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은 모두에게 익숙하지만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학위 과정의 터널을 거쳐 석사 또는 박사가 된다. 박사가 되면 박사 후 연구원이 되고, 다음 박사 후 연구원 자리를 찾는다. 이것을 계속 반복하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무언가가 된다. 우리가 사회에서 보는 것은 그 무언가가 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터널 속 대학원생은 어떤 존재인지 정작 잘 모른다.”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의 초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까지 대학원생을 다룬 콘텐츠가 없지는 않았다. 일례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매체에서 대학원생은 일종의 ‘피해자’로서만 그려졌다.

 시즌2 제6화의 한 장면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시즌2 제6화의 한 장면

구글에 ‘대학원생’을 검색하면 ‘대학원생 생존 전략’,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던 것들’ 등 다양한 게시물이 나오지만, 연관검색어 중 하나가 ‘대학원생 노예’라는 사실은 대학원생이 어떤 형상으로 그려졌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이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대학원생이 그만큼 많다는 현실의 반영이겠지만, 동시에 대학원생이 사회에서 우리 곁에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딘가 먼 곳에 있는 사람들, 대상화된 모습으로 여겨졌다는 사실 아닐까.

그러다 우연히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라는 이름의 독립출판물을 낸 코기데잇Corgidate을 보게 되었고 그를 만나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코기데잇과의 인터뷰에서는 단지 피해자로서의 대학원생의 모습만이 아닌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범한 대학원생’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코기데잇은 독립출판에 대한 것부터, 책을 만들며 신경 썼던 부분들과 대학원생들의 고민에 관한 것까지 여러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독립 출판 = 심적 위로

미스핏츠: 코기데잇!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 주세요. 코기데잇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코기데잇: 사실은 되게 단순해요. 원래는 제가 정말 올해(2017년) 중순에 이렇게 인생을 살아도 되나 싶어서 고민을 하다가, 요즘에 독립출판을 클래스처럼 하는 데가 있거든요. 독립 1인 출판을 하는 ‘찬다’라는 분이 여신 클래스가 망원동에 있어서 별 생각없이 가서 독립출판 과정의 클래스를 들어봤어요.

책을 만들면 계획서를 만들고, 입고 컨택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원래 메뉴얼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면 출장을 갈 때마다 매뉴얼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리고 제가 그냥 웰시코기를 정말 좋아하고, 귀여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걸 조합해 책을 만들어 볼까 했죠.

코기데잇이란 이름으로 지은 거는 제가 좋아하는 코기랑 더해서 어떤 특징이 있는 단어를 만들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실 저는 박사 과정을 수료한 상황이고 시험만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ph.D. Candidate(아직 박사 학위는 없는 박사과정 학생)이에요. 그래서 이 얘길 친구랑 하다가 그럼 ‘데잇’이라고 하자. 이렇게 돼서 지은 거예요.

직접 만드셨다는 종이 코기데잇

직접 만들었다는 종이 코기데잇. 귀여워…<3

미스핏츠: 독립출판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코기데잇: 그때 저는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다른 취미를 찾고 싶었어요. 박사과정 6년차이다 보니까. 박사과정에 들어온 친구들은 취미가 하나라도 있어야 해요. 삶의 스트레스를 풀고 활력을 얻을 취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안돼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되게 힘들어요. 저도 취미생활을 많이 했거든요.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다른 대학원생들도 운동이나 게임, 아니면 그냥 술 먹는 걸 취미삼아 하는 사람도 있고 – 이런 분들은 매니악한 분들이죠. 술을 먹어도 종류별로 먹는다던지, 콜렉션을 모은다던지 – 이런 취미들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제게는 취미로 독립출판을 한 게 되게 도움이 됐어요. 2~3년째 대학원을 ‘때려 쳐야지’ 말하고 다닐 정도로 너무 고민이 많았는데 하면서 스트레스는 정말 많이 풀렸어요. 독립출판 쪽하고 책방 사장님들이 되게 좋으신 분들이 많아서 심적 위로 방면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실제 워크숍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출처: http://studiopie.net/)

실제 워크숍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출처: http://studiopie.net/)

미스핏츠: 취미가 독립출판이라고 하셨는데 출판은 아무래도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잖아요. 메뉴얼 짜는 것도 그렇고, 인쇄 과정까지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처음 해보기에는 되게 복잡하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신 건가요?

코기데잇: 바빴을 텐데 어떻게 했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전 독립출판을 하면서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지금 교수님도 10년 넘게 봤고, 옆에 있는 선배들도 다 10년 넘게 봤으니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그런데 이걸 하면서책에 관련된 건 아니더라도 사람을 많이 만나고 제 자신도 많이 돌아보게 됐기도 해서 바쁜지도 모르고 좋았어요.

독립 출판 = 자기 만족

미스핏츠: 첫 출판 날짜가 9월 20일이네요,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코기데잇: 책방에 주고 나면 온라인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 서점을 제외하면 얼마나 팔렸는지를 몰라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입고를 드렸는데 정산이 없고 팔렸다는 소식도 없으면 안 팔렸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은 얘기해주시기 전까지는 정말 몰라요. 이게 되게, 정말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주로 서울이나 제 활동 반경 근처에 있는 곳에 입고를 드렸으니까 찾아봽고 얘기를 해보면 책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그분들도 얘길 하세요. 책방 수익도 책을 파는 것보단 다른 데서 버시는 것 같기도 했고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여긴 심오한 세계인 것 같아요. 가끔 서점에 가서 오래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은 자기만족이라고 하시는데 저도 거기에 완전히 동의해요. 이걸로 비용을 들여 출판을 해서 팔면 조금 돌려받는 식인 건데 원금회수만 한다는 생각으로 파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 얻는 기쁨이 되게 커요. 이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취미지만, 사실 부업도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대박이 날 만큼 팔려도 돈이 되기가 어려워요.

미스핏츠: 요즘 그나마 ‘언리미티드 에디션’((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UNLIMITED EDITION – SEOUL ART BOOK FAIR)는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진행되어 온 아트북페어, 독립출판의 시장이다. 홈페이지(http://unlimited-edition.org/)의 공식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홍보와 거리를 두는 독립출판과 그 제작자들이 일년에 한 차례 각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책에 대해 말하고 판매하는 시간입니다. 작가/제작자와 관람자가 ‘직접 판매 부스’를 통해 만나고, 프로그램과 특집을 통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그해 어떤 양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같은 행사규모를 보면서 독립출판이 관심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부업도 안 되는’ 정도군요.

코기데잇: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책을 쓴 김현경이라는 분이 계세요. 인터뷰도 하셨었고요. 지금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이기도 하신데 어떻게 우리가 먹고 살지, 이런 말을 하셔요. 그분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되게 많이 파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걱정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출처: https://tumblbug.com/anythingcanagain)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출처: https://tumblbug.com/anythingcanagain)

미스핏츠: 그렇다면 책을 만든 핵심 이유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함도 있겠지만, 자기만족이 제일 큰 거였네요.

코기데잇: 그렇죠. 서점에 입고 메일을 보내면, 2주 있다가 답장을 주시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열 군데인가에 메일을 드렸는데 처음에는 답장이 거의 안 왔어요. 그래서 팔리지 않을 건가 보다 싶어서 제가 부담 없이 낼 수 있는 80부만 찍어서 입고를 했어요. 근데 초반에 입고했던 서점 중에 하나가 좀 판매량이 있는 데였는지 다 팔렸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50부를 뽑고, 그 다음에는 계속 다시 인쇄를 하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500부를 뽑아버렸어요.

대학원생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기

미스핏츠: 첫 출판을 대학원생에 대한 이야기로 정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네요. 그럼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이유를 여쭤보고 싶어요.

코기데잇: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원에 가지 말아야겠다거나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계속 전공 공부를 하고 계속 같은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랑 지내다보니까 진학에 대해선 고민을 전혀 안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저의 문제였죠. 근본적인 문제랄까.

미스핏츠: 그래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는 건 부러운 일 아닐까요?

코기데잇: 계속 연구를 하고 계시는 이 분야에 뛰어난 교수님들조차 어디 다른데 갈 줄 몰라서 여기 있는 거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거든요. 다른 분야에는 재능이 없고 하던 거 하던 사람들이 계속 한다. 이런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곤 해요.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면  대학원은 못 가는 것 같아요. 대학원이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취업이 잘 된다고 여겨지는 공대도 대학원으로 가면 취업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기업에선 대학원 출신을 되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죠.

미스핏츠: 페이스북 ‘망했어요’ 페이지에서 코기데잇의 책 내용 일부 이미지를 올렸는데 좋아요를 천 개 넘게 받았던 거 보셨죠? 저는 그걸 보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와닿는 지점이 많았구나 싶었어요. 대학원생이 아니어도 많이들 공감하더라고요. 거기서 출처 표기만 제대로 했더라도 좀 더 홍보가 되었을 텐데하고 너무 아쉬웠어요.

'망했어요' 페이지에 올라온 모습

‘망했어요’ 페이지에 올라온 모습. 캡쳐이미지는 출처표기 없이 콘텐츠를 게시한 코기데잇의 분노가 쌓인 인스타 중 일부,,,

코기데잇: 처음엔 그 반응을 보고 되게 신기했어요. 제 후배가 ‘망했어요’ 페이지에 올라가기 전에 ‘더쿠(theqoo)’나 ‘도탁스’에 먼저 올라왔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어디에도 원본 표시가 없었어요. ‘더쿠’에 올라왔을 때는 저한테 제보해주시거나 댓글에 출처 표기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까 말한 김현경 님도 처음 뵀을 때가 저한테 제보 해주실 때였기도 하고 그걸 계기로 인연이 될 만한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화가 날 만도 했지만 전 괜찮았어요. 사람들도 가볍게 소비하고, 유머란 건 스쳐 지나가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것보단 되게 기뻤던 게 제게 DM(Direct Message)을 보내면서 ’친구가 대학원생인데 이 책은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어봐주시는 게 너무 좋았어요.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해주는 책이 제 책이라는 게 기뻤어요. 대학원생들이 살 때도 기뻤지만, 선물로 준다는 게 너무 기뻤어요. 이렇게 드려도 되는 책일까, 누군가의 선물을 내가 망치는 게 아닐까.

미스핏츠: 대학생에 대한 담론은 엄청 많은데 대학원생에 대한 담론은 사실 종류가 잘 없잖아요. 대학원생은 항상 논의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던지라 선물로 주는 마음이 이해가 되네요.

코기데잇: 이 책 마무리 작업을 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학원생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공감을 할 테고, 대학원생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서 대학원생을 좀 이해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저희 부모님도 대학원생이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셨거든요. 제 자신에 대해 설명을 하기가 아무래도 부끄러우니까 웰시코기라는 탈을 쓴 채로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했죠. ’나는 이렇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어요.

대학원생에 대해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엔 제가 그런 걸 싫어했어요. 대신 책 안에 추천한다고 쓴 게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라는 만화였죠. 사실 그건 범죄 사례집 같은 느낌이에요. 일부의 이야기라고 보긴 힘들지만 고발로만 다뤄보면 사람들이 아예 저거는 나쁜 사례의 일부라고 생각을 해서 깊은 관심을 안 가져버리는 그런 게 좀 싫었던 것 같아요. 가볍게 접근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중간중간 이게 좀 힘들다고 말을 해보고 싶었어요.

미스핏츠: 이 책 속의 코기와 실제 저자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코기데잇: 이 코기는 저라는 사람에서 밝은 부분만 꺼내서 빼 놓은 거에 가까워요. 저란 사람은 일단 귀엽지 않거든요. 단순한 건 비슷하지만 되게 우울한 면도 많고, 심각한 면도 많아요. 그걸 철저히 배제하고 밝은 면만 부각시킨다면 이 코기가 나와요. 저라는 개인은 조금 우울한 면, 비관적인 면이 있고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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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같은 집단

미스핏츠: 저도 한때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하는 독립출판 강의를 들어봤는데 책까지는 못 내봤거든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코기데잇: 쉽지는 않더라고요. 밤도 새며 늦게까지 이걸 만들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연구는 늦게까지 하면 너무 힘들고 집중이 안돼요. 학교 출근을 안 하는 주말에는 저걸 하고 있었어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일하기도 싫고 사람들도 싫고 다 때려 치고 싶었는데도 이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없애서 학교에서의 제 일을 많이 진행을 한 것 같아요.

미스핏츠: 제일 힘들게 했던 게 무엇이었나요?

코기데잇: 교수님과의 사이가 마냥 좋기만은 힘들었던 거? 언젠가 기회가 되고,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신상에 문제가 없다면 그 얘기도 풀어보고 싶어요. 교수님에 대한 불만. 세상에 좋은 교수님은 없어요. 서로 누가 더 나쁘냐를 대결하는 수준인 것 같아요.

미스핏츠: 교수님들은 대체 왜 그러신 것 같나요?

코기데잇: 분석을 해봤어요. 교수라는 직업을 하려면 야망이나 욕심이 있어야 해요. 교수님이라는 사람은 ‘선생先生님’이라는 측면에서는 ‘먼저 가는 사람’이고, 인격적으로 앞설 것을 예상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체계에서 교수라는 직업은 중소기업 사장이에요. 그와 똑같은 포지션이고 운영방식도 똑같아요. 인격적인 건 안 중요하고 얼마나 잘 나가느냐, 얼마나 잘 운영하느냐 이런 거죠. 교수님이랑 잘 맞으면 괜찮은데 잘 안 맞으면 굉장히 힘들어요. 교수님이 성격적 결함이 있다면… 더 굉장히 힘들어지죠.

미스핏츠: 예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것 중에 교수님 유형 분류같은 게 있었죠.

코기데잇: 저도 책에 그걸 참고한 걸 넣었어요. 책에 넣은 분류에 따르면 저희 교수님은 약장수, 일중독자, 사냥꾼 이렇게 세 개 섞인 것 같아요. 심지어 다 가지고 있는 분도 어딘가엔 있어요. 외국에 유명한 학자 중에는 대학원생보고 ‘너 지도교수 어디 있냐’고 하면 ‘지구상 어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메일 답장을 받으면 다행인 정도죠. 지도교수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상사인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하는지가 좋지 않아서 결국 문제죠.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지도교수의 아홉 가지 유형'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지도교수의 아홉 가지 유형’

미스핏츠: 제가 대학원생에게 들어본 인상깊은 얘기 중 하나가 한국에서 교수가 되기는 정말 힘든데 되고 나서는 가장 경쟁을 안 하는 집단이라는 거였어요.

코기데잇: 고여 있는 물 같은 집단이 여러 군데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교수인 것 같아요.

미스핏츠: 외국도 그런 편인가요?

코기데잇: 외국도 그렇지만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선 좀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군대식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고. 그게 되게 나쁜 식으로 굴러가기 좋은 게 교수 집단인 것 같아요. 저희 과는 그나마 덜한데 공대 얘기를 들어보면 교수님 사이에서도 상하관계가 뚜렷하다고 하더라고요. 교수님끼리 싸우는데 대학원생 등이 터지기도 하고.

미스핏츠: 최근에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큰 사건((2017년 6월 13일,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김모 교수의 연구실에서 사제 폭탄이 터진 사건이 있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misfits.kr/16694 참조))이 하나 있었잖아요.

코기데잇: 그걸 보고 저건 교수가 잘못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저희 대학원생 사이에서는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는 대상으로 보니까 트러블이 커지고 한 게 아닐까도 했고요.

미스핏츠: 그 이후의 인권보장선언이나 학내 인권센터의 행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어요?

코기데잇: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생각하죠. 교수들은 자기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스스로 못해요. 다른 교수가 잘못했다 이런 생각만 하고, 내로남불이죠. 자기들의 문제를 몰라요.

미스핏츠: 교수님들의 분위기는 어땠길래요?

코기데잇: 그때 교수들의 문제다 이런 이야기가 쫙 퍼지니까 어떤 교수들은 자기 제자 불러서 그냥 ‘불만이 있으면 화내지 말고 말해라’ 이렇게 하는 정도? 저희는 불가촉천민 같죠. 심지어 사립학교를 다니니까 가장 위에는 학부생이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돈을 내고 다니는 소비자거든요. 그렇기에 학부생이 어떤 문제를 제기했을 때 교수들이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어요. 특히 종신재직권이 없는 교수들이 그렇죠. 그런데 대학원생들은 잡힌 물고기예요. 교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사람들을 시켜서 학부생과 관련된 문제를 무마하게끔 시키기도 해요. 대학원생들은 단체로서도 힘이 없어요. 대학원 학생회도 있긴 한데 맨날 서로 돈 떼 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맨날 새로운 학생회가 슬로건으로 내놓는 게 지난 학생회가 떼먹은 돈 찾아주겠다, 이거죠. 일반 대학원생들은 학생회에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노조가 필요하단 말을 하죠. 지금으로선 4대 보험도 안되는 기타소득을 받는 학생이에요.

정신을 차려 보니 10년이 지나 있었다

미스핏츠: 학교에는 얼마나 오래 계셨어요?

코기데잇: 거의 10년 넘게?

미스핏츠: 그동안의 세월을 요약해보자면 어떨까요?

코기데잇: 세 줄도 아니고 딱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10년이 지나 있었다.’(웃음)

미스핏츠: 그동안 전공에 대한 전문성은 확실히 얻지 않았을까요?

코기데잇: 제 책에서도 나오지만 ph.D를 ‘philosophy of Doctor(박사 학위)’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저희끼리는 ‘permanent(영구적인) head damage’의 줄임말이라고 농담으로 말을 하거든요. 전공을 깊이 파다 보니까 다른 걸 모르고 어수룩해지고 나이브해지죠. 시간이 가는지 정말 모르고. 요즘엔 한참을 생각해야 몇 년에 입학했는지 알게 돼요. 교수님들도 능력은 출중한데 자기 하는 일 외에는 서투르기도 해요. 인간 관계도 어쩌면 학생하고 잘 지내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커리어는 모두가 리스펙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인간적으로는 좀 싫다고들 얘기를 해요. 저희도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실망할 만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미스핏츠: 대학원에서 기대했던 건 다 얻어 가셨나요?

코기데잇: 얻은 건 확실히 있어요. 이걸 졸업하고 나면 약간, 학문이란 게 되게 어렵긴 하지만 별게 아니구나, 싶게 돼요. 그걸 하는 사람들 자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아 가는 과정이에요. 내가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거고.

미스핏츠: 대학원생 하면 고생을 많이 해서 가엾거나, 아예 다른 행성 인간들이거나, 그런 식으로 극과 극의 이미지로만 대상화되어 왔다고 느꼈어요. 이런 책 속의 얘길 하는 사람이 확실히 없었던 것 같고 이 콘텐츠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래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부조리 외에도 대학원생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까.

코기데잇: 사회적으로는 대학원생이 피상적으로 개념화되어있는데 그게 싫었어요. 생각보다 대학원생이 되게 많아요. 이 책 사고 인증해주시는 분들 중에 보면 대학원생 때려 쳤다거나, 알고 보니 석사 따셨다거나, 발 들였다가 떼신 분들까지 치면 되게 많을 거예요. 대학원생들이 덜 불행했으면 좋겠어요. 하면서 행복한 사람을 거의 못 봤거든요. 제가 볼 때 대학원생 중에 행복한 사람은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정말 미쳤거나, 일을 아예 안 하거나.

‘쓸데없음’의 효용

미스핏츠: 코기데잇 인스타그램(@Corgidate)을 보니 주말엔 항상 책방에 계시는 것 같던데요.

코기데잇: 평일에는 연구실에서 바짝바짝 일을 하고 주말에는 주로 책방에 가 있어요. 확실한 건 덜 우울해진 것 같아요. 되게 우울했었는데 요즘엔 책방에 있는 고양이들 쓰다듬으면서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이러고 개 안고 역시 개가 최고야, 이러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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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핏츠: 졸업하시면 또 다른 책을 내나요?

코기데잇: 졸업한 코기의 설명서가 나와야 할 텐데.. 독립출판물 중에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라는 게 있어요. 그 책처럼 30대 백수 코기의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여건이 되면 만들고 싶어요. 책이 많이 팔려야 다음 책을 만들 수 있을 텐데(웃음).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를 만들면서 조금 더 행복해졌다는 코기데잇은 독립출판을 준비하고 책을 내서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하며 웃었다. 단순히 불행하기만 한 대학원생이 아니라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원생은 지금도 우리 곁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의 입을 빌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말을 남겼다. 많은 꿈과 평범한 일상과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대학원생을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좁은 시각으로만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책 속의 귀여운 코기가 설명해주는 ‘쓸데없는’ 대학원생 설명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 입고처 및 온라인 구매 안내 링크

 

글 / 린
사진 / 수련
인터뷰, 편집 / 린, 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