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안똔의 퀴어아카이빙 인터뷰 후기

지난 27일 안암 업타운코워킹스페이스에서 열린 미스핏츠 퀴어서사 아카이빙 프로젝트 <새삼스레> 출판 기념 토크콘서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민한 지점에 대해 질문을 했다. 퀴어 아카이브 퀴어락 활동가 루인님이 너무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주셔서, 잊기 전에 적어둔다.

안똔이 진행한 인터뷰 중 일부

안똔이 진행한 인터뷰 중 일부

<새삼스레>에서 내가 주로 맡았던 부분은 인터뷰 작업이었다. 신청을 받아 인터뷰이의 정체성이나 지향 등을 미리 간략하게 파악한 뒤, 총 11명의 퀴어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기사를 작성했다.

본디 미스핏츠의 출발점은 “대상화된 존재가 아닌”, “정형화된 이미지로 호출되는 청년의 모습에서 벗어나, 각자의 담론을 지닌 핏(fit)하지 않은 주체를 지향”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 또한 인용구의 “청년”이라는 말을 ‘퀴어’로 치환한다면 충분히 설명되리라 생각한다.

어떤 문제가 진부하다는 것은 그 문제에 반복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진부하지만 “각자의 담론을 지닌 핏(fit)하지 않은 주체”로서의 퀴어가 어떻게 재현될 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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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사를 작성, 게재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말이 되도록’ 나의 주관에 따라 원래의 발화에 변형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인터뷰이 발화의 초언어적 자질들, 인터뷰가 행해지는 시공간의 맥락 등도 기사 본문에서는 쉬이 변질되거나 망실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인터뷰 중에 인터뷰이가 스스로를 젠더플럭스, 레즈비언 등으로 규정하는 순간, 나는 이미 내 머리 속에 특정한 상이 그려지고 어느새 인터뷰어인 내가 듣기 원하는 대답에 따라 ‘그림이 되도록’ 인터뷰이에게 유도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다.

하지만 딜레마는 소위 유도질문이 없다면 결코 나오지 못하는, 인터뷰이조차 미처 의식하고 있지 못한 자기 서사의 요소들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순수/순진한 재현은 불가능하다. (설령 내 주관의 개입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그 어떤 요구 사항도 제시하지 않은 채 퀴어 당사자에게 전적인 자유를 부여하고 자기 서사 기고를 요청, 연후 전혀 편집을 가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퀴어 재현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가 보낸 글은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국에 자신이 바라보는 자기 모습,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원하는 방식에 따른 자기 모습이 개입된 재현일 것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주체로서의 퀴어 재현은 어떻게 가능한가? 당사자 아닌 인터뷰어/저자가 택할 수 있는 재현의 방식은 무엇인가? 이것이 내 고민의 골자였다. 그리고 루인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루인(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루인 (퀴어아카이브 퀴어락)

– “인터뷰이라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이 뭔지 모르겠어요? 다만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면 됩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작 나는 인터뷰에서 원래 목표한 바와 달리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를 동등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인터뷰어가 일방적으로 요리할 수 있는 관계로 간주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시혜적인 관점으로 고민을 해왔던 것이다. 인터뷰어의 의도가 어떻든, 그가 기만하지만 않는다면 그 의도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오롯이 인터뷰이의 몫이다. 그리고 문제는 각자의 의도/주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의 페어 플레이지, 의도/주관의 유무가 아니다. 내가 책임지지 못할 지점을 고민하지 말고,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을 인정해줄 것. 덕분에 굉장히 흡족한 하루였다.

글 / 안똔

편집 / 싱두

사진 / 손상민, 송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