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sh the Boundaries : 새삼스럽게 한계를 넘어서> 토크콘서트 내용 정리 – 4편

정체되어 있는 이미지를 넘어

지이선 : 사실 우리가 그런 이야기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이미지들, 소위 말해 탑/바텀1)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적극적인/수동적인 역할, 혹은 성관계에서의 역할을 구분하는 명칭과 펨/부치2)여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적극적인/수동적인 역할, 혹은 성관계에서의 역할을 구분하는 명칭라고 하는 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가 하는 거예요. 저희가 공연할 때도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었어요. <프라이드>에 나오는 필립이라는 남자는 좀 더 연상의, 이제, 아 너무 죄송합니다, 이 단어밖에 쓸 수가 없네요. ‘공3)주로 퀴어 관련 창작에서 쓰이는 용어, 보다 적극적인 쪽을 말한다’? (웃음) 아 죄송합니다. 아주 쉽게 던질수 있는 말을 소개하고 있네요. 그리고 이 올리버라는 친구는 나이가 어린, 좀 더 여리여리한 ‘수4)주로 퀴어 관련 창작에서 쓰이는 용어, ‘공’의 반대로, 보다 수동적인 쪽을 말한다’ 이런 식으로 많이 불리죠. 근데 사실은 공과 수의 개념보다는 만들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이 사람은 결혼을 했고, 돈이 있고 부동산 업자고 그리고 여유로운 배경을 가지고 사실 좀 나이가 많겠지’라고 생각이 이어져요. 실제로 대본에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올리버는 캐스팅을 하다보면 좀 더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이렇게 그동안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정체되어 있는 것들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올해 3회 공연을 할 때 좀 고민이 됐어요. 그동안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었던 이미지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고 말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캐스팅을 조금 바꿔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필립 역할 하는 친구를 좀 더 나이를 낮춰보고, 동등한 관계로 보일 수 있게 노력했고, 최대한 이미지를 바꿔볼 수 있는 방법을 내부적으로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연극 의 2017년 캐스트 사진. 제일 윗줄이 필립 역, 두번째 둘이 올리버 역의 배우들 모습니다.

연극 <프라이드>의 2017년 캐스트 사진. 제일 윗줄이 필립 역, 두번째 둘이 올리버 역의 배우들 모습이다.

오히려 실제로는 필립이라는 남자, 교정치료를 받게되는 필립이라는 캐릭터가 자기 삶에 수동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연기를 지도하게 된 거죠. 실제로 자기 삶에서 되게 능동적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자기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닫혀있고 수동적인 인물이다, 거기에 좀 더 집중을 하자 라는 대화를 올해는 더 많이 했어요. 그런 일들로 굉장히 많이 싸우기도 했고요. 아마 <프라이드>라는 작품을 하거나,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았다면 저 스스로, 상대방에게도, 그리고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에게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주문을 했을 것 같아요. 좀 더 나이 많았으면, 덩치 컸으면 좋겠어 뭐 이런 거. 앞으로도 그런 이미지들과 싸우며 공연을 조금 더 새롭게 생각해 봐야겠다 싶어요.

봉레오 : 영화 <아가씨>에서도 보면 누가 더 능동적인 캐릭터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말해서 누가 ‘공/수’인가에 대한 논쟁이 가끔씩 자연스럽게 나오곤 해요.  <아가씨>에서 히데코와 숙희 중 누가 부치인가. 근데 사실 그건, 부치라는 말로 표현을 했지만 누가 더 능동적이냐를 판가름하기가 되게 애매하잖아요. 그리고 여성 퀴어물에서는 소위 능동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남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런 시각적 이미지가 없는 숙희가 마지막에 남장을 하죠.

영화  중 숙희(김태리 역)와 아가씨(김민희 역)의 모습

영화 <아가씨> 중 숙희(김태리 역)와 아가씨(김민희 역)의 모습

이제 계속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퀴어 내부에서의 로맨스를 다룬다면 특히나 더. 제가 썼던 글이 부치 둘 사이에 펨 한명이 있는 거였어요. 대개 이 펨이 부치 둘을 두고 고민하는, 저울질 하는 내용인 거죠. 근데 그 부치 둘 다 능동적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다면 이게 일반 비퀴어물과 다른 게 뭘까. 이러면서도 근데 ‘내가 왜 이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나는 그냥 퀴어물을 쓰고 있는 건데.’라며 계속 양쪽에서 어느 한 쪽도 선택할 수 없는 그런 고민을 계속 하게 돼요.

지이선 : 사실은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이거나 뭐 이런 거 상관 없이 재미있으면 돼요. 사실 굉장히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면 수동적이거나 적극적이거나 상관이 없잖아요. 근데 자꾸, 맞아요, 저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이게 쓰면서 능동적인 것과 밸런스를 맞추고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글 쓸 때 캐릭터를 이미지화/대상화시키게 되고, 그러고 나면 그 작품이 망하게 되는 거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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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퀴어라는 집단에 속한 개인이든, 아니면 글에 나오는 캐릭터든 인간이라면 절대 능동이나 수동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고 분명히 입체적인 면이 있을텐데 자꾸 대상화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글이면 차라리 작품이 망하고 끝나겠지만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계속 납작해지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이 삭제되는 거죠. 이미지를 가지고 간다는 게 계속 고민이 되긴 했어요.  

어떤 이미지가 내 삶을 가능하게 할 때

루인 : 이미지화가 정말 어려운 문제예요. ‘게이는 이렇지 않고 레즈는 이렇지 않아’ 하는 이미지가 있을 때 그것을 피하면 그건 괜찮아지는 건가 싶죠.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면 그렇고, 나쁜 이미지로 만들면 그것도 비난받을 거고.

사회적, 통상적으로 유통되는 어떤 이미지들에는 여러 층위가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어떠한 이미지가 자신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하지만 어떨 때는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죠. 이를테면 11년 전인가 mbc에서 어떤 방송을 했었어요. 한창 2006년 6월에 대법원에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관련된 판결이 진행되면서 트랜스와 관련된 이슈가 가장 핫했던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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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대법원, 이미지 -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060623/8321710/1?)

자료 – 대법원, 이미지 –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060623/8321710/1?)

그때 mbc에서 인간의 뇌와 젠더 결정에 관한 걸 다뤘었는데요. 뭐였냐면 ‘전두엽의 단면모양이 그 사람이 여자일 지 남자일 지를 결정한다, 요즘 뇌과학은 이렇게 나온다’ 라는 이야기였어요. 지금 이 얘기를 들은 분들 표정 다 안 좋거든요(웃음). 그러면 부치인 mtf 여성5)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의 뇌는 어떻게 생겼을 것이냐. 등등의 의문이 제기되죠. 젠더가 뇌 모양으로 결정된다는 건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만 확정하고,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규정하는 젠더 규범에 맞춘 판단이잖아요. 그래서 그걸 보고서 엄청 욕을 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때 한 트랜스 활동가가 어머니와 같이 그 프로그램 봤는데 어머니가 “아 네가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구나” 라고 말씀하시며 그 활동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여버리신 거예요. 어려운 문제라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이미지가 내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어느 순간에 내 삶을 납득시키거나 이해시키는 예상치 못한 계기가 되었을 때 이 이미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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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 초에 젠더퀴어에 관한 인터뷰 자료가 나왔는데요. 물론 그 논문은 비공개로 돌려버려서 읽은 사람이 두세 명 밖에 안 된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인터뷰 속에서 젠더퀴어가 사실은 태어날 때 남성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남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젠더로서 살고 그렇게 인식되길 원하고 그래서 평소에 남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남성으로 통한다는 것이 자신의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게 된다고 계속 진행이 되죠. 근데 중간에 어떤 다른 내용이 나오냐면 밤길을 걷거나 할 때 갑자기 남성으로 보이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나를 배신하는 그런 이미지들이 어떤 순간에 내 자신을 가능하고 관찰하게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이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혹은 편견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것인가 싶어요. ‘~한 이미지는 없어져야 해요’로 끝나면 사실 아무것도 이야기가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미지와 관련된 문제가 정말 다루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미지라는게 참으로 단순하지가 않다.

이미지라는게 참으로 단순하지가 않다.

지이선 : 여러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거에 대해 우리가 각자 그리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이미지가 진짜로 맞는가, 그럼 맞다는 표현 자체는 맞는가. 그리고 그들의 다양성이 내가 갖고 있는 다양성이 구성되는 것과 동등하게 구성되고 있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면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 대담하기 전에 사전 미팅 했었을 때 제가 그런 이야기 했어요. 탑, 바텀과 펨, 부치 혹은 그런 이미지 말고도 되게 다양한 용어들,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건 어쩌면 관계 속에서 부정당하고 거절당해 왔었던 그 공포 의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어떤 정의 안에 나를 집어넣는 건 아닐까 말한 적이 있어요. 이미 소위 말하는 ‘주류 사회’에서 계속 거절당해온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거죠.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거나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게 되었을 때 거절 당하는 것에서 오는 공포 때문에 이 사람이 탑인지, 부치인지 알아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단어와 정의와 이미지를 오늘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속기 및 편집 / 린, 싱두, 수련

장소  / 안암 업타운코워킹스페이스

   [ + ]

1.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적극적인/수동적인 역할, 혹은 성관계에서의 역할을 구분하는 명칭
2. 여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적극적인/수동적인 역할, 혹은 성관계에서의 역할을 구분하는 명칭
3. 주로 퀴어 관련 창작에서 쓰이는 용어, 보다 적극적인 쪽을 말한다
4. 주로 퀴어 관련 창작에서 쓰이는 용어, ‘공’의 반대로, 보다 수동적인 쪽을 말한다
5.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