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연희관015B>에도 실린 글입니다.)

들어가며

성적인 소재가 이목을 끄는 소재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영화 <리얼>을 둘러싼 상황도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성은 예술 작품의 일부, 혹은 핵심 소재로 사용되면서 다른 소재로는 담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특유의 쾌를 가져다 주는 동시에, 저급한 포르노그래피의 경우처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인 특징으로 인해 성을 소재로 한 작품은 필연적으로 그 정도에 따라 그것이 예술과 외설의 경계 위 어느 지점에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이 경계는 어떠한 결과물이 예술인지 외설인지 규정하고,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소비될지를 결정 짓는 힘으로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예술과 외설을 구분 짓는 경계의 순수한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은 수포가 될 수 밖에 없다. 가장 대중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 중 하나는 “그 경계는 감상자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굳이 상대주의 논변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만질 수 없는 전지현보다 만질 수 있는 여자친구가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과 독립적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데도 외설의 경계에 대한 탐구와 해석이 지속될 필요는 다음의 이유에 의해 충분하다. 첫 번째, 마르셀 뒤샹의 <샘>과 같이 미술관에 위치한 기성품처럼,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해석의 맥락을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뽑아낼 수 있기에 경계의 재해석 자체가 예술적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으며

마르셀 뒤샹 '샘' 1917

마르셀 뒤샹 ‘샘’ 1917

두 번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의식의 억압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던 무의식의 성적 충동과 욕망을 그려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금기시되는 성적 소재가 그 ‘금기시됨’으로 인해 아방가르드 예술의 훌륭한 실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 '황혼의 격셰유전' 1934

살바도르 달리 ‘황혼의 격셰유전’ 1934

따라서 우리는 고쳐 물어진 질문들에 직면한다. “예술과 구분되는 외설의 규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작용하는가?” 그리고 “외설적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외설 규정의 성립

첫 번째로 독재 정권에 의한 외설 규정을 예로 들어보자. 혁명기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그들의 실험정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당시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표현처럼,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리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말레비치나 칸딘스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혁명 초기의 레닌 정권과는 달리 사회주의 정권이 강화되고, 결국 스탈린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의 작품 활동은 탄압받게 된다. 1932년 5월 [문학 신문]에 게재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선언’은 예술가들에게 정직, 진실성, 혁명성 등의 특정 가치들을 요구했고 결국 1934년 제1회 소비에트 전체 작가 회의에서 공식적인 예술 형식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채택된다. 정권은 예술가들을 통제하기 위해 소련 작가 연맹을 만들고 체제와 지도자들을 이상화하는 작품을 만들도록 종용하였다. 그리고 위와 같은 특정 이념을 지향하는 특정 형식의 작품 이외의 것들은 ‘퇴폐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탄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추상의 끝을 보여주는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단숨에 가장 퇴폐적이고 외설적인 그림이 되어버린 것이다.

카자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5

카자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5

나치 독일도 다르지 않았다. 히틀러는 예술 작품이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나치 사회의 안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실적인 그림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그림들은 모두 ‘퇴폐적’인 미술이라 규정하였다. 1937년, 히틀러와 그의 선전 장관인 괴벨스는 독일 내의 미술관에서 작품 2만여 점 이상을 압수하고 그중 650점을 모아 ‘퇴폐 미술 전시회’를 기획한다. 이 그림들에는 고흐, 고갱,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클레, 놀데, 키르히너 등의 현재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도 포함되었다. 이 전시회는 독일 대중에게 현대미술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저급한 예술인지 알리기 위해,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나치가 허락한 미술을 강요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나치는 ‘위대한 독일 예술 전시회’를 개최하여 둘을 대비시킨다. 예술 작품의 퇴폐성은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멋대로 규정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의 힘은 단지 독재 정권하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 정권은 사회적 억압의 극단적인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로 개인들에 의한 규정을 살펴보자. 마네의 <올랭피아> 사건은 예술 작품이 독재 정권이 아닌 시민들에 의해 부당하게 외설로 취급 받았던 대표적인 사례이다. 1865년, 올랭피아는 ‘살롱 드 파리’에 출품되어 당선되었으나 곧바로 프랑스 귀족들의 온갖 멸시를 받게 된다. 그림에 주먹질하고 지팡이로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경비원 두세 명이 항상 지키고 있었으며 그림의 자리가 구석으로 옮겨지기도 하였다. 또한, 그해 살롱전에 대판 평론 80여 개 중에 60개가 <올랭피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왜 올랭피아는 외설 작품이 되었나? 문제가 되는 지점은 당시 그들에게 이상적인 그림이라고 평가받던 것들과 달리 올랭피아에서 묘사된 여인은 귀족들이 밤에 놀아나는 고급 매춘부였으며, 아름답기보다는 한층 현실적으로 그려졌고, 정면을 빤히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이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고 있다는 듯 강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은 외설성과 관련이 없고 오히려 <올랭피아>보다 기존 살롱전에서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그림들이 더욱 외설적이었다. 기존의 그림들은 성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를 그리고 여신이나 요정의 이름을 붙였다. 그뿐만 아니라 유력한 집안의 귀부인들이 나체 그림의 모델이 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였다. 물론 고전적인 표현 양식에서 벗어난, 붓 자국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거친 그림이 살롱전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겨졌을 수도 있고, 밤에는 매춘부와 놀아나지만, 낮에는 고상한 척하는 귀족들에게 가장 고상한 장소에서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수치심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올랭피아를 비난하는 데에 사용했던 명분은 ‘외설’이라는 전혀 다른 범주의 것이었다. 자신들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외설을 수단으로써 사용한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5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5

이 사례에서도 독재정권의 예와 마찬가지로, 외설의 규정은 선언적으로 작동한다. 작품이 정말로 외설인지에 관계없이 어떠한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선언이 그 작품을 외설로 만든다. 다만 다른 것은 독재정권의 선언 하나에 의해 외설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의 선언 합이 외설을 결정한다는 것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독재자를 찬양하지 않는 작품이 외설이라는 규정이나 전통적 기법을 따르지 않고 귀족들을 비판한 작품이 외설이라는 규정이 보여주듯 특정 작품이 외설이라는 선언의 기저에는 어떠한 불편함이 존재하고, 그 불편함은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즉, 외설 선언은 니체가 말하는 권력의지1)항상 주인이 되고자 하는, 더 많은 힘을 얻기 원하는, 더욱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 니체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의지의 힘으로 충만하여 있다고 본다.의 표현이며, 권력의지의 합이 구성하는 사회적인 외설 규정은 그 사회의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2)“어떤 사물, 어떤 관습, 어떤 기관의 ‘발전’이란 다소간 깊어지고 다소간 서로 독립적인, 그 사물, 관습, 기관에서 벌어지는 제압과정의 연속이며, 덧붙여 말하자면 제압과정에서 매번 벌어지는 저항이며, 그 방어와 반작용을 목적으로 시도된 형식의 변화이자, 반격에 성공한 결과이기도 하다.” 니체, 도덕의 계보학 중 제 2논문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

규정의 효과

사실 창작물에 대한 제한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 7조3)2.7 제 7조(찬양ㆍ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개정 91.5.31>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개정 91.5.31>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91.5.31>
⑤ 제1항ㆍ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ㆍ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ㆍ수입ㆍ복사ㆍ소지ㆍ운반ㆍ반포ㆍ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개정 91.5.31>
에 대한 논쟁이 19대 대선 토론에서 있었고 불과 몇십 년 전에만 해도 반공주의라는 기치 아래에서 독재정권은 여러 창작물을 읽는 것조차 금지했다. 영화 변호인에선 그 장면이 흥미롭게 연출된다. 법정에서 검찰 측은 진우(임시완)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그 근거로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스터디 그룹과 함께 읽었음을 든다. E.H.Carr는 러시아 공산주의자이며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읽어서는 안 되는 불온서적이라는 것이다. 우석(송강호)의 반박이 곧바로 이어지는데, 영화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연출되지만, 사실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반박이다. E.H.Carr는 러시아인이 아니라 러시아에 대사로 간 영국인이며 심지어 ‘역사란 무엇인가’는 서울대 추천도서 목록에 있는 권장도서다.
byunhoin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정말로 그 책이 불온서적인지의 아닌지가 아니다. 검찰 측 주장의 부당함과 변호인 측 반박의 타당함과는 관계없이 진우는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힘을 가지고 삶을 움직이는 것이 진실이라면 진우에겐 ‘역사란 무엇인가’가 불온서적이라는 것이 진실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반공주의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다. 반공주의의 핵심은 ‘공’이 아니라 ‘반’이다. 독재정권이 공산주의적인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정권이 금지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적인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멀쩡한 책들도 불온함의 범주에 포함되면서 행위자들은 독재정권이 규정하는 ‘공’을 객관적인 정의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들은 독재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무엇인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회에서 불온함은 정권에 반하는 것을 규정하고 처벌하는 기능을 하고, 나아가 행위자들이 불확실한 적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도록 만드는 파놉티콘4)감시자 없이도 죄수들 자신이 스스로를 감시하는 감옥을 말한다. 벤담이 설계한 뒤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5년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가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의 감시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놉티시즘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을 형성한다.5)강웅식 (2005). 전체주의적 반공주의와 순수참여 논쟁. 상허학보, 15, 195-227.

판옵티콘의 예시 (출처: 위키피디아)

판옵티콘의 예시 (출처: 위키피디아)

마찬가지로, 앞에서 언급한 러시아와 독일의 사례에서 ‘추상적인 현대미술 = 퇴폐적이고 외설적’이라는 공식은 허황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력했고 독재 속에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던 러시아의 말레비치가 다시 구상 미술로 회귀하거나 독일의 에른스트 키르히너가 퇴폐 예술가로 낙인 찍히고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불온함 규정, 외설 규정은 말하자면 망태 할아버지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다. 요즘에도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할머니는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그러다 망태 할아버지가 와서 잡아간다’고 경고하곤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춰야 했다. 흥미로운 점은 망태 할아버지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실존하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효과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망태 할아버지를 믿는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망태 할아버지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똑똑한 아이도 할머니의 그 발화에서 금지라는 힘을 본다. 따라서 이 행동을 이어 나간다면 실제로 망태 할아버지는 등장하지 않을지라도 할머니가 나를 혼내고. 나는 상처 입으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 즉 망태할아버지는 그것의 실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배후에 있는 할머니의 권력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 효과를 지닌다. 즉, 망태 할아버지가 전적으로 권력에 뿌리를 두는 전략인 것처럼 어떤 창작물의 외설 규정의 타당성 역시, 힘의 분포 때문 결정되며 외설을 규정하는 행위는 결국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외설작품의 의미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외설의 규정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되며 그 구성된 규정은 다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구속한다. 그러나 힘의 분포로서의 구조와 작품 간의 관계가 일방적이지는 않다. 예술 작품은 사회의 정치적 구조와 상호작용하게 된다. 구조의 제약 아래에서 평가받음과 동시에 구조를 바꾸는 힘을 지닐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 우린 다음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며 외설 작품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첫 번째로,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고 평가되는 마네와 개념 미술의 선구자인 뒤샹의 경우가 있다. 이들은 당시 외설로 평가받은 새로운 작품 형식을 창조하여 결국 동시대 사회의 지지를 얻어냈고 그와 같은 방식의 후대 미술가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이 작업은 현존하는 예술의 정의, 예술이 아닌 것과(외설) 예술을 구분하는 견고하고 협소한 경계의 취약한 지점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를 무너뜨림으로써 기존의 패러다임에 저항하고 새로운 규정, 새로운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 하나의 가치는 그것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두 번째로, 첫 번째 경우와 달리 동시대 사회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작품들의 경우가 있다. 익숙한 예시로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마광수 작가의 ‘즐거운 사라’ 등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출판 당시 첫 번째 경우만큼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하였지만, 여전히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외설 규정이 가지는 정말 무서운 힘은 어떤 작품이 출현했을 때에 그것을 비로소 검열하는 데에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새로운 유형의 작품 등장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에 있다. 자기 검열을 통해 제한되는 작품 활동과 그로 인해 얼어붙는 공론장은 기존의 외설 규정과 그것이 대변하고 있는 힘의 분포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외설 작품들의 등장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논란을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또한, 단순히 미적 기준의 미달로 인해 잊히는 작품들과는 달리 외설로 규정되어 예술의 범주에서 배제된 작품은 나중에 언제든지 복권되어 예술이 될 수 있는 잠재적 힘을 가진다. ‘올랭피아’처럼 작품이 그 자체로 외설 규정을 바꾸는 정도의 힘을 지니지는 못해도 훗날 어떠한 이유로 인해 정치적 상황과 외설 규정이 변한다면 그에 따라 작품은 외설의 범주에서 예술의 범주로의 편입을 겪게 되고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평가 후 선구적인 예술로서 인정받은 작품들은 반대로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는 촉매의 힘을 지닐 수 있다.

'음란물'로 규정되었던 한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 출간된 '즐거운 사라'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음란물’로 규정되었던 한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 출간된 ‘즐거운 사라’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마치며

서론에서 밝힌 바대로 소크라테스적인 방식의 외설성 탐구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에 따라 고쳐 물어진 질문, “외설성이 무엇이냐?”가 아닌 “외설이 어떻게 규정되고 작용하느냐?”는 외설 규정이 정치적 권력에 의해 정의되며 실재적으로 작용하는 힘을 지닌다는 결론으로 나갔다. 외설성을 띠는 작품 행위 또한 외설 규정의 생성과 작용이 그러했던 것처럼 실재적인, 동시에 잠재적인 힘을 가지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외설에 대해 연구할 때에, 개인이 지닌 미감이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 인식 등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권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이 분명하다. 나아가 이러한 접근은 특히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예술 사조, 예를 들어 페미니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과 같은 분야의 예술을 해석하고 비평하는 데에 요청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글/ 원모원모

편집/ 린

   [ + ]

1. 항상 주인이 되고자 하는, 더 많은 힘을 얻기 원하는, 더욱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 니체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의지의 힘으로 충만하여 있다고 본다.
2. “어떤 사물, 어떤 관습, 어떤 기관의 ‘발전’이란 다소간 깊어지고 다소간 서로 독립적인, 그 사물, 관습, 기관에서 벌어지는 제압과정의 연속이며, 덧붙여 말하자면 제압과정에서 매번 벌어지는 저항이며, 그 방어와 반작용을 목적으로 시도된 형식의 변화이자, 반격에 성공한 결과이기도 하다.” 니체, 도덕의 계보학 중 제 2논문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
3. 2.7 제 7조(찬양ㆍ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개정 91.5.31>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개정 91.5.31>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91.5.31>
⑤ 제1항ㆍ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ㆍ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ㆍ수입ㆍ복사ㆍ소지ㆍ운반ㆍ반포ㆍ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개정 91.5.31>
4. 감시자 없이도 죄수들 자신이 스스로를 감시하는 감옥을 말한다. 벤담이 설계한 뒤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5년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가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의 감시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놉티시즘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5. 강웅식 (2005). 전체주의적 반공주의와 순수참여 논쟁. 상허학보, 15, 195-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