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연희관015B>에도 실린 글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마감이었던 전공 기말 보고서를 끝내고 일주일 뒤 1월 1일. 우발적으로 발권을 했다. 3월 13일 출국, 5월 3일 입국. 50일의 남미였다.

남미를 선택한 것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미장셴1)미장셴(mise en scène) : 영화의 한 프레임 내에서 배우와 세트 디자인의 고정된 배열때문이었다. 그 장면은 CG였지만, 지구상에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과 가장 비슷하다 하여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 뒤로 우유니 사막에 가는 것은 항상 마음 속에만 적어 놓은 버킷 리스트였는데,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 우유니 사막에 꼭 가겠다고 SNS에 적어 놨다. 글을 공개적으로 적어 놓으니 정치인의 공약처럼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고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이래서 꿈이나 계획은 주변에 말하고 다녀야 한다는 걸까? 결과적으로 그 글은 반년만에 성지가 됐으니 효과적인 방법은 맞는 것 같다.

영화 의 미장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미장셴(출처: http://blog.naver.com/j4e4/70155387956)

작년 여름방학 때 동기들과 서유럽 4개국을 다녀왔다. 2학년 여름방학에 많이 가는 그런 여행이었다. 유럽 여행은 정보 출처가 페이스북부터 여행 책자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정보들은 일률적이다. 심지어 스위스에서 같은 방을 쓴 사람이 꺼낸 여행 서적은 내 친구가 계획을 짤 때 참고한 책이었다. 그 분도 우리와 순서만 다르지 같은 곳을 갈 계획이었다. 이탈리아 피사에서 만난 한국인 여자를 베네치아에서 다시 만난 적도 있었다. 각기 다른 여행지에서 3번 만나면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다 비슷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하는 방법도 비슷해 보였다. 실물은 볼품 없을 지라도 사진이 잘 나오기로 유명한 포인트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고 엄선작을 SNS에 올렸다.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대상보다 카메라 렌즈 뒤의 대상에게 집중하는 사진이 어떻게 본인에게 의미가 있을지 이해가 안되었다.

이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면, 식당과 숙소, 관광지 등 다른 사람들의 일정을 보고 참고하게 된다. 사람들의 좋은 여행에 대한 기준이 맛집, 관광지 등 비슷하니 스스로 짠 자유여행도 패키지 여행과 같이 되기 십상이다. 진정한 자유여행이라면 나에게 좋은 여행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다시 해야할 것 같았다. 내 자유의 방식과 당신의 자유의 방식이 같지 않듯이, 각자의 좋은 여행은 다를 것이니 말이다.

#사람여행

제1의 조건이었다. 배낭 여행의 성지인 남미는 청춘들의 체력을 한껏 발산할 수 있는 여행지다. 신생대에 형성된 가파른 자연들과 그를 정복하듯이 찍은 열정의 selfie들은 ‘저 사람 정말 젊고 창창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그 사람들 사는 거 보는 평화로운 여행을 하고 싶었다. 사막 트레킹, 정글 탐험 말고 그 사람들 사는 거 보고 듣고 나 혼자 생각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 콜롬비아에서는 버스 문화가 큰 충격이었다. 수도나 대도시는 덜한 편이었지만, 시골 버스들은 정말 아무 곳에서 정차했다. 지나가다가 손 드는 승객이 있으면 어디서든 태운다. 물론 버스 터미널에서는 다 정차하지만 현지인 대부분이 길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 근처에 오면 기사님에게 내려 달라 했다. 심지어 몇몇 손님들은 처음 본 버스 기사님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하기도 했고 정말 작은 마을 버스에서는 깔깔거리며 승객과 기사가 떠들기도 하였다. 나야 알아들을 길이 없어 내용은 모르겠지만, 장시간 운전하는 기사님들을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기사님 옆 자리로 가 말을 거는 사람들은 매번 있었다.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알파카와 함께 사진을 찍어 주며 돈을 받던 페루 아이.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알파카와 함께 사진을 찍어 주며 돈을 받던 페루 아이.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인사였다. 손님과 기사의 마지막 인사는 항상 “Hasta luego.”였다. 한국어로 “나중에 봐” 정도다. 처음에 이를 듣고 승객과 기사님이 서로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다. 작은 시골 버스에서는 매일 보는 사람일 테니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8시간씩 이동하는 시외 버스 기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중에 보자’라고 하니. 거참, 이건 가능성이 없는 말이었다.

한국에서 버스 기사님을 포함해서 낯선 누군가와 인사를 할 때 “나중에 봬요.”라는 인사를 한 적이 있나? 상상도 해본 적 없다. 한참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때, 언제 한 번 기사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Adios.”라고 건넨 적이 있다. 그러자 기사님이 씩 웃으며 “Hasta luego.”라고 답했다. 아. 이거였다. 나도 “Hasta luego.”로 다시 인사를 건넸다. 살아 생전 다시 못 볼 사람이지만, 그 눈빛과 말에서 우리의 인연과 안녕은 이어졌다. 요금은 교통 카드로만 찍어보고 정차는 정류장 전후 10m에서만 하는 게 법인 한국의 촌뜨기에게 콜롬비아인들의 무스비2)일본 영화 <너의 이름은>에 나와 유명해진 말로, 영화 맥락 상으로는 ‘인연’과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 편집자 주는 당황스러웠지만 돌아와서는 가장 곱씹게 된 이유가 됐다.

#우연

우연이 주는 작지만 빈번한 기쁨을 좋아한다. 사실 이것은 과학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다. 변명 반 진심 반으로 그를 기대해 무계획인 것도 있었다. 사전 계획은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머물 한인 민박을 예약하고 여행 에세이집에서 마음에 드는 도시들을 며칠씩 머물지 엑셀로 얼개를 잡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물론 처음에 도착한 콜롬비아부터 비행기로 부친 짐이 하루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시작부터 계획대로 된 것은 단 하루도 없었다. 숙소 예약은 다음 여행지로 넘어가기 하루 전이나 급할 때는 출발하는 버스에서 했다. 예약을 못했더라도 비수기인지라 당일 날 문을 두드리면 항상 방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잡은 방이 침대도 멀쩡하고 따뜻한 물까지 잘 나오면 세상에서 제일 운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실 숙소 같은 것들은 좀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면 그 날의 운에 따를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좋은 선택을 내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연은 그럴 수 없다. 여행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동행으로 삼지 않는 이상,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의 인연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던 인연들은 8명 정도인데, 다들 개성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콜롬비아 시골 바리차라(Barichara)에서 만난 독일인 Maria, 호주 워홀을 마치고 개척의 여행을 하던 @Travel_or_trouble,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첫 동갑내기 친구들, 콜롬비아 전남친을 욕하던 욘사마 언니, 동방신기 굿즈 판매상이었던 언니 등 그 짧은 시간에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곱씹게 된 인연들을 만난 것이 신기하다.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런 인연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엄마에게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 사진을 보내며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야.”라고 하니, 답장으로 “엄마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딸이 보여요.”라고 왔다.

엄마에게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 사진을 보내며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야.”라고 하니,
답장으로 “엄마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딸이 보여요.”라고 왔다.

우연이 누군가에게는 신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신의 계획이든, 또는 정말 우연이든 나의 여행을 즐겁게 만들었던 모든 맞물림에 감사하다.

#나만의

모두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다면 각자의 여행은 각자로서 의미가 없게 된다. 지코의 Artist 가사대로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아티스트고 각자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단도 여행이니 말이다. 남미에는 여행지가 다양한 반면 여행 정보는 유럽, 아시아에 비해 많지 않으니 자기 하기 나름이다. 다들 자신의 서사를 만드는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페루 쿠스코나, 볼리비아 우유니에서는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고, 주로 코스가 정해져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하기 때문에 이 안에서 각자의 경험을 만들기에는 선택지가 좁다. 게다가 우유니 같은 경우는 마을 자체도 모레 날리는 황무지여서 워낙 볼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온 여행자를 만났다. 처음 만나자 마자 그 사람은 다른 한국인들과 같이 오후 투어 때 본 기차 무덤에 별을 보러 가자고 제안하였다. 기차 무덤이 마을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지도 몰랐고 다들 ‘그런 곳이 있나?’ 하며 의심 반, 신남 반으로 나섰는데 다신 볼 수 없을 광경을 보고 왔다. 은하수가 끊임 없이 펼쳐지고 멍하니 보고 있으면 금방 유성이 떨어졌다. 물론 관광지를 밤에 겁 없이 돌아다니면 사고가 날 위험도 있지만 이렇게 단체로 가거나 낮에 선행으로 관찰해보고 위험하지 않다는 어느 정도의 판단이 섰다면 충분히 감행해볼만 한 것 같았다. 그 날 밤은 이 여행만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아주 오래 기억될 밤이었다. 이 밤을 제안해준 그 여행자는 도대체 어떤 여행을 하고 다니기에 이런 기발한 여행을 하나 싶었다.

멍 때리고 있으면 유성이 떨어졌다.

멍 때리고 있으면 유성이 떨어졌다.

이런 개척의 이야기가 있다면 나의 이야기는 소도시로부터 나왔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여행 에세이집을 보고 여행지를 선정하니 그 작가가 방문한 곳에 소도시가 많았다. 남미 여행 카페를 찾아봐도 소도시나 시골들은 좋다고는 하는데 정보가 너무 없으니 우선 무작정 부딪혀 보기로 하고 찾아갔다. 정보 없이 찾아간 여행지여서 위험할 수 있었으나 소도시, 시골일수록 때 묻지 않은 따뜻한 눈동자들이 반겨줬다. 대도시는 여행 정보를 얻기 쉽고, 상가가 많아 필요한 것을 구하기는 편했지만 빈부 격차가 심하고 치안이 좋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였다.

다녔던 곳 중에 한 곳만 추천하자면 볼리비아의 ‘타리하(Tarija)’를 꼽고 싶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남미 최애 도시라며 소개하지만, 여행 정보는 신기하리만큼 없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타리하를 아는지 물어봤지만 정말 단 한 명도 타리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호텔 주인에게 다음 여행지가 타리하라 하니 엄청 예쁜 곳이라며 엄지 척을 해줬다. 아마 동양권 여행자들보다는 서양이나 현지인들에게 더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도착하고 나서 찾아 보니 타리하는 볼리비아 경제의 70%를 맡고 있는 BIG3 도시였다. 평소 보던 대도시들과 비교하면 정말 작은 와이너리 마을이어서 우리는 소도시라 하지만 볼리비아 입장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부유한 도시였다. 소문만 무성한 타리하에 대해서 이것 저것 상상해봤지만 우선 도착해서 버스 터미널이 버젓한 건물이란 것에 감동을 받았다. 그 후에 돌게 된 정말 저렴한 가격의 와이너리 투어나 자전거를 타며 돈 타리하 공원의 정돈됨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물던 호스텔 Casa blanca는 디지털 노마드3)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 인터넷과 관련된 업무를 직업으로 삼아,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원격근무 하는 디지털 유목민. 인도네시아 발리와 독일 베를린이 유명하다.들이 장기 투숙을 하며 여행도 하고 숙소 해먹에 누워 업무도 보는 곳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이렇게 노트북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노마드의 삶도 진지하게 내 선택지 중 하나로 들어왔다. 그리고 약간의 낭만 한 스푼으로 여행에서 다 읽은 <노르웨이의 숲> 양장본을 이 곳 서재에 꽂고 왔다. 다음에 이 숙소에 머물 한국인이 한 번쯤 반갑게 열어줬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라면 더 의미 있겠지만.

타리하 와이너리 투어에서 현지 관광객들에게 ‘보니따(bonita)’를  우레와 같이 듣던 그 날의 영광.

타리하 와이너리 투어에서 현지 관광객들에게 ‘보니따(bonita)’를
우레와 같이 듣던 그 날의 영광.

#Set_me_FREE_from_myself

마지막 조건이자 모토다. 나에게 나쁜 여행이 있다면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한 여행’이다. 외부의 속박과 달리,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스스로이기 때문에 알아채기도, 끊어 내기도 어려운 일종의 강박이다. 사실 여기에 쓴 좋은 여행에 대한 정의도 스스로의 자유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임과 동시에 그에 형틀을 잡아 버리는 과정이다.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이자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나의 일상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찬가지다. 반드시 해야하는 강박의 것보다 매 순간 변화하는 스스로에게 충실하였으면 좋겠고 그럴 용기가 있으면 한다.

09-6

여행을 다녀와서, “남미 어때?”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혼자여서 무섭지 않았어?” “혼자여서 외롭지 않았어?” 이 두 가지인 것 같다. 답은 당연히 무섭고 외롭다. 당사자들도 답정너 식으로 물어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다시 한 번 붙여 보자면, 가장 자유로웠다. 가장 중요했다. 일정도 정말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식사도, 숙소도, 관광지도 제 멋 대로였는데, 만약 타인과 함께 이 선택을 해야 했다면 그들의 동의와 조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로 인한 마찰도 감수를 해야할 것이고. 그리고 그 동행으로 인해 더 이상의 인연에 문을 열지 않았을 것 같다. 혼자 떠났지만 항상 혼자는 아니었다. 여행하다 만난 인연들과 함께 다니기도 했고 그 다음 일정에서 방향이 다르다면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기쁘게 이별했다. 여행 전체에서 혼자였던 시간 반, 그렇지 않았던 시간 반으로 외로움, 무서움 그리고 자유는 꽤 조화로웠다.

우유니 그리고.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목적인 우유니에 대해 쓸 대목을 놓쳐 마지막에 쓰려 한다. 사실 여행 중간부터 우유니는 남미 여행의 제1의 목표에서 벗어났다. 자꾸 생각나는 콜롬비아의 사람들 때문인지, 남미를 오직 우유니로 대표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대륙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이 곳에 온 큰 목적이니 우유니를 찾았다.

우유니, 당신은 도대체

우유니, 당신은 도대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감히 영겁(永劫)의 시간을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표현으로 어떻게 표현할 지 모르겠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여기까지, 나의 50일 단상이다. 모든 주관적 정의가 그러하듯 좋은 여행의 의미 찾기는 결국 ‘나’를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 좋다는 기준 자체가 나로부터 비롯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최근에 친구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1년전에는 아마 망설이거나 그렇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여전히 고민은 많고 전보다 더 바빠졌지만 내가 꿈꾸는 존재이기에 할 수 있는 바쁜 나날들도 ‘삶’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남미에서 키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기반이 된 것 같다.

다녀와서는 아직 다음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없다. 다만 막연하게 버킷 리스트 여행이 하나 생겼다. 돌아오고 나서 장시간의 이동시간과 불편한 침대로 허리가 많이 안좋아져서 5월 초에 바로 요가를 시작했다. 이 잔잔한 운동이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하루의 큰 버팀목이 되어서 앞으로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버킷 리스트는 25살 전에 인도로 100일 요가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듣자 하니 매 식사 전후로 수련하면서 하루에 3번 이상 요가를 한다는데, 그쯤이면 효리 언니처럼 발가락을 이마에 붙일 수 있지 않을까? 3년정도 남았는데, 다녀와서 더 자유로워진 인도 기행문을 쓰고 싶다. 아스따 루에고.

 

글/ 화영

편집/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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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장셴(mise en scène) : 영화의 한 프레임 내에서 배우와 세트 디자인의 고정된 배열
2. 일본 영화 <너의 이름은>에 나와 유명해진 말로, 영화 맥락 상으로는 ‘인연’과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 편집자 주
3.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 인터넷과 관련된 업무를 직업으로 삼아,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원격근무 하는 디지털 유목민. 인도네시아 발리와 독일 베를린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