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말고 고민하기

봉레오 : 이 자리에 창작자(지이선), 기록자(루인), 당사자(봉레오)로서 우리가 앉아있어요. 우리가 지금1)2017년 성소수자 담론을 직접 다루는 것에 대해 각자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또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지이선 : 저는 진짜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이 성소수자, 장애인,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는 순간마다 그 당사자가 공연을 볼 때 어떻게 느낄까 싶어요. 저를 비롯한 주변 동료들은 그래서 항상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고 공연 후에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길 원해요. <프라이드>2)지이선 작가가 각색한 연극. 원래는 영국 작가 알렉시 캠벨 원작의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성소수자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있다도 그랬어요. ‘이걸 보고 있을 때 불쾌하시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가 실수를 하면?’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인간이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성별은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도 그 생각으로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라는 사람도 역시 퀘스처너리3)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근데 그 지점이 하나의 결과물로서 공연에 올라가는 것은 늘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에요. 이런 고민을 하는 건 피곤하고,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요. 알고 나면 피할 수가 없잖아요. 아니까 다른 세상이 보이는 거고.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만약 불편한 것들을 보면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해주시고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해요. 저희가 함께 바뀌어 갔으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를 위해 중요한 일이잖아요. 이게 제가 앞으로 작품을 쓰는데 원동력이 될 거예요. 내가 갖고 있는 불편함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지워지지 않도록

루인 : 저는 퀴어 아카이비스트로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일은 어쨌든 기록물을 계속 수집, 정리, 축적시켜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에요. 그랬을 때, 수집을 하면서,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가, 어떤 역할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 생각하게 돼요. ‘모든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한 한다’가 전제이긴 하지만 모든 걸 다 수집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서울 퀴어문화축제에서 백 몇 개 되는 부스에서 굿즈를 다 살 순 없잖아요. 그랬을 때 무엇을 선별할 것인가 하는 전체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가치를 어떻게 둘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기록이나 역사를 놓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남겨둘 것인가.

예를 들어, 미국에서 LGBT4)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를 GLBT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어요. ‘G가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했고, 레즈비언이 그 다음, 나중이 바이섹슈얼 그리고 트랜스 젠더가 가장 느렸다’ 이런, 되도 않는 사상이 등장했어요. 마치 운동이 90년대 초반부터 처음 시작한 것처럼 말이죠. 또 이런 예시가 있어요.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동성애자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엄밀하게는 ‘LGBTAIQ5)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sexual, Intersex, Questionary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되었다’가 정확한 표현인데 ‘동성애자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버렸을 때, 양성애자나 트랜스젠더 퀴어나 무성애자 등 다른 범주의 사람들은 운동을 안했던 것처럼 착시를 야기해요.

하지만 1995년에 트랜스젠더 모임이, 바이섹슈얼 단체가 9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었어요. 더 중요한 건, 그 시기를 동성애 운동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동성애는 지금의 퀴어나 LGBTAIQ를 포괄했어요. 동성애자 협의회에 트랜스 협의회가 같이 하겠다고 이야길 했었고요. 90년대 중반에 유명한 분이 자신을 게이라고 커밍아웃했더니 며칠 지나서 전국에서 몇 명의, 지금으로 치면 트랜스젠더들이 그 분을 찾아가는 일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시기에는 게이가 트랜스젠더를 지칭하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어떤 자료를 수집해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말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지금 통상 말하는 게이들, 레즈비언들 외에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등에게 ‘그땐 뭐했어’라는 딴소리가 나오지 않으려면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비판할 것인지와 관련한 고민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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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하려는 퀴어 아카이비스트로서 SNS만큼 나쁜 자료가 없어요. 추적이 불가능하니까요. 사실은 인쇄된 형태가 가장 좋은 형태 같긴 해요. 올해6)2017년만 해도 동성애 관련한 책자가 3권이 나왔는데, 이렇게 책을 만들어내고 자료를 축적해나감으로써 누구도 지우지 못하는 목소리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축적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사실은 퀴어축제나 관련 행사에서 나눠주는 자료들 있잖아요. 단체 홍보지 같은 것들, 수천만 장 찍을텐데 1년만 지나면 ‘이게 언제 만들어 진거지’해요. 기억을 못 하죠. 그래서 지금 시점에 자료가 얼마나 중요한가 싶어요.

주체적인 목소리

봉레오 : 저는 담론을 다룰 때 항상 활동하시는 분들에 대한 주체담론을 써요. 저는 동아리를 하고 취미로 팟캐스트 하는 정도의 활동이 전부예요. 활동가라는 명칭은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들이 개척해놓은 길을 누리는 입장에서는 아, 너무 고마워요. 내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구나 싶죠. 그들을 계속 지지하고, 그들의 의견이 틀렸다면 지적하고,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여러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도록 후원을 한다던지 하는 게 저로서는 최선이에요.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선택할 것 같아요. 상근 활동가가 되지 않는다면요. 그런 일은 아직 상상하지 않고 있어요. 계속 그렇게 후원을 하는 쪽으로 최대한 생각하는 중이에요. 그런 걸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모두가 적극적으로 운동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조금씩이라도 부채감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 부채감에 매몰될 필요는 없지만 계속 잊지 않고 같이 목소리를 내 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여기 계신 분들도 각자의 목소리 꾸준히 내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썼던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모아놓고 보면 이 당시에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게 제 개인의 퀴어 서사로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 당시에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두려워서 떨고 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문서로 남아있는 거니까. 이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 할수록 미스핏츠가 책을 계속 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가네요(웃음). 의견을 잘 판단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편집/ 린, 싱두

장소/ 안암 업타운코워킹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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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2017년
2. 지이선 작가가 각색한 연극. 원래는 영국 작가 알렉시 캠벨 원작의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성소수자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있다
3.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4.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5.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sexual, Intersex, Question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