각과 ‘단절’되게끔 한다.

체제 자체에 대한 사회개혁의 역동성은 다 죽게 되고, 체제 내에서의 조그마한-그것도 국회의원의 선처에 기대는 그런-변화에 감지덕지하게 된다. 그렇게 닭장 안에 갇힌 우리들은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 파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게 되고 시민들은 분열한다.

 

내 시선에서 OUT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후하하하

그러니까 우리가 정치권의 ‘청년마케팅’에게 기원하는 점 -청년을 위한 사회로 변화 혹은 청년국회의원을 통한 의회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선 궁극적으로는 ‘청년마케팅’이 없어져야만 한다. 애초에 정치권에 있는 ‘청년마케팅’은 환상에 불과하고, 심지어 현실의 환상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힐링’이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은폐하는 것처럼 청년마케팅은 청년문제를 구조가 아닌 새누리당과 새정연이라는 초인적 무언가에 기대게끔 한다. 이 지점에서 청년마케팅이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보수양당의 청년마케팅이 사라지고, 새로운 청년 정당을 만들거나 거리에서 청년의 시위가 일어나야만 청년을 위한 사회가 이뤄진다.

저 환상에만 기대있으면 현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환상을 깨부수고 민낯에서 시작해야 한다. 청년마케팅은 죽은 새끼 불알을 도리도리잼잼하는 거고, 청년에 의한 정치가 죽은 새끼를 살리는 길이다.

 

청년이 만든 청년당이 존-나 필요합니다

청년을 위한 정치공약, 새로운 피의 수혈로 의회개혁은 기존 정당안에서의 개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차피 기존 보수 양당들은 6.25전쟁 후부터 세워진 정치질서의 기둥이다. 합당과 분당을 통해 그들의 질서는 깨지긴커녕 오히려 공고해졌고, 그 공고함은 각 정당의 내부질서와도 연결된다.

새누리당은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김무성 라인으로 이어지는 황제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기서 청년담론이 나타날 확률은 내 비루한 몸에서 식스팩을 발견하는 확률이랄까? 새정연은 비새누리당이란 깃발 아래의 온갖 정치인이 모여 있어서 청년국회의원이나 청년담론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가 없다.

이 아노미 상태에서 우리가 그려아할 것은 분명 기성정당이 바라보는 청년이 아닌 자생적 청년당이다. 그 형태는 여러 것이 될 수 있겠다. 새로운 청년당을 만들든지 청년좌파, 청년유니언 등 기존의 숙성된 청년정치단체들과 사회의 많은 청년들이 연합하여 외연을 넓히는 방법도 있다.

근데 투표율 개판이잖아? 안될거야 아마

혹은 지방의회에 청년의원 가산점 제도를 도입해 풀뿌리부터 청년들이 참여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지난 2012년 문성근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가 말한 제안으로서 예전 여성의원공천제와 유사하다.

우리가 이 방안논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은 현재의의 정치체제-우리의 투표행태를 포함한-에서 기존의 청년당은 물론이요, 새로 태어날 청년정치단체가 자라나기 힘들단 사실이다. 메시지가 피어나기 힘든 지금 적극적으로 환경을 바꾸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건 메시지의 발신자, 수신자 모두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청년이란 계층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돌연변이적 역할을 해왔다. 1960년 4월 19일 민주혁명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한국사의 빛나는 굴곡에 청년은 빠지질 않았다. 늘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돌연변이로 세상을 바꿔온 것이 사실이다. 그 빛나는 역사의 주인공들은 2000년대 이후 경제위기에 의해 새로운 소외계층이 되어버렸다.

젊음

떠헝…이것이 젊음인 것을…!

무한경쟁과 이기주의 그리고 여러가지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청년의 빛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2~2014년의 정치판에서 보이듯이 청년들의 힘은 아직 관짝에 관뚜껑 박을 정도는 아니다. 관뚜껑 열고 나서는 새로운 청년들의 요구가 기성정치권에 의해 장난감처럼 쓰이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