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 보였어요. 꺼맸어요. 처음엔 불을 끈 줄 알았어요.”

– 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 이경하 씨의 증언

지난 16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라는 이름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삼성과 LG의 스마트폰을 제조하던 하청 사업장에서 메탄올을 사용하던 도중 급성 중독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피해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토크 콘서트였다. 메탄올 실명 노동자 대표로 UN 인권이사회에 나가 무엇이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연설한 김영신 씨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박혜영 씨, 해당 사건을 꾸준히 기사화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인숙 변호사를 중심으로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왼쪽부터 박혜영 활동가, 한정애 의원, 박인숙 변호사, 선대식 기자 (사진/ 린)

왼쪽부터 박혜영 활동가, 한정애 의원, 박인숙 변호사, 선대식 기자 (사진/ 린)

콘서트가 시작하며,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하고 싶은 말을 나누었다. 콘서트는 피해자들을 후원하는 스토리펀딩의 리워드 성격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는 가운데, 가족들 중 한 분은 눈물이 북받쳐 올라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분은 목이 메이는 것을 참고 가까스로 말했다.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도와주세요.” 가슴이 아파오는 순간이었다.

지난 6월 18일 끝난 스토리펀딩 화면 캡쳐. 목표 금액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감되었다.

지난 6월 18일 끝난 스토리펀딩 화면 캡쳐. 목표 금액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감되었다.

메탄올 급성중독 직업병 피해자들은 모두 삼성, LG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하청 사업장에 파견되어 있었다.1)이하의 내용은 노동건강연대와 한국산업보건학회에서 발간한 ‘2016년 스마트폰 제조 하청사업장에서의 메탄올 급성중독 직업병 환자군 추적조사 및 사후관리 방안’을 참고했다.

피해자들을 추적조사하고 사후 관리 방안을 쓴 보고서

피해자들을 추적조사하고 사후 관리 방안을 쓴 보고서

 

피해자들은 총 6명으로, 이경하(27), 박민근(27), 송희진(28), 김남호(25), 김혁(27), 최진혁(33)이었다.2)모두 앞에서 언급한 ‘…사후관리 방안’에서 사용한 가명이다 송희진, 이경하, 박민근, 김남호 씨는 비슷한 시기3)2016년 1월 중순에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느꼈고, 이런 증상을 느낀지 하루 이틀만에 시력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8개월 후 김혁, 최진혁 씨도 피해자로 드러났다. 최진혁 씨는 송희진 씨와 같은 공장에서 피해를 입었다. 송 씨가 실명으로 공장을 떠난지 한 달 뒤에 입사했고, 똑같은 증상을 보인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눈이 침침하고 너무 피곤한 채로 퇴근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앞이 아예 보이지 않았거나,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에 실려가자 담당 의사가 작업 환경이 어떤지 물어 곧바로 메탄올 중독에 의한 직업병임을 파악한 경우도 있었지만, ‘작업 환경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피해자의 말을 의사가 무시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환경이었을까

여섯 명의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작업장에서 메탄올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공기 중 메탄올 농도가 매우 높은 상태였거나, 입과 눈 등에 메탄올이 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메탄올은 위험도가 높은 물질인데도 노동자들은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이경하·박민근 씨의 경우 작업장에서 스마트폰 부품을 절삭하기 위해 메탄올 용액을 사용했고, 이후 남아 있는 메탄올을 제거하기 위해 에어건을 이용했다. 작업 과정 상 메탄올이 사방에 튈 수밖에 없었지만, 노동자들은 보안경, 보호장갑, 방진마스크 등을 끼지 않은 상태로 일했다. 산업안전공단에서 이 작업장을 조사한 결과 공기중 메탄올 농도가 허용기준치의 11배로 드러났다. 이들은 약 4개월 동안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였으며, 휴무도 제때 갖지 못했다. 밤낮 없이 메탄올에 노출된 셈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의 한 장면

MBC ‘시사매거진 2580’의 한 장면

“마스크는 일회용 마스크, 장갑은 목장갑. 일하다 장갑이 젖으면 바로 마르고, 메탄올이 묻었다가 말랐다가” – 박민근

“…알코올인지도 몰랐다니까. 관리자 한 명이 위험하다고 튄다고 문 열어서 하라고 했거든요. 근데 사장이 오면 문 왜 열었냐면서 능률 떨어지게, 빨리 빨리 해야지 열지 말라고 막 그러고.” – 송희진

해당 공정에는 메탄올 대신 에탄올을 사용할 수도 있다. 에탄올은 그 자체로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 하지만 메탄올이 에탄올에 비해 두 배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공장들은 메탄올을 사용했다. 메탄올은 기체 상태로 다량 흡입할 경우 중추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4)메탄올의 유해성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http://www.nifds.go.kr/toxinfo/SearchUtil_getDetailChemTcd.action?hddnToxicCode=T1000000291 이 링크를 참고할 것.  14년 고용부가 벌인 작업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작업 중 메탄올을 쓰는 국내 공장은 3,100여곳에 달했다. 5)한겨레, ‘가습기살균제 참사 ‘판박이’…‘메탄올 실명 사태’ 아시나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3354.html#csidx3089d401c9060ffa991d9d365619245

메탄올의 위험성에 대해 방송한 SBS 뉴스의 한 장면

메탄올의 위험성에 대해 방송한 SBS 뉴스의 한 장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노동자를 파견한 인력파견업체들은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의사가 걸어온 전화에 ‘그런 물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작업 환경 때문인 것 같다’고 나서서 책임을 지려고 한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몇백만원의 푼돈을 보상금으로 지급한 후 일을 묻으려 했다. 이후 환경조사를 통해 몇몇 공장이 폐업하기도 했지만, 해당 공장들의 사장은 다시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이 공장들은 또 다시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의 하청으로 들어갔다.

“근데 그 전에 그 아웃소싱6)파견업체 이사라는 사람이 제 처가 술을 많이 먹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중략) 자꾸 술 쪽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 이경하 씨 남편

“언론기사가 난 후, 한 공장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 사람이 우리 공장에서 일 안했다고 말하면 니네가 어떻게 할 거냐?’” – 박혜영

사건을 보도한 JTBC 뉴스의 한 부분

사건을 보도한 JTBC 뉴스의 한 부분

이후 피해자들은 치료비를 받기 위해 산재보험을 신청하게 되었다. 신청 자체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메탄올 급성중독 이후 몸에서 메탄올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7)메탄올의 반감기는 2~4시간으로, 일찍 진단받지 않으면 메탄올이 몸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지는 셈이다 김혁 씨는 자신이 메탄올 사용 공장에서 일을 해다는 것부터 증명해야 했다. 사고 이후 파견 업체 이름이 3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기부 등본을 분석하여 같은 파견회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산재보험이 승인이 난 이후에도 MRI 등의 추가 검사를 받으려면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정신과 검사는 또 다시 신청해야 하는 등 피해자들은 점점 지쳐갔다.

앞에서 송희진 씨가 퇴사한 후 입사한 최진혁 씨도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메탄올 급성 중독 피해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공단이 위치한 병원에도 이 사실이 통보되지 않아, 최초로 피해 원인이 밝혀진 후에도 피해자들은 왜 아픈지 알지 못한 채였다.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중 실명을 피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계속 일했다.

‘위험의 외주화’

현행법 상 파견 업체는 공장에 일을 주게 되면 원칙적으로 책임이 없다. 따라서 2차, 3차 하청을 주는 삼성, LG 등 대기업은 더더욱 책임이 없다. 결국 노동 환경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든 벌을 받을 사람은 해당 공장의 사장이다. 그리고 그 벌이라는 것마저 벌금 몇백만원이나 집행유예에 불과하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환경을 조성한 사람들은 정작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기업도, 파견업체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한 한 의원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삼성 같은 대기업이 모를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의 경우에, 품질 관리를 위해 1차, 2차, 3차 하청까지 관리자들이 돌아다녀요. 삼성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죠. 이렇게 과정을 감시하는데 어떤 물질을 쓰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렇다면 품질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뜻이겠죠. 품질을 관리하듯이 근로조건을 관리하기만 한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정부 역시도 건설 등의 사업에서 외주를 주고 있다. 외주는 발주자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더 낼 수 있고, 조직의 유연성과 민첩성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비롯, 많은 대기업에서 이곳저곳에 외주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언제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부담을 견디며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수익성을 더 얻는 건 파견업체와 발주 업체인데, 이로 인해 생기는 위험과 부담은 노동자만 지는 것이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 대책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에 따르면, 사망사고 1~3위 기업에서 사망한 노동자 26명 중 22명이 하청 노동자였다.8)한국일보, ‘사망사고 1~3위 기업 26명중 22명 하청노동자’, http://www.hankookilbo.com/v/0ed29ac92a0041cab2d4507c8190eb65

외주화에 대해 다룬 '하청사회' (양정호 지음, 생각비행 출판)

‘하청사회’ 라는 책은 한국 사회를 아예 ‘하청사회’로 정의하고 있다. (양정호, ‘하청사회’, 생각비행 출판)

박근혜 정부는 작년 초 파견법을 개정하려 했던 적이 있다. 개정안은 고령자에 한해 파견이 가능한 직무의 범위를 확대하고,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도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는 “파견법을 개정하면 파견 노동자는 파견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하청업체에서 일할 때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견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서 노동자의 환경이 나아지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애초에 파견 자체가 불안정 노동인 만큼 이를 권장하는 것은 결국엔 ‘위험의 외주화’에 불과하다. 다행히 이는 통과되지 않았지만, 파견 노동의 위험은 간과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JTBC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의 발언

JTBC ‘썰전’에서 유시민의 발언

안전한 사회는 언제 올까

토크콘서트에 공연 손님으로 온 4.16 합창단은 “우리 아이들이 왜 구조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며, 이 사건도 세월호 사고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 날 공연한 4.16 합창단의 모습

이 날 공연한 4.16 합창단의 모습

“위험하다고 고지조차 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횡포 때문에 사람들이 또 다쳤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삶은 그 전과 달라져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꿈을 펼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장에서 메탄올 말고 더 안전한 물질을 사용했다면, 메탄올에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제대로 환경을 갖추었다면, 원청 기업들이 하청 공장의 근로 환경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메탄올의 위험에 노동자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공장을 국가가 제대로 감독했다면 돈을 벌기 위해 나섰다가 시력을 잃는 사고를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회는 이 사고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단순히 ‘운 나쁜 사고’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삼성에서 스마트폰 특가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삼성에서 어떤 스마트폰이 나오는지, 이번엔 어떤 성능이 개선되었는지, 가격은 얼마나 책정되었는지는 계속해서 기사화되고 모두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 스마트폰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떠한 노동이 이루어지는지는 아무도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전시된 스마트폰들 중 많은 수가, 누군가가 실명의 위험을 까맣게 모른 채 밤 늦게까지 일하며 만들어낸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방금 전까지 콘서트에서 본 그들의 눈물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다.

 

글, 편집 / 린

피처 이미지 출처 / JTBC 뉴스 캡처

   [ + ]

1. 이하의 내용은 노동건강연대와 한국산업보건학회에서 발간한 ‘2016년 스마트폰 제조 하청사업장에서의 메탄올 급성중독 직업병 환자군 추적조사 및 사후관리 방안’을 참고했다.
2. 모두 앞에서 언급한 ‘…사후관리 방안’에서 사용한 가명이다
3. 2016년 1월 중순
4. 메탄올의 유해성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http://www.nifds.go.kr/toxinfo/SearchUtil_getDetailChemTcd.action?hddnToxicCode=T1000000291 이 링크를 참고할 것.
5. 한겨레, ‘가습기살균제 참사 ‘판박이’…‘메탄올 실명 사태’ 아시나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3354.html#csidx3089d401c9060ffa991d9d365619245
6. 파견업체
7. 메탄올의 반감기는 2~4시간으로, 일찍 진단받지 않으면 메탄올이 몸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지는 셈이다
8. 한국일보, ‘사망사고 1~3위 기업 26명중 22명 하청노동자’, http://www.hankookilbo.com/v/0ed29ac92a0041cab2d4507c8190eb65