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국제정치를 전공하며 정치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27살의 남자입니다. 학부 성적도 좋은 편도 아니었고 지금 현재 대학원에서도 학계를 뒤흔드는 논문을 내놓지 못하는 부족한 학생이기에 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원을 고민할 때 여러 참고하였던 후기들은 대부분 정석의 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분은 ‘학부 4년 + 괜찮은/우수한 학점 + 공부의 필요성 느낌 = 대학원 진학’이라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저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낮은 학점으로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특이한 케이스’를 공유하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합니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또는 해야 하는가?

저는 학점의 기복이 굉장히 심했던 학부 생활을 보냈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란 저는 “대학을 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보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랐기에 대학교육이 제 인생에 왜 필요한지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을 진학하였습니다. 공부의 뜻이 전혀 없었으니 저는 스무살의 대학 생활을 합법적으로 사회에서 성인에게만 제공하는 다양한 가무(?)를 즐기는데 시간을 허무하게 보냈습니다. 술자리의 연속은 기본이며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1학년이 끝난 후 저는 학사경고와 함께 전교 꼴찌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제가 충격적인 학점을 받았지만 결코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졸업은 언젠가 할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긍정적 마인드에 “이건 내 본래 실력이 아니다”라는 자기 합리화를 거쳐 “나의 성공은 학점과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으로 도달한 제 스무살의 부끄러운 생활을 글을 쓰며 오랜만에 돌아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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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케이툰 현이씨 <즐거 우리 우리네 인생> 중 갈무리

그렇게 스무살의 파란만장한 대학생활이 지나가고 졸업 학년이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게 된 2015년은 저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해로 기억에 남습니다. 왜냐하면 이 해에 제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이 공부를 통해 대학원 진학을 굳게 마음을 먹게 되었으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졸업년도에 공부의 의미를 찾게 된 배경은 두 가지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첫 번째로, 2학년부터 3학년까지 외교부 재외공관에서 1년반 동안 인턴으로 일했던 경험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광화문 본부와 마찬가지로 재외공관에서도 직급별로 업무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저는 인턴 직책이였기에 당연히 외무공무원 8-9급 직무에 해당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관에 계셨던 많은 서기관 분들께서1)서기관은 본부에서 4급+외무고시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정외과 학생인 것을 아셨기에 국제정치에 대해 지나가면서 가끔 질문하셨습니다.

저를 자주 불러 말 걸어주신 한 서기관께서 어느 날 “넌 Morgenthau의 현실주의적 시각2)편집자 주: Morgenthau는 국제정치학자로 국제관계학, 국제정치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고전적 현실주의를 대표한다. 고전적 현실주의란 ‘권력’이 인간의 중요한 본성이라고 본다. 이는 국가 또한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를 지배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본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하신 게 기억이 나네요. 해당 질문은 사실 정외과 1학년도 답할 수 있는 매우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졸업학년을 제외하고 학부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해당 질문에 대해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 서기관께서는 웃으면서 “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복잡한 한국외교를 풀어갈래?”라고 핀잔을 주셨습니다. 이 순간 공부가 어느 수준 되어있지 않으면 본인이 스스로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졸업학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by 자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by 자까

두 번째로, “그래, 딱 1년만 공부해보자. 졸업학년이라도 공부를 해보고 나 자신의 지적수준을 테스트 해보자”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학점이 낮아도, 멍청해서 학점이 낮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저에게 마지막 학년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공부, 그래 한번 1년만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한 번 마음 먹고 공부만 해보았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친구들에게 ‘인간적으로 너무 섭섭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술자리를 끊었고 기말고사 기간인 1달 중 절반을 중앙도서관에서 생활할 정도로 저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중앙도서관에서 생활했다는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제가 졸업한 학교는 24시간 중앙도서관을 운영하였기에 모든 세끼를 도서관에서 해결하며 간단한 샤워를 화장실에서 하였고 숙면은 도서관 구석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잔 기억이 나네요 ( 과장 하나 없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 경비원 분들과 친해졌고 기말고사 동안 경비원 분들은 저를 “캐리어맨“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술형 기말고사와 학사 논문을 써야 했기에 참고한 책이 많아 항상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녔던 저의 모습 때문에 이러한 별명으로 불리는 게 사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정말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명시적인 증거였으니!

결과가 궁금하시죠?

제가 4학년 12개월 동안 이수하였던 60학점 중 모든 과목에서 상위 10% 이내에 포함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이란 것도 받아 보았습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저를 보며 저희 부모님은 “어디 아프니?”라는 말씀을 하신 게 여전히 우리 집에서 술만 마시면 나오는 하나의 안줏거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칭찬에 인색하셨던 학사논문 지도교수께서 논문 평가 후 마지막 날 “넌 분명히 대학원 가서 성공할 자질을 갖고 있어”라는 예상도 못한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때 춥고 눈이 많이 온 흐린날이였는데…울진 않았고 그냥 미친사람처럼 웃고 다닌 기억이 납니다.

성☆공

성☆공

마지막으로, “정말 열심히 하면 인정해주는구나”라고 느낀 부분은 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그 날, 사회대 학장님께서 절 부르셔서 “너는 분명히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 주신 그 날이 생각이 납니다.

부족하고 늦어도 괜찮아,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12개월을 한번 ‘제대로’ 공부해본 결과 공부가 재밌어진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12개월을 연장하여 석박사라는 과정을 통해 “제가 과연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라는 새로운 자신과의 싸움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것은 학점이라는 객관적 평가지표가 존재하는 한 분명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제 학점을 들고 대학원을 진학하려 하니 10명 중 9명은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줬고, 심지어 면담을 통해 만났던 한 교수님은 “이 학점으로 우수한 대학원을 가기에 불가능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과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시간과 정성이 남보다 조금 더 들었을 뿐, 감사하게도 저에게 과분한 학교에서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은 분명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뚜렷하게 “이 방법이 제일 좋아요”라고 말하기 사실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 극복하는 과정이 가장 뜻 깊고 의미있을 시간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성☆공 (출처: MBC 무한도전 갈무리)

성☆공 (출처: MBC 무한도전 갈무리)

본인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합니다. 본인의 학점이 낮다는 이유로 “여긴 당연히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거나, 주변의 경쟁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내가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혹은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도전을 망설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고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면 정말 부딪혀보지 않는 이상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머리로 느끼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의 차이

분명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머리로 느끼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위에 소개한 일들이 저에게 “울림(Calling)”으로 다가와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분명 부모님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만 했다면 마음으로 느끼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 대학원을 진학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저의 부족한 글을 통해 졸업 후 진로, 또는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셨길 희망합니다.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캐리어맨

   [ + ]

1. 서기관은 본부에서 4급+외무고시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편집자 주: Morgenthau는 국제정치학자로 국제관계학, 국제정치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고전적 현실주의를 대표한다. 고전적 현실주의란 ‘권력’이 인간의 중요한 본성이라고 본다. 이는 국가 또한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를 지배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