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1호선 의정부역 주한미군 기지촌

의정부역 5번 출구 쪽에 잘 조성된 공원이 있다. 공원 안 큰 조형물에 대한 설명을 읽지 않으면, 이곳이 과거 미군 기지촌이었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흔적조차 없다. 해방 후 미군은 의정부, 평택, 동두천 등지에 주둔했다. 사람들은 군부대를 따라 마을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해 돈을 버는 여성은 ‘양공주’라 불렸다. 이들은 미군의 차별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지만,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문제를 숨겼다. 결국 기지촌 여성들은 직접 미군과 맞섰다. 1967년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은 소복을 입고 미군에 살해된 동료를 대신해 연좌데모를 벌였다. 1972년 평택 기지촌 여성들은 돌을 던지며 미군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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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 기지촌 터 조형물과 안내판, 기지촌 여성 관련 기사들 (출처 : 한겨레 및 매일경제)

의정부역 기지촌 터 조형물과 안내판, 기지촌 여성 관련 기사들 (출처 : 한겨레 및 매일경제)

열악한 상황에서 1960년대 미군을 상대한 기지촌 여성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대한민국 GNP의 25%를 차지했다. 1971년 정부는 기지촌 정화위원회를 구성,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주도적으로 관리했다. 이들은 ‘몽키하우스’라 불린 수용소에서 의무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았다. 기지촌 여성들은 양공주, 양갈보 등으로 불리며 멸시받다, 한 순간 애국자, 민간 외교관, 달러벌이 역군이 됐다.

몽키하우스 관련 보도 (출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쳐)

몽키하우스 관련 보도 (출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쳐)

의정부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여 더 가면 빼뻘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스탠리 미군 캠프가 주둔한 곳이다. 미군기지촌 여성 상담 및 지원 단체 두레방은 스탠리 캠프 담벼락과 마주해 있다. 기지촌 할머니들을 돕는 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공판에 참여해 정부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지켜봤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위한 정책이 속히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탠리 캠프를 마주하고 있는 두레방

스탠리 캠프를 마주하고 있는 두레방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가산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 앞 횡단보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길을 따라 걷는다. 간판이 가리키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건물 하나가 70년대에 멈춰 있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은 60~70년대 여공들의 생활상을 체험하는 곳이다. 상층 영상관과 전시실을 감상하고, 지하에서 여공들이 모여 살던 쪽방을 재현한 공간을 둘러보는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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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의 발달로 공장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여성들은 가족 생활비와 형제의 교육비 등을 벌려 구로공단으로 모였다.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며 틈틈이 야학에서 공부하고, 집에 보내고 남은 돈으로 자신을 가꿨다. 비싼 집세를 아끼려 서너 평 남짓한 쪽방에 4~5명이 살았다. 공장엔 작업량을 체크하는 매수기가 달려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와 미싱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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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생활체험관 2층 내부와 쪽방 체험관 내부

노동자 생활체험관 2층 내부와 쪽방 체험관 내부

1970년대부터 구로공단에 노동운동 바람이 불었다. 1977년 12월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말 그대로 한강의 기적이었다. 반면 공장 노동자의 삶은 열악했다. 구로공단 여공들은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등을 사측에 요구했다. 1985년엔 노동운동단체와 민중운동세력이 힘을 합쳐 구로동맹파업을 벌였다.

구로공단 파업 모습

구로공단 파업 모습

시간이 흘러 구로공단은 가산 디지털단지가 됐다. 여공들 대신 IT, 디지털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출구에서 흩어진다. 이효정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에듀케이터는 “실제 구로공단 노동자 출신 어머니들이 이곳에 다 큰 자녀와 함께 자주 온다”며 “노동자 생활체험관은 과거를 기억하는 곳이자 당시 여공들이 추억에 잠기러 오는 공간이다”고 말했다.

2호선 및 신분당선 강남역 10번 출구

지난 해 5월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 남성이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 숨어 있다 피해자 여성을 노려 살해했다. 피해자가 화장실에 오기 전 다른 남성 여섯 명이 왔다갔지만 가해자는 정확히 ‘여성’ 피해자를 기다렸다.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라는 점과 가해자에게 조현병 치료 이력,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정의했다.

 사건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어있던 포스트잇들 (출처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공식 페이스북)

사건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어있던 포스트잇들 (출처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공식 페이스북)

사건이 발생한 뒤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었다. 추모 포스트잇 물결은 짧은 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온라인 SNS 상에 #살아남았다 는 해시태그가 넘쳤다.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자신의 타임라인에서 사건 당일 그곳에 없어 우연히 살아남은 이야기를 했다. 나아가 단지 ‘여성이기에’ 위험하고 불편했던 순간을 고백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각에선 혼란을 틈타 일부 여성이 ‘남혐’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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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온라인 해시태그 추모 물결, 일각의 주장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온라인 해시태그 추모 물결, 일각의 주장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과 성평등 감수성이 문화현상처럼 자리잡았다. 예스 24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지난 해 5월부터 1년 간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간 대비 3.2배 늘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온라인 및 오프라인 단체도 활발히 조직됐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은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었던 1004개 포스트잇을 정리해 으로 엮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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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서점 페미니즘 서적 코너

여정을 마무리하며

공간을 방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정해진 길 따라 나아가면 그만이다. 다만 그곳의 기억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 쉽지 않다. 공간의 이야기는 슬픔이고 분노이고 추모다. 적어도 ‘여성’의 공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곳들은 모두 그랬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여성들의 자리가 썩 좋지 않은 감정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여성들은 서로의 공간을 드러내고 공유하고 있다. 공적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비단 혼자만의 일이 아님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힘 있는 여성의 언어가 새로운 연대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 어떤 여성의 공간을 가더라도 좀 더 용기있게 그들의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MeToo #WithYou #Womensday

글, 사진 및 편집 / 싱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